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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작성자썬탑|작성시간21.12.01|조회수21 목록 댓글 0

2021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 한진우 시인

혼자 하는 추모 외3편 /







흰 벽에 머리를 대고



에스키모인들은 화가 나면 풀릴 때까지 직선으로 걷는 풍습이 있다

마음이 풀린 곳에 표시를 하고

하룻밤 만에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돌아오다가 끝난 사람도 있다



분노는 어떤 자세로 식어 있나

어디까지 걸었니?

(묻기 전에 걸어야지)



한 사람의 길을 루틴으로 만들면

잠시가 영원으로 변할 수 있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에 닿아 보려는 염원은

스스로 물에 빠지는 선택지를 만들었다

물방울이 덜 튈수록 예쁜 다이빙의 모양

왕관 모양으로 퍼지는 밤



창문을 보면 다들 입김을 한 번씩 꽂아 두고 갔다

추모의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결국은 투명해지고



풍경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에 시달린 창문과

외면하고 싶어지면 창문을 찾곤 하는 우리



빙하가 사라지는 이유를

먼 나라 따뜻한 평지에서 생각해 본다



직선거리를 재보면

누가 더 화가 났을까 비교하기 쉽겠지만



목격자는 하얀 대지뿐이었다



저 멀리서

숨을 오래 참는 사람이

간절함과 안간힘을

심해어에게 맡겨 놓고 올라왔다

평생 동안 쉴 숨의 절반만 가지고



식목일. 그렇게 불린 날에 올라왔었지

가슴이 뚫린 채로



온 동네 흙으로도 메꿀 수 없던 깊이

동네에 있지만 동네의 이해를 벗어난 깊이



덮으려 하지 말고 통째로 껴안아 보는 습관만이 따뜻했다

머리와 다리를 덮는 이불이 깨어날 때

가슴에 안겨 있는 것처럼



나도 몸에 깊이란 걸 만들어 보려고 모종삽을 샀다

첫 삽을 뜰 때 멀리서 축하 박수가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 다들 있었다니



물이 고여 있구나



잘린 다리가 흔적을 지우기 편한 것처럼

꽃을 그리는 사람이 언제부턴가 화병에 물만 그렸다

죽음을 투명하게 보려고

다들 유리병을 사 가는 건가



누가 들어오지 않았다길래

똑바로 걸었는데 그 앞은 녹았다는 말



그것은 존재하는 걸까

그것은 발견되는 걸까



흰 벽에 머리를 대면

멀리서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자세가

엉킨 뿌리와 닮아 있다고

자기가 무얼 심는지도 모르는데



다 자라고 나서 눈을 떴을 때

여럿인 자신을 보고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새장과 벽장* /







깃털을 갈아입을 곳이 마땅찮은 그에게

벽장을 내어 줬다

그는 내게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깃 하나를 주고 펜으로 쓰라고 했다



자긴 하늘에서 뚜렷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형 항공기들에게 자리를 뺏겨

어떤 날은 걷는 시간이 더 많다는 말을 하면서

최근 한 화가의 개인전을 보고 감명받았다고 했다



새들이 벽화 안에 무리 지어 갇혀 있었는데

밖에 있는 새 한 마리가 발톱을 박고 부리를 박고

필사적으로 수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그림에서는 여윈 새 한 마리가 입에 새장을 물고

고개를 박고 있었다



그런데 집이 잠겨 있어 들어가진 못했다

새장에 새를 반기지 않는 공허가 가득했다



그는 작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의도가 있나요?

새는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자유로운 존재였어요

새장에서 새를 빼고

나무에서 새를 빼면 새는 뭐가 되는지 궁금했어요



저처럼 되지 않을까요

그는 나한테 빌린 옷이 깃털을 가려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집까지 날아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내 호의가 무거워서 그럴 수 없었다



새장은 주로 열려 있다

주로 베란다에 있고

때문에 바깥과 집을 연결하는 손잡이 같다



새는 둘 사이를 오가며 자기가 안인지 밖인지 헷갈렸다

눈에 띄지 않게 어디 박혀 있고 싶다



그는 전시 마지막 주에 새 그림을 오래 쳐다봤다

그는 부리를 노크로 자주 사용했는데



노크는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면서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가 준 깃으로 마침표를 찍을 때

깃으로 그를 그릴 때



그는 지나가는 행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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