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속 사람으로는 - 혹자는 23절과 25절에서 대조되고 있는 마음과 육신이 몸과 영 또는 정신과 물질 간의 어떤 형이상학적인 구별이 아니라 윤리적인 구별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혹자는 고후 4:16을 근거로 하여 속 사람을 썩어질 겉 사람과 대조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더 나아가 혹자는 속 사람을 인간의 실질적인 자아로서 영과 혼과 같은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겉 사람을 사람의 몸과 그 지체로 이해한다. 여기서 후자의 주장들은 바울의 전체 사상 중에서 인간 이해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시켜 줄 수 있으나 본절 이하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속 사람이 23절과 25절의 '마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윤리적인 구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의 실체를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윤리적인 면에서 속 사람을 단순히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아로 규정하고 악을 행하는 다른 자아와 구분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법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노모 투 데우'가 '율법'을 의미하는지 8:2의 언급과 같은 '성령의 법'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율법'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법'이 '성령의 법'과 일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드시 율법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지금 바울이 진술하고자 하는 것은 속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일으키는 '거룩한 원리나 힘'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거룩한 원리를 따르기를 즐거워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이 '율법'이나 '계명'을 포괄하는 '거룩한 원리'로 해석되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즐거워하되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도마이'는 일차적으로 '...와 함께 즐거워하다'로 직역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치사 '쉰' 과 결합된 합성 동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렌스키는 '...와 교제 하거나 교제하게 되어 즐거워한다'는 해석을 제안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함께'라는 의미를 강조할 필요가 없으므로 단순히 '...을 즐거워하다 '...을 기뻐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낫다. 또한 이 동사가 1인칭 단수를 나타내므로 '내가...을 즐거워하되'라고 이해해야 한다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본절에서 바울은 '속 사람이 강건해지기를' 기도한다. '속 사람'은 인간의 '영', '마음', '이성과 의지가 활동하는 인격'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속 사람'은 '겉 사람' 즉 육체에 속하여 부패한 사람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속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능력으로 강건해진다. 본절에서의 '성령'에 대한 언급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속 사람에 날마다 내주하셔서 역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내주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고전 16:13; 빌 4:13). 한편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이루어진다. '영광'은 하나님의 안전한 행위를 시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모든 속성 즉 사랑과 은혜, 지혜의 무한함과 영원함을 포함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선물의 기준이며 규범이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리스도인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능력을 부여함으로 속 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강건하게 하심을 시사하며 그리스도인들이 간구하는 것 이상으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확신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