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아니요 이스라엘이라 -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삶과 신분과 인격에 극적인 변화가 주어졌음을 암시한다. 특히 그 이름을 명명는 자는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과 주도권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이처럼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은 (1)인간적 실패의 이름이 영적 승리의 이름으로 축복받은 것을 뜻하며 (2)벧엘 언약에 근거하여 야곱이 실질적 언약의 후계로서 하나님에 의해 정식 비준된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스라엘'이란 '우세하다', '싸우다', '왕비'라는 뜻의 '사라'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의미하는 '엘'이 결합된 형태로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뜻도 있으나 대체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란 뜻으로 이해된다.
겨루어 - 힘, 능력 등을 총동원하여 대치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인간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집념을 기울인 상태를 가리킨다.
[행 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은 삼하 7:12에서 볼 수 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경우에서처럼 언약을 맺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주어졌다. 그렇지만 언약 맺음에 있어서 수반되는 축복과 저주, 충성과 복종의 조항이 언급되므로 삼하 7장을 '다윗 언약의 장'이라 부른다.
아무튼 바울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면서 다윗 언약을 상기시켜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왕통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하였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이 말은 다윗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안에서 성취되었음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데 본 구절은 약간의 오해가 발생될 수 있다.
즉 본절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온 인류를 위한 구원자로서 예수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소명자로서의 바울과도 모순되는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메시야 사상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대인들은, 다윗에게 약속한 메시야는 다윗 왕국을 강건하게 복원시키는 정치적 인물임을 믿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해 다앙한 예언이 있다. 즉 수난의 '종또는 '인자', '왕'으로서의 메시야와 '대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 등이 나타난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한 메시야에게 다양한 상이 복합적으로 존재함을 말해주고 있으나 유대인들은 굳이 일부분만을 취하여 메시야를 정치적인 즉 이스라엘에 국한된 메시야로 한정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이 이방인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말한 것은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메시야 사상을 말하기보다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예언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구주임을 권위있게 증언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구절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주로 국한시키는 말로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