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14]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소경과 저는 자들이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 마태만이 성전 안에서 아이들이 호산나를 다시 외치게 된 치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눅 19:47에서는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쳤다고
보고하고 있는 반면에 마태는 예수께서 영적 소경이며 불구자들인 매매하는 모든 자들은 내어 쫓으시고 육신의 불구자들은 맞이하여 영을 고쳐 주는 기이한 일을 행했다고 보고하였다.
즉 예수께서는 고침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성전을 기도하고 찬양하는 집으로 만들게 하셨다. 또한 출입이 제한된 신체장애자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고침을 받게 함으로써 성전에 대한 그의 우위권, 즉 자신이 '성전 보다 큰이'임을 입증하셨다.
[마 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 - `이상한'의 뜻인 '다우마시아'는 비상한, 놀라운, 찬양할 만한 일들의 복수형으로서, 예수가 육체의 불구자들을 고치신 일 뿐만 아니라 성전을 숙정하신 일까지도 백성들에게 찬양받을 만한 일이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가 행한 이러한 일련의 기이한 일들은 마땅히 메시야의 할 일들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전에서 소리질러 하는 아이들 - 성전의 경내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성전의 거룩함에 대한 모독이므로 즉각적으로 성전의 경비원들에게 제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 장면은 승리의 입성시의 '호산나' 찬미소리를 다시 한번 재현하기 위하여 마태에 의해 특별히 첨가되었다.
예수를 반대하는 대적자들이 아이들이 소리지른 것 그 자체를 제지하지 않고 다만 외쳐진 말의 내용에 대해서 분노한 사실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소리를 지른 '아이'의 뜻인 '파이디온'은 젖먹이 아기인 `네피오스'와는 달리 성전에서 율법과 탈무드를 배울수 있는 5세 이상의 아이들을 가리킨다.
잠 20:11에 의하면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이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호산나 찬미를 기쁘게 여기셨다. 이미 소경들과 무리들, 이방 여자 예루살렘의 무리들로부터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야 칭호를 받으신
예수께서는 이제 아이들에게까지도 찬미 받으심으로써 명실공히 전유대인으로부터 왕이시요, 메시야라고 하는 고백을 받으셨다. 보고 분하여 - 유대 교권주의자들의 분노는 예수가 성전을 숙정하신 일과 성전안에서 불구자들을 고치신 일 때문에 발생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이적으로 인해서 예수가 사람들로부터 메시야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미 수난 예고에서 언급된 소위 산헤드린 공의회원들로 종교, 경제, 사회, 교육 등의 각 방면에서 고유한 특권을 향유하고 있었다. 여하튼 이들의 감정을 자극시킨 성전에서의 이 사건은 곧 예수의 수난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마 21:16]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 시 8:2의 인용이다. 일부의 해석자들은 시 8편이 메시야 성격을 지니지 않았다는 견해를 피력(披瀝)하기도 하지만 이 시 8편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적용, 해석하심으로써 분명히 메시야적성격을 가진 것으로 취급하셨다.
다윗의 이시에는 원래 모든 혀가 침묵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젖을 빠는 젖먹이들을 들어 당신의 능력을 선포하실 것이기 때문에 따로 대변자가 필요 없다고 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처럼 이 시 8편은 주 여호와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삼은 고백이었으나 예수는 이것을 자신, 즉 메시야에 대한 온전한 찬미로서 재해석하였던 것이다.
한편 앞 절에서 언급돤 대제사장들 및 서기관들과 대조되고 있는 이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이라는 말은 11:25의 예수의 말씀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을 상기시킨다. 한편 히브리어로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말인 '올랄'은 노닐 수 있을 만큼의 큰 아이를 의미하며 `야나크'는 젖먹이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히브리 여인들은 아이가 3살이 될때까지 젖을 먹인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본문에서 나온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을 간신히 노래할수 있는 나이인 3살이상의 아이들로 보려는 델리취의 의견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들의 찬미는 그들이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부를 찬양을 암시하며 예수는 이들 속에서 유대의 오랜 불신앙을 버리고 참된신앙 즉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새이스라엘을 본다고 하는 어떤 학자들의 의견은 적절하지 못하다.
예수의 말씀은 성숙한 어른의 찬양이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자기 스스로 찬양을 준비(準備)하시고 완전케 하신다고 하는 의미이다. 또한 젖먹이 아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울려 퍼진다고 한다면 이미 말할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호산나' 찬양이 노래되어야 함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분히 여겨 이를 갊'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 구약의 본문(시 8:2)에 의하면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報髓者)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다'이다. 이 중에서 '권능을 세우다'이란 말씀이 70인역 헬라어 성경에서는 `찬송을 완전케 하다'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마태의 본문에서는 구약과는 달리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힘찬 그리고 확신있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큰 찬송은 무지하고 불법한 자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했으나 동시에 예수에 의해 그들의 말을 잠재우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여기서 `온전케 하셨나이다'의 뜻인 헬라어 `카타르티조'는 본문에서 중간태형으로 쓰여서 스스로를 위한 찬미를 `온전케 하다' 혹은 `준비하다'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하고 있는 레위자손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로 하여금 당신만을 찬양하시도록 준비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또한 젖먹이 아이들로 하여금 그의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도록 오랫동안 준비해 오셨다고 하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 시편 8편의 본문에서는 아이들의 합창이 대적자들의 입을 잠잠케 하지만 본문에서는 예수의 말씀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셧다. 즉 예수께서는 아이들의 찬미를 기쁘게 받으심으로써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 찬양`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올바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사실, 곧 그들의 영적무지를 들어 그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마 21:17]
그들을 떠나 성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시장하신지라 - 이 구절 때문에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기도하시기 위하여 이른 새벽에 나왔을 것이라고 하는 견해와 베다니의 한 집에서 유숙하신 것이 아니라 길에서 노숙하셨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또한 '시장하다'고 하는 이 표현은 예수의 '인성'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께서는 신이시며 인간의 육체는 임시로 취하셨기 때문에 아픔, 배고픔, 죽음등의 고통을 느끼시지 못한다고 하는 가현설을 반박할수 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