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동심의세계 - (215)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 ② 일상(日常)에서 예술(藝術)로, 나비처럼/ 이도환 아동문학평론가
작성자화룡이(이창모)작성시간26.06.12조회수36 목록 댓글 2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프레시안/ 제14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문학평론가 이도환 선정
② 일상(日常)에서 예술(藝術)로, 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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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봄심 동시집 『새야 기저귀 차렴』(아동문예, 2019. 10.)
진아난 동시집 『풍경소리가 땡그랑』(세계문예, 2019. 9.)
이재순 동시집 『나비 도서관』(청개구리, 201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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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어(詩語)’는 ‘일상어(日常語)’와 무엇이 다른가. 시(詩) 속에서 드러나는 일상(日常)과 실제 생활 속의 일상(日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편집한 〈근사록(近思錄)〉은 선배 학자들의 글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추려 모은 책이다. 책의 제목인 〈근사록(近思錄)〉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면(切問而近思)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라는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근사록(近思錄)〉이 완성되자 어떤 사람은 책의 첫머리부터 음양(陰陽)의 변화(變化)와 성(性)과 명(命) 등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에게 너무 어려운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주희와 나도 이 책을 편집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머리에 어려운 용어들을 그대로 실은 이유는 학문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를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첫 부분만 넘어서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 순서에 따라 배우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높은 곳에 오르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먼 곳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될 것이다. 낮고 가까운 곳을 무시하고 무작정 높고 먼 곳으로 달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바른 이치도 아니다. 그렇게 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의 제목이 왜 〈근사록〉인지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여조겸은 〈근사록〉에 붙인 후기(後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핵심은 무엇인가. 일상(日常) 속의 실천이 숭고(崇高)한 진리(眞理)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시어(詩語)’와 ‘일상어(日常語)’의 관계도 이러하지 않을까.
2.
0살 우리 아가는/ 온몸으로 먹는다.// 눈으로도 먹고,/ 코로도 먹고,/ 가슴으로도 먹고,
(박봄심 「0살 우리 아가는」 일부)
집을 나선 후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가스밸브를 잠갔던가? 수도꼭지는? 스위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일상(日常)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행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진행하는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게 사실이다. 일기에 쓸 내용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근거한다. 의식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진행하는 일들은 아무리 움켜잡으려 해도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고 만다. 기억에 남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연한 것, 특별할 것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것은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기가 온몸으로 먹는 것을 잡아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절실하게 따져보는 것, 그것이 바로 〈논어〉에서 이야기한,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면(切問而近思)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라는 ‘근사(近思)’의 기본이다.
아기는 자기 발이/ 신기한가 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씨익 웃어요.// 아기는 자기 발가락이/ 맛있나 봅니다./ 쭉쭉 쭉쭉/ 맛있게 먹습니다.
(박봄심 「신기해」 전문)
대부분의 것들을 익숙하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일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아기는 다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발가락과 혀가 서로 다르지 않다.
여름이 간 것도/ 나는 몰랐다./ 가을이 온 것도/ 나는 몰랐다.// 비 온 뒤 문득/ 내 곁에 스며든 가을.
(박봄심 「미안했다」 일부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래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익숙해지면, 이전에 그냥 스쳐지나간 것들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일상(日常)’이 ‘예술(藝術)’로, ‘일상어(日常語)’가 ‘시어(詩語)’로 변화하는 벽곡점은 어디에 있는가. 가까이에 있는 것을 무시하지 말고 깊게 생각하는 것(近思),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절실하게 묻는 것(切問)에 있다. 박봄심의 동시집 『새야 기저귀 차렴』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첫 번째 계단이다.
3.
모기 많은 여름밤이/ 뒤척뒤척 지나면/ 큰스님 몸 곳곳엔/ 모기 물린 자국이/ 연꽃처럼 피어났다.// 큰스님은/ 모기가 물어도/ 가만 계신다.// 행여,/ 모가들이 다칠까봐/ 가만 계신다.// 모기 많은 여름이면/ 큰스님 몸은/ 연꽃 연못이 된다.
(진아난 「연꽃 연못」 전문)
‘너’와 ‘나’ 사이에 관심과 사랑이 자리하면 그대로 멈추어 담장을 쌓는 것이 아니다. 둘 사이에 있는 관계의 그릇에 관심과 사랑이 차올라 흘러넘치는 순간이 온다. 흘러넘친 관심과 사랑은 어디로 가는가. ‘그’에게로 간다. ‘큰스님’에게로 가고, ‘모기’에게로 가고, ‘연꽃 연못’으로도 간다.
“자연의 이치를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는 없다. 이미 내 몸속에 자연의 이치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굽혀졌다가 펴지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모든 것이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 어우러져 생명을 유지하는 이치가 바로 그것이다. 피곤하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지만, 심장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생명도 쉬지 않고 이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근사록〉에 실린 송나라의 학자 정호(程顥)의 말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했지만 먼 곳까지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질녘 큰스님이/ 뒷짐을 지고 절 안을 살피신다.// 동자승도 따라/ 뒷짐 지고 절 안을 둘러본다.// 뒷짐 지고 살펴보니/ 곳곳에 깃든 평화가 잘 보인다.
(진아난 「뒷짐 지고」 일부)
동자승이 막대로/ 겨울 마당에/ 그림을 그린다.// 마당에 드리워진/ 감나무 그림자 따라/ 그림을 그린다.// 굵은 밑동/ 잔가지/ 까치밥도 그린다.// 그림자는 막대가/ 푹 파고 지나도/ 큰스님처럼/ 너그러이 봐준다.// 절 마당엔 이제/ 아름다운/ 나무가 셋이다.
(진아난 「세 그루 나무」 전문)
‘너’와 ‘나’의 관계에서 시작된 사랑의 물결은 해질녘 노을빛처럼 퍼져 나간다. 노을빛이 절 안을 비추면 큰스님도 절 안을 살피고 동자승도 절 안을 둘러본다. 노을빛이 살펴보는 마음이 큰스님과 동자승에게도 이어진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니 겨울 마당에는 나무와 나무 그림자에 더해 동자승이 그린 나무까지, 세 그루의 나무가 만들어졌다.
진아난의 동시집 『풍경소리가 땡그랑』에는 ‘너’와 ‘나’에서 시작된 사랑의 물결이, 풍경소리처럼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4.
맨발로/ 자근자근/ 소리길 걷는데/ 발바닥이/ 간질간질/ 콧구멍이/ 간질간질// 발바닥이/ 웃으니/ 온몸이 웃네
(이재순 「간질간질」 전문)
처마끝/ 낙숫물 소리/ 똑! 똑! 똑!// 시냇물/ 밟고 가면// 찰방!/ 찰방!/ 찰방!// 연못에/ 물수제비 뜨면// 퐁!/ 퐁!/ 퐁!
(이재순 「물소리」 전문)
‘일상어(日常語)’가 ‘시어(詩語)’를 낳았다. ‘일상(日常)’이 ‘예술(藝術)’을 낳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너’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졌다. ‘그’도 사라졌다. 무엇이 남았나. ‘너’의 것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며 ‘그’의 것도 아닌, 웃고 있는 ‘맨발’과 ‘발바닥’과 ‘콧구멍’이 남았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낙숫물’과 ‘시냇물’과 ‘연못’과 ‘물수제비’가 남았다. 움직임이 남았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프랑스의 발레리는 산문을 행진에, 시를 춤에 비유하기도 했다. 행진이 A에서 B로 옮겨가는 목표지향의 행위라면 춤은 그렇지 않다. 움직임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이를 일상과 예술, 일상어와 시어로 치환하면 어떨까. 일상이 예술로 변화한 것처럼, 일상어가 시어로 변화한 것처럼, 행진은 춤으로 변화한다. 화학적 변화의 근원에는 관심과 사랑이 존재한다.
소원이/ 하나씩 쌓인다// 소원 위에 소원/ 또 소원//././.// 맨 아래/ 소원// 쌓인 소원들/ 모두 받들고 있다
(이재순 「돌탑」 전문)
사람들 눈길이/ 뜸한 사이/ 매화꽃 지고/ 배꽃 지고/ 사과꽃 지고// 매실 열리고/ 배 열리고/ 사과 열리고
(이재순 「시간의 발자국」 일부)
일상이 쌓여 예술이 된다. 쌓인 소원들을 맨 아래 소원이 받들고 있는 것처럼, 시어는 일상어가 받들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 시인은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고 매달린다. 여린 감수성으로 인해 일상에서는 시들어 떨어지거나(flowers fall) 지기도 한다(敗北, lose). 그러나 같은 이유로 열매를 맺거나(yield fruit) 혹은 활짝 열린다(open).
이재순의 동시집 『나비 도서관』은 행진을 춤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나비는 직선으로 날지 않는다. 지그재그로 곡예비행을 한다. 직선으로 비행하는 새들은 나비의 불규칙한 비행으로 인해 목표 지점을 예상하지 못한다. 그들은 나비를 잡아먹지 못한다. < ‘이도환 동시 평론집,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그 사이에 동시가 있다(이도환, 도서출판 소야, 2024.)에서 옮겨 적음. (2026. 6.1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