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대산대학교문학상
축구를 사랑해서 / 이자켓
푹 꺼진 소파에 앉아 우린 경기를 보았다
곧 후반전의 킥오프가 진행될 참이었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서로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 경기의 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이
자주색 스카프를 흔들며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성냥을 그었고 그때부터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관중들이 꺼지지 않을 불씨처럼 움직였다
일어날 수 있을까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은데
얼굴이 고통스러워 보여
무릎을 잡고 있는 게 아마 발을 디딜 때 다친 것 같아
돌아 올 수 있을까
큰 문제가 아니라면 일어서겠지
못 돌아올지도 몰라
나는 꺼져가는 담뱃불을 재떨이에 짓이겼다
저 선수 없이 팀이 이길 수 있을까
저 선수를 대체할 사람은 많아
동물원의 기린처럼 말이야
너는 얼음 같은 나의 입술을 녹이고
내게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경기는 여전히 큰 점수 차였고
판세는 뒤바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며
기괴한 모양새가 되어갔다
긴 다리들이 천장으로 바닥으로 향할 때
소파의 가죽은 맥 빠진 소리를 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엄청난 아우성이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잠시 고개를 돌려 골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물망 앞에 놓인 공을 주은 선수는 묵묵히
하프라인을 향해 달려갔다
엄청난 골이네
응 엄청났어
점수 차를 뒤집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름다웠어
대각선에서 힘이 실린 슛이었어
관중들의 환호성도 엄청났지
그래 대단했어
축구를 사랑해서 그렇지
응 축구를 사랑해서
가끔은 선수들이 기린 같다고 생각해
동물원에 갇힌?
맞아 우리 안에 갇힌
언제든 긴 다리로 우리를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절대 그러지 않아 우리에서 우리의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여
우리도 그런 것 같지 않아?
서로의 문밖을 나서면 끝인데 말이야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오랜 시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축구를 사랑해서
그랬다
그러지 않았을까
식물 구조대
종일 어지러웠다
스프링클러가 회전했다
옅은 무지개도 같이 돌았다
우린 식물원 벤치에 앉아
털이 많고 큼지막한 열대식물들을 봤다
잎새가 커서 그늘도 짙었다
시위대처럼
늘어선 식물을 보며 넌 말했다
식물에 물을 준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화분에 화원에 식물들을 묶어두기 위해
물줄기를 뿌리는 것이라고
공터에 사는 무성한 나무들 잡초들
누구도 물을 주지 않지만 잘 자란다고
아름다운 장소는
조금씩 무서웠다
식물들이 서로에게 들러붙은 눈물을
조심스럽게 핥고 있었다
무척 투명한 혀여서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식물원을 빠져나올 때
누군가가 나를 불러 뒤를 돌아봤다
너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목이 무척 탔다
너와 내가 사람인 세계는
수상했다
수상한 비가 내렸다
‣ 이자켓: 1995년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가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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