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말씀 전달

덴마아크를 살린 그룬트비히의 '삼애운동'

작성자남제현|작성시간11.09.17|조회수363 목록 댓글 0

덴마아크를 살린 그룬트비히의 '삼애운동'  

 

 
그룬트비히[Grundtvig, Nikolai Frederik Severin,1783~1872] 목사는 자신의 조국 덴마크가 연이은 패전으로 인하여 국토는 줄어들고 민심은 피폐하여져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같이 흔들리게 되었을 때에 국민들의 혼을 깨우치고 희망을 심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는 국민들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기를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호소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국운이 기울어지게 되면 일어나는 한 가지 현상이 있다. 가는 곳마다 다툼과 분쟁이 끊어지지를 않게 되고 도박이 성행한다.

 

19세기 중엽의 덴마크 사회가 그러하였다.그룬트비히 목사가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한 것은 패전으로 인하여 국토를 잃은 것을 비탄해 하고만 있지를 말고 온 국민들이 혼이 깨어나고 마음이 새로워져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여 나가자는 의미의 호소였다. 그리고 그는 온 국민들을 상대로 삼애운동(三愛運動)을 펼쳤다. ‘하늘사랑, 땅사랑 그리고 사람사랑’ 3 가지 사랑을 일컫는다. ‘하늘사랑’은 성경의 하나님을 지성으로 섬기는 하나님 사랑이고 ‘땅사랑’은 조국인 덴마크를 재건하는 겨레사랑이요 ‘사람사랑’은 동포를 사랑하는 이웃사랑이었다.그룬트비히 목사의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들은 국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각자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삼애운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런 사람들 중에 달가스[Dalgas, Enriko Mylius, 1828~1894]란 사람이 있었다. 포병대의 대령이었으나 패전 이후 상심하여 패배감에 젖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룬드비히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새로운 용기, 새로운 비전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삼애운동으로 토박한 국토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어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운동임을 자각케 되었다. 그는 북녘 황무지에 도전하여 나무심기에 남은 삶을 투자하였다. 그러나 나무를 심을 때마다 차가운 북퐁과 토박한 땅 탓으로 나무들이 죽어갔다. 그는 무려 13년의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그 기후와 그 토양에 알맞은 나무를 찾아내어 270만평의 숲을 일구어 내는 일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룬트비히 목사의 삼애운동이 덴마크 나라를 일으키게 되는 한 시작이 되었다.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 -

 



*쾨켄호프의 플라워 랜드*


그룬트비히냐 키엘케골이냐...?


나는 대학생 시절,
한 때 장래에 그룬트비히가 될 것이냐? 아니면 키엘케골이 될 것이냐?
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다.

둘이 다 19세기 같은 시기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룬드비히는 목사로서 희망을 잃고 있는 나라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던 사회개혁자였고
키엘케골은 순수한 철학적 사유에 삶을 바쳐 주옥같은 저서를 남긴 철학자였다.

대구 계명대학에서 철학과에 다니던 나는 개신교의 목사가 되어
‘그룬트비히와 같이 사회와 교회의 개혁운동에 헌신할 것이냐?’
아니면 모교에서 철학 교수로 남아 ‘키엘케골과 같이 순수하게 철학적 사유의
세계에 헌신할 것이냐?’를 고민한 것이다.

결국은 목사가 되어 그룬트비히가 걸었던 길을 걷고는 있으나
그와 같은 사회개혁가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한 채로 목회자의 자리를 지키고는 있다.
덴마크는 원래는 스웨덴, 노르웨이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통치하던 왕국이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전쟁을 여러 번 일으켜 계속 패전함으로 국토는 좁아졌고 국력은 기울어졌다.
특히 프로이센과의 오랜 전쟁에서 패전한 1864년 이후로는
비옥한 땅은 전승국에 다 빼앗기고 북녘의 척박한 땅 조금만 남게 되었다.
철저하게 망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철저하게 망하게 되어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이
오히려 국운이 일어서게 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덴마크가 그렇게 재기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민들에게 바른 정신을 불어넣는
선각자가 등장하여 국민들의 혼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선각자가 시대정신을 올바르게 깨우치게 되면서
완전히 죽어가던 한 나라가 일어서게 된 것이다.
그 인물이 바로 그룬트비히 목사이다.

그룬트비히[Grundtvig, Nikolai Frederik Severin,1783-1872]라는 한 목사의 설교가
한 국가와 국민의 역사를 어떻게 살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실례가 된다.


그룬트비히[Grundtvig, Nikolai Frederik Severin,1783~1872] 목사는
자신의 조국 덴마크가 연이은 패전으로 인하여 국토는 줄어들고 민심은 피폐하여져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같이 흔들리게 되었을 때에
국민들의 혼을 깨우치고 희망을 심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는 국민들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기를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호소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국운이 기울어지게 되면 일어나는 한 가지 현상이 있다.
가는 곳마다 다툼과 분쟁이 끊어지지를 않게 되고 도박이 성행한다.
19세기 중엽의 덴마크 사회가 그러하였다.

그룬트비히 목사가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한 것은
패전으로 인하여 국토를 잃은 것을 비탄해 하고만 있지를 말고 온 국민들이
혼이 깨어나고 마음이 새로워져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여
나가자는 의미의 호소였다.
그리고 그는 온 국민들을 상대로 삼애운동(三愛運動)을 펼쳤다.

`하늘사랑, 땅사랑 그리고 사람사랑’ 3 가지 사랑을 일컫는다.
‘하늘사랑’은 성경의 하나님을 지성으로 섬기는 하나님 사랑이고 ‘땅사랑’은 조국인 덴마크를 재건하는 겨레사랑이요
‘사람사랑’은 동포를 사랑하는 이웃사랑이었다.

그룬트비히 목사의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들은 국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각자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삼애운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런 사람들 중에 달가스[Dalgas, Enriko Mylius, 1828~1894]란 사람이 있었다.
포병대의 대령이었으나 패전 이후 상심하여 패배감에 젖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룬드비히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새로운 용기, 새로운 비전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삼애운동으로 토박한 국토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어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운동임을 자각케 되었다.

그는 북녘 황무지에 도전하여 나무심기에 남은 삶을 투자하였다.
그러나 나무를 심을 때마다 차가운 북퐁과 토박한 땅 탓으로 나무들이 죽어갔다.
그는 무려 13년의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그 기후와 그 토양에 알맞은 나무를
찾아내어 270만평의 숲을 일구어 내는 일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룬트비히 목사의 삼애운동이 덴마크 나라를 일으키게 되는 한 시작이 되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