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씀 전달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살전4;7,히 10:29)

작성자남제현|작성시간26.06.21|조회수11 목록 댓글 0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 혹자는 바울이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초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부르심'의 헬라어 '에칼레센'은 능동태로서 그리스도인으로의 회심은 인간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행위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의 초기 서신에 잘 나타나 있다.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하심이니 - '부정'의 언급은 6절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한 바가 상업적 문제가 아니라 성적 문제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한편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부정' 앞에 있는 전치사 '에피'는 '...에로'의 뜻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나타낸다. 갈 5:13에서는 '자유를 위하여,엡 2:10에는 '선한 일을 위하여' 이 단어가 목적을 나타내는 전치사로 사용되었다.

 

반면 '거룩' 앞에 있는 전치사 '엔'은 '...안에'의 뜻으로서 이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거룩함 안에 거하는' 즉 '성화되어가는 성도들로 부르심을 입었음'을 나타낸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사도는 하나님 안에 감추인 생명이 장차 나타날 것을 여기서 말함으로 그 생명의 영광을 보여준다. 이것도 2절의 둘째 이유이다 첫째 이유는 3절. 이렇게 영광스러운 생명이 위에 있으니,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한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 우리의 대표자이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은 곧, 우리의 부활과 영생으로 그와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부활의 원인자이시요 또 원천이시다. 여기 "나타나신다"는 말은 재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초림도 어느 정도 그의 "나타나심"이라고 할 수 있으나

 

재림에 비교하면, 그렇지 못한다. 초림하신 그리스도는 인류의 일부가 보았거니와, 재림하실 그는 온 인류가 다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의 재림을 가리켜 "나타나심"이라고 하였다. 그가 "나타나실" 그 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행한 일들도 선악간에 다 나타나다.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우리 신자들이 그와 같은 영광의 부활을 얻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미천하던 우리가 영광스러운 존재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육과 악한 정욕과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본절부터 9절까지는 믿음을 장성하게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죄를 끊어 버림이다. 기독교의 인간 개조는 피상적인 것이 안니고, (1)먼저 죄악의 뿌리부터 단절해 버림으로 (2)악한 행습들을 제거함에 이르고, (3) 선미한 덕행을 옷입듯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먼저 죽고 그 뒤에 사는 것이다. 곧, 악심과 악행을 죽이고 선미한 새 생명을 가꾸어 낸다.

 

여기 "그러므로"란 말은 위의 교리론에서 실제적 결론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는 것이니만큼, 세상 끝날에 그것일 완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땅 위에서 믿음을 착실히 지켜야 한다. 이 사상은 벧전1:3-5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하늘에 간직된 기업을 누릴 자들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믿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끊어 버려야 된다. 이 의미에서 사도은 여기서부터 골로새 신자들에게 그들의 죄를 버리라고 말한다. "땅에 있는 지체"란 문구에 대한 해석은 두가지이다. (1) 이것은 불의의 병기로서의 지체들을가리킨다는 해석, 곧, 하나님보다 땅의 것들을 더 사랑하는 육신의 지체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해석을 채택하는 경우에는, 아랫말 "죽이라"는 것은 제어하고 극복하라는 의미이겠다. (2) 이것은 우리의 부패한 성품의 각양 작용들을 의미한다고 하는 해석. 하반절의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란 말이 "땅에 있는 지체"란 문구의 설명인 사실로 보아도 이 해석이 적합하다."죽이라"는 것은, 악한 성품의 활동을 그것이 '아주 죽은 것처럼 영원히 정지시키라'는 의미이겠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땅엣 것들을 즐겨 하나님을 떠나 버리게 만드는 죄악들이다. 여기 열거(列擧)되 다섯 가지 죄악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음행"과 "탐심"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1) 성적 죄악.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음란,부정,사욕, 악한정욕"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음란의 충동과 욕심을 가리킨다.

 

그리고 "음란과 부정"의 차이는 무엇이며 "사욕과 악한 정욕"의 차이는 무엇인가? "음란"이란 말은 "부정"이란 말보다 범위가 좁은 말로서 불법저그로 취하는 성적 행동을 의미하고, "부정"은 성문제(性問題)에 대한 일체의 불합리한 언행을 가리킨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정 무서운 죄악은 음란이다.

 

그렇게 때문에 바울이 그의 서신들에 열거한 죄목들에는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선두에 놓는다. 글 이유는, 이 죄악에 빠지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힘으로 하나님을 영구히 떠나기 쉬운 까닭이다). (2) 무제한의 소유욕. 이것은 "탐심"이라고 불리우는데 "우상숭배"와 같이 간주된다. 이것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죄악이다.

 

탐심의 소유자는 세상 것들에 애착하여 그것들을 추구하기에 전심 전력하고 하나님을 떠난다. "탐심은 우상 숭배"라는 내용의 교훈은 마 6:24과 엡 5:5에도 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나님의 뜻이면 물질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외면하고 물질을 먼저 구하면서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중요시하는 자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같다.

 

[히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 저자는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모세의 율법을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엄한 심판을 자초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본문은 신 17:2-7을 인용한 것이다. 

 

신명기 본문은 우상 숭배를 한 자에 대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두 세 사람의 증인만 있으면 그들은 용서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하물며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 본문은 새 언약을 성취시킨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한 자에 대한 징벌이 옛 언약하에서 우상 숭배로 인해 죽임을 당한 징벌보다 훨씬 더 엄함을 나타낸다. 

 

그 형벌이 훨씬 더 엄한 것은 옛 언약보다 새 언약이 훨씬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새 언약을 성취시킨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고 배교하는 것은 옛 언약하에서 우상 숭배하는 것보다 더 강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는 배교 때문에 고소를 당하는 이유는 세가지이다.

 

(1)하나님 아들을 밟고 - 예수의 칭호로 사용된 '하나님 아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내에서 이미 잘 알려진 공식적인 신앙고백이었다. 한편 '밟고'의 헬라어 '카타파테사스'는 모욕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배교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행위이다

 

(2)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 '언약의 피'는 옛 언약을 세울 때 사용되었던 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출 24:8) 새 언약을 세울 때 희생되었던 그리스도의 피 곧 십자가상의 죽음을 의미한다

 

새언약을 위해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는 옛 언약하에서 제거할 수 없었던 양심의 더러움까지 정결케하며 거룩하게 하는 매우 귀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배교자들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피를 가볍게 여기고 사소한 것으로 이해하며 보통 사람의 죽음과 동일하게 여긴다

 

배교자의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축복과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다. (3)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 성령께서 '은혜의 성령'으로 나타나는 곳은 신약성경에서 이곳 뿐이다. `은혜의 성령'은 슥 12:10 을 암시한다

 

만약 이것이 의도된 암시라면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은혜를 공동체에 부어주신 오순절의 성령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회중에게 부어주신 성령은(2:4;6:4)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종말론적 은혜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따라서 본절의 '은혜의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영'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영'을 가리킨다 의도적으로 배교하는 것은 은혜를 가져다주는 성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성령을 모욕하는 죄이며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