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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月印釋譜)>
1459년(세조 5) 세조가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설명 부분으로 하여 합편한 불경(佛經)이다. 목판본이다.
세조를 도와 이 책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은 신미(信眉)·수미(守眉)·홍준(弘濬)·학열(學悅)·학조(學祖)·김수온(金守溫) 등이다.
<석보상절>로 미루어 모두 24권으로 추정되지만, 지금 전하고 있는 것은 중간본까지 합쳐도 완질(完帙)이 되지 못한다.
편찬 동기는 ‘위로 부모 선가(仙駕)를 위하고 아울러 망아(亡兒)를 위하는 일’(월인석보서)이라고 하지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 죽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 등의 많은 신하들을 죽인 뒤 겪는 고통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수양대군((世祖, 1417년 9월 29일~1468년 9월 8일, 세조 재위 1455년~1468년)이 등극하기 전후의 엄청난 비극적인 사건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계유정난(癸酉靖難)(1453, 단종 1년 10월)으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여 왕권 접수의 발판을 삼고, 단종 3년 윤6월(1455)에 즉위하며, 이듬해(1456) 6월에 사육신(死六臣)의 처결 및 단종의 영월 유배, 동 10월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사사(賜死)와 급기야 단종이 자액(自縊)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나, 이 와중에 왕세자 도원군(桃源君)이 요절하는 역리지통(逆理之痛)을 겪기도 하였다.
이런 일련의 비극으로 세조의 인간적인 번민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고, 그 자신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므로 참회와 속죄의 감정 또한 말할 수 없이 더 했을 것이다.
세조는 세조 3년(1457) 9월에 도원군(桃源君)이 서거하자 그의 영가 추천을 위해 여러 경전을 묵서 또는 인출한 후에 ≪월인석보≫의 편찬 간행에 착수하였다.
세조는 이 책을 편찬하는 동안 침식을 잊고 이 일에 몰두하였으며, 세조 4년(1458) 2월 신축(辛丑)에는 정인지가 ≪월인석보≫ 간행에 대한 부당함을 언급하자 분노하여 연회를 파하기도 하였다.
세조 5년(1459) 2월에는 김수온(金守溫)과 성임(成任)이 ≪월인석보≫를 선사(繕寫)한 공로로 승진하였으며, 동년 7월에는‘어제월인석보서문(御製月印釋譜序文)’이 이루어졌다.
이 ≪월인석보≫ 권1·2의 2책은 초판 교정본이며, 1권 첫머리에‘世宗御製訓民正音(세종어제훈민정음)’이라는 표제하에 국역본 ≪훈민정음≫이 나온다.
이는 모두 15장의 내용으로 완결되고 있다. 바로 이어서 팔상도가 나오는데, 1장 양면이 1판씩 1폭을 이루고 있다.
도솔래의, 비람강생, 사문유관, 유성출가, 설산수도, 수하항마, 녹원전법, 쌍림열반의 순서인데, 쌍림열반의 1장은 잘려나가고 없다.
이어서‘御製月印釋譜序文(어제월인석보서문)'과 '御製釋譜詳節序文(어제석보상절서문)’이 제시되고, 한 장의 비석원형이 들어 있다.
이어 월인석보 권1의 본문이 52장까지 전개되고 있다.
권2는 총 77장이다. 판식은 사주쌍변, 유계, 7행 16자, 주쌍행 대흑구, 상하내향흑어미이다.
권1은 ≪석가보(釋迦譜)≫ 권1‘석가현겁초성구담연보(釋迦賢劫初姓瞿曇緣譜)’ 제2에서 발췌한 것으로, 석가 과거세의 전생담인 도솔래의에 해당한다.
권2는 '석가탄생연기(釋迦誕生緣起)' 와 ‘중국불교시전유래(中國佛敎始傳由來)’의 내용이다.
이는 석가족의 기원과 석가의 탄생담으로 비람강생 부분이며, 권2의 뒷부분에는 중국에의 불교전래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 2책은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1972에 영인되었다.
권말에는 정찬연의 ≪월인석보 제1·2(月印釋譜 第一·二)≫의 해제가 들어 있다.
御製 月印釋譜 序(어제 월인석보 서문)
진실의 근원은 空(공)하고
性智(성지)는 맑고 고요하며
부처님의 신령스러운 광명은 유독 빛나고
법신은 항상 상주하여도 색상을 능히 없이 하여
이미 生滅(생멸)이 없으니 어찌 가고 옴이 있으리요
다만 망령스러운 마음이 문득 일어나
의식이 경거망동하여 무량한 경계를 일으켜 인연을 만들고 있느니라
집착은 業報(업보)에 메이어 진실의 覺(각)은 늘 긴밤처럼 어둡고
지혜의 눈은 永劫(영겁)에 멀어六道(육도)의 윤회에서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八苦(팔고)에서 능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우리 如來(여래)님의 미묘한 眞身(진신)은
맑고 깨끗하여 항상 상적광토에 상주하시느니라
본래 無緣慈(무연자)하시나 悲願(비원)의 신통력을 나타 내시며
하늘의 염부에서 내려 오시어 正覺(정각)을 이루는 법을 보여 주셨느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름이 毗盧蔗那(비로자나)이시고
부처님께서 상주하시는 땅의 이름을 常寂光土(상적광토)라 하며
명호는 天人師(천인사)라 하며 일체지라 칭하셨느니라
큰 위엄으로 광명의 빛을 펼쳐 악마의 군사를 물리치시고三乘(삼승)을 크게 열으시여 八敎(팔교)를 널리 강연하시니 말씀마다 미묘한 뜻이며
설법하시는 구절마다 항하사 법문으로
해탈에 이르는 문을 열으시어 淸淨法海(청정법해)에 들게 하셨느니라
인간과 天人(천인)을 구제하시고
四生(사생)을 구제하시여 제도하신 공덕을 어찌다 기릴수 있으리요
天龍(천용)의 서원을 유통하시고
국왕들이 부탁하고 위촉을 받들어 옹호하여 주셨던 것이니라
옛 丙寅(병인)년에 昭憲王后(소헌왕후)께서 영양을 일직 잃어버리시고는
서러워 슬퍼하시며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을 적에 세종대왕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아이에게 명복을 빌어 주는 것은 불경을 만드는 것 보다 더 큰 공덕은 없을 것이니
너가 釋譜(석보)를 번역하여 만드는 것이 마땅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慈命(자명)을 받고서 더욱 생각이 넓어져僧祐(승우)와 道宣(도선)과 두 律師(율사)가 각각 釋譜(석보)를 만들어 놓은 것을 읽어 보았더니 간략하고 상세하지 못하기에 두 책을 아울러서釋譜詳節(석보상절)을 만들고 正音(정음)으로 번역하여
사람마다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세종대왕에게 進上(진상)하였더니
읽어 보시고 찬송하시며 月印千江之曲(월인천강지곡)이라 이름 하셨다
이제 와서 세존님을 받들게 되었으니 어찌 늦지 않으리요
근간은 가정에 재앙을 만나 맏아들이 일찍 죽고 없으니
부모의 정은 天性(천성)에 근원한지라 슬픈 마음은 오래가져 편안하지 못하였다
내가 생각하여 보니 三途(삼도)의 受苦(수고)를 열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 佛道(불도)를 버리고 어디에 의지 하리요.
轉法(전법)의 뜻을 해설한 책은 비록 많이 있으나이 月印釋譜(월인석보)를 생각하면
우리 先考(세종)님이 지으신 것이라
몇 오랜 세월이 흘러 지나도 낙엽이 지는가을이 되면 더욱 애닯고 슬퍼지노라
우러러 존경하셨던 상왕님을 추모하면서
생각하여 보면 이 일을 먼저하는 것이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일이라만 가지의 政事(정사)도 비록 많았으나 먼저 책으로 저술하는 것이 우선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어찌나 한가한 시간도 없이 寢食(침식)도 잊으면서 밤낮도 없이 연일 궁리하였느니라
위로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하고 겸하여 죽은 아들을 위하여
지혜의 구름을 타고 모두는 번뇌에서 속히 나와 곧 바로 自性(자성)을 깨달아
覺地(각지)를 證(증)하기 위하여 옛 舊卷(구권)에서 정성껏 연구하고 강론하여
잘못된 것은 고쳐서 가다듬고 첨가하여 새로 편집하여 12부의 修多羅(수다라)에서 넣고 빼고 하되같은 내용의 양구절은 버리고 가려서 취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의심 나는 곳이 있으면
반듯이 博識(박식)한 사람에게 資問(자문) 하였느니라
資問(자문)한 사람은慧覺尊者(혜각존자) 信眉(신미)와判禪宗事(판선종사) 守眉(수미)와判敎宗事(판교종사) 雪峻(설준)과衍慶寺住持(연경사주지) 弘濬(홍준)과前檜菴寺住持(전회암사주지) 曉雲(효운)과前大慈寺住持(전대자사주지) 智海(지해)와前逍遙寺住持(전소요사주지) 海招(해초)와大禪師(대선사) 斯智(사지)와 學悅(학열)과 學祖(학조)와嘉靖大夫同知中樞院事(가정대부동지중추원사) 金守溫(김수온)등이다
현묘한 근원을 탐구하여 가다듬어 놓았으니
一乘(일승)의 미묘한 뜻을 살펴 연구하고
도리를 수행하여 만법의 근원을 疏達(소달)하여 주기 바라노라
문자의 글이 經(경)이 아니며 경이 부처가 아니다
도리를 말씀하신 것이 경이며 도리로 몸 삼으신 것이 부처님인 것이니라
이 경전을 읽는 사람은
광명의 빛이 자연히 돌아와 귀하게 될것이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시기를
물고기를 잡고 나서는 그 물고기에 마음이 쏠리면
통발을 잊는다는 뜻과 목적을 이룬 뒤에 그것을 위하여 공이 있던 것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得魚忘筌(득어망전)이란 문자도 있느니라
손가락에 집념을 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달은 볼수가 없다는 뜻이 있듯이
이것을 이름하여 모두다 경문에 붙들린 병이라 하셨다
西天(서천)의 글자로 만든 경전이높이 쌓여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독송하려면
오히려 어럽게 여겨서 우리나라 글로 번역하여
널리 배포하노니 사람마다 듣고 얻어서
읽고 외워 우러러 존중하기를 앙망하노라
고로 종친과 재상과 공신과 아울러 백관과 四衆(사중)은 발원하여
전법이 썩지 않도록 바라며 본성의 덕을 무량히 심어 신의 가호로 국가는 확고히 안정되고
백성은 안락하여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어와 복이 되어 재앙은 소멸되고 廻向(회향)하여 수행의 공덕을 실제로 이루어 일체의 有情(유정:중생)은 속히 菩提(보리)의 깨달음을 얻어 저 피안의 언덕으로 속히 들기를 원하노라. 끝
天順 三年 己卯 七月 七日 首陽君 諱序<천순3년 기묘 7월 7일 수양군 휘서><세조 5년 서기 14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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