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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신문 칼럼

문화적 상상력........(칼럼)

작성자남제현|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문화적 상상력

태안장로교회 원로목사

사회복지사

글:-남제현목사

태안신문사 칼럼니스트

 

나폴레옹 장군이 남긴 명언이 있다. “인류의 미래는 인간의 상상력과 비전에 달려 있다.” 그러면 우리 “한반도의 미래는 국민의 상상력과 지도자들의 비전에 달려 있다”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다. 농업사회에서는 튼튼한 노동력이 힘이었고 산업사회에서는 넉넉한 자본이 힘이다. 그러면서 정보화 사회에서는 문화가 힘의 바탕이다. 제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지만, 문화의 뒷받침이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우리 사회의 소프트웨어는 문화적 소재로 문화가 주는 힘은 예로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 ‘쥐라기 공원’이다. 소설 쥬라기 공원을 바탕으로 제작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1993년 6월 10일, 한국은 같은 해 7월 17일에 개봉하여 제작비 6,300만 달러에 전 세계적으로 10억 2,9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폭발적인 흥행을 일궈냈다. 그 한 편의 영화로 올린 수익금이 한국에서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하였을 때의 수익금보다 더 크다는 소문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창조력과 상상력을 문화가 길러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고부가가치산업이라 일컫는 각종 문화상품은 창조력과 상상력에 의해 나온 상품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소중한 문화적 상상력은 어디서 얻어지고 길러지는 것일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문화적 감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화적 감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문화교육을 통해서다. 결국은 교육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 감수성에 바탕을 둔 창조력과 상상력을 높여 나가는 교육인 문화교육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조직인간'사회의 요구는 강력하고 끊임없다. 조직 생활에 빠져 있을수록 조직의 요구에 저항하거나 그 요구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조직에 굴복해야만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월리엄 화이트의 '조직인간'이라는 책에서 5년 후인 1961년 유태인 학살을 저지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은 '조직인간'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과정을 취재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태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전범도 집에선 모범가장으로 악의 평범성'이었다. 아이히만이 악마와 같은 인물이 아니라 아이히만은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이다.

 

한국의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들도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조직의 요구에 응했던 것 뿐이다. 이 질문은 연쇄 질문을 불러온다. 어느 분야에서건 수위를 달리고 있는 조직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러면 조직이 다른 조직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건 그 조직 구성원의 '조직인간' 정신이 투철해 일사불란한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인간'은 동경의 대상이 된 시대, 베를린 필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1935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장에는 나치의 핵심 인물들인 헤르만 괴링, 아돌프 히틀러, 요제프 괴벨스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곳이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베를린 필의 모태는 지휘자 벤야민 빌제가 이끌던 ‘빌제 오케스트라’였다. 독재자처럼 군림한 빌제의 혹독한 통제에 신음하던 단원들은 1882년에 반기를 들고 베를린 필로 독립한다. 새로운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지분을 소유하면서 독립적이고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음악 단체로 변신했다.

 

나치 집권기인 1933~45년,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독재 정권의 문화적·정치적 도구로 기능했는지, 그 과정에서 나치의 선전 도구라는 오명과 예술적 순수성을 잊어버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공무원이 되어 정권이 주는 혜택은 달콤했다. 단원의 자치권은 대부분 상실했지만 그 대가로 재정적 안정, 사회적 명성, 그리고 해외 공연의 기회가 누릴 수 있었다. 나치 정권 내내 단원들은 군사 훈련은 물론 전쟁 임무에서도 배제됐다. 심지어 단원들의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푸르트벵글러는 “예술과 예술가는 사람들을 분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경계는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 사이뿐”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선택의 순간들은 베를린 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베를린 필의 역사를 통해 예술이 정치 권력과 어떻게 얽히고, 침묵과 타협이 어떤 방식으로 제도와 명성을 지켜 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음악사의 빈칸을 채우면서 예술이 스스로 윤리적 책임을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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