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고급문장수업 - (593) ‘우리말 고수’가 알아야 할 우리말 - ④ 주엄주엄 챙기지 말고 주서듣지도 마라/ 스포츠경향 편집국장 엄민용
작성자화룡이(이창모)작성시간26.06.21조회수17 목록 댓글 2‘우리말 고수’가 알아야 할 우리말
Daum카페/ 고급문장수업 - (574) ‘우리말 고수’가 알아야 할 우리말
④ 주엄주엄 챙기지 말고 주서듣지도 마라
세계의 언어 석학들은 “세계의 여러 문자 가운데 가장 배우기 쉬운 것이 한글이다”라고 극찬합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죠.
한글은 정말 배우기가 쉽습니다. 자음과 모음 체계만 알면 어떤 글자도 쓸 수 있으니까 말이죠. 예를 들어 한글에서는 ‘자살’과 ‘살자’를 익히는 데 자음 3개와 모음 1개만 알면 됩니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기다란 알파벳과 함께 문법이라는 것까지 끼어들지요.
게다가 ‘자살’과 ‘살자’의 ‘자’는 자국, 자두, 자리, 자만, 자본 등등 어디서나 똑같은 모양이죠. 그러니 문자를 익히기가 참 쉽습니다. 그렇지만 문자를 배우기 쉽다고 해서 정확히 사용하는 것도 쉽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우리말은 꽤 어려운 구석이 있거든요. 물론 ‘내 마음대로 대충 뜻만 전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쉽지만, 바른말로 정확히 쓰는 일에는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말이 이렇게 어려워진 데에는 학자들의 잘못도 있다고 봅니다. 학자들이 정한 바른말 기준에 통일성이 부족한 부분이 많거든요. 어떨 때는 이렇고 어떨 때는 저렇고 하니, 사람들이 그것을 다 알기가 어려운 거죠.
제가 조금 전에 ‘잼잼’은 ‘죔죔’을 잘못 쓴 것이라고 말했죠? ‘죔죔’은 ‘쥐다’에서 ‘쥐엄쥐엄’이 나왔다면 ‘줍다’에서 ‘주엄주엄’이 나오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전들은 하나같이 ‘주엄주엄’은 바른말이 아니라고 고집합니다. 사람들은 “나는 방 안에 가득한 물건을 주엄주엄 줍습니다” “옷을 주엄주엄 입고는 방을 나왔다” 따위처럼 쓰고 있는데도 말이죠.
사전들이 ‘주엄주엄’ 대신 쓰라고 고집하는 말은 ‘주섬주섬’입니다. 물론 ‘주엄주엄’보다 더 널리 쓰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주섬주섬’을 표준어로 정한 것은 잘한 일이죠. 비록 ‘주섬주섬’이 ‘줍다’의 사투리인 ‘줏다’에서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만큼 당연히 표준어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투리에서 나온 말도 표준어로 인정해 주면서 바른말에서 나온 말은 살아남지 못하게 숨통을 조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뭔 말이냐 하면, ‘주섬주섬’과 ‘주엄주엄’를 복수 표준어로 삼아 사람들이 편히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굳이 ‘주엄주엄’을 쓰지 못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고집’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시험에서 ‘주엄주엄’이 표준어라고 답을 썼다가는 미역국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현재 ‘주엄주엄’은 바른말이 아니거든요.
참, 제가 방금 ‘주섬주섬’은 ‘줏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했는데요. 실제로 ‘줏다’는 꽤 널리쓰이는 말입니다. “500원짜리 동전을 주섰다”나 “어디서 주숴들은 것은 있어 가지고…” 따위처럼 ‘주서’ ‘주숴’ 꼴로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줏다’는 ‘줍다’의 사투리입니다. 그러니까 ‘주섰다’나 ‘주숴듣다’ 따위로는 쓸 수 없습니다. 이때는 ‘줍다’를 활용해 ‘주웠다’나 ‘주워듣다’로 써야 합니다.
이래서 우리말은 어렵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니까요. <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어휘편(엄민용, EBSBOOKS, 2023.)’에서 옮겨 적음. (2026. 6.21.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