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동심의세계 - (219)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 ⑥ 어제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궁금한, 두 시인/ 이도환 아동문학평론가
작성자화룡이(이창모)작성시간26.06.16조회수41 목록 댓글 2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프레시안/ 제14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문학평론가 이도환 선정
⑥ 어제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궁금한, 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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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득 동시집 『만세 100년에』(아침마중, 2019.11.)
김종상 동시집 『다람쥐의 수확』(아침마중,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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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장재(張載)는 독서광이자 메모광이었다. 같은 시대의 여러 학자들 중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편식하지 않고 모두 설렵한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로도 유명했다. 특히 그는 교육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는데, 몇 가지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요즘 세상을 보라. 자식을 바르게 가르치려는 생각은 점점 사라지고 그저 애지중지하여 사랑해주려고만 하니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진다.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니 어려서부터 자기밖에 모르고 교만하고 게으르다. 그렇게 성장하면 성격은 사나워지고 거칠어진다. 오직 사랑해주기만 하고 바른 자세와 태도, 예절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부모에게 대들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지경이 이르게 된다. 겸손함을 모르고 언제나 자기만을 내세운다. 이것이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랑한다면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바른 자세와 바른 태도에서 바른 마음이 싹트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어른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바르게 대답하며,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하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예절에 맞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니 친구를 사귀더라도 함부로 하고 겸손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더라도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부딪치게 되고, 직장을 갖더라도 함부로 행동하여 말썽을 일으킨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거만하게 행동하여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장재는 1020년에 태어나 1077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위의 그가 한 말은 천 년 전의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지금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게 느껴지지 않는가. 교육의 문제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하겠다.
장재의 글을 떠올린 이유는 최근에 연속하여 간행된 두 권의 동시집, 신현득 동시집 『만세 100년에』와 김종상 동시집 『다람쥐의 수화』를 읽었기 때문이다.
2.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신현득, 「문구멍」 전문)
내 연필, 내 가방, 내 책상만/ 내 것인 줄 알던 내가,/ 오학년이 되고부터, 골목길, 큰길이/ 우리 모두의 땅이란 걸 알았지./ “내 것도 되네.” 했지.// 내와 강·바다가/ 냇물·강물·바닷물이/ 우리 모두의 것이며, 내 것인 걸 알았지./ “저 하늘이, 모두의 것이며, 내 거야.”/ 뜬구름까지./ 해와 햇빛, 달과 달빛이 모조리/ “아이구, 그것까지.// 내 가진 게 엄청, 엄청나네!”//지금은 육학년./ 밤하늘, 저 많은 별이/ 모두의 것이며, 내 거란 걸 알았어./ “아이구나, 그것까지!”
(신현득, 「내 것이 얼마나 되나?」 전문)
신현득의 「문구멍」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입선작이다. 「내 것이 얼마나 되나?」는 2019년에 출간한 동시집 『만세 100년에』에 수록된 작품이다. 6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신현득의 작품이 얼마나 크게 변화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성장’을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격이 매우 크다. 「문구멍」은 성장의 결과에 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 것이 얼마나 되나?」에서는 성장의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매우 많이 길어졌다. 간단명료한 이미지를 압축시킨 「문구멍」에서 온갖 설명과 묘사를 길게 늘어놓은 「내 것이 얼마나 되나?」로 변화한 것이다.
옥중아 옥중아/ 너는 커서 뭐 할래?// 보리밥 수북이 먹고/ 고추장 수북이 먹고/ 나무 한 짐/ 쾅당! 해오지.
(신현득, 「옥중이」 전문)
시골 할아버지는/ ‘힘’을 ‘심’이라셔.// “일에는 밥심일세./ 많이 먹어 두게.”/ 농사꾼 아저씨들과/ 밥상에 마주 앉아 하시는 말씀.// 옥식기에 고봉으로 담은 밥은/ 그릇 위쪽이 더 많다./ 그걸 푹푹 퍼서 풋나물에 비겨 먹고// 토김치 찢어서 넘기고/ 나물국 후루룩./ 고봉 밥 희딱 한 그릇.// “끼루룩.”/ 트림이 난다./ 이제 농사꾼 배가 찬 것.// “끼룩, 했으면 됐네./ 농사꾼은 밥심이야!”
(신현득, 「밥심」 전문)
신현득의 초기 작품인 「옥중이」와 이번 동시집에 수록된 「밥심」은 또 어떠한가. ‘밥’과 ‘노동’에 대한 숭고한 믿음은 같지만 강렬한 후폭풍은 사라졌다. 자상한 설명이 폭풍을 잠재웠다. “꽝당!”에서 “끼루룩.”으로 옮겨 갔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 동시집 『만세 100년에』 53편의 시작품이 모두 만세의 뜻을 지니고 있다. 큰 재미 안에다 자연 사랑, 생명 사랑, 내것 사랑, 세계 사랑, 인류 사랑을 담고 있다. 만세의 본 뜻은 그러했다. 어린이 독자를, 바른 생활, 바를 길로 이끌기 위해 바른 목소리를 담았다.”
(‘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의 말’ 중에서 키워드를 찾는다면 ‘큰 재미’와 ‘바른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을 할 때에 시(詩)를 활용하라는 이야기는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정이(程頤)의 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배우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옳은 가르침을 주더라도 지루하고 재미없게 가르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노래나 율동을 곁들이는 등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시(詩)를 들려주고 노래 부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등의 내용으로 시를 지어 부르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구멍」과 「옥중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일까 아닐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드러난 내용은 쉽지만 그 쉬움이 오히려 해석의 여지를 남겨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스며들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독자마다 서로 다른 감흥을 얻어가게 된다.”가 아닐까 싶다. 시인은 바로 이 지점이 아쉬웠을 수 있다. 어느 글에서 신현득 시인은 「문구멍」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스무 글자가 되지 않는 이 작품은 피나는 작업 끝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중략)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 그와 같은 힘을 들였던가 싶은 마음뿐이다. 이 작품은 짜임새나 깊이가 대단하지 못한데도 실망이 되지만 지금 같으면 단 몇 시간 만에 써버릴 것을 몇 달을 두고 머리를 짜내던 일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의도하는 정확한 지점에 독자가 도착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시(詩)가 지도(地圖)라면, 해석의 여지가 많은 지도는 엉터리 지도가 된다. 그렇기에 시인은 더욱 세심하게 지도를 만들었고 그러한 결과물이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된 『만세 100년에』가 아닐까?
3.
산 위에서 보면/ 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 새장처럼 얽어놓은 창문에/ 참새같은 아이들이/ 쏙 쏙/ 얼굴을 내밀지요.// 장난감 같은 교문으로/ 재조잘 재조잘/ 떠밀며 날아 나오지요.
(김종상, 「산 위에서 보면」 전문)
밤하늘 가득하게/ 반짝이던 별 무리// 날이 새자 모두가/ 땅으로 내려왔네// 아침 풀밭 가득히/ 반짝이는 이슬방울.
(김종상, 「별무리」 전문)
김종상의 「산 위에서 보면」은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작이다. 「별무리」는 2019년에 출간한 동시집 『다람쥐의 수화』에 수록된 작품이다. 6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종상의 작품이 얼마나 크게 변화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저 멀리 높은 산 위에서 바라보던 시인의 위치가 땅으로 낮게 내려왔다. 멀리서 바라보던 것에서 벗어나 땅으로 직접 내려와 가장 낮은 곳에서 풀과 함께 축축하게 엎드린다.
앞산과 뒷산이/ 마주 앉았다.// 하늘이 한 뼘/ 해가 한 발자국에 건너뛰었다.// 햇볕이 그리워/ 나무는 목만 길고// 바위도 할 일이 없어/ 서로 등을 대고 누웠는데// 토끼길만한 꼬불길이/ 갈팡질팡 산마루를 기어넘고// 버섯같이 쪼그린 초가집 속에/ 발가벗은 아기는 산새처럼 자라고// 다래가 맛이 들고/ 도토리가 맛이 들 무렵이면/ 엄마는 하루 종일 산에서 살았다.
(김종상, 「산골」 전문)
집을 나설 때는/ 빵, 과자, 음료수 등을/ 무겁게 지고 가는데// 돌아올 때는/ 들꽃, 바람, 새소리를/ 가볍게 메고 온다.
(김종상, 「소풍 배낭」 전문)
「산골」은 1959년 《새벗》 7주년 기념 현상공모전에서 입선을 차지한 작품이다. 2019년의 「소풍 배낭」과 어떻게 달라졌나. 가볍게 변했다. 앞산과 뒷산, 햇볕과 나무, 바위와 꼬불길, 아기와 엄마… 전방위(全方位)로 퍼져나가던 이미지들이 집으로 오는 길의 ‘소풍 배낭’처럼 가벼워졌다. ‘들꽃 바람, 새소리’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53년간이나 교단에 있으면서 말은 인성의 뿌리라고 보고 말씀이나 말씨가 고우면 행동도 착하고 얼굴도 예뻐진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서 동시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써왔습니다. 문학이 교훈적이어서는 안 된다거나 어떤 목적을 가져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쓴 글이 독자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내 글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인연과 환경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시인의 말’ 중에서)
김종상 시인의 ‘시인의 말’은 앞서 살펴본 신현득 시인의 ‘시인의 말’과 비슷하게 다가온다.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두 시인의 지향점이 비슷하다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모습은 크게 다르다. 추구하는 방향은 비슷한데 드러나는 작품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신현득 시인은 더 세심하게 설명하고 이야기(story)를 만들어 제시하거나 시작점에서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까지 상세하게 묘사하여 길을 잃지 않게 배려한다면, 김종상 시인은 더 무심하게 그리고 더 뭉툭하게 넘어가고 있다.
4.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 이익을 가져온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이 없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외출를 삼가게 되니 이것이 첫 번째 이익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명확하고 분명해야만 한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가르쳐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스스로 학문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익이다. 아이들 앞에 서려면 몸을 단정히 하고 자세도 바르게 잡아야 한다. 이것이 세 번째 이익이다. 그리고 내가 자칫 실수하여 잘못 가르치면 아이들을 망칠 수 있기에 항상 조심하며 자신을 성실하에 가다듬어야 한다. 이것이 네 번째 이익이다.”
위에서 언급한 송나라의 철학자 장재의 말이다. 장재의 말처럼, 두 시인은 네 가지 이익으로 자신의 학문을 가다듬어왔다. 신현득 시인과 김종상 시인이 등단 60주년을 맞이하여 나란히 동시집을 출간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게다가 신작을 모아서 묶은 시집이기에 더욱 빛난다. 동시문단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하고 넘길 수만은 없다. 두 시인이 보여주는 같은 듯 다른 작품 세계는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준다. 문학과 예술, 교육과 감동, 시인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 세심함과 무심함….
팔순(八旬)이 넘어선 나이에도 이토록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시집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동시단의 자랑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두 시인이 또 어떤 변화를 이어갈 것인지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두 시인에 대한 문학적 판단은 아직 유보되어야 한다. 이들의 작품은 지금도 용틀임하며 변화하고 새롭게 재탄생하는 몸부림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장재가 말한 ‘네 가지 이익’에 하나를 더한다면 독자인 우리가 얻는 이익이 아닐까 싶다. < ‘이도환 동시 평론집,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그 사이에 동시가 있다(이도환, 도서출판 소야, 2024.)에서 옮겨 적음. (2026. 6.16.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