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배들에게 전하는 세 가지 당부
네이버블로그/ [책리뷰]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 이근후 지음
몇 년 전에 정년 퇴임을 맞은 제자 한 명이 찾아왔다. 남들보다 유별나게 ‘정년 앓이’를 겪는 사람이 있는데, 그 제자가 그런 듯했다. 노년기에 연착륙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몸도 불편하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대인관계에서 적절성도 떨어지고,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다 그렇게 나이 들어 가는 거다”라고 조언했더니 더 불안해했다.
어떤 위로가 그에게 합당할까. 사실 나이가 들면 잃는 게 참 많다. 우선 몸이 옛날 같지 않다. 늙는다는 것 자체를 병리현상으로 보는 학자도 많다. 몸이 온전하지 못해 힘이 들고, 정신도 분별력을 점차 잃어간다. 그러니 나이 들어 좋은 일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악조건 속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운신이 가능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축복이라 할 만하다.
나는 그가 남들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다고 일깨워 보았다. 그동안 연구도 많이 했고, 후학들도 잘 가르쳐 놓았으며, 알뜰하게 저축한 자산도 있고 연금도 나오니, 그는 노후 준비가 매우 훌륭한 편에 속했다. 게다가 퇴임 후 이곳저곳에서 강의하며 소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날을 생각하면 헛되게 살아온 것 같고, 미리를 떠올리면 암담하기만 하단다.
그가 엄살을 피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좀 더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이란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또 나이가 들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불안이 엄습한다. 그러나 나이 듦은 누구도 비켜 갈 수 없기에 불안에만 사로잡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앞으로 노인의 반열에 오르게 될 후배들을 위해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몇 가지 훈수를 적어 보았다.
첫째, 노인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마음을 갖추라. “선생님, 젊어 보이십니다.” 이런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젊어 보여 봤자 먹는 나이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젊어 보인다는 게 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젊다고 우긴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노인이 가진 조건이란 유리한 것은 별로 없다. 둘러보면 우울한 일, 슬픈 일이 더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면 전부 나쁜 조건만 있는 건 아니다.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소일을 할 구석은 어디엔가 있다. 지금까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 분명 할 수 있는 일이 숨어있다.
지금의 ‘나’는 지난 과거의 결과물이다. 누구에게나 과거에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있게 마련이다. 이게 바로 숨어있는 재간이다. 만약 재간을 못 찾겠다면, 그것은 쌓아 온 결과물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든 적든 내 삶의 결과물은 참 소중한 것이다. 일생을 투자해서 일군 결과를 자신이 과소평가한다면 남들도 그 가치를 소중하게 보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자신의 나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틈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재간이 있는지 살펴보기를 권한다. 틀림없이 자기만의 것이 존재한다.
둘째, 서두르지 말고 ‘야금야금’ 실천해 보라. 숨어있는 재간을 찾았다면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일았다고만 하고 실천이 없다면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다.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초조해하지 말라. 마음만 급할 뿐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그러니 조급함을 내려놓고 과정을 즐겨 보자. 즐겁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결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젊어서 처절하게 경쟁하면서 살아왔다면 그 가치를 보상받아야 한다. 그 보상이 다름 아닌 ‘야금야금’ 하는 ‘과정의 즐거움’이다.
‘야금야금’은 여유로운 마음에서 비롯된다. ‘야금야금’ 행동한다는 것은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다. 여유롭게 과정을 즐기겠다고 마음먹으면, 급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차 눈에 띈다. 새로운 발견이 늘어날수록 즐거움이 커지고, 즐거움은 꾸준함으로 이어진다.
셋째, 내가 거둔 곡식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은 일과를 끝낸 농부 부부가 경건하게 감사 기도드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나는 이 그림이야말로 노년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 년 동안 정성 들여 가꾼 곡식을 수확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곡식이 풍족하든 모자라든 내 노고의 결과로 받아들이면서 기도하는 모습.
나이가 들면 지나온 삶을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노년기의 평온과 만족감은 과거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흘려보낸다면 얼마나 무의미한가. ‘봄에 좀 더 거름을 주었더라면’, ‘추수가 얼마 안 되었네’, ‘다른 사람들은 훨씬 수확량이 많던데’ 하는 생각을 멈추고, 지금 가진 곡식을 어떻게 쓸까를 꿈꿔 보길 바란다.
나이 들어 가장 좋은 일을 꼽으라면 단연 책임과 의무로부터의 해방이다.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 먹고살기 위해, 더 잘살기 위해 앞만 보며 허겁지겁 달려오지 않았던가. 결과와 속도만 강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느라 나와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나이 들어 찾아오는 우울감의 원인 중에는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보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크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진정 자유로운 자신을 꿈꿔 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나답게 살 때 가장 빛나는 나의 존재감이 있다. 하루를 살아도 내 인생이다. 이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노년기이고, 인생 후반전에 들어선 때부터 준비하면 더욱 좋다.
우리 생애는 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이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여기에서 빛나는 행복을 찾아 설계해 보길 바란다. <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근후, 메이븐, 2019.)에서 옮겨 적음. (2026. 6.10. 화룡이) >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의초 이정석 작성시간 26.06.10 둘째, 서두르지 말고 ‘야금야금’ 실천해 보라.
숨어있는 재간을 찾았다면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저는 작년 부터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서예실에서 만 하다가 어제 처음으로 집에서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하니 더 좋은 작품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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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화룡이(이창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1 참 대단하시네요.
평생을 과학과 사진 작가로 살아오신 분이
퇴임 이후에 농부시인으로 10년 세월을 사시더니
이제는 또 서예 작가로도 활동하신다니...
건강, 다복하시길 축원드립니다. -
작성자김예희 작성시간 26.06.10 인생 선배님이 전해 주는 세 가지 당부가 귀에 쏙 들어옵니다.
나이 든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내 몸에 무리된다면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알고,
매사에 서두르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교훈을
마음에 새겨 실천하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화룡이(이창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1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