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및 등단작-------―
2015년 시와사상 신인상 당선작품/ 임헤라 시인
시산맥
작성시간2017.01.17 조회수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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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평선
임헤라
그대 머리카락 같은
가녀린 그림자의 경계 너머
바다는 더욱 분노했네
마스트에 기대서서 우러러보는 하늘이
그대 허리에 맞닿아 있네
온통 부식한 조개껍데기처럼
바다가 엎드려 잠이 들 때
조금씩 빛나면서
새하얀 거품을 자아내는 바다
이랑마다 그윽한 싸리구름 뿜어내며
그대에게로 다소곳이 밀려가네
그대의 아득한 그리움
바다는 끝없는 여정이었네
무량한 지중해의 파도가
육중하게 소용돌이치고
환한 물결은 미소 짓는 얼굴로 휘몰아치며
그대는 또 다른 세상으로 흔들렸네
편안한 먼 나라로 이어주는
그대의 발치에서는
지금 비 내리고 바람 불까
그대 베일에 가린
허공 저편
광활한 원생대의 바다가
거대한 꿈 하나 품고 있네.
2. 워터 후론트 1.
임헤라
어깨 넓은 항해사들의
이두박근 팔뚝에서는
눈부신 사이프러스 호 수은등이
잘게 부서져 내린다
키 큰 골리앗이 자아내는 그늘은
사방 이십사만 제곱미터의
활로겐 불빛 아래서
힘없이 무너지고
푸른 물살을 헤쳐가는
상현달 하나가 은은히
파도를 휘저으며 다가선다
현란하게 솟구쳐 오르다
다시 숨죽이는 물보라 사이로
휘어졌던 해안이 꿈틀거리며
커다란 원을 그리고
컨테이너를 적재하는 화물선이
유유히 독크를 빠져나간다
세찬 파도는 가쁜 숨결로
방파제 앞에서 쓰러진다
튀어 오르는 새하얀 눈알들이
바다 가장자리에서 허우적대다 죽는다
상체를 벗어던진 수부들의 배꼽
언저리에서는
저 존경스러웠던 바이킹의
검은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3. 워터 후론트 2.
임헤라
쓰시마 해류가 난무하는
규슈 북서부
깊이 일천 킬로미터의 수심에서
장엄한 무지개가 떠오른다
일곱 빛깔 현란한 파노라마는
바닷속 독가시치의 눈알을
섬광처럼 일렁거리고
방금 떠난 라스팔마스 호의 뒷덜미를
끝없이 추적해 간다
폭 육십사 킬로미터의
구로시류 해류의 지류에서는
이따금 남극의 오로라가 피어오르고
때로 도선사 명부도 없이
독크를 횡행하는
벤자민 프랑클린 호의 아득한 마스트에서
구명정을 매단 굉음이
항구의 물류허브를 지나간다
구슬픈 겐가이 국정공원 해안선이
힘없이 철제 선착장에 내려앉고
봄을 잃은 벚꽃들이
해협 들머리에서 하르르 떨어진다.
4. 초경의 바다
임헤라
아침노을이 흘리는 바다
그 중심에서 휘몰아치는
여정의 깃발
너는 선홍빛으로 수줍어했다
먼 물결 자락 끝머리
네 지순한 욕망이 밀려들면
해안선은 온전히 눈을 감았다
돌아오는 시선들은 기울어지고
너는 연분홍 물항라 한 폭으로
전마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네 다소곳한 뱃머리의 유두는
여린 해풍에도 파르르 떨리고
숨져가는 꽃잎
살포시 눈 떠
잔잔한 물살을 어루만졌다
드넓은 네 심장은
끊임없이 핏빛으로 질척거리고
안갯속의
먼 뱃고동소리
눈부신 동백꽃의 혓바닥에서 날름거렸다.
5. 포도밭에서
임헤라
보랏빛 그늘 사이
알알이 보랏빛 진주가 맺히면
아내는 전신이 포도송이로 번지고
포도 넝쿨의 맨 끝에서
튼실한 눈알을 번쩍였다
몇 차례의 여름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말없이 예쁜 아기 대신
끊임없이 포도알을 잉태했다
경매장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포도밭의 설화는
어느 불타는 중복의 한 귀퉁이에서
드디어 굵고 알찬 포도를 길러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앉아
아내는 물결치는 포도송이로 영글었다
포도와인 잔을 기울이며
생의 두터운 물살을 일렁이는 동안
끝없이 다가오는 평원을 응시하며
사막보다 더욱 뜨거운
물결을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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