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계간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류승희 백복현]

작성자썬탑|작성시간16.03.31|조회수98 목록 댓글 0

[제4회 계간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류승희 백복현]

■ 둥근 사각형 외 4편 / 류승희

둥근 사각형


사각형 위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꼭짓점을 만나게 된다 두 개의 선분이 만나는 끝점에서 우리는 약속을 하고 꼭지를 버렸다 네 개의 꼭짓점에서 네 개의 선분은 그렇게 결별을 하고 발가락을 감추었다 꼭짓점이 사라진 자리가 서서히 아물더니 둥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원의 테두리에 갇혔다

목덜미가 가려워 한밤중에 깨어나 긁는다 꼭짓점을 버린 자리가 덧나고 있었다 가려움이 잦아들고 손톱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이슬이 맺히면 얼음으로 확확 대는 살갗을 달래 본다 발가락이 자라고 있었다 가려움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닐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어야만 하는 원 위를 걷다 보면 끝없는 고통을 지닌 몸을 만난다 다시 발톱을 기르고 발가락을 내밀어 꼭짓점을 찾으리라 나는 옆으로 가고 싶은 옆으로 긴 사각형이었다고 혹은 위로 팽창하고 싶은 위로 긴 사각형이었다고

나는 둥근 원이다
매 순간 탈옥을 꿈꾸지만 잃어버린
꼭짓점을 찾을 수 없어
돌고 또 돌다 지쳐 쓰러지는

나는 네모난 심장을 가진 둥근 원이다




달의 뒷면


달이 사라졌다

흔적을 찾아
달이 태어난 바다에 왔다
처음 달이 생겼을 때 지구와의 거리는
서울과 뉴욕을 왕복하는 거리였다지
너무 가깝게 서로를 끌어당겨
다리를 놓아도 될 정도였다는데
어깨가 앞으로 굽도록
수십억 년 동안 지구만 궁금하던 달이,
얼굴을 마주 보고 한 발자국 내딛으면
흰 옷자락을 서둘러 여미며
나만 따라오던 달이,
윤무輪舞의 끈을 자르고
목성의 환한 고리를 붙잡고 떠났다
마주 보는 것들은 뒤를 놓치기 쉽지
푸른 팔을 잘라 주어도 소용이 없네
어느 먼 은하에서 달이 걸음을 내딛는가
바다가 하얗게 울컥인다
밀물과 썰물의 형식으로 흔들리는 바다
달에게 달려갔다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더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달

문득, 사라진 달의 뒷모습이 궁금하다




주담酒談


72도 되는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다
단맛이 독하게 깊다
불을 붙이니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타오른다
타오르는 것들의 얼굴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벽난로 속에서 제 몸을 사르는 장작이거나
석양과 입 맞추는 붉은 샐비어이거나
혹은 못 잊을 그리움이거나
그렇게 타 버리고 난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다
더 이상 술이 아닌 그렇다고
물도 아닌 한때는 술이었으나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산다는 건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 하나 없이
산다는 건 알콜이 사라진 술처럼
취할 수 없는 슬픈 일
화주를 마셔 본 적이 있다
데일 줄 알면서도
그 뜨거운 불을 삼켜 본 적이 있다




심해어


지금부터 나는 발광을 할 거야
가장 아름다운 날을 위해
이 깊은 바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을 버리고 하얀 뼈마디를 잘라 길을 밝혀야 하지
큰 입에 흉측한 이빨과 튀어나온 눈
살갗이 짓무르도록 문질러 본다
둥그러질 수 있다면
얼음처럼 차가운 수온에
지느러미가 찢기고 체액이 흘러내리죠
그런 것쯤 백만 년 동안 익숙한 일이에요
겨드랑이에 난 하얀 부레를 뽑아
후생에 받을 편지를 썼어요
당신이 그 편지를 들을 수 없다면
세상의 침묵이 다 이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오래된 애인의 눈물은 너무 무거워
깊은 바다로 가라앉고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아
나는 두 눈을 파 버려요
두 눈을 파서 바다에 던져요
이곳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죠
바다가 환해졌어요
아름다운 붉은 옷을 입고
나 발광하고 있어요
영원히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오후 3시, 꽃 피지 않는 배롱나무


애인과 자주 보던 흰 배롱나무 아래 오래된 애인과 다시 앉는다 한동안 얼굴이 젖어 있더니 날마다 이가 빠져 남은 이가 없다며 오늘은 말이 없다 기쁨은 기쁨으로 살기가 힘들고 슬픔도 마찬가지여서 죽고 싶다던 애인, 꿈을 꾸면 애인은 관흉국貫凶國 사람이 되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웃고 있다 철심으로 종이를 묶듯 심장과 심장에 구멍을 뚫고 서로를 꿰어 하나가 되고 싶다던, 그렇게 너덜해지고 싶다던 애인, 우리가 피웠던 꽃들을 밟고 찬란한 봄이 얼룩질 때 구멍 난 가슴을 손으로 후벼 파며 뜨겁게 울던 애인은 어디로 갔을까 꽃이 핀 자리 꽃향기는 자취도 없고 손닿는 곳마다 서걱거리는 모래가 돋아나는 오후 세 시, 꽃 피지 않는 배롱나무 뜨거운 그늘 아래,










■ 봄날, 단추를 달다 외 4편 / 백복현

봄날, 단추를 달다


저만치 굴러가는 봄
노파는 문간방에 앉아 단추를 단다
뜬구름이 기웃거리는 서까래 밑
동거하는 거미는 실을 짠다
깔고 앉았던 생각을 박차고
손마디만 한 비상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었을까
줄 하나에 매달 만한 세간살이 딱히 가져 본 적도 없다
세상으로 가는 인연도 자르지 못했다
풀려나간 실마리는 해마다 길을 풀어놓으며
차례차례 헤어져 갔다

봄날, 꼭 쥐고 있던 문고리도 떠나갔다
서너 평 바람에도 그물코 풀려나가는 고가古家에서
노파는 토막 난 생각의 단추를 단다
개평처럼 열려 있는 단추 구멍은
오십 년간 대문이 섰던 자리다
번듯한 문패이던 시절도 있었다
반쯤 열어 둔 채 외출을 하던 가을도 있었다
자목련 꽃잎 폐가의 벽돌로 지는 봄
공모의 완고한 손으로 벽을 부수는 소리에
거미줄 같은 물관은 속절없이 출렁인다
아무리 떠받쳐도 무너질 살점
몸통 떨면서도 끄나풀 놓지 못했다
등 기댔던 어금니의 흔들림 끝내
주춧돌에서 떨어져 나간 오후
낙타의 눈알처럼 발밑을 구르는 꽃잎의 날들
모래알 털어내어 단추 구멍에 끼워 준다
잘 들리지 않는 바늘귀에 잔볕을 꿰어
노파는 눈 어두운 단추로 붙어 있다




자작나무 숲에서 길을 묻다


숲 속 제지공장의 굴뚝은 땅으로 뻗었다
나무껍질이 짓는 표정은 여러 겹의 구름에 무겁고
모서리처럼 날카롭다가 곧 순한 평면이 된다
껍질 벗겨 말리는 바람이 공장을 들락거린다
적을 말이 많다며 오후는 부지런을 떨고,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치는 거라며
자판을 두드리는 맹렬 딱따구리
숲은 자작나무 책을 제본 중이다

바람의 기억이 건성으로 편집한 서술의 고리가
끊어진 구멍엔 오래 눈길이 머문다
빗물로도 지워지지 않던 이야기의 끝엔 밑줄을 긋고
몇 개의 옹이도 들여놓았다
덧난 상처의 연애는 볼드체로
바람이 다닌 길을 고백하고 있다
잠깐의 봄이 어느 슬픔의 뿌리로 올라왔는지
나뭇잎 뒤에 가려졌던 소문의 진상과
드러난 스캔들의 붉은 잎사귀를 빠짐없이 읽고 싶지만
거대한 뿌리가 어린 희망을 어떻게 그늘로 묻고 살았는지
숲의 잔혹사를 서술하는 일은
늘 잔뿌리에 미치지 못한다

자작자작 숲의 그늘을 안고 눈이 온다
자작나무 목피에 재가 날린다
쓰고 읽히고 다시 태운 재가
하얗게 길을 묻고 있다




화톳불


한차례 기온이 오르자 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배웅할 눈과 고집스런 결빙 사이에서 전선戰線이 형성되었다
다 걷지 못한 두 발과 수의壽衣의 경계선도
이월의 눈에 밀리면서 영토를 잃는 중이다

마른 불길이 흰 시신의 면적을 완강히 밀어내는 시간
굳이 발버둥 칠 두 발은 멈추어 섰고
딱히 돌아볼 연고도 없다
모자라는 산수로 세상을 읽지 못하고
어리둥절 살다간 살덩이가 지키던 전선戰線엔
이월의 비가 내리고
흰 눈 제 살 내어 주는 오후,
영정도 없이 줄을 섰던
무연고 시신은 불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타고남은 재가 닿을 해안선이
그의 마지막 경계일까
땅속에 묻힌 연고의 탯줄도 있었다
하루씩 밀리며 모든 줄을 놓치고
용미리까지 왔다

애초부터 실금에 섰던
무연고의 신발이 놓고 간 오후가 꾸벅꾸벅
저물어 가는 화장터에
혼자라서 더 추웠을 뼈다귀 몇 개
멀찍이 화톳불을 쬐고 있다




덕릉로 123번 마을


바람이 적고 싶던 마을이 통째로 자판 속에 들어온다. 구름은 지붕 사이로 길을 만들고 그늘을 색칠하고 있다. 지도 속 지붕을 지그시 눌러 덕릉로 123번 안마당을 검색한다. 숫자와 자음과 모음 사이로 좁은 길이 보인다. 그 길가에 풍금 소리 울리는 저녁이면 노을은 담벽에 물들고 전깃줄은 군청 빛 밑그림 위에 아이들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노을의 손에 들린 저녁 붓이 호박 전구에 주홍빛을 입히는 소리, 어른들은 오래된 기침을 뱉어 내며 저녁과 밤 사이를 드나드는 사이, 지도 속에서 철거될 절박한 햇빛 몇 줌 비켜서면서 덕릉로 마을 길엔 저녁이 들어선다. 동전 같은 머리가 드나들던 문설주마저 라디오의 잡음처럼 잦아지고 호박잎 잠자코 문고리를 흔들어 달에서 가장 먼 동네를 깨운다. 알파벳을 만질 때면 손가락 밑에서 깎이던 마을 담벼락, 손톱이 아프도록 쳐 본 덕릉로 123번지. 아라비아 숫자는 지도 속 문패에서 지워지고, 스무 시간의 비행 끝에 활주로를 찾은 내 멀미가 간신히 자판을 향해 바퀴를 내린다. 석양의 착륙이다.




봄밤


세탁기가 초저녁을 돌리는 동안
새들 날개도 꽃그늘 속에서 돌아간다
잘 익혀진 바람이 창문을 기웃거리는 부엌의 시간
뭉쳐 있던 꽃물이
세탁기 날개를 타고
하얀 소창에서 풀리어 간다

그녀는 검은 창틀에 저녁을 세워 놓고
봄의 머리카락을 빗질한다
하루의 지문을 한 올 한 올 들추어낸다
지문 속 고기압과 저기압은
오늘도 팽팽한 줄을 놓지 않는다
어느 쪽을 잘라야 하는 걸까
겨울처럼 무딘 가윗날이
저녁의 바깥쪽을 가위질하기 시작한다

개짐의 핏물이 번지는 안뜰은
회전의 날갯소리에 어지럽기만 하다
빨랫줄을 타고 출처 없는 비밀이 뭉턱뭉턱
봄밤으로 흘러간다
건조기 속에서 돌아가는 잠꼬대도
잘 마른 입술을 타고 뜨락으로 풀리어 가는 밤
가위질한 저녁 모아 거울 앞에 세운다
단발한 봄밤, 풍문의 손톱으로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제4회 문예바다신인상 시 부문 심사평 / 속으로 뭔가 켕기는 것이 있었지만

논술 시험의 채점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은 익히 알려진 바다. 답안지의 물적 상태와 형식에 따라, 채점자의 심리와 컨디션에 따라, 채점하는 시공간의 상황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여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똑같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글씨를 잘 쓴 답안지와 그렇지 못한 답안지, 피로가 누적된 채점자와 그렇지 않은 채점자, 뫼르소의 법정처럼 후텁지근한 실내와 우주선처럼 고요하고 쾌적한 환경이 반드시 같은 점수를 받거나 주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내가 아는 로스쿨 교수는 글씨를 못 써서 사법고시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비효과처럼, 혹은 필립스의 슬로건처럼, 그 작은 차이가 한 수험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혹한 개연성은,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종종 무시된다. 엄중해야 할 재판도 마찬가지지만 필라멘트처럼 예민한 시 작품의 심사에도 어김이 없다. 어쩌면 그곳은 취향의 세계인 만큼 부대 상황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는 이 모든 차이를 상쇄시키거나 뭉개 버릴 수 있는 ‘전문가’ 개념도 있고 나름대로는 합리적이라고 구축된 ‘시스템’ 장치도 있다. 그 때문에 실제론 그렇지 않으면서도 겉으론 공정한 척 세상은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문예바다』 시 부문의 심사위원들은 ‘전문가’라 말하기 부끄러우며 심사 ‘시스템’ 또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장치라 장담할 수 없다. 시 심사 자체가 근본적으로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서 그저 인간적이고 시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심사평의 서두가 긴 것은 할 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속으로 뭔가 켕기는 것이 있어서이다. 그 고백을 좀 해야겠다.

투고 작품은 많지 않았다. 아니, 적었다고 해야 옳겠다. 그런데 놀랍고 고민스런 일이 벌어졌다. 투고작의 수준이 만만치 않아 어떤 작품을 뽑아야 할지 선뜻 결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섯 분의 시가 심사자들의 손때를 탔다. 밀었다 당겼다를 반복했다. 행복한 고민이었으되 사실 괴롭기도 했다. 결국 그날 결정을 못 하고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거기선 3명을 뽑자는 파격을 범했다. 무리라는 걸 알았기에 발행인까지 직접 초청하여 확답도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원만하지 않았다. 의견과 ‘취향’이 달랐고 앞서 말한 ‘부대 상황’의 변수도 있었던 까닭이다. 며칠이 지난 뒤 우리는, 결국 2명의 시인을 출항시키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용단이었다.

이윤숙의 시는 연륜에서 묻어나는 힘이 있어 좋았다. 심지도 단단해 보여서 든든했다. 하지만 그게 거꾸로 약점으로 지적됐다. 시에서는 삶의 지혜가 독이 될 수도 있다. 알아도 모른 체해야 하고, 또 그래야만 끝까지 파고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윤인숙의 작품은 위험해서 매력적이었다. 시인의 자질이 충분했고 가능성도 두텁게 느껴졌다. 활달한 상상력은 완성도 따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지만 굳이 고르자니 그게 또 흠이 되었다. 마음의 그림자를 지독하게 들여다보면 좋은 시인으로 태어나리라 믿는다. 이선유의 시는 브룩스의 ‘잘 빚어진 항아리’에 가장 가까웠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고, 시선도 깊고 체온도 따뜻했으나, 군데군데 상투적 표현에 쉽게 타협하고 만 것이 아쉬웠다. 「사막의 저녁」처럼 마음의 날을 좀 더 견결하게 벼려 주면 좋겠다.

류승희의 시는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복원하는 솜씨가 뛰어났다. 게다가 그걸 끝내 말하지 않는 시적 능청과 긴장을 부릴 줄도 알았다. 버린 “꼭짓점”, 사라진 “달”, 피지 않은 “꽃”, 삼켰던 “뜨거운 불” 등이 시인이 끝까지 지켜 내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데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멀리 캐나다에서 원고를 보내 준 백복현의 시법은 한눈에 돋보여서 반가웠다. 그의 시에는 ‘독학’의 자세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자재하게 내지르는 맛도 좋았다. 시적 은유의 힘이 풀어진 작품이 더러 있었으나 보험을 여럿 들어 두어서 문제될 것이 없었다. 기쁜 마음으로 류승희, 백복현(가나다순) 두 분의 시인됨을 축하드린다. 거칠고 멋진 항해가 되기를 바란다.

* 2016년 상반기 문예바다신인상 동시 부문에는 당선작이 없습니다.

심사위원 안영희 ‧ 김점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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