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351
동봉
하루는 후배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선배 스님, 극락세계에 중생이 있습니까?"
"글쎄? 안 가봐서 잘 모르겠는데?"
"선배 스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기억나지 않으세요?"
나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말을 이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쓰신 책으로
유명한《아미타경을 읽는 즐거움》에서
말씀하신 걸 분명 읽었는데요?"
"어허! 그러셨는가? 고맙네!
내가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그런 글을 쓰기는 썼지 아마?"
그런데 내 말이 아니라
기존의 부처님의 경전 말씀에
약간의 설명을 곁들였을 뿐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자이가르닉 이펙트Zeigarnik Effect,
네, 자이가르닉 효과였습니다.
내가 이미 쓴 글인데도
책으로 나오고 나선
곧바로 잊어버리는
자이가르닉 효과였습니다.
이를 만해 큰스님께서는
'나룻배와 행인'이란 시를 통해
'나룻배의 효과'로 표현하셨지요.
강을 건너면 나룻배를 잊는다고요.
금강경에서는 뗏목의 효과입니다.
끝 마치지 않은(못한) 일은
오래 기억에 남지만
끝 낸 뒤는 마음에서 비워지기에
편안하게 잊혀질 수 있다고요.
첫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진 예와
미완성으로 끝난 차이는
다만 완성과 미완일 뿐입니다
완성은 남아있지 않는데
미완은 가슴에 남아있다고 하던가요?
나는《금강경》과 함께 있습니다.
그동안 쓴 글 교정 중에 있거든요.
오늘도 금강경 '뗏목의 법칙'
자이가르닉 효과를 생각합니다.
나는 중생입니다.
그리고 중생임이 좋습니다.
깨달아 부처가 되기 전,
그렇습니다.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중생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12/17/2015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