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동심의세계 - (214)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 ① 천상(天上)에서 지상(地上)으로,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으로/ 이도환
작성자화룡이(이창모)작성시간26.06.11조회수73 목록 댓글 2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프레시안/ 제14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문학평론가 이도환 선정
① 천상(天上)에서 지상(地上)으로,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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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리 동시집 『별에서 온 나무』(아침마중, 2019. 6.)
윤이현 동시집 『동시버스를 타고 가요』(아동문예, 2019. 7.)
김용웅 동시집 『손가락이 하는 말』(아동문예, 201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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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의 역사를 ‘천상(天上)에서 지상(地上)으로’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천상(天上)의 신(神)이 지상(地上)으로 내려오는 것을 그 시작으로 삼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국신화가 이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성(聖)스러운 징조 – 천신(天神)의 하강(下降) - 왕의 등극과 국호 제정 – 혼인 – 직제 및 제도의 확립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그 어디나 비슷하다. 권력을 지닌 자들이 스스로를 성스러운 존재로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권(人權)을 지닌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인식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인권(人權을 지니지 못했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문자라고 알려져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설형문자(楔形文字), 일명 쐐기문자로 기록된 것을 살펴봐도 비슷하다. 물자(物資)의 입출기록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나오는 스토리는 신(神)에게 올리는 보고서였다. 그 기록을 남긴 이유는 사람에게 읽히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대상 독자는 신(神)이었다. 그 문서를 남긴 사람은 스스로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 주장하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태생, 혈연, 성별, 인종, 나이, 부유함에 따라 차등되어 존엄을 인정받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범주는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존엄을 인정받는 ‘사람의 범주’는 남성에서 시작하여 여성으로, 백인에서 시작하여 유색인종으로, 어른에서 시작하여 어린이까지, 이제는 생명을 지닌 모든 생물이 존엄을 인정받아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문학은 어떠한가. 신(神)의 이야기에서 반신반인(半神半人)인 영웅의 이야기로, 다시 순수한 사람의 혈통을 지닌 영웅에서 일반인으로, 일반인을 넘어 어린이, 더 나아가 평균 이하의 무능한 사람이나 악인(惡人)까지, 그 범위는 무한확장되고 있다.
결국 누군가는 ‘서사는 타락(墮落) 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스러운 신의 이야기에서 타락한 악인의 이야기로 움직인 변화의 궤적은 앞서 설명한 ‘천상(天上)에서 지상(地上)으로’ 움직인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야만(野蠻)에서 문명(文明)으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2.
알고 있니?/ 소나무 숲 사이로/ 손수건만 한 하늘이 보이지만/ 하늘이 소나무를/ 큰 가슴으로 껴안고 있다는 걸
(정두리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 소나무」 일부)
존엄을 인정받는 사람의 범주는 이제 테아(胎兒)를 넘어 난자(卵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사람을 넘어 전체 생물로도 이어진다. 흔히 생태주의(生態主義)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거창하게 무슨 주의(主義)를 붙일 필요도 없다. ‘하늘’이 ‘소나무’를 껴안고 있는 모습은 예전 권력자들이 스스로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이지 않는가. 모든 사람이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위치에 오른 것처럼, 모든 생물들, 나무도 마찬가지로 ‘반신반목(半神半木)’의 위치에 오른 것이라고 정두리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와 풀을 노래하고 있는 정두리의 동시집 『별에서 온 나무』는 인류문명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
등나무 아래/ 모두 모여라/ 오늘만큼은 혼자이면 안 된다// 등꽃 송이처럼/ 함께 모이자/ 금세 우리 얼굴은 보랏빛이 스미어/ 닮아져 있을 거다
(정두리 「보랏빛 등불 – 등나무」 일부)
등나무 아래에 모여 등꽃 송이를 닮아가는 것처럼, 시인은 신(神)과 사람과 나무와 풀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자전거 타고 가는 길/ 경운기가 털털털 가는 길/ 그 길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파아란 하늘과 어울리는/ 키 큰 친구/ 미루나무.
(정두리 「길을 만든다 – 미루나무」 일부)
은방울과 눈을 마주치려면/ 내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해요/ 한껏 낮추어야 꽃을 볼 수 있어요
(정두리 「은방울꽃」 일부)
자전거와 경운기가 달리는 길에 파란 하늘과 미루나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라며 우기지 않기 때문이다. 어깨에 힘을 주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객체(客體)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두리의 『별에서 온 나무』는 높이 오르기 위해 낮게 내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나무는/ 알아듣나 봐/ 바람의 속삭임을
(윤이현 「바람과 나무」 일부)
봄볕이/ 선생님처럼 환한 웃음으로/ “얘들아~”// 새싹들 마냥 좋아라/ “네, 네, 네에~”/ 다투어 고갤 내밀지요.
(윤이현 「봄뜰」 전문)
나무는 바람의 속삭임을 알아듣고, 새싹과 봄볕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라. 특별한 모습이 아니다.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일상(日常)이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자절사(子絶四)’가 떠오르지 않는가. “공자는 다음에 말하는 네 가지를 끊어서 없애버렸다(子絶四). 억지로 의도하지 않았고(毋意), 억지로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며(毋必), 억지로 고집하지 않았고(毋固),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았다(毋我)”
고집하지 않으면 연결되고, 고집하지 않으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윤이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른 아침/ 눈이 살포시 내렸다/ 두 줄 발자국이 남았다// 오순도순/ 두 친구 사이도 좋게/ 학교에 갔나 보다
(윤이현 「첫눈」 전문)
아침부터 왠 비가/ 이토록 쏟아지는 거냐고/ 투덜대지 마셔요./ 우산 속 두 사람/ 도란도란 도란도란/ 너무 보기 좋은걸요.
(윤이현 「비 오는 날」 전문)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눈이 내려 미끄러운 길도 즐거운 길이 된다. 같이 걸을 때 내리는 눈은 언제나 첫눈이다. 설렘과 기쁨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우리 할머니는/ “막둥아~”// 우리 선생님은/ “얘, 회장!”// 내 공책에는/ “윤덕훈”/
(윤이현 「내 이름은 셋」 전문)
특정한 ‘나’를 고집하지 않으니 매일 즐겁고 설렌다. 막둥이면 어떻고 회장이면 어떤가. 그들과 어울리는 과정 속에 내가 있음을 알기에, 그것이 진정한 ‘나’임을 알기에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윤이현의 동시집 『동시버스를 타고 가요』에는 ‘나’를 고집하지 않아 진정한 ‘나’를 찾아낸 ‘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4.
빈 가지마다/ 기도하는/ 손으로/ 하얀/ 봄을/ 달고 있다.
(김용웅 「목련」 일부)
율곡은 ‘봄은 인(仁)이다’라고 말한다. “하늘이 내려준 바른 이치는 원형리정(元亨利貞)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사람 마음으로 들어오면 인의의지(仁義禮智)가 된다. ‘원(元)’은 사계절 중 봄에 해당한다. 따스하고 온화하여 새싹이 돋아난다. 사람에게는 어질고 착한 마음,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 따스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감싸주기 때문이다.” 율곡이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설명한 것을 대입해본다면 빈 가지가 기도하는 손으로 봄을 달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모두를 감싸주는 따스함, 바로 인(仁)의 마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밤에/ 노란 단추/ 겨울 동안/ 잠겨 있던/ 돌담 귀퉁이에/ 달아 놓았네//
후 바람이/ 단추를 풀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노오란/ 봄이
(김용웅 「민들레·1」 전문)
할머니/ 검은 머리카락에/ 어느새/ 하얀 민들레꽃이 피었네
(김용웅 「민들레·2」 일부)
잠겨 있던 것이 풀리면 인(仁)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것은 쇠(衰)해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초록 이파리에/ 하얀/ 눈이 내린다// 오월/ 햇살을 안고/ 하얀 눈이 내린다//
(중략)// 눈이 부신/ 하얀/ 봄이/ 자꾸자꾸만/ 나뭇가지마다/ 소복소복 쌓인다
(김용웅 「이팝나무·1」 일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상황도 바뀐다. 봄에도 눈이 내리고 쌓이기까지 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고집을 버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지상(地上)에서의 깨우침이 바로 천상(天上)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각(覺)은 불꽃처럼 이루어지지만 불꽃이 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꽃이 불처럼 타오르게 하려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천상(天上)에서 지상(地上)으로 내려오는 것은 불꽃같은 각(覺)으로 충분하겠지만,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으로 오르는 것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펴본 3권의 동시집은 새로운 불꽃이다. 불꽃을 불로 살려내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 ‘이도환 동시 평론집,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그 사이에 동시가 있다(이도환, 도서출판 소야, 2024.)에서 옮겨 적음. (2026. 6.11.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