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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방

빛의악보

작성자썬탑|작성시간26.06.12|조회수15 목록 댓글 0

 

빛의 악보

 

   함기석

 

 

빛이 잠자는 아이 눈썹에

실잠자리 날개를 접고 내려앚았다

 

비 그친 눈망울 호수

아침은 계속

 

빛의 악보를 날렸다

청귤을 까 입에 넣어주는 엄마처럼

 

물결이 반짝반짝 푸른 건반으로 웃었다

점점 퍼지는

 

꽃망울 잠

부들 끝에 맺힌 빗방울 속

 

하늘이 담겼다

밤새 온 우주를 돌고 돌아온 아침햇살이

 

네 새싹 눈썹에 앉아

실잠자리 날개를 펴고 하늘하늘 노래했다

 

가느다란 물의 실핏줄이 보이고

네 꿈이 보이고

 

흰 물고기 닮은 어린 음표들이 흘러들었다

내 탁한 심장 속으로

 

 

             —계간 시와 반시202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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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석 / 1992작가세계등단. 시집 음시』『모든 꽃은 예언이다』『개안수술집도록.

함기석 시인의 **〈빛의 악보〉**는 비가 개인 아침, 잠든 아이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아침햇살을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각적 음악’으로 변주해 낸 수작(秀作)입니다. 함기석 시인 특유의 맑고 감각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시는, 자연의 빛과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교감하고 치유에 이르는지를 나지막이 들려줍니다.

​이 시에 대한 비평적 분석을 몇 가지 핵심 주제로 나누어 정리해 드립니다.

​이 시의 가장 큰 예술적 성취는 ‘빛’이라는 시각적 대상을 ‘악보’와 ‘음표’라는 청각적·음악적 언어로 치환한 데 있습니다.

  • 푸른 건반의 미소: 비가 그친 뒤 호수처럼 맑아진 아이의 눈망울에 아침 볕이 반사되는 모습을 "물결이 반짝반짝 푸른 건반으로 웃었다"고 표현합니다. 햇빛의 반짝임은 피아노 건반의 움직임이 되고, 이는 곧 시각적 청량감과 청각적 리듬감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 살아 움직이는 음표: 시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흰 물고기 닮은 어린 음표들"은 정적인 아침 풍경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빛의 움직임이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의 노래임을 보여줍니다.

​시 전반을 흐르는 정서는 매우 따스하고 포근합니다. 이는 ‘아이’와 ‘엄마’라는 본원적인 관계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빛의 악보를 날렸다 / 청귤을 까 입에 넣어주는 엄마처럼"

 

​아침햇살이 세상을 비추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자식에게 청귤을 까서 입에 넣어주는 엄마의 다정한 손길에 빗대었습니다. 청귤의 시고 달콤한 이미지는 아침 빛이 주는 싱그러운 생명력과 겹쳐집니다. 아이의 "새싹 눈썹"과 "꽃망울 잠"이라는 표현 역시,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존재를 향한 시인의 경이롭고 애정 어린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주 작은 존재에서 거대한 우주를 읽어내는 뛰어난 압축미를 보여줍니다.

  • ​밤새 온 우주를 돌고 돌아온 **'아침햇살'**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에너지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곳은 아이의 가느다란 '새싹 눈썹' 위입니다.
  • ​부들 끝에 맺힌 작은 '빗방울' 속에는 거대한 **'하늘'**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세계의 만남을 통해, 시인은 아이의 잠과 꿈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 우주적 신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아이의 투명한 피부 아래로 "가느다란 물의 실핏줄"이 보이고 "꿈"이 보인다는 구절은, 생명의 가장 내밀하고 순수한 순간을 포착한 명장면입니다.

​이 시의 극적인 반전이자 감동의 정점은 마지막 연에 있습니다.

​"흰 물고기 닮은 어린 음표들이 흘러들었다 / 내 탁한 심장 속으로"

 

​시선은 줄곧 아이와 아침 풍경을 향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이 모든 빛과 음악을 수용하는 '내(화자)'가 등장합니다. 화자는 자신의 심장을 "탁하다"고 고백합니다. 세파에 시달려 지치고 때 묻은 어른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순수함과 대자연의 빛이 만들어낸 '어린 음표들'이 화자의 탁한 심장 속으로 흘러들면서, 화자의 내면은 맑게 정화됩니다. 결국 이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자연과 유년의 순수함이 가진 치유의 힘을 통해 상처받은 성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과정을 그린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기석의 〈빛의 악보〉는 비 온 뒤의 아침 풍경을 한 편의 수채화처럼 맑게 그리면서도, 그 속에 깊은 생명 예찬과 영혼의 정화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아냈습니다. 실잠자리 날개처럼 가볍고 하늘하늘한 언어들로 짜여 있지만, 그 언어들이 가닿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에 맑은 동심원을 그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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