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128호 (여주군) |
| 명 칭 |
신륵사극락보전(神勒寺極樂寶殿) |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
| 수량/면적 |
1동 |
| 지정(등록)일 |
1985.06.28 |
| 소 재 지 |
경기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
| 시 대 |
조선시대 |
| 소유자(소유단체) |
신륵사 |
| 관리자(관리단체) |
신륵사 |
| 상 세 문 의 |
경기도 여주군 문화재관리사업소 031-887-3565 |
신륵사는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 때 원효가 지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나옹화상이 오면서 크게 번창하였고, 성종 3년(1472)부터는 대규모로 확장시켰다. 성종 4년에는 절의 이름을 ‘보은사’라 하였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 한 것은 미륵 또는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말을 막았다는 설과 고려시대에 마을에 나타난 사나운 말을 인당대사가 신의 힘으로 제압했다하여 마을 사람들이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경내에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숙종 4년(1678)에 지어진 후 정조 21년(1797)에 수리되기 시작해서 정조 24년에 완공되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내부에는 불단 위에 나무로 만든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그 위에 화려한 닫집이 꾸며져 있다. 또한 영조 49년(1773)에 제작한 범종과 후불탱화가 있다. 극락보전의 정문 위에는 나옹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오는 ‘천추만세’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입체감 있게 쓰여져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이함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에 대대적으로 수리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수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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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보물 제1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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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 칭 |
여주 신륵사 조사당(驪州 神勒寺 祖師堂) |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당우 |
| 수량/면적 |
1동 |
| 지정(등록)일 |
1963.01.21 |
| 소 재 지 |
경기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
| 시 대 |
조선시대 |
| 소유자(소유단체) |
신륵사 |
| 관리자(관리단체) |
신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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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는 봉미산 기슭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로, 원래는 신라시대에 지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조사당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건물로, 신륵사 조사당에는 불단 뒷벽 중앙에 나옹을, 그 좌우에는 지공과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조선 전기 예종 때 지은 것으로 보이며, 낮은 기단 위에 앞면 1칸·옆면 2칸으로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이러한 구조를 다포 양식이라 한다. 앞면은 6짝의 문을 달아 모두 개방할 수 있게 하고, 옆면은 앞 1칸만 문을 달아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조선 전기의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균형이 잘 잡힌 아담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朝鮮) 초기(初期) 예종(睿宗)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불단(佛壇) 후벽 중앙에 나옹(懶翁), 그 좌우에 지공(指空) 및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낮은 석단(石壇) 위에 남향하여 세운 작은 규모의 당우(堂宇)로 정면 1칸의 건물로 내부는 모두 우물반자를 짜아 대들보가 보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공포(공包)는 내·외를 모두 이출목(二出目)으로 한 다포계(多包系) 형식으로 그 조각 수법은 초기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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