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허락하셨던 최초의 양식은 동물이 아닌 식물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때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푼 또 다른 세심한 배려이다.
생명 나무 에츠 하하임 - 일차적으로 이 나무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전제로 인간 생명을 영속시키며 늘 강건한 힘을 공급해 주는 과실 나무이다. 한편 칼빈은 주장하기를, 이 나무는 아담과 하와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토록 해주는 성례전적 의미를 지닌 나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더 이상 이 같은 하나님의 선물을 맛보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 이 나무의 존재 가치는 인간이 신의 보호를 받는 애완 동물로서가 아니라 자유 의지를 소유한 전인격체로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심판대 -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을 가리킨다. 이 심판은 본래 하나님의 심판으로 표현되지만 본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으로 표현된 것은 심판에 있어서 일차적 기준이 그리스도이며, 또한 이 심판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그런데 본문의 이 심판이 비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모두 포함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세번째 것이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하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최후의 심판대는 일차적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을 구분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심판은 구원을 얻는 성도들에게는 그들이 받을 상의 크고 작음을 가리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에게 기쁨인 동시에 도전이기도 하다. 바울이 죽든지 살든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이 심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악간에 그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 이 표현에 대해 혹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바울의 기본 교리와 모순된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바울이 율법의 행함을 부인했을 때, 그것이 뜻하는 바는 율법의 요구 자체를 폐기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이행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의로 내세우려는 태도를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율법이 명하는 바 선에의 투신은 오직 그리스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기초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히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단단한 식물은...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단단한 식물'은 문맥상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말씀으로 초신자들과 같이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진리를 가리킨다. 이러한 진리를 이해하는 자에 대해 저자는 본절에서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장성한 자 - 이것은 앞절에서 언급된 '어린아이'에 비해상대적으로 온전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단단한 식물'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자를시사한다.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지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스데테리아'는 스토아 학파에서 '감각 기관'을 가리키던 말로 본절에서는 도덕적인 분별력을 넘어 영적인 분별 기능을 뜻한다
한편 '연단을 받아'의 헬라어 '게귐나스메나'는 '귐나조'('훈련하다')의 완료 수동 분사로 끊임없이 훈련을 받는 상태를 나타낸다.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는 훈련과 진리를 통해 성숙한 영적 분별력을 소유하게 되며 그 분별력을 통해서 선악을 분별하여 범죄치 않으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
선악의 발명에
하노 자우어 지음..500만년전 이타주의 도덕 발명 500년전 사회적 협력으로 발전 인족·민족 초월 평등추구했지만...20세기말 불평등으로 언어 전쟁 다시 ‘인류 난제 해결’ 손잡아야 ‘협력’ 위해 태어난 도덕… 갈등·분열 도구로 변질[북리뷰 “도덕이 부글거리고 있다. 덜 관용적 판단을 더 가차 없이 고수하면서 도덕의 어휘가 뒤죽박죽됐다.
문화 전쟁이다. 분노와 원한으로 중무장한 원수들이 문화 전쟁의 참호에 틀어박혀 현재를 어떻게 해석하고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며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놓고 싸우고 있다.” ‘선악의 발명’에서 하노 자우어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번져 가는 극단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문화 전쟁과 정체성 정치에 따른 도덕적 아노미 현상을 진단하고,
문명사적 시야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자우어가 특히 주목하는 건 ‘도덕의 힘’이다. 현재의 인류는 구석기 인류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사이 인류는 수십 명이 모여 사는 부족 공동체에서 수십억 명이 협력하는 행성 규모의 문명을 구축했다. 집단이 확장될 때마다 인류는 선악의 경계를 재조정하고 도덕 규칙을 고쳐 씀으로써 결국 대규모 협력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