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세계 - (217)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 ④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 그러나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네/ 이도환

작성자화룡이(이창모)|작성시간26.06.14|조회수36 목록 댓글 2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프레시안/ 제14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문학평론가 이도환 선정

 

④ 서로 다른 세 가지 시선, 그러나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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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동시집 『누가 보나 안 보나(아침마중, 2019. 1.)

이경덕 동시집 『딱따구리 집짓기(아동문예, 2019. 1.)

정혜진 동시집 『바람 배달부(소아,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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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도하는 바가 없을 때 이루어진다. 너무도 뚜렷한 목적을 지니면 오히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도 꼬이게 된다. 자연이 그러하다. 무엇을 이루어내겠다는 의도가 없으니 모든 것을 이루지 않는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겨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라. 최영재의 동시집 『누가 보나 안 보나』는 그러한 무위(無爲)를 노래하고 있다.

 

장마 뒤 질퍽한 학교 운동장에/ 덤프트럭이 모래 산을 서너 개 내려놓고 갔다.// 아이들은 등하굣길 일부러 모래 산길 넘어 다니고/ 쉬는 시간 모두 나와 두꺼비집 만들고/ 점심시간 씨름할 때 괜히 넘어지고/ 매일 세웠다가 무너뜨리는 많은 모래성.// 한 달쯤 지나자/ 아무도 삽질 한 번 하지 않았는데/ 높은 모래 산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최영재 「모래산」 전문)

 

아무도 삽질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질퍽한 운동장은 말끔히 정리되었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놀이가 문제를 저절로 해결했다.

 

‘공사 중 운동장 사용금지’// 강둑 아래 둔치 축구장/ 배수 공사로 두 달 동안/ 빨간 테이프 둘렀는데// 사람이 오지 않는/ 이 좋은 기회 놓칠까보냐?// 잡초들은/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여기저기 자리 잡고// 매일 맘껏 운동장 사용 중.

       (최영재 「운동장 사용 중」 전문)

 

잡초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아도/ -뭐 어때?/ 아침 이슬만 먹어도 배부른데.// 잡초는 사람들이 악착스레 뽑고 또 뽑아도/ -뭐 어때?/ 비 며칠 오면 금방 또 살아날 건데.// 잡초 밭에 온 벌 나비 헛걸음하고 눈 홀기면/ -뭐 어때?/ 땅 속에 지렁이 친구가 많은데.

           (최영재 「뭐 어때?」 전문)

 

‘잡초’도 그러하다. 아이들과 잡초는 모두 의도가 없어 자유롭고 의도가 없어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러한 모습을 본 시인은, 그 오묘한 진리의 한 자락을 발견한 시인은, 그래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경이로움을 느끼며 지켜볼 뿐이다.

 

산길 나뭇가지에서/ 잣송이를 슥슥슥 벗겨 잣알만 까먹는 청설모/ 뽕잎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누에// 자갈인 듯 자갈밭에서 알을 품는 꼬마물떼새/ 한참만에 리을 자 목을 펴서/ 피라미 낚아채는 백로// 나를 우뚝 세워놓고/ 한동안/ 숨도 크게 쉬지 못하게 한/ 대단한 녀석들.

           (최영재 「나를 꼼짝 못하게 한 녀석들」 전문)

 

아늑한 산자락 숲에/ 바위, 나무, 산골 물, 새, 고라니, 두더지 등/ 오순도순 살았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오래된 나무를 마구 베어 길을 만들고/ 숲을 걷어내고/ 아파트를 지었어요.// 그래도 숲속 가족들은/ “물러가라! 아파트가 웬말이냐!”/ “돌아가라! 돌아가라!”// 한 마디도 안 했어요. /그저 둥지 짓는 줄 알고 함께 살았어요.

           (최영재 「같은 둥지」 전문)

 

아이들과 잡초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청설모와 누에, 꼬마물떼새와 백로도 그러하다. 바위, 나무, 산골 물, 새, 고라니, 두더지도 그러하다. 최영재 시인이 발견한 세상은 모두 그러하다. 유독 사람만 그러하지 않으려 하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

 

세상은 매우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다. 그걸 거스르지 않고 따르면 올바른 길을 가게 된다. 그렇기에 ‘순천자흥(順天者興)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 말하는 것이다.

 

책 읽는/ 동상 옆에/ 나란히 앉아,// 나도/ 책을 펼친다.// 나무도 이파리도/ 싸르락 싸르락// 직박구리도/ 직직 박박/ 덩달아 책 읽은 시간// 어느새/ 지구를/ 돌리고 있다.

           (이경덕 「독서 시간」 전문)

 

그렇게 순응하니 지구가 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1초에 465.11m를 이동한다. 시속으로 따지면 1,674.396km/h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h로 달려도 가슴이 벌렁벌렁한 당신이라면 1,674.396km/h라는 속도는 기절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느끼지 못하는가. 순천(順天)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책을 읽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1,674.396km/h의 속도를 잊는다. 이경덕 동시집 『딱따구리의 집짓기』는 순천(順天)의 기록이다.

 

달 따려고/ 마당에 나섰다가// 가슴 주머니에/ 달빛 웃음만 가득// 달이/ 빙긋이 웃어주었다.

           (이경덕 「달 따러 가자」 전문)

 

학교 오갈 때 따로 따로 다니던/ 집 앞 골목길// 영철이가/ 눈 치우며/ 길을 내려옵니다.// 말을/ 할까 말까 하는 사이// 한 삽 두 삽/ 치운 눈/ 길이 뚫어졌어요.

           (이경덕 「눈 치우기」 전문)

 

달을 따려고 덤벼드는 사람이 있더라도 달은 버럭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빙긋이 웃어준다. 이제 달을 따지 않아도 된다. 가슴 주머니에 달빛 웃음이 가득해졌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직선으로 가장 멀리 가면 어디에 도착하는가. 내가 떠나온 집에 도착한다. 세상은 둥글기 때문이다. 멀리 갈수록 가까워지는 마법, ‘영철이’와 ‘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경덕 시인이 발견한 세상은 그렇게 둥글게 연결되어 있다.

 

 

3.

 

세상은 어쩌면 하나의 집이다. ‘지구촌 가족’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천리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뒤퉁수를 볼 수 있다. 자신의 얼굴은 보지 못한다. 그러면 내 얼굴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가까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미루어 짐작한다.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느낀다.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내 얼굴을 그려본다. 내가 보는 타인의 얼굴이 나의 얼굴이다. 타인의 얼굴이 나의 거울이다.

 

크고 작은 나무/ 갖가지 풀꽃/ 조잘조잘 노래하는 새들/ 꿈틀거리는 바윗돌// 모두를/ 한결같이 품어 안은 산// 가족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우리 집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다.

           (정혜진 「산」 전문)

 

하늘나라 저 멀리/ 여행 떠난 우리 할아버지/ 노란 국화꽃이 되어/ 내 마음 속에서 피어난다.// “눈앞에서 없어져도/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 귓가에 쟁쟁한 그 말씀/ 잊어버릴 수 없는 그리움이다.// 금빛 햇살 닮은/ 노란 국화꽃을 좋아하신/ 우리 할아버지// 가을이 되면/ 손잡고 걷던 놀이공원/ 꽃밭 길에 핀 노란 국화꽃// 그리운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만난다.

           (정혜진 「꽃이 되어」 전문)

 

이 세상은 결국 하나의 산이다. 나는 산의 구석에 자리한 나무고 풀이고 새이며 바위다. 그것들이 어우러져 산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산이다. 산이 ‘나’다. 발가락도 손톱도 엉덩이도 모두 ‘나’인 것과 같은 이치다. “눈앞에서 없어져도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정확하다. 정혜진 동시집 『바람 배달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잠꾸러기 하늘 눈/ 몰래 살짝 내려오다가/ 밥태기꽃/ 이팝꽃으로 변신했다.// 곧 있으면 봄이 온다고/ 미리 보낸/ 하늘 문자다.

           (정혜진 「눈꽃」 전문)

 

눈에 띄지 않을 거야./ 땅에도 젖어들지 않을 거야.// 입김으로만 내려와/ 꽃잎/ 나무 이파리에만/ 작은 아기 구슬/ 표시나지 않게/ 살그머니/ 올려놓을 거야.// 가만가만/ 아주/ 몰래몰래...

           (정혜진 「살짝 안개비」 전문)

 

백 수십억 년 전 빅뱅(big bang)으로 우주가 탄생되었고, 초기 우주에서 빅뱅 직후 떨어져 나온 쿼크와 글루온과 같은 미립자가 자유롭게 섞여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가 되었다. 그것을 나누어 가진 것이 바로 ‘우리’다. 그렇기에 모두가 피를 나눈 형제들이다. 그러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밥태기꽃과 이팝꽃이고 안개비는 이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다. 아무도 모르게 가만가만, 눈에 띄지 않게 작고 작아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빅뱅의 자식들이니까.

 

탕! 탕!/ 피웅~! 피웅~!// 거리를 무섭게 위협한/ 1980년 5월 18일// 공포에 질려/ 외출 중인 엄마 찾아/ 대문 밖으로 나갔다가/ 소리 물결에 휩쓸려간/ 일곱 살 이창현 어린아이// 몇 십 년 길고도 긴 시간 흘렀어도/ 지금껏 돌아오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만 팔딱거린/ 일곱 살 어린아이는/ 수 십 년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엄마 품에 안기지 못했다.

   (정혜진 「아직도 일곱 살」 전문)

 

그러므로 타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아프면 부모도 아프고 부모가 아프면 자식도 아프다. 이웃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가 굶주리면 내 마음이 아픈 이유가 다 여기에 근거한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줘야 나의 슬픔에 타인도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지 않겠는가. 정혜진 시인이 발견한 세상은 모두가 한 가족이다. < ‘이도환 동시 평론집,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그 사이에 동시가 있다(이도환, 도서출판 소야, 2024.)에서 옮겨 적음. (2026. 6.14. 화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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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의초 이정석 | 작성시간 26.06.14 동시도 다양하고 읽을 거리가 많다는 걸
    여기서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화룡이(이창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동시도 시인의 너른 품으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동심의 프리즘으로 여과시킨 것인 줄 압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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