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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신문 칼럼

전국 최초의 부자 군수......(칼럼)

작성자남제현|작성시간26.06.07|조회수64 목록 댓글 0

전국 최초의 부자 군수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전국 최초 부자간 군수 탄생은 큰 의미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 고 윤현상 군수 (1995-2002)이여 아들 윤희신,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아름답고 자랑스런운 태안 군민의 긍지와 보람에 부합한다. 아버지 윤형상군수는 민선 1대와 2대 군정을 이끌었던 분이다. 부친에 이은 전국 최초의 ‘부자 군수’ 탄생이라는 태안군민의 긍지와 보람이며 이 시대의 윤리와 아름다운 가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기게 됐다. 훌륭한 지도자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가정은 훌륭한 공연자로 자녀 인생의 설계에 사사건건 간여하기보다는 현명한 조언 바람직하며 관심 분야 개발에 지원 머물러야 한다. '왜 부모는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가'는 경남 거창고 교장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을 역임한 전성은씨 이다. 그의 주장은 오랜 교단 41년 동안 경험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본 일이 없고 그러면서 학교생활 속에서 고민하고 당황해하며 방황하는 아이들의 원인이 부모가 아닌 경우 또한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아라고 아이들의 원인 제공자가 부모가 아닌 경우도 본 적이 없다. 학교에는 문제아가 없고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 에스키모족은 남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의로운 사람을 펭귄 아버지, 여자일 경우 연어 어머니라 부른다고 한다. 펭귄 어머니는 알을 낳아 아버지 펭귄에게 맡기고 먹이를 찾아 장정을 떠난다. 굶주린 채 알을 품어 새끼를 지키고 있으면 며칠 만에 돌아온 어머니 펭귄은 뱃속에 담아온 먹이를 반추하여 새끼만 먹이고 기진맥진한 아비는 그 곁에서 굶어 죽어간다 하니 살신성인이 아닐 수 없다.

 

연어는 바다에 가서 살다가 알을 낳고자 하천으로 회귀하는데 섭씨 7도의 청정수를 찾아 하루 14㎞씩 급류를 역류한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는 기진맥진하여 낳은 알을 보고 서서히 죽어간다 하니 이 또한 살신성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버지라 하면 책임감 있는 든든한 보호자요,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물질적·정신적 기반을 마련해 주며, 때로는 엄격하지만 깊은 사랑을 품고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사회적으로도 아버지는 가정의 기둥이며, 안정과 권위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미지 속에서 ‘아버지’라는 단어는 신뢰, 희생, 인내와 같은 가치와 연결된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학대나 방임을 경험하며 성장한 이들이나, 가족 내 갈등으로 인해 아버지를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보호자나 지지자의 의미보다는 두려움, 분노, 혹은 고통의 상징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그 의미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개인의 경험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며 어떤 단어든 그것에 대한 해석이 모두에게 같게 적용될 수는 없다.

 

동물들에게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없다. 아버지는 그 의미가 비교적 관습적이고 사회적이다. 다른 종에 비교해 대단히 약하고 그 유아를 보호해 줘야 하는 어머니도 외력에 강하지 못하기에 '아버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꼭 생물학적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 시대를 통틀어 가족의 구성원 중에 남성성을 가지고 여자와 어린이를 보호하는 가장의 존재와 겹친다. 다만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장과 겹친 것은 부계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지키고 부양하는 남성상은 그 역할이 크다.

 

대가족이 되면 그 가장의 역할은 집안의 가장 어른에게 집중되게 된다. 아버지의 의미가 가장으로서 '아버지'라는 개념이 아내와 새끼들을 포함한 가족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사방을 감시하는 역할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가족에 침투한 적들이나 자신의 자식이 아닌 새끼를 처단해야 하므로 비정한 특성을 가지기도 한다. 가정은 나를 만들어준다. 둥지 안에 새끼 새들이 우는 이유는 어미 새에게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나’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한 사람, 하나의 목소리다.

 

아버지는 가정 안에서의 절대 권력자였다.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어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인간의 어디에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가정은 삶의 둥지 이 세상에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아버지, 어머니를 가리켜 어버이라 부르고, 양친이라고도 한다. '나'라고 하는 존재와 가장 가까운 혈육으로 낳아서 길러 주시고 교육해 주신 분이지만, 항상 무상의 위인이시다.

 

그러므로 분명한 사실은 집과 가정은 다르다. '집'은 사람이 사는 건물을 가리키지만 '가정'은 가족들이 생활하는 집안으로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함께 존재하는 궁궐과 같은 애정의 집단이다. 요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직감한다. 가정은 화초와 같다. 탐스럽고 예쁜 꽃일수록 많은 정성과 수고가 있어야 하듯이,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려면 하루도 쉬지 않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관계에 기초와 근본을 둔 공동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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