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동심의세계 - (220)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 ⑦ “집으로 잘 돌아왔어요, 어머니.”/ 이도환 아동문학평론가

작성자화룡이(이창모)|작성시간26.06.17|조회수39 목록 댓글 2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프레시안/ 제14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문학평론가 이도환 선정

⑦ “집으로 잘 돌아왔어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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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동시조집 『마지막 가족 사진(지경사, 2016. 5.)

우리 엄마(아침마중, 20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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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서역(詩書易)

 

유가(儒家)에서는 ‘시서역(詩書易)’을 중하게 여긴다. 시(詩)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의 노랫말을 뜻하고 서(書)는 역사를, 역(易)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각각 책으로 말한다면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이라 말할 수 있다.

‘시서역(詩書易)’은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시(詩)는 요즘과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에는 민간의 노랫말을 수집하고 다니는 관리가 있었는데 이를 가리켜 ‘채시관(采詩官)’이라 했다. 그대로 시(詩) 채집하는 관리를 의미한다. 나라의 관리가 왜 민간의 노랫말을 채집했던 것일까. 민간의 노래를 통해 여론을 읽으려는 노력이었다. 태평성대에는 정치가 조화롭기 때문에 사람들의 노래가 평안하고 즐거운 반면, 어지러운 시대는 정치가 편향되어 사람들이 모두 괴로워하기에 노래도 원망스럽고 노엽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권력자는 당시 유행하는 노래를 통해 자신이 바른 정치를 펴고 있는지 살펴보았던 것이다.

시(詩)에 시대 정신이 없으면 올바른 시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중들의 삶과 유리된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시(詩)에는 사회를 바르게 이끄는 힘이 없다. 이러한 것은 동시(童詩)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대정신은 진실하고 솔직한 삶의 진술에 고스란히 묻어나게 되며 진솔한 삶에 대한 시선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해야만 갖출 수 있다. 그 두 가지가 합해지면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진다. ‘시서역(詩書易)’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 동시집 『우리 엄마』를 펴낸 최영재 시인의 작품을 보면 새삼스럽게 유가(儒家)의 ‘시사역(詩書易)’을 되새기게 된다.

 

 

2. 채시관(采詩官)

 

중국 당(唐)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쓴 「채시관」을 살펴보자.

 

시를 모으는 이유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서지/ 시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고 오직 듣는 사람만이 두려워했다네/ 그렇게 아래로 흐르고 위로 통해 세상은 태평하게 되는 법인데/ 주나라 이후에 채시관(采詩官)이 사라졌지/ 그러자 노래는 온통 임금을 찬미하는 가사로 가득하고/ 임금에 대한 칭찬과 아첨하는 말만 넘쳤다네// 비유와 풍자로 세상을 바르게 알려주는 글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네/ (중략)/ 임금의 눈은 대궐 담장을 넘지 못하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니/ 탐관오리들은 백성들을 괴롭히면서도 거리낌이 없구나/ 임금이시여 임금이시여 이 사람 말을 좀 들어보소/ 눈과 귀를 가린 것을 치워버리고 싶다면/ 먼저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시를 읽어보시길

 

높은 자리에 혹은 깊은 궁궐 속에 자리하던 권력자는 이제 사라졌다. 1인 혹은 일부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던 권력을 이제는 모든 민초들이 나눠 갖고 있다. 그렇다면 주나라 시절의 채시관은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민초들은 각자의 개인주의의 성(城)에 갇혔다.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에만 매달려 더욱 궁핍해졌다. 백거이가 노래한 것처럼, 진실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현실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이러한 시절에 최영재 시인의 동시집 『우리 엄마』와 『마지막 가족 사진』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반짝인다.

두 시집은 모두 최영재 시인의 개인사에 근거한다. 전쟁과 함께 이뤄진 아버지의 납북, 그리고 졸지에 어린 3남매를 홀로 키우며 살아야했던 어머니와 그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진술이 솔직하고 진실하기에 개인사에 머물지 않고 시대의 정신을 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그런 삶의 기초에는 우리 민족 전체가 간직한 역사적 사실이 자리하고 있기에 울림이 깊다. 그 둘이 어루러지니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까지 갖추게 되었다. 힘든 삶 속에서 시(詩)를 캐내는 작업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도출해내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이리라.

 

 

3. 시(詩) 그리고 서(書)

 

코피가 나도 안 운다/ 자치기를 하다 막대기에 얼굴을 맞아도 안 운다/ 산에서 놀다 비탈에 나뒹굴어도 안 운다// 그런데 해마다 선생님이/ 가정 환경 조사하시다가/ “아버지가 안 계시니?” 물으시면/ 눈물을 글썽이다가 영락없이 엉엉 운다// “예끼, 불알 깔 놈.”/ 선생님이 달래 주셔서/ 겨우 울음을 멈춘다.

           (최영재 「울보」 전문)

 

맨발로 공을 차다가 못에 찔렸다/ “엄마, 피가 많이 나면 죽는대.”/ “아버지를 만나고 죽어야지. 참아라.”// 우유 가루를 찬물에 너무 많이 타 먹고 설사를 했다/ “엄마, 배 아파 죽겠어.”/ “아버지도 못 보고 죽을 순 없지. 참아라.”// 학교에서 짝꿍이 아버지 없는 애라고 놀렸다/ “엄마, 아버지는 언제 오셔?”/ “아비지는 늘 집에 있다. 네 몸속에 살아계시다. 참아라.”// 아버지가 가르치는/ 끝없는 참기 연습.

           (최영재 「참기 연습」 전문)

 

시(詩)와 서(書 )가 종횡으로 섞이며 작품을 만들어낸다. 어제가 가져온 오늘이 교차되며 진솔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불행과 슬픔이 쉬지 않고 다가오지만 독자는 불행과 슬픔에만 빠져들지 않는다. 불행과 슬픔 속에서 강해지는 근력(筋力)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고통을 감수하며 단련한 근육은 단단하고 유연하다. 마음의 근육도 마찬가지다.

 

마카오 천으로 맞추셨다는/ 아버지의 회색 양복/ 아무도 몰래/ 아버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 본다// 소매가 흔들흔들/ 어깨 허리 품도 헐렁헐렁// 아버지가 나를 안아 주고 계신데/ 나는 아버지를/ 꼭 끌어안지 못한다.

           (최영재 「아버지 옷」 전문)

 

네 살배기였던 귀염둥이 둘째야/ 장하다/ 축하한다// 가난한 이웃에게 친절히 대하거라/ 아무리 슬퍼도 울지 말고 이겨내라/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라// 북으로 끌려간 아버지가/ 매일 오셔서/ 매일 커가는 아들에게/ 매일 가르쳐 주신다.

           (최영재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내 아들에게」 전문)

 

부재(不在)의 아버지가 더 힘이 세다. 그리움의 크기만큼 가르침의 무게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술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바로 지금’ 속에 존재하고 아버지는 ‘과거의 역사’ 속에 존재한다. 시인과 아버지를 연결시켜주는 힘은 어머니가 지니고 있다. 시인이 ‘시(詩)라면 아버지는 서(書)’다. 그 사이를 단단히 연결시켜주는 어머니는 무엇인가. 어머니는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지닌 역(易)이다.

 

 

4. 역(易)

 

보통학교 등굣길에 주저앉아 쉬다 가던 약한 아이/ 삼 남매의 엄마 되고 전쟁 때 지아비 빼앗기고/ 새끼 세 마리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 이를 깨물자 온몸도 이를 악물었다.// 밤 늦도록 삯바느질/ 옷 장수, 참기름 장수/ 산에서 종일 땔나무 해 오고/ 왕겨 풍구질 연기 매워 주먹 눈곱 매달고/ 수챗구멍 막히면 대나무로 뚫어 호미로 후벼내고/ 망가지는 헌 집, 망치질로 톱질로 힘겹게 고치고// 호사스럽게 아파서 누울 틈이 어디 있나?/ 몸은 저도 살아야겠기에/ 알아서 쇳덩이가 된다.

           (최영재 「쇳덩이」 전문)

 

엄마는/ 엉킨 명주실이나/ 헝컬어진 털실 뭉치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실과 실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나갔다 들어왔다// 꼬인 데서 당기고 돌리고 늘이고 풀어내어/ 한참만에/ 둘둘 감긴 실타래로 만들기 선수다. 엄마의 놀라운 재주/ 끝없이 엉키고 꽉 막힌 길 혼자 매일 걷다가/ 엄마 스스로 터득한 슬픈 능력.

           (최영재 「실타래」 전문)

 

연약한 여인이 쇳덩이로 변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가능해진다. 그것이 역(易)의 가르침이다. 간절하게 바라되 조급하게 나아가지 않고, 애절하지만 구차하지 않은 꼿꼿함을 유지하고, 이익을 원하지만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경(敬)을 붙잡는 것, 어머니는 그것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며 미래를 열어간다.

마치 《장자(莊子)》에 등장하는 ‘포정(庖丁)이 소를 잡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저는 쇠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이제까지 아직 한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를 다치게 만든 적이 없습니다. 솜씨 좋은 사람은 1년 만에 칼을 바꾸고 평범한 사람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포정의 말이다. 그러나 “꼬인 데서 당기고 돌리고 늘이고 풀어내”는 엄마의 놀라운 능력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진다.

 

해거름/ 나무 한 짐 지고 걸어오는데/ 길 가운데 뱀 한 마리 혀를 날름거린다.// ‘눈앞에서 남편을 빼앗겼는데 나 뭐가 무서우랴!’/ 엄마가 바지 아랫단을 여미고/ 새빨간 저녁놀 노려보며 성큼 지나가니/ 뱀은 스르르 도망간다.

           (최영재 「자녁놀」 일부)

 

툇마루 천장 두꺼비집 뚜껑이 덜렁덜렁/ 팔 뻗어 뚜껑 닫다가 발을 헛디뎌/ 엄마가 1미터 아래 아궁이로 쿵 떨어졌다.// 머리를 돌에 부딪혀 시뻘건 피 철철철/ 동생은 놀라 형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데/ 흙투성이 엄마는 저고리를 다 적셔 피를 닦고/ 병원에 가서 10바늘 꿰매고 왔다.// 하얀 붕대 머리 보고 우리가 또 울먹이니/ “꿰매서 낫는 상처라면 1000바늘도 꿰맨다./ 엄마는 절대로 안 죽어. 울지 마라.”/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고 엄청 아플 텐데/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엌으로 어정어정 들어갔다.

           (최영재 「엄마는 꿈쩍 안 했다」 전문)

 

『우리 엄마』에 등장하는 엄마는 시인의 엄마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저 ‘우리 엄마’다. 동학운동에 참여한 어느 장정의 엄마이고 일본제국의 전쟁터에 끌려간 어느 소년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니 엄마 너머의 엄마다. 모든 것이 꽝꽝 얼어버리는 추운 겨울에도 새싹의 희망을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대지(大地)이며 홍수로 모든 것이 쓸려갈 때에도 뿌리로 땅을 움켜쥐고 버티는 노송(老松)이다.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풀이며 흙탕물에 넘어졌더라도 ‘에잇 이미 버린 몸’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나 정갈하게 몸을 닦고 다시 시작하는 꿋꿋한 소년이다. 가장 어두울 때 서시히 일어서는 이른 아침 태양이고 추운 날 꼭 안아주는 이웃이다. 양심을 지니고 있고 희망을 잃지 않는 우리들 모두가 엄마다. 오늘 실패했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당당한 얼굴로 세상을 향해 “어정어정” 걸어가는 힘이다.

 

 

5. 희망과 믿음

 

- 딩동/ 현관문 열면/ 단골 택배 직원은 책을 내밀고 빙긋/ “아버지세요?”// 상자에 적힌 수신인은 우리 아들이고/ 현관문을 연 내가 아버지냐고 묻는 것만 같다// 네 살 때 납북되셔서/ “아버지”하고/ 불러 본 기억이 없는 아버지// 정말 아버지가 내게 보내 주신 책 선물일까?

           (최영재 「택배 직원」 일부)

 

처음 와 본 낯선 전철역/ 안내 글씨 화살표 방향 따라/ 낯선 계단 오르고 내려/ 정확한 출구로 나왔어요// 이럴 때면 꼭 생각나는 어머니/ 처참한 가난 속에서도 학교에 보내 주셔서/ 글을 익히고/ 방향과 거리감도 배우게 하셨죠// ‘세상길 걸어가다/ 이상한 길 나와도 겁내지 말거라.’// 오늘도 복잡한 길 지나/ 집으로 돌아왔어요, 어머니.

           (최영재 「어머니 덕분에」 전문)

 

아들은 아버지가 되었고 어머니의 용기와 지혜는 아들의 몸에 고스란히 쌓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지리라. 최영재 시인이 말해주는 『마지막 가족 사진』과 『우리 엄마』는 역사적 맥락 속에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며 이를 통해 반전을 이룬다.

모든 이들이 “오늘도 복잡한 길”을 지나는 중이다. 넘어지기도 하고 방황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집으로 잘” 돌아올 것을 믿는다. “세상길 걸어가다/ 이상한 길 나와도 겁내지 말거라.” 엄마 목소리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잘 돌아올 것이다. 그런 희망과 믿음을 최영재 시인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하자. “집으로 잘 돌아왔어요, 어머니.” < ‘이도환 동시 평론집, 어른들을 위한 동시 읽기, 그 사이에 동시가 있다(이도환, 도서출판 소야, 2024.)에서 옮겨 적음. (2026. 6.17. 화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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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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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의초 이정석 | 작성시간 26.06.17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고통을 감수하며 단련한 근육은
    단단하고 유연하다.
    마음의 근육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근육이 튼튼해야 시도
    탄생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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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화룡이(이창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시 쓰기에도
    고통을 감수하며 단련한 마음의 근육이 필요함을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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