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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약

인류의 공동 대적인 마귀에게 ...(마 4:1-4)

작성자남제현|작성시간25.12.10|조회수29 목록 댓글 0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때에(토테) - 문장의 서두를 이루는 말로서, 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이 예수에게 임한 후 즉시를 말한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 예수를 잉태케 하신성령은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거한 후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도록 광야로 이끄신다. 이는 물론 외형상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해 예수께서 수동적으로 인도당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예수께서 성령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신 것을 나타낸다.

 

즉 성자, 성령의 유기적연합과 협력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류의 공동 대적인 마귀에게 나아가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자, 성령께서 마귀에게 도전했다는 뜻이 아니다. 수세와 관유로 성령이 충만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첫째 아담을 정복했던 사단이 둘째 아담인 자신을 꺾어버리기 위해도 전해 온 것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 도전을 극복함으로 비로소 예수는 하나님과 사단의 공인을 받으며 참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마귀 - 이 단어는 엄격한 의미로 '중상모략을 일삼는 자', '살인자'를 뜻한다. 70인역에서 이 용어는 대적자, 저항자란 뜻의 히브리어 '사단'을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마귀를 인종 차별이나 범죄의 배후에 있는 비인격적인 '힘'으로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 마귀 또는 사단은 인간 타락의 원인이되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대적하며, 땅 위에 어둠의 권세를 번식시키고 사람들의 파괴를 유도하는 타락한 영들의 왕이다. 그리하여 사단을 일컬어 살인자(요 8:44)요, 악한 자요, 거짓말장이 요,시험하는 자요, 참소하는 미혹하는 자요, 대적이요, 이 세상 임금이요,

 

공중권세 잡은 자 등으로 부른다 시험을 받으러- '페이라조'란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하는 사단의 계략일 뿐아니라, 인간들의 인격을 성숙시키고 영적으로 성장케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연단이기고 한다.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은 전자의 어두운 면을 내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생 결단의 시험이었다.

 

실로 사단은 인간을 악에 빠지도록 유혹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악한 존재이다 . 바로 그 파괴적 실체인 사단이 예수께 한낱 대리자를 보내지 않고 자기의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여 예수를 시험하였다. 광야 - 성경 문학적으로 '광야'란 귀신들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곳

그런데 이곳의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 모세와 엘리야의 40일 금식 처소인 시내산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다볼산 내지는 여리고 근처의 전설적인 시험의 장소로 보기도 한다

 

그중에서 시험받은 장소가 세례 받은 장소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십자군 원정 이후 이곳 지역을 그리스도의 '40일 금식'지역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사십 일을 밤낮으로 - '40이란 숫자는 성경 문학적으로 징벌과 고통, 인내와 완성, 인간 한계의 최대치, 그리고 하나님의 준비기간 등으로 이해된다. 특히 이 숫자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예수의 40 주야에 걸친 금식은 이스라엘의 40년 방랑과 연결되며, 또한 그 기간은 모세와 엘리야의 40일 금식과 관련되어진다.

 

소수 비평가들은 '40'일을 신성수라 하여 무한한 기간으로 해석하나, '밤낮'이라는 어구의 추가로 보아 문자적인 '40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과 예수는 이 40일 기간 동안 모두 굶주림으로부터 신령한 교훈을 얻었고, 광야에서 대업을 준비하기 위한 시련을 겪었다. 즉 이스라엘은 애굽의 압제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후,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 각각 주어진 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필요한 순종과 충성을 증명하려고 시험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실패하였고 실패한 이스라엘을 구원키 위해 오신 예수는 완전한 승리로 40일을 마감하셨다. 한편 그때에 사단의 시험이 40일 동안 계속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금식 후에 시험을 받으신 것으로 되어있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견해를 취하고 있다.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예수께서는 40일 밤낮동안 모든 음식을 전폐하고 육체적 소욕을 철저히 제어(하셨다. 아마 이 기간 동안 하나님과 깊은 영적교제의 세계로 들어가셨을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예수께서 금식하는 기간동안에 모세와 같이 영적 무아경속에 지냈으며, 육체적 욕구는 중지되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음식의 결핍에서 오는 식욕의 고통과 그로 인한 육체적 쇠약을 철저히 감내해야만 하셨다. 실로 그리스도는 세상의 금식 정신과는 달리 금욕과 고행을 위해 주리실 필요가 없으셨다 다만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시고,

 

당신의 공생애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순종과 충성을 증명하시려 이 육체적 극기 기간을 할애하셨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곧 그의 양식이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교제에 열중한 나머지 시장기를 잊으셨고,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과 같이 자신의 말씀으로 예수를 먹이셨던 것이다. 하지만 금식 기간이 끝난 후에는 심히 주리셨고 식욕의 고통으로 인해 그분의 육체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던 것 같다. 간교한 사단은 바로 이와 같은 결정적인 유혹의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시험하는 자- 사단의 성격을 나타내는 별명이다. 이용어는 신약 가운데 여기서 처음으로 사단이 죄짓도록 유혹하는 사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사단이 예수에게 접근하여 시험한 방법에 대한 학설은 대단히 많다. (1) 예수를 시험하는 제사장들을 마귀로 본 것이다

 

(2) 마귀에 의해서 연출된 묵시 (3) 하나님에 의해서 연출된 묵시(4) 예수의 상상에 의해서 생긴 갈등). (5) 마귀에 의해서 자극된 예수의 갈등. (6) 예수의 내적생활에서의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현 (7) 예수 자신이 경험치 못한 것을 비유적인 이야기로 꾸민 것

 

8) 순수한 신화이다. (9) 자연 현상이다. 위의 많은 학설들은 보편주의적인 세계관과 잘못된 그리스도관에서 비롯된 것들로서 기독교의 순수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사건은 메시야에 대한 그릇된 세속적 기대를 이용한 사단의 공격 중에서 실질적이고도 현실적인 사건이라 해야 하며, 이 시험은 마귀에 의해서 야기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 대항한 사단은 사람이나, 천사 등의 모양을 하고 가시적(可視的)으로 출현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나아와서 - 이 말은 거리상 가까이 접근한다는 뜻으로 사단의 가시적 실재성을 암시하는 말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첫 시험은 떡을 만드는데 부적당한 방법을 사용하도록 고무하는이 아니다.

 

그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어긋나는 방법으로 아들의 능력을 사용하게 하려는 유혹이었다. 사단은 자신이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의심했거나 또는 예수에게 의심하도륵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에이'로 시작되는 본문의 조건절 형태가 그 절 안에 계시된 내용을 일단 사실이라고 규정한다는 묵시적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단은 예수의 메시야성을 의심했다기 보다 그 다음의 시험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 질문을 했던 것이다. 즉 마치 십자가에 처참하게 매달려있는 예수를 향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소한 것처럼 사단의 목적은 예수로 하여금 그의 능력을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유혹하려는 것이었다.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하라 - 이 요구를 통해 마귀가 예수의 신성을 의심하는 듯한 질문을 하게 된 음흉한 저의가 드러났다. 즉 마귀는 예수로 하여금 당신이 지닌 메시야적 권능을 메시야직의 수행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 당신이 당면한 개인적문제(허기)를 해결하는대 먼저 사용하라는 유혹을 한 것이다.

 

이때 만에 하나라도 그리스도께서 돌들로 떡을 만들어 잡수셨다거나 십자가에서 떠나버리셨다면 그분의 사명과 하나님의 뜻에 함축되어 있는 성육신을 통한 자기 비하를 부인하는 것이된다. 이스라엘은 먹을 것을 요구하여 허기진 배를 채웠으나 대부분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는 먹을 것을 거부하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써 의를 유지하였고 인류에가게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실 수 있었다. 한편 그 당시 사단이 제시한 '돌'은 빵과 같은 모양의 화석 또는 석회질의 덩이, 철광석 아니면 둥글고 매끄러운 돌 등으로 추측한다.

 

어떤 재질, 모앙을 하든 그것은 손으로 집어 들을 수 있는 크기의 것이었음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떡'(아르토이)은 유대인들이 일상 음식으로 먹던 둥근 접시 크기 정도의 밀로 만든 구운 빵을 가리키는 것 같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기록되었으되 - 원뜻은 '정확하게 새기다'며 완료수동직설법으로 사용된 본문은 '기록하여 보존되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현존성과 영원 효력성을 강조한 말로서 결국 본절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정확무오하게 기록되었으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예수의 답변은 모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다. 여기서 예수의 겸손과 성경에 정통하신 지혜가 뚜렷이 드러난다. 우리 신자들도 삶에 어려운 시험이나 곤경이 닥쳐올 때에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를 본받는 성숙한 신앙의 면모를 갖춰야 할 것이다.

 

사람이...말씀으로 살 것이라 - 이 구절은 70인역의 신 8:3을 인용한 것으로서 본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던 내용이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종, 인자, 그리고 오실 자에 적용되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말씀'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양식과 관련되면서 예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즉 예수는 '떡'만을 강조하는 사단에게 땅의 양식과 하늘의 양식을 대조하여 '사람'(호 안드로포스)의 존재 양식, 즉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지탱할 수 없다는 진리를 들어 공박하신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는 떡으로 '만'(우크 모노)이라는 제한적 용법을 사용하심으로써 육체적 한계에 갇혀 있는 인간에게 '떡'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접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것보다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풍요한 땅 에덴에서 성공했던 사단의 시험이 불모의 광야에서는 실패했다. 우리는 성경에서와 창조 후 인류 역사 속에서 일시적인 '떡'문제에 정신이 팔려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수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다.

 

그러므로 성도된 자들은 응당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물질 생활의 헛점을 파고 드는 사단의 교활한 시험을 처음부터 근절시켜야 한다. 한편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성경 저자들의 귀에 들어가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서 단순히 문자화된 경전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원 목적에 따라 인간의 삶을 주장하는 생명력 있고 창조적인 '하나님의 말씀'그 자체인 것이다. 이 말씀이야말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유지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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