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자(2324.2025.8.10.광복절 설교)
느1:1-11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광복절이 들어있습니다. 광복 80주년 기념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36년간의 치욕에서 해방이 된 날입니다. 일본의 히로히또(裕仁 1901-1989) 천황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서 해방을 맞이한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성경 말씀이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는 말씀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8.15는 이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을 얻은 날입니다. 이 날은 이 민족이 자유와 해방을 얻은 은혜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약소민족으로 일본에 강제로 속국이 되어 30여년동안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자유와 독립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합군을 승리케 하여 일본을 무장 해제시켰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 해방의 감격은 잠깐이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칼을 갈고 서로 원수를 맺고 죽이고 살아야 되는 분단의 아픔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주전 4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라가 멸망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아끼던 성전도 파괴되고, 주권을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벽도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의 집들은 거의 다 불타버렸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야 했습니다. 빈천한 자만 그 땅에 남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때 사로잡혀 갔던 포로에게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시기에 이국 땅 바벨론에서 태어나서, 당시 전 세계를 호령했던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그의 지위를 ‘왕의 술맡은 관원’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술 관원’이라는 지위는 당시 굉장히 높은 자리였습니다. 술 관원은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직책이었고, 왕이 마시는 술과 음료를 책임지는 일을 했습니다. 고대에 왕을 죽이고 반역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강한 시대일수록 그런 자리는 왕이 아주 신임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맡을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비록 포로 2세이긴 했지만,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페르시아의 관리가 되었고, 왕의 특별한 신임을 얻어 높은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강국에서 이런 높은 지위를 얻은 느헤미야는 그의 평생에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자신의 지위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나라와민족 이스라엘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갑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가기 앞서, 어려움에 빠진 나라와민족을 위해 일하기 전에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일제의 압제를 받았을 때 나라와민족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던 것처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이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은 나라와민족의 어려운 처지를 들은 느헤미야가 나라와민족을 위해 기도했고, 그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와민족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역사의 문을 연 아주 중요한 사건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8.15 해방 기념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모든 믿음의 식구들이 느헤미야와 같이 우리 민족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민족이 당면한 모든 고통과 문제들이 해결되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성도여러분과 함께 2019년도에 독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방문한 기념으로 저도 독도 명예주민증을 얼마전에 발급받아서 독도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에 우리들은 다시 한 번 그 날의 감격을 되새기면서 이 광복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이 땅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유월절을 영원한 규례로 정하여 대대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 자신들이 이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여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8.15 해방의 날을 영원히 기념하면서 이는 하나님이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베풀어주신 은혜임을 기억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하여 피 흘려 항쟁한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숨은 애국자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80년간 우리 중에 큰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모두 일어나서)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1-2절부릅니다.
3-4절은 폐회 예배전에 부르겠습니다.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닮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기상 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나라와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적인 통일을 위하여 울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이 민족이 평화통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통일은 민족 생존의 문제입니다. 민족의 생존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무기를 양쪽이 계속 가지면 가질수록 위험합니다. 이 무장을 해제해야 합니다. 6.25때는 500만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제 전쟁이 나면 이 민족은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옛날 무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평화를 기도해야 합니다. 선진조국을 위해서입니다. 지금 통일이 되지 아니하면 경제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민족의 복지향상을 위해서 써야 할 이 엄청난 돈이 군사비로 지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칼을 갈고 있는 민족의 슬픈 사실입니다. 민족의 주체성을 위해서입니다. 민족의 분단은 민족 주체성을 상실케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강대국에 종속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서로 침략을 당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에 군사원조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북은 러시아와 중국에 붙어서 간을 빼주고 있습니다. 또 남한은 미국에 붙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밥을 먹고 살고 있지만 이 민족은 양쪽이 다 주체성이 없습니다.
민족 양심을 위해서입니다. 분단은 민족 양심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민족의 양심이 어디에서 무너진 줄 아십니까? 정치와 이념의 차이로 수많은 동족을 죽이면서도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사실입니까? 지금 이 민족에게는 그토록 선했던 양심이 없어졌습니다. 백의민족의 순수한 양심도 잃어버린 채 도덕성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에 빠진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분단이 가져온 구조악의 비극입니다. 한번 갈라지면 상대편에 대해서는 양심이 마비됩니다. 그래서 갈라지면 서로 적이 되기 때문에 어떤 악을 가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것이 전쟁이 저지르는 최대의 악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분단은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사의 문제요, 역사의 문제요, 영과 육의 문제요,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통일을 원하는 주변 국가는 없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도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이 부강한 국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민족 평화 통일을 가장 원하시는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애국자가 있다면 바로 예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조국이 멸망할 미래를 예견하면서 통곡한 애국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시면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큰소리로 우셨습니다. 평화의 성이어야 할 예루살렘이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평화를 잃어버리고 전쟁으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망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멸망할 미래를 모른 채 죄악으로 잠든 백성을 탄식하셨습니다. ‘멸망할 때가 오면 원수들은 토성을 쌓고 너를 사방으로 가두고 너와 네 자녀들을 땅에 내어칠 것이요, 성은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질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과연 이 말씀대로 주후 70년경에 로마의 침략으로 어린 아이들이 버림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성 안에서 굶어 죽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평화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조국의 참상을 눈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장사하는 자를 내어쫓으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하셨습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거늘 기도하는 사람은 없고 장사치들만 우굴거렸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의 원인을 성전 타락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멸망의 원인이 정치, 경제, 사회의 정신적 도덕적인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성전의 타락이었습니다. 지금 이 민족의 위기를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너도 나도 국민들은 정치가의 부패를 탓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썩으려고 할 때 썩지 못하도록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교회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에 빠져 앞을 보지 못할 때 빛이 되어주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할 때 입을 열고 들려주어야 할 책임이 바로 종교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지금도 채찍을 드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과 저는 주님의 채찍에 맞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왜 우셨습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문이요,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을 모시고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민족의 평화, 통일, 미래의 살길은 교회가 바로 서는데 있습니다. 민족 역사는 정치인이 살리지 못합니다. 사업가가 살리지 못합니다. 오직 의인이 민족을 살립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민족 평화 통일을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70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한 후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파사왕국의 고레스 왕).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이 오기까지 바벨론 강가에서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시137:1절‘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그런데 우리 민족은 해방된지 8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진정한 해방과 통일의 기쁨은 오질 않습니다. 이 민족의 진정한 해방인 통일을 위한 눈물이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적인 통일을 위하여 울어야 할 때입니다.
2.느헤미야는 민족을 사랑하기에 앞서 여호와를 기억한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느헤미야는 민족을 사랑하기에 앞서 여호와를 기억한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 하면 ‘여호와를 기억하라’입니다. 즉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 구해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의복과 신발이 닳지 않도록 도와주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주신 여호와를 기억하여 기도할 때마다 그들의 아픔을 돌아보시며 해결해주신 여호와 하나님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호와의 여호와 되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거의 수치를 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46:8절‘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억하라 하시는 것일까요? 단순히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참 쉽게 변질됩니다. 한결 같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어려울 때 참 겸손하고 정직하고 하나님께 기도도 열심히 했던 사람이, 배부르고 부유해지고 높아지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하나님까지도 무시하는 사람으로 변질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울왕이 그랬습니다. 물고기는 지능지수가 한자리 수랍니다. 몇 초만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무서운 낚시에 걸렸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았는데, 2초 후면 또 낚시 밥을 물어댄답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늘 한결같이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복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1절‘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자신을 일꾼으로 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기도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도록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느헤미야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기서 ‘이 사람’은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킵니다. 왕 앞에 은혜를 입게 해 달라는 것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도록 왕으로부터 허락을 얻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예루살렘에 가고 싶은데 왕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는 왕의 신임을 얻고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이기에 왕이 보내주지 않으면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왕의 신임을 받으며 높은 지위를 얻어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모든 지위와 안락함을 다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결코 형통하고 평안한 길이 아닙니다. 험난한 길입니다. 또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이 지위와 편안한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조국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로 가는 길이 열렸고,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것이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만 하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기도한 대로 내가 주님의 도구요 일꾼이 되어서 험난한 길이라 하더라도 가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나는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왕의 술관원입니다. 임금이 마시는 술을 책임지고 진상하는 관리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술에 독약을 타서 왕을 살해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술관원은 왕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자라야했습니다. 따라서 술관원은 왕의 목숨과 직결되는 존재로서 단순한 시중역활을 넘어 심지어는 국정 깊숙이까지 개입할 정도의 고위층 관리였습니다. 때문에 왕의 환상을 사기에도 좋았고, 다른 관리들이 누리지 못했던 총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문고리 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려울 때나 평안할 때나 늘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려웠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주님에게 나아갔었던가요? 참 눈물로 기도하고 부르짖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불쌍히 보시고 한국교회와 더불어 이 민족도 흥하게 해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처럼 한결같은 믿음을 유지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느헤미야는 동족 이스라엘을 위해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애국자였습니다.
어느 날 유대로부터 온 느헤미야가 형제 하나니를 통해 사랑하는 조국 이스라엘의 참담한 소식을 듣습니다. 2-4절에 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소식을 듣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랑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위해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느혜미아가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 지고 성문들은 붙에 타 버렸다는 말을 듣고 몇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목숨걸고 예루살렘 성을 재건합니다. 이렇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일합니다. 우리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허물어지고 불타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도하고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 애국가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수많은 애국자들, 수많은 느헤미야를 배출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 공헌한 분야가 한 두 개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수많은 교육기관을 세워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성경을 읽게 함으로써 한글이 보편화되게 하였습니다. 남녀평등 사상이 고취되었습니다. 어린이 인권 존중합니다. 수많은 병원을 세워 생명을 구원하는데 앞장섰습니다. 특별히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기지요 배후였습니다. (상동교회–전덕기 목사,이준 열사).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채를 갚는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금주 금연 일부일처 도박금지 등 생활 전반에 개혁을 가져왔습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인이 인구에 2%였는데, 33인의 대표 중 16인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덕에 많은 애국자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김구,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김규식 선생들은 교회가 독립운동에 힘 기울이지 않았다면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교회는 민족재건에 큰 힘을 보탰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는 개신교가 배출한 위대한 인물 중 한 분입니다. 새마을 운동이 이분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최근 한국사회는 복지가 대세인데, 이를 위해 가장 앞장 선 것은 기독교입니다. 대부분의 복지시설과 사업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외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도 단연 기독교가 앞장서고 있습니다.‘월드비전’, ‘컴패션’, ‘굳네이버스’등은 모두 기독교 단체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가 드리는 기도는 어떤 기도이어야 합니까? 보통 교인들의 기도 내용들을 들어보면, 이기적으로 들릴 때가 적지 않습니다. 기도 목록의 대부분을 보면 전부가 나만을 위한 기도가 많습니다. ‘아파트 당첨되게 해 주세요, 사업 잘 되게 해 주세요, 합격하게 해 주세요, 로도 당첨되게 해주세요 등등’이런 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기도가 주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느헤미야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민족의 안위와 동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동족을 생각하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기도를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먼저다 생각하며 교회를 위하여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5절‘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의 기도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이 당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어려움이 우리의 눈을 가려 하나님조차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어려운 현실보다는 먼저 그 현실을 풀어주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봅니다. 그게 믿음의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어려운 문제가 부딪히거든 문제를 보지 말고, 그 문제를 풀어주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문제 앞에서 찬송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풀려지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며 기도한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할 때에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6-7절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의 죄를 자백하면서 그 죄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와 내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범죄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느헤미야는 포로 2세입니다. 그는 조국이 멸망당할 때에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조국의 멸망이 결코 자기 죄일 수 없습니다. 조상들이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형벌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모든 것이 다 자기의 잘못이라고 고백합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것도 다 자기 죄라고 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것이 교회 지도자요. 신앙인인 것입니다. 민족의 아픔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먼저 자신 안에 있는 들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조상들의 죄도, 오늘날 어려움을 겪는 것도 다 내 죄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고통의 수렁 속에 던져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우리 민족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지도자가 잘해서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은 하나님에게 있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느헤미야와 같이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기도했습니다. 8-10절의 기도가 바로 그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기도할 때에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강한 응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 말씀들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81:10절‘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약속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요14:14절‘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 여러분! 이렇듯 느헤미야는 회개를 통하여 민족의 회복을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새로워질 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회복시키고 통일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4.민족 평화 통일을 위한 상주감리교회의 사명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시아가 들어서면서 포로로 잡혀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왕을 통해서 선지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70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70년 만에 고국에 돌아가는 백성들은 너무 기뻤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기뻐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70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고국으로 돌아간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옛날 다윗 시대에 누렸던 영광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이방 민족들과 예루살렘에서 권력을 갖고 있던 일부 권력자들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강하게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런데 성벽이 없기 때문에 이방인의 공격을 받으면 수많은 희생자를 내야 했습니다.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그 당시 예루살렘 길에는 날마다 시체가 즐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곽이 없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공격해 오면 대책 없이 당해야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고국에서 온 몇몇 사람에게서 조국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서 듣게 됩니다. 방해공작 때문에 성벽을 건축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갔던 사람들이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페르시아 왕궁에 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동족의 어려움과 고통의 소식을 듣고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본문 4절에‘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헤미야가 취한 행동이 4개의 동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울고, 슬퍼하고, 금식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억만리 멀리 떨어진 고국에서 들러온 소식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습니다. 자신은 페르시아 왕궁에서 높은 지위에 앉아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조국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과 그 조국에서 고통당하는 동포들을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건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느혜미야서 1장 이후를 계속 읽다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바벨론의 고위직(왕의 술관원)을 내려놓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사람은 느헤미야가 하는 일을 조롱하며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런 어려움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셨다고 믿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는 나라를 사랑한 애국자였습니다. 그것도 몸소 실천하는 애국자였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위대함입니다.
애국심이라는 것은 나라의 밝은 면만 기뻐하고, 좋은 점만 누리려하는 것과 다릅니다. 애국심은 조국이 부하거나 빈 하거나, 강하거나 약하거나, 변함없이, 오히려 어렵다면 더욱 사랑하고 감싸는 것이 애국심입니다. 자신은 희생할 생각 없이 자신의 이익을 애국심으로 포장하여 주장한다면 이는 가짜 애국심입니다. 실천 없는 애국은 애국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념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 내가 희생할 수 있어야 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희생하고 실천해야만 애국에서 호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는 것에서 지키고 보호하는 것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140여년전 하나님께서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선교사를 보내셔서 이 민족을 흔들어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가르치고, 고쳐주고, 세워주고, 독립하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나온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닫지도, 기억하지도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들도 은혜를 저버리는 쓸모없는 벌레같은 존재들도 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이스라엘을 사랑했던 느헤미야처럼 상주감리교회와 이 나라 이 민족 대한민국을 더욱 사랑하고, 사랑할 뿐 만 아니라 지키고 보호하는데 수반되는 희생과 헌신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남북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어 진정한 해방을 속히 맞이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과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단합되고 하나 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 더욱 빠르고 확실한 평화통일로 인도하시도록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평화는 전쟁없는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정의로운 조화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전쟁을 이김으로 얻는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시는 구속의 평화입니다. 이제 상주감리교회 성도는 이 민족의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어가는 곳에 분쟁이 있으면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분열이 있는 곳에는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해를 남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있는 곳에 갈등이 해소되고 증오의 칼을 버리게 하십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어 평화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세계 역사상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국으로 유일하게 서로 원수가 된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숨어있는 어떤 칼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칼을 녹여 평화의 보습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통일이 되면 북한 청진에 청진감리교회를 재건하려고 기도하고 있는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눈물, 그 심정에서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임진각을 다녀왔습니다. 여기저기 구경을 했습니다. 비무장 지대도 들어갔다가 왔습니다. 성도들에게 제안하면 그동안 안가보았으니 임진각으로 판문점으로 땅굴로 견학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다녀오도록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백두산도, 한라산도, 독도도 다녀왔는데 삼팔선도 다녀왔으면 합니다.
거기서 통일이 되면 소원을 쓰는 것이 있어서 제가 통일이 되면 뭘쓸까 하고 나는 그랬더니 집사람이 자기는 청진가는 것 뻔한데 해서 ‘통일되면 나는 청진간다’라고 쓰고 제 이름을 쓰고는 인증 사진을 찍고 와서 통일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설교를 하고 상주감리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진교회도 옛날 사진을 보니까 지금 우리 상주교회만합니다. 성도들도 우리만큼 있습니다. 아주 딱입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지금 이 민족을 위해 제2의 느헤미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최일선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라도 지금 내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조국과 민족을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느헤미야의 애국심을 본받아서 비록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작은일 같지만 최선을 다해 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어려움에서 해방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우리 가정에, 직장이나 생업의 터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느헤미야처럼 기도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 되도록 기도하는 우리 상주감리교회의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 가을 하늘 공 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 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 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 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