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동심의세계 - (216)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 ③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그리고 동심(童心)/ 이도환 아동문학평론가

작성자화룡이(이창모)|작성시간26.06.13|조회수41 목록 댓글 2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프레시안/ 제14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문학평론가 이도환 선정

③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그리고 동심(童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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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식 동시집 『비디오 판독중(아침마중, 2020. 2.)

문영순 동시조집 『애벌레 엉덩이 춤(아동문예, 2020. 1.)

배정순 동시집 『강아지가 돌린 명함(소아, 201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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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주희(朱熹)는 이전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유학(儒學)을 새롭게 해석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렇기에 그가 내세운 학문을 이전과 다르게 신유학(新儒學) 혹은 성리학(性理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이전까지 유학의 대척점이라고 생각했던 불교와 도교의 장점을 가져와 통합적인 사상체계를 만들었다. 이전의 유학이 실천윤리에 몰입했다면 주희는 여기에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기반으로 철학적 사유체계를 제시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왜 순(舜)임금은 ‘사사로운 마음(인심, 人心)은 위태롭고 올바른 마음(도심, 道心)은 점점 희미해지니 정밀하게 잘 살펴서 올바른 마음으로 꽉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는가. 이 글을 읽으면 마치 하나의 마음이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모두 바른 마음을 지니고 태어난다. 세상을 만들어낸 바른 이치에 따라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나는 순간 몸을 지니게 된다. 몸을 지녔기에 배고픔과 배부름을 느끼고 춥고 더운 것을 느끼며 편안하고 불편한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사로운 욕망, 인심(人心)이다. 그렇다고 본래 지니고 있던 바른 마음, 도심(道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외부의 작용을 느끼는 것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본래 지니고 있던 바른 마음을 잊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현명한 사람이라도 사사로운 욕망, 인심(人心)을 없앨 수는 없다.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래 타고난 바른 마음, 도심(道心)을 지니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마음에 동시에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를 적절히 다스려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적절히 다스리며 조화롭게 만들지 못하면 위태로워지고, 이것이 계속 이어지면 바른 마음(道心)은 점점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고 작아져 찾아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정밀하게 살피라는 것은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구분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서로 뒤섞여버리면 혼란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꽉 잡으라는 것은 도심(道心)을 찾아내어 소중하게 간직하며 이를 더욱 더 크게 키워나가라는 뜻이다. 자칫 방심하면 놓쳐버리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잠시도 방심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인심(人心)을 없애버리고 도심(道心)만 가지라는 것은 아니다. 도심(道心)이 앞장서서 나아가고 인심(人心)이 그를 따라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몸을 지니고 있는 이상 인심(人心)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너무 인심(人心)에 치우치고 얽매이지 않도록 적절히 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인심(人心)이 도심(道心)을 따르는 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그것이 기쁘고 즐거워서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위태로움은 사라지고 편안해지며, 잘 보이지 않던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그것을 따르는 게 쉬워진다. 이런 경지에 다다르면 숨 쉬고 먹고 잠자고 움직이며 말하고 일하는 모든 생활에 있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모두 적절하여 잘못이 없어질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주희의 말이다. 사람이 지닌 본성(性)은 세상이 만들어진 이치(理)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기에 그의 학문을 ‘성(性)’과 ‘리(理)를 묶어 성리학(性理學)이라 부른다.

자꾸만 위태로운 방향으로 가려는 마음(人心)을 올바르게 돌려놓을 수 있는 희미하고 작은 마음(道心)을 동시 속에서 찾아보았다.

 

 

2.

 

헉!/ 헉!/ 톡, 넘어졌다.//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내 욕심을 잡아줬다.

           (박정식, 「달리기 시합」 전문)

 

앙상하게 말라가는/ 큰 나무// 이상하다/ 했지.// 큰 나무 바로 밑에서/ 어린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박정식, 「자리 비켜주기」 전문)

 

인심(人心)을 따르기는 쉬운데 도심(道心)을 따르는 것은 왜 어려운가.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나의 개인적 이익과 지금 당장의 편안함은 눈에 잘 보인다. 크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이익과 모든 사람들의 편안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작게 보인다.

“새와 물고기 등 짐승을 보아라. 그물이 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먹이가 눈에 보이면 아무 생각도 없이 달려든다. 낚시 바늘에 매달린 먹이라 하더라도 달려든다. 왜 그렇게 하는가. 위험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매한 사람들이 도심(道心)을 찾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치와 같다. 인심(人心)을 따르는 것은 그때그때의 감각에 따르는 것이다. 맛난 음식을 보면, 금덩이를 보면, 추울 때 따스함을 보면,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외부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때그때 눈앞에 있는 것만을 따라가니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고 방향 감각조차 상실하니 걸어가고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저 멀리 가 있다. 넋이 나갔다는 뜻이다. 그러니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주희의 부연설명이다. 그러나 시인은 주희보다 매우 짧게 그리고 간명하고 쉽게 순(舜)임금의 충고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새벽 잠 깬 아기가/ 기지개를 켠다.// 두 팔 뻗어/ 머리맡 ’어둠‘을/ 쭉/ 밀어낸다.// 온 세상이 밝아진다.

           (박정식, 「아기 힘」 전문)

 

박정식의 동시집 『비디오 판독중』은 힘이 세다. 어둠을 쭉 밀어내고 세상을 밝게 만든다. 혼탁한 인심(人心)을 쭉 밀어내고 희미해진 도심(道心)을 환하게 보여준다. 박정식에게도 도심(道心)은 동심(童心)이 담긴 동시(童詩)다.

 

 

3.

 

고개를 숙여야만/ 비로소 보이는 꽃/ 그 꽃을 보려면은/ 내 키가 작아진다// 마음도 고개 숙이면/ 겸손한 꽃이 된다

           (문영순, 「작은 꽃」 전문)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마음이 조급하여 뜨거울 때는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달아올랐다가 또 차가워질 때는 얼음처럼 굳어버린다. 이렇게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면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겠는가. 걸핏하면 구덩이에 빠지고 툭하면 넘어지게 된다. 몸이 위험한 것은 물론이지만 이렇게 갈팡질팡하면 그 마음은 어떻게 되겠는가. 몸보다 앞서 마음이 먼저 만신창이가 되고 말 것이다. 요임금이나 순임금과 같은 성인(聖人)도 인심(人心)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심(人心)이 있다고 하여 모두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성인(聖人)의 인심(人心)은 자연스럽게 도심(道心)을 따른다. 도심(道心)이 마음을 이끌어가고 인심(人心)은 그에 적절히 반응할 뿐이다. 만약 인심(人心)만 지니고 있다면 위태롭겠지만 도심(道心)을 지니고 있으므로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성인(聖人)과 미친 사람(狂人)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미친 사람(狂人)이라 하더라도 도심(道心)을 찾아 이를 따르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고, 도심(道心)을 잃고 인심(人心)에만 휩쓸리면 성인(聖人)도 미친 사람(狂人)으로 변할 수 있다. 이것을 잊지 말라.”

주희의 또 다른 설명이다.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敬)’이다. 안으로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이 바로 ‘경(敬)이라 할 수 있다. 크고 강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시인의 충고처럼 스스로를 작게 만들어 겸손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늘은 별을 안고/ 산들은 나무 안고/ 풀들은 땅을 안고/ 토닥토닥 다독이네// 세상을 살아가려면/ 서로 함께 도와야죠.

    (문영순, 「우리 함께」 전문)

 

돌돌돌 손재봉틀/ 어머니가 생각난다// 자다가 깨어보면/ 돌돌돌 그 소리// 색색 천 짜 맞춰가며/ 무지개를 만드신다.

    (문영순, 「조각보」 전문)

 

안으로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敬)을 곧게 가지고, 밖으로는 바르고 오른 것(義)을 지켜내는 실천을 보여주어야 한다. 모든 것을 공경하는 마음을 굳게 지키면 내면이 바르게 되고, 바르고 옳은 것을 실천하고 지켜내면 외면이 단정해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외모를 잘 가꾸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올바르게 가꾸어져야 한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 외모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존경해주며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이루어지며 모두를 이롭게 만든다. 억지로 멋지게 꾸미려 하지 말라. 바른 마음을 가지면 저절로 멋지게 된다.”

주희에 앞서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송나라의 학자 정이(程頤)의 설명이다. 작아져 겸손해지면 서로 기대게 된다. 추우면 서로 끌어안게 되는 것처럼, 거만하지 않고 겸손해지면 서로 끌어안게 된다. 도닥이게 된다.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끌어안게 되면 아름다운 무지개가 된다.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아도 멋지게 된다. 겸손한 마음이 이뤄낸 기적이다.

문영순의 동시조집 『애벌레 엉덩이 춤』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 높게 날아오른다. 작고 약한 것들이 서로 서로 힘을 모아 도심(道心)을 구현해낸다.

 

 

4.

 

어둠은 작은 불빛에도/ 화들짝 놀라 도망친다.// 산 밑 외딴길 점령했던 어둠도/ 자동차가 불 켜고 달려오면/ 줄행랑부터 친다/ 길옆에 납작 엎드린다.

           (배정순, 「어둠은 겁쟁이다」 일부)

 

잠이 왔어/ 날 찾아왔어/ 우주 어디쯤 떠돌다/ 날 찾아온 거야// 잠이 왔어/ 수업시간인데 찾아왔어/ 밤에 충분히 있다 가지 못해/ 낮 시간에 슬며시 내게 온 거야.// 잠이 왔어/ 아침 일찍 보냈더니/ 아쉬워서 다시 온 거야.// 잠이 왔어/ 날 찾아온 거잖아/ 쫓아버리지 않을게/ 도망가지 마.

           (배정순, 「잠이 오다」 전문)

 

인심(人心)은 어둠과 같다. 도심(道心)으로 마음을 단단히 하고 부짖치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빛을 이겨내는 어둠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주가 만들어졌을 때 발생한 입자들의 조각이 우리의 몸을 이루는 물질이 된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우주를 만들어낸 천리(天理)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도심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더라도 자포자기(自暴自棄)할 필요는 없다. ‘자포(自暴)’는 나(自)에게 폭력(暴)을 가하는 것이며 ‘자기(自棄)’는 나(自)를 쓰레기처럼 내다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토록 무서운 말이 어디 있겠는가. 도심(道心)은 늘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 잠시 잊고 있었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반드시 돌아오니, 그때 ‘올바른 마음을 꽉 잡아야 한다’. 그것만 잊지 않고 있으면 된다.

 

나뭇잎들 손바닥 활짝 펴고 일광욕 중이다/ 잠자리도 날개 활짝 펴고 바위에 누웠다// 젖은 옷 말리는 시간/ 쉿! 방해하지 않기.

           (배정순, 「비 그친 숲속」 전문)

 

그렇게 올바른 나를 다시 찾아 대면하면 된다. 드디어 도심(道心)이 완성되고 경(敬)을 이루게 된다.

조심스럽고 겸손한 마음,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바른 길로 접어들 수 없다. 또한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면 그 앞에 겸손해지고 모든 것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서로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조화롭게 결합되어 존재한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을 보면 이러한 조화를 잘 모른다. 어떠한 상황을 맞이하면 그것에 마음이 흔들려 ‘아, 저것이 내 마음을 뺴앗아가 내가 이렇게 흔들리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상황을 미워한다. 미워하면서도 내치지 못하고 갈등 속에서 고통스러워할 뿐이다. 그러나 그 상황이 마음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스스로 그 상황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상황을 탓하지 말라. 잡다한 생각이 많아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이치에 맞게 움직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송나라의 학자 정이(程頤)의 말이다.

배정순 시인은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조용히 찾아온 내면의 나를 조용히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그리고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자신과 조용히 마주하여 온전히 지니고 태어난 도심(道心)을 찾아간다.

배정순의 동시집 『강아지가 돌린 명함』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안내서와 같다. 인심(人心)에 매몰되지 않고 도심(道心)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라 해도 좋으리라.

9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주희가 오늘로 돌아와 동시를 읽으면 아마도 깜짝 놀라리라. 자신이 그토록 어렵게 설명한 성리학(性理學)의 내밀한 목소리를 이토록 간명하고 쉽게 풀어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 ‘이도환 동시 평론집,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그 사이에 동시가 있다(이도환, 도서출판 소야, 2024.)에서 옮겨 적음. (2026. 6.13. 화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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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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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의초 이정석 | 작성시간 26.06.13 배정순의 동시집 『강아지가 돌린 명함』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안내서와 같다.
    인심(人心)에 매몰되지 않고 도심(道心)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라 해도 좋으리라.
    꼭 찾아 보겠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인쇄하여 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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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화룡이(이창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동심 속에도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마음'이
    숨어있음을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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