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소설 추천*감상

[퍼옴]래픽님의 탐그루 비평

작성자波瀾君|작성시간02.12.01|조회수174 목록 댓글 0

세상을 통해 세상 바라보기 - 탐그루(김상현)



글을 시작하며


약속된(?) 감상글일지도 모르겠다. 자그마치 열 두권이나 되는 탐그루를 공짜로(?)받으며 (그것도 작가에게!) 약속해 줄 수 있는 것은 간단한 감상문을 써 주겠다는 것 뿐이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또한 친구로서 김상현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꼭 공짜로 뭐 얻어먹을때만 감사하긴 하지만) 졸문을 시작하겠다.

당연하겠지만, 이 감상문은 친구가 아니라 독자의 시점에서쓰여졌고, 필자의 개인감정이 충분히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독자와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노파심삼아 밝혀둔다.


'소설가'가 환타지를 쓴다면


완숙하다. 탐그루를 접하면서 나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독자들이 이러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 것은 분명 소설가의 글이며, 프로의 글이며, 작가의 글이다. 정말 "만화책 두어권 보고 쓰기 시작한" 치기 어린 글이 아니고, 수업시간에 심심풀이 삼아 연습장에 끄적여 보기 시작한 글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글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글을 쓰고 환타지 소설을 쓰지만, 대부분 젊고 어린 작가들, 그 대부분이 아마츄어로 이루어져 있는 국내 환타지 작가들은 스토리텔러로서의 경험과 지식, 재능은 충분하지만 체계적 글쓰기 연습이 부족했기에 문체와 진행에서 불안을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대표작>이 곧 <데뷔작>이기 때문에 그 장편 안에서 계속해서 글을 쓰는 태도가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문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탐그루는 그렇지 않았다. 문체 하나, 묘사 하나를 가지고도 작가는 고민하며, 스토리 텔링에서 끝나지 않도록, 글이 '작품'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작가는 몸부림친다. '재미'라는 함정에 빠져 많은 환타지 작가들이 간과하고 있는것, 환타지이기 이전에 소설이라는 것을 탐그루는 알고 있다. 아마도 이미 문단에 있는 기존 소설가들과 프로가 환타지를 쓴다면 이런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탐그루는 뛰어난 문체와 완성도를 가진 소설이다. 이것이 탐그루의 최대 강점이며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점이라고 하겠다.


몽환 속에서의 현실 찾기


탐그루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절로 넘기겠다. 그러나 이 말은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하겠다. 어쩌면 "수르카와 라이짐의 모험이야기"에서 끝날 수도 있었던 (어쩌면 흔한 '로망'중 하나가 될 뻔한) 탐그루의 생명력은 작가의 실험적 태도때문에 의미를 부여받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참으로 많은 상징과 메타포가 탐그루 안에 있다. 이것은 '환타지'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탐그루였기에 정말 중요시된다.

예를 들어보자. 그렇게도 욕을 먹었던 탐그루의 '헌다이' '세스타'의 '자이벌'이 무엇을 뜻하는지 독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테이르'라는 캐릭터에 와서는 상징을 넘어 구체성까지 가지고 있다. 남미 환상문학의 문호인 보르헤스의 '틀뢴'은 아예 탐그루의 맵 안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홀리우드, 실리포니아 등의 상징된 도시 이름들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작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이벌' 가문의 딸인 스칼렛이 '뱀파이어'로 묘사되는 것은 유머러스까지 하다. 물론 스칼렛이 소설 안에서 실제로 서민들의 피를 빨지(?)는 않으나, 자이벌을 흡혈귀로 환타지 안에 자리잡게 하려했던 작가의 생각은 의미를 넘어서 시도 자체가 돋보이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왜 중요한가? 환타지가 갖는 최대 맹점중 하나는 현실일탈과 외면, 참여의식의 부족이기 때문이다.

환타지는 몽환적이며,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톨킨의 반지군주가 파시즘에 대항한 지식인들의 반발이라고 논의되었다는 것 등은 그 평가 자체로 많은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접어두기로 하자. 물론 단어 자체가 소설 안에 언급되었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참여라고 평가하는 것은 비약이겠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기에 그저 신기하게만 보기 마련인" 환타지에 참여의 이미지를 부여했다는 것 자체가 일단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부연하겠다) 현실적인 문제가 환타지에서 논의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만, 환타지 안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고, 실제로 시도해 보았다는 것도 탐그루의 새로운 점이다. (이야기 하는것 조차 없는 글들도 많은데) 인간, 시간. 이상과 선악의 존재 등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들고 나왔던 국내 환타지들과는 차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환타지에서의 현실반영이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이다. (어설픈 반영은 역시 어설픈 은유로 끝나고,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할 것이다.) 탐그루에서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중투영 - 상징에 의한 상징


탐그루는 조금은 사이버 펑크적 냄새가 나는 '비류'의 세계와, 세헤라자드가 이야기하는 '수르카와 라이짐'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어느 것도 '현실'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탐그루의 세계로 비류의 세계를 상징하고, 다시 비류의 세계가 현실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탐그루를 현실과 연계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이중투영의 단계를 독자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듯이 여러 장치들을 소설 안에 포함 시키고 있다.

예를들어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비류의 세계에는 '용'이 나오며, 탐그루에도 '용'이 있다. 또한 비류의 세계에는 어스넷 생명체의 수가 임계점에 도달하며 예측되는 차원융화의 멸망이 있고, 탐그루에는 마칸의 강림이 있다. 탐그루의 세계는 이미 세계에 힘을 뻗고 멸망의 길을 가리키고 있는 성황청이 있고, 새로운 멸망의 이미지인 아케르가 있으며, 그와 똑같이 비류의 세계에는 MS와 이나바머가 있다. 비류의 세계에는 인간과 다른 종족이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헤라자드라는 존재가 있고, 탐그루에는 아자닌과 에질리라는 정령의 존재가 있다. (이 두 존재가 차원의 만나는 지점에서 육체를 갖는다는 것은 조금은 지나친 비유였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비교적 현실과 가깝기에 상징이 어색하지 않은 비류의 세계를 창조하고, 다시 비류의 세계에 있는 것들을 탐그루에 옮김으로서, 탐그루에서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장치를 해 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환타지에서는 시도되기 어려웠던 현실 참여라는 큰 숙제는 해결될 토대가 마련 되었다.

물론 이 와중에 단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가의 생각을 알아주기 바라는 듯이 너무 많은 장치를 해 놓아서,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또한 탐그루의 단점중 하나다. 예를들어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탐그루 후반부의 '커다란 깃발을 들고 밥을 쫓는 남자'는 아마도 다른 세계로 가게 된 사빈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였으리라 판단되는데, 이러한 탐그루와 비류의 세계가 지나치게 상호침투의 관계를 갖는 부분이 몇군데 보인다. 작가의 의도는 이해하겠지만,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에 대한 가능성을 일단 침해한 점이 보이기 때문에 단점으로 꼽고 싶다.


가르치려는 작가, 반발하고픈 독자


그러나 탐그루에도 단점이 있다. 위에서 잠시 이야기했던바대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탐그루라는 세계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헌다이, 자이벌등의 문제는 물론이고 에디슨에 이제마의 학설까지 언급하며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픔을 역설한다. 그런데 그 역설은 해학의 정도를 넘어서서 독자에게 "이래도 눈치채지 못할래?"라며 윽박지르고 있다. 소설에 있어서 작가가 해야할 역할은 문제제기와 의견제시라고 생각한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 독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그루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목소리때문에 독자는 대여섯권의 책을 넘기면서 피로해진다. 마치 자유도 없는 롤플레잉 게임처럼 정해진 길만 가야 한다는 느낌을 받고 소설을 '음미하려는' 여유를 잃어버린다.

탐그루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중 하나인 이것은, 아마도 작가의 필력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시도'라는 조급함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에 작가는 분명 두번째 작품에서 '윽박지르는' 탐그루의 이미지를 벗은 작품을 분명 들고 나올것이라고 믿는다.


탐그루에는 여행이 없다.


동국대학교의 모교수는 소설입문서인 자신의 저서에서 재미, 작가, 철학이 소설이 갖추어야 하는 세가지 요소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이 모여 소설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작가가 하고 싶어 하는 말, 다루고 싶어하는 주제. 그리고 주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인철학. 그리고 문체와 성향. '작품세계'로 대표되는 작가 자신. 이 두가지가 소설의 본요리라고 생각되는 요소이다.

그러나 그 교수는 그들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재미'를 꼽는다. 책은 상품이며, 소설은 어떠한 다른 서적보다도 가장 많은 상품성을 갖는다. (학술서는 분명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타겟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일단 책이 재미있어야 독자는 책을 집으며, 독자에게 읽혀야 작가가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인데, 이것은 바로 필자가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탐그루는 다른 유명한 환타지 소설보다 '재미'라는 점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루한 이야기구조에 있다. 작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작가는 초반에 등장하는 '소드앤 매직 온라인'의 이야기가 본편인 탐그루보다 인기가 있었다는 점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건 그러나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탐그루'는 재미가 없는가?

탐그루에는 여행이 없다. 갈림길에서의 고뇌가 없이 정해진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뿐이다. 지도상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을 전부 가야 한다는 듯이 주인공들은 탐그루를 떠나서 로스안, 실리포니아, 틀뢴, 하잔, 임프, 홀리우드등을 걸어다닌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개연성에 대해서 작가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지만, 그래서 독자는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선택에 의한 필연성은 없어졌다. 그럼 왜 '소드앤 매직 온라인'은 재미있는가?

초반에 여러국가들과 싸움을 벌이는곳까지는 똑같다. 그러나 네버밍크의 공격은 비류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그와의 외교가 교섭되지 않는다면 비류의 국가는 멸망할 것이라는 긴장감이 감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독자들이 급히 뒷장을 넘길때 작가는 세헤라자드를 등장시켜 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이 소드앤 매직 온라인이 나왔던 부분의 어트랙션이며 즐거움이다. 후에 밥과의 게임을 할때에도, 독자들은 적당히 그들의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밥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 올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답은 하늘에서 내려온 군세였지만, 어쨌든 독자들을 궁금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예컨대 탐그루에는 독자를 숨가쁘게 몰아붙이는 그런 스토리텔링이 없다는 것이다. 문학적 가치를 논할 정도의 수작인 탐그루가 고전적 '명작'의 대열에 끼기 위해 부족한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스토리텔링이라는 소설의 뼈대이다.


글을 마치며


탐그루는 분명 한국 환타지에 한 획을 충분히 그은 수작이라고 평가한다. 탐그루라는 새로운 세상을 통해서 우리의 세상을 읽기, 탐그루가 가지고 있는 실험성은 분명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충실한 문체와 완숙한 표현, 충분한 문학적 교양을 갖춘 작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되는 일이다. 그러나 환타지는 현재까지 키치, 주변문학 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때 '재미'라는 면에서의 탐그루가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충실한 스토리텔링을 기획하고 조금 낮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면, 분명 두번째 작품은 탐그루를 뛰어넘고 남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건필을 기원하며 졸문을 마친다.



글쓴이: 이상균(street@hitel.net) http://syrinx.pe.kr

퍼온 이의 덧
아시다시피 래픽님은 명저 하얀 로냐프강의 스토리텔러(스스로 이렇게 부르시죠)이십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독자를 가르치려 하는 책이란 말이 눈길을 끄네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