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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은정희 교수의 대승기신론 소ㆍ별기 역주본"은
"원효의 대승기신론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 6권을 활용하였다.
대승기신론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 6권은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바탕으로
1977년 해인승가학원에서 이를 영인 간행하였다.
한글대장경이나 이기영의 국역본 등은 모두 이를 활용하였다.
물론 소와 별기를 합하였지만 내용은 차이가 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ㆍ별기(1권)
은정희(殷貞姫) 역주/일지사/자료입력:도규희
* 해제解題
권 1
Ⅰ. 종체(宗體)를 나타냄
Ⅱ. 제명(題名)을 해석함
Ⅲ. 글에 따라 뜻을 나타냄
一. 귀경(歸敬)과 술의(述意)
二. 논(論)의 체(體)를 정립함
1. 인연분(因緣分)
2. 입의분(立義分)
3. 해석분(解釋分)
(1) 정의(正義)를 현시(顯示)함
① 먼저 뜻을 풀이함
A. 법장문(法章門)을 해석함
권 2
a. 진여문(眞如門)
b. 생멸문(生滅門)
가. 널리 풀이함
ㄱ) 심생멸(心生滅)
ㆍ 각의(覺義)
권 3
ㆍ 불각의(不覺義)
ㄴ) 생멸인연(生滅因緣)
권 4
ㄷ) 생멸상(生滅相)
나. 훈습론(薰習論)
ㄱ) 염법(染法) 훈습
ㄴ) 정법(淨法) 훈습
권 5
B. 의장문(義章門)을 해석함
a. 체상(體相) 이대(二大)
b. 용대(用大)
② 진여문(眞如門)에 들어감
(2) 사집(邪執)을 대치함 ① 인아견(人我見)
② 법아견(法我見)
(3) 도(道)에 발심하여 나아가는 모양을 분별함
①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② 해행발심(解行發心)
③ 증발심(證發心)
권 6
4.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1) 시문(施門) ㆍ 계문(戒門) ㆍ 인문(忍門) ㆍ 진문(進門)
(2) 지관문(止觀門)
5.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
三. 총결회향(總結廻向)
＊ 해제解題
Ⅰ. 원효의 생애(生涯)
① 出生출생
신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지 1 백여 년 만에 나타난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불교 사상가이자 사회지도자였던 원효는
신라 20대 진평왕 39년(A.D.617)에 현재의 경북 자인 면에 해당하는,
당시 押梁郡압량군 佛地村불지촌의 밤나무 밑에서 仍皮公잉피공의 손자요
薛談捺설담날의 아들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으며. 그를 낳을 때에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그의 兒名아명은 誓幢서당이며,
1915년 경주 동북방인 월성군에서 발견된 斷石破片단석파편에서도 그를 誓幢和尙서당화상이라
하였으니,
幢당 이란 俗語속어로 털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誓幢서당은 ‘새털’이라는 의미라 한다.
이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고 달이 찼을 때 집 근처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게 되어 창황 중에 남편의 털옷을 그 밤나무에 걸고 그 밑에 자리를 마련하여
아기를 낳은 데서 얻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② 修學수학
「宋高僧傳송고승전」에서는
그의 나이 10여세에 벌써 出家출가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남달리 영특하여 나중에 佛法불법의 오의(奧義)를 깨달음에 있어서는 특정한 스승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려 大覺國師대각국사 義天의천이 남긴 詩시에 의하면
원효는 義湘의상과 함께 고구려 고승으로서 백제 땅 전주 고대산(孤大山)으로 옮겨 간 晋德和尙보덕화상의 講下강하에서 열반경과 유마경 등을 배웠다고 한다.
삼국유사 낭지래운조(朗智來雲條)에는 원효가 磻高寺반고사에 있을 때
靈鷲山영취산의 朗地낭지가 그로 하여금 「初章觀文초장관문」과 「安身事心論안신사심론」을 쓰게 하였으므로,
원효가 그 글을 지어 朗地낭지에게 전달하면서 그 글 끝에 ‘西谷沙彌서곡사미 首禮수례 東岳上德高岩前동악상덕고암전......’이라 하여 자신을 사미라 낮추고 상대방인 낭지를 上德상덕으로 높이고 있으니,
이로 보아 원효가 낭지에게 師事사사하였거나 단순히 학덕 높은 老和尙노화상으로 존경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삼국유사의 택 惠公傳혜공전에는 원효가 혜공에게 問學문학 한 사실을 보이고 있다.
즉 당대의 神僧신승 혜공이 그 만년 恒沙寺항사사에 있을 때,
원효가 諸經疏제경소를 찬술하면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혜공에게 가서 질의하였다는 것이다.
이 이상의 기록이 空無공무한 상태에서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의 저술에 나타나는 인용문을 통하여 그가 불교학 전반에 걸쳐서뿐만 아니라,
논어나 노자. 장자 등 유가서와 도가서에도 정통하고 있음을 볼 때,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그의 修學經歷수학경력을 짐작할 수 있다.
③ 入唐留學試圖입당유학시도
34세에 의상과 함께 당의 玄裝현장(602-664)에게 唯識學유식학을 배우려고 요동에까지 갔다 가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 날 갇혀 있다가 겨우 놓여나와 돌아왔다.
45세에 두 번 째로 역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海路해로로 해서 入唐입당하기 위해 백제 땅이었던
항구로 가는 도중, 비 오는 밤길인지라 어느 땅 막에서 자게 되었다.
아침에 깨어 땅 막 아닌 오래된 무덤임을 알고도 부득이 또 하룻밤을 더 지내다가
귀신의 동티를 만나 心法심법을 크게 깨치게 되었다.
“곧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니 땅 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효는 더 이상 入唐입당 留學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의상 혼자 배를 타고 당으로
들어가고,
원효는 곧 바로 되돌아와 이후 저술과 대중교화에 몰두하였다.
④ 撰著찬저
오늘날 여러 문헌에 의하면, 원효의 저서는 100여종의 240여권(또는 85종의 170여권)으로 알려져 있고, 그 연구범위도 小소ㆍ大대승, 경ㆍ율ㆍ론 등 거의 모든 부문을 망라하고 있어
그야말로 초인간적인 學解학해와 저술활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그의 대표적 서술이라 할 수 있는 「大乘起信論疏대승기신론소」와 「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에서 보인 탁월한 이해와 견해는 중국의 석학들마저 찬탄과 경이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아깝게도 현존하고 있는 것은 19부 22권뿐이다. 그나마도 충분한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어서 후학들의 배전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터이다.
그의 저술 목록 중에서 가장 분량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唯識系유식계와 律學部門율학부문,
그리고 起信論기신론에 관련된 것들이며 현존하는 것 중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法華經宗要법화경종요 1권, 大慧度經宗要대혜도경종요 1권, 涅槃經宗要열반경종요 1권, 無量壽經宗要무량수경종요 1권, 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론 3권, 起信論疏기신론소 3권, 起信論別疏記기신론별소기 1권, 二障義이장의 1권, 中邊分別論疏중변분별론소 弟 2권, 華嚴經疏화엄경소 弟 3권, 十門 和諍論십문화쟁론 斷片단편,
⑤ 大衆敎化대중교화
원효는 染淨無二염정무이, 眞俗一如진속일여라는 그의 학문적 이론을 당시의 신라사회에서 대중과
함께 몸소 실행에 옮겼던 드문 실천가였다.
당시 신라사회는 圓光원광과 慈藏자장의 교화에 큰 영향을 입었으나, 불교의 수용 면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층과 일반 서민층 사이에는 아직도 괴리가 있었다.
이러한 때에 惠空혜공, 惠宿혜숙, 大安대안 등이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대중들에게 까지 불교를 일상 생활화시킴으로써 유익한 의지처가 되게 하였다.
원효 역시 이들의 뒤를 이어 당시의 승려들이 대개 성내의 대사원에서 귀족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에
반하여, 지방의 촌락, 街巷가항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無碍무애 박을 두드리고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生死생사를 벗어났도다”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 중에 佛法불법을 널리 알려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가 이처럼 서민 대중의 교화에 나선 것은 입당 포기 후 心法심법을 깨달 후이며,
요석 공주와의 失戒실계로 스스로 小姓居士소성거사라 자칭하던 때 이후로 보여 진다.
또 그가 스스로 小姓居士소성거사라 부른 것은. 실계로 인한 속죄의 한 방법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대중교화의 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대중 교화의 선구자인 혜공이 등에 삼태기를 지고 가항에서 大醉대취 歌舞가무한 것이나,
大安대안이 특이한 옷차림으로 징판에서 銅鉢동발을 치면서 “大安대안, 大安대안”을 외친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대중 교화의 행각을 마친 뒤에는 다시 소성거사 아닌 원효 화상으로 돌아가 穴寺혈사에서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神文王신문왕[A.D. 686]년 3월 30일 70세)
Ⅱ. 원효의 사상
원효는 불교사상을 연구함에 있어 어느 一宗일종, 一派일파에 구애됨이 없이
“萬法만법이 一佛乘일불승에 총섭 되어야 하는 것은 마치 大海대해 중에 일체 衆流중류가
들어가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금강삼매경론)고 하여
대ㆍ소승, 性성ㆍ相상, 頓돈ㆍ漸점의 상호대립적인 교의를 융회하여
一佛乘일불승에로 귀결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뭇 경전의 부분적인 면을 통합하여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하고, 불교의 지극히 공변된 뜻을 열어
모든 사상가들의 서로 다른 爭論쟁론들을 和會화회시킨다”(열반경종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和諍화쟁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원효의 이 화쟁 방법 내지 사상은
근원적으로는 석가 이전 인도의 베다사상(Vedism)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인도철학의 碩學석학 라다크리슈난(Radhakrishnan,S.)에 의하면 인도 원주민을 정복한
아리안(Aryans)의 종교는 처음부터 광범하고, 자기 발전적이고, 관대하여 성장해 감에 따라
그가 만나는 새로운 힘들은 자기 안으로 융화시키고, 보다 낮은 종교를 무시하거나
그 존재를 말살하기 위하여 싸우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것만이 유일하고 참된 종교라는 광신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인도인들의 사유경향이 印度佛敎인도불교에서 和화의 사상을 있게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석가는 당시 수많은 사상체계들이 서로 대립, 충돌을 일으키는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논쟁에 끼어든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논리는
진실한 실천적 인식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실하게 살아가는 길과 진실에 대한 실천적 인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했을 뿐.
베다의 권위를 배척하고 모든 형이상학적 논의를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했다.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형이상학적 주장들은
모두가 상대적이고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불교에 있어서의 和화의 의미는
이처럼 실천 원리를 중시하는 석가에서 그 싹이 나타난 셈이고,
이는 대중교화에 끈을 두어 眞俗一如진속일여를 주장한 대승 불교 후기에까지
면면히 지속된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석가 이후 1200여 년 만에 신라통일기에 나타난 원효가 실천을 중시하면서
和諍화쟁사상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은 바로 석가 이후 대승에 이르기까지의
和화의 정신의 시대적 재현 내지 재창조라 보아야 할 것이다.
원효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이 화쟁의 방법에 의하여
眞俗不二진속불이의 사상을 나타내려 한 대표적인 것으로
「대승기신론 소」「대승기신론 별기」를 들 수 있다.
「대승기신론」은 산스크리트 원본이 없는 탓으로
印度撰述인도찬술인가 中國撰述중국찬술인가가 논란되어 오기도 하지만,
대승불교시대의 후기에 나타난 불교사상서 중 가장 뛰어난 논서로 알려져 있다.
「대승기신론」은 인도에서 그 당시 대립되고 있던 양대 불교 사상,
즉 中觀派중관파 와 유가(唯識유식)파의 사상을 지양ㆍ화합시켜
眞진과 俗속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迷汚미오한 현실생활(俗속) 가운데서 깨달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행함에 의하여 완성된 인격(眞진)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며, 한편 깨달음(眞진)의 단계에 이른 사람은 아직 미오한 단계(俗속)에 있는 중생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임을 주장함으로써 진속일여의 사상을 잘 나타낸 논서이다.
원효는 이 「대승기신론」을 만나자마자 바로 자신의 구도적 학문과 삶의 자세와
너무도 일치함에 크게 감명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그는 「대승기신론」에 대하여 무려 7種종의 연구서를 냈고,
특히 그의 「대승기신론 소」「대승기신론 별기」는 일찍부터 중국의 불교학계에서까지
높이 평가되어 마지않았던 것이다.
「대승기신론」(이하 기신론이라 칭함)에 대한 연구로는 일찍부터
慧遠혜원, 元曉원효, 法藏법장의 주석서를 三大疏삼대소로 지칭하고 있으나 혜원의 것은
僞撰위찬이라는 說설과 함께 質질로나 量양으로 보아 원효의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법장의 것은 원효의 것을 그 分料분과와 語句解釋어구해석에 있어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원효의 「기신론 소」「기신론 별기」야말로 최고의 기신론 연구서라 할 수 있다.
기신론 본문의 구조와 내용
원효의 기신론관을 논하기 전에 먼저 기신론 본문의 구조와 내용을 소개하기로 하자.
기신론은 因緣分인연분, 立義分입의분, 解釋分해석분, 修行信心分수행심신분, 勸修利益分권수이익분 등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因緣分인연분에서는 이 논을 짓게 된 이유를 말하였고,
立義分입의분에서는 이 논의 대의, 즉 一心일심, 二門이문, 三大삼대를 제시하였다.
解釋分해석분은 앞서의 입의분에서 제시한 一心일심, 二門이문을 구체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기신론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다시 顯示正義현시정의, 對治邪執대치사집, 分別發趣相분별발취상의
셋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正義정의를 드러냄에 있어서
一心일심(衆生心중생심)을 心眞如門심진여문 과 心生滅門심생멸문의 둘로 크게 구분하였다.
심진여문에서는 如實空여실공, 如實不空여실불공 등을 말하여 마음의 청정한 면을 묘사하였으며,
심생멸문에서는 阿黎耶識아라야식의 覺각과 不覺불각의 二義이의와 薰習훈습 등을 말하여
마음의 염정연기를 밝혔다.
다음으로 邪執사집을 對治대치함에 있어, 人인ㆍ法법 二執이집의 대치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發心 修行발심수행하여 道도에 나아감을 분별하는 상에서는
앞서의 해석분 중의 발취도상이 不定聚衆生부정취중생 중의 勝人승인을 위한
설명임에 비하여 여기서는 부정취중생 중의 劣人열인을 위하여
四信사신, 五行오행 및 他力念佛타력염불을 설한다.
마지막 권수이익분에서는 이 논을 믿고 닦으면 막대한 이익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였다.
이상의 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제 원효의 기신론관에서 특징적인 것 몇 가지를 들고자 한다.
첫째, 원효는 그의 「기신론 소」「기신론 별기」에서
기신론의 성격을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의 止揚지양ㆍ總合총합이라고 판석한다.
즉 「기신론」은 마음의 청정한 면만을 주로 찬탄하고 강조해 온 중관사상과
마음의 염오한 면을 주로 밝혀 온 유가사상을 잘 조화시켜
진속불이의 뜻을 밝힌 것이라 본 것이다.
이는 「기신론」이 一心일심을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의 둘로 크게 나눈 후,
심진여문에서는 마음의 청정한 면을 묘사하고
심생멸문에서는 마음의 염정연기를 밝히고 있는 데서 매우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원효의 이러한 해석은 「기신론」출현의 시기에 인도 불교사상계에서
중관파와 유가파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도 부응하는 것이다.
원효를 거의 그대로 답습한 법장은 이 점에 있어서는 견해를 달리하여 「기신론」을
如來藏緣起宗여래장연기종 이라 판석하였다. 원래 여래장 사상은 중국 화엄종의 선구인
地論宗지륜종 南道派남도파들에 의하여 성하게 연구되어 왔던 것으로, 화엄종의 제 3조인 법장설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여 「기신론」을 여래장연기종설로만 알고 있고,
심지어는 법장설에서 일보 나아가 여래장 연기종파가 역사상 실재했다고까지
주장하는 학자(勝又 敎)도 있다.
그러나 漢字한자를 모르는 인도의 불교학자나 歐美구미의 학자들은 여래장 연기종이라는
이름조차 모르며(高崎直道), 또 일부 일본 학자 중에는 중국화엄가들의 「기신론」이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柏木弘雄)
勝又 등 일본 학자들의 여래장 연기종설은 재론 할 가치도 없거니와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우리의 미망한 마음,
즉 무명이 본래의 청정한 즉 진여를 훈습하여 불각심이 처음으로 일어난 無明業相무명업상,
이 무명업상 즉 극미한 動念동념에 의하여 所緣境相소연경상을 볼 수 있게 되는 轉相전상,
그리고 이 전상에 의하여 경계를 나타내는 現相현상 등 세 가지 미세한 마음,
곧 三細識삼세식이 아라야식位위에 해당된다고 주장하였다.
원효의 이 三細삼세ㆍ아라야식설은 〔기신론〕본문에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주의깊게 정독한다면 〔기신론〕 자체의 논술에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법장에 의하여 그대로 답습되었고
그 뒤 일본학자들이 이에 대하여 찬ㆍ반의 두 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는 터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원효
원효는 「기신론」의 기본구조인 一心二門일심이문에서
먼저 二門이문 중 心眞如門심진여문을 중관학파의 주장으로,
心生滅門심생멸문을 유가학파의 주장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 二門이문이 一心일심으로 귀결하는 데서 「기신론」의 성격을 중관ㆍ유식의 지양ㆍ조화 내지
眞진ㆍ俗속을 別體별체로 보려는 고집을 꺾는 것이라 단정한 것 같다.
다음, 「기신론」에 심생멸문내에서 자성청정한 여래장의 불생멸심이 생멸심과 화합하여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非一非異비일비이) 아라야식이 존재하게 되며,
따라서 이 아라야식에는 覺義각의 와 不覺義불각의의 二義이의가 있게 된다고 한 것에서
원효는 아라야식의 二義性이의성을 앞서 일심이문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원효가 이러한 二義이의의 和合識화합식으로서의 아라야식에 三細삼세라는 미세한 마음을
배대한 것은 唯識家유식가에서의 아라야식이 막연한 潛在心잠재심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에 비하여
「기신론」의 아라야식은 세 가지의 미세한 마음으로 구체화되었음을 밝혀 놓은 것이다.
또 유식가의 아라야식은 異熟識이숙식으로서 輪廻윤회의 주체일 뿐,
깨달음의 淨法정법을 낼 수 없는 생멸식일 뿐이지만,
「기신론」의 아라야식은 和合識화합식으로서 그 중의 不覺불각 즉 생멸분인
業相업상, 轉相전상, 現相현상이 除滅제멸되면 바로 그 자리가 불생멸분 즉 자성청정심이 되어
각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원효가 삼세라고 하는 還滅환멸의 구체적 단계를 제시한 것은
心源심원 즉 깨달음의 경지로 還滅환멸해 가는 수행면에 있어
보다 실천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이 三細삼세ㆍ아라야식설은 중관ㆍ유식학파의 양대 주장의 조화라는
「기신론」의 성격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셋째, 원효는 아라야식의 覺義각의에 의하여 자성청정한 각의 상태로
환멸한 후의 本覺본각의 성격 즉 智淨相지정상과 不思議業相부사의업상에 대하여
自利자리와 利他이타의 두 가지 면으로 배대시킴으로써
심원에 도달한 각자는 깨달은 상태(自利)에 안주하지 말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 노력해야함(利他)을 역설한다.
이것은 俗속 가운데서 眞진으로 향해 가는 길(上求菩提상구보리)을 명시했던
앞서의 三細삼세ㆍ아라야식설에 비하여 이제 眞진으로부터 俗속으로 돌아와
중생과 더불어 호흡을 같이함을 의미하는 것이니 바로 下化衆生하화중생이다.
그의 이러한 自利자리ㆍ利他이타의 兼修겸수 즉 眞俗不二진속불이의 사상은 그의 力著역저이며,
「기신론」의 이론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저〔金剛三昧經論금강삼매경〕의 全篇전편에서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不住涅槃부주열반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원효가 「기신론 소」와 「기신론 별기」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眞俗一如진속일여, 不住涅槃부주열반의 사상이었으니,
이는 出世間的출세간적 自利자리만이 불교의 진의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깨달음의 세계를 이룩해야 한다(利他이타)는
대승불교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또 그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彌陀淨土說미타정토설과 〔十念論십념론〕등을 통하여
일반 대중들이 보다 쉽게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려 하였고,
종국에는 집필의 붓을 꺾고 下化衆生하화중생을 위한 실천의 길로 뛰어들었다.
이에서 이론 면에서나 실천면에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정신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구현한 한국의 뛰어난 구도자 원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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