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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신앙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과연 불자들이 부처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한국불교 특성상 부처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한 탓에 상식적인 것 밖에 모르고 있으며, 진정코 부처님에 대한 생애와 가르침 그리고 업적 등에 대하여 너무나도 무관심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불자로서 확실한 신념도 없고 불교에 대한 확신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교리를 열심히 공부하여야겠습니다. 풍요와 가난, 전쟁과 테러 그리고 온갖 신들로 가득찬 혼탁한 이 시대에 부처님은 우리에게 왜 더 다가오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근본을 알아야 대승불교든 선불교든 밀교든 여러가지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며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명 칭 부처님이 태어나고 정각을 이루기 전까지의 어릴때 이름은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이다. 싯다르타는 이름이고 고타마는 성씨(姓氏)이다. 싯다르타란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길재(吉財) 길상(吉祥) 일체공덕취(一切功德成就),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실달타또는 수달다(悉達多,喬達摩)는 싯다르타의 한문(漢文) 음사(音寫)이다. 고타마는 석가족(Shakya clan) 조상의 성씨(姓氏)이다. 구담(瞿曇)은 고타마(Gautama)를 한문 음사한 것이다. Siddhārtha Gautama는 산스크리티(Sanskrit)어 이며, Siddhattha Gotama는 팔리(Pali)어 이다. 석가(釋迦)는 석가의 씨족인 샤카족(Shakya clan)의 한문 음사 이다.
보드가야에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룬 후에는 붓다(Buddha;산스크리티어)라 불리며, 샤카무니(Śākyamuni 또는 Shakyamuni;산스크리티어) 또는 사카무니(Sakyamuni;팔리어)로 불리기도 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음사이며 그 뜻은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석존(釋尊)은 석가모니의 약칭이다. 불타(佛陀)는 붓다의 음사이며 약칭하여 불(佛)이라 한다. 세존(世尊)이라 불리기도 한다. 부처는 산스크리티어 붓다의 중국어인 불체(佛體)를 음역으로 한국만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부처 이외의 명칭으로 세존, 석존, 불, 여래 등의 존칭으로 불려진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붓다(Buddha)란 명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방불교나 서양에서는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란 명칭으로 쓴다.
생 애(기원전 624-544) 부처님의 생애를 다 말하기란 너무 방대한 것이기에 간추려 본 것이다. 부처님의 생애를 접해 본다는 것은 직접 친견한다는 마음과 신심으로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라며 이 무상한 인연공덕으로 무량한 복락이 이룩 될 것입니다. 붓다의 출생연도가 여러가지 학설이 있듯이 탄생연도가 불확실하다. 20세기 초에 역사가들이 BC563년에서 BC483년(1956년 불교역사 연표가 공인되기 이전에 주로 사용하였음)으로 추정하였으나 이에 대하여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 기원전 565년 ~ 기원전 485년설, 기원전 463년 ~ 기원전 383년설 등이 있다. 부처님의 생몰년의 혼란으로 1956년 상좌부의 남방불교국가들은 "세계불교도우회"에서 결정한 1956년을 불기(佛紀)2500년으로 통일하였다. 이에 따라 BC624년 부터 BC544년으로 공인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선 공인을 한 BC624년에서 BC544을 기준으로 불교 역사 연표를 작성하였으며, 한국 등 불교국가들은 공인된 이 연도를 기준하여 사용한다.
참고로 불기2550년(서기2006년)의 계산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기원전544년을 기준으 로 2006년을 더하면 2550년이 된다.
연도로 본 붓다의 생애(불기(佛紀))
기원전(BC) 3000-2000 하랍파, 모헨조다로 등지의 인더스 문명 성립 1500- 아리안인 펀잡 지방에 칩입 1300-1100 리그베다 성립 1100-700 아리아인 도아브 지방에 진출, 브라흐마나 문헌 성립 바라문 계급 성립(4성 제도를 주장하는 초기 힌두교 성립) 16대국(부족국가에서 전제국가로) 고대 우파니샤드 문헌의 고층(古層) 성립 700년- 도시 생활의 정착, 상공인 출현, 6사 외도를 비롯한 새로운 문화 운동 성행(출가 사문)
<참조> *** 과거불 비바시(Vipassin)불 시기불 비사부(Vessabhu)불 구루손(Kakusandha)불 구나함모니(Kanakamuni) 가섭(Kassapa)불
1, 부처님의 석가족(釋迦族) 가게 석가족(釋迦族)은 현재 네팔 중부의 남측 변경과 인도 국경 근처 히말라야 기슭에 카필라성(가비라성)을 중심으로 작은 산촌(山村)에서 대부분 살았다. 카필라성은 정치상으로는 코살라 왕국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여러 족장 가운데 수장을 교대로 선출하는 독립된 자치 공동체였다.
624년 음력 4월 8일. 카필라성의 왕(부족장)인 숫도다나왕(Suddhodana;정반왕)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마야(Maya Devi) 부인이 임신을 하고 출산이 임박하자 당시 인도 풍습 에 따라 친정에 가서 분만(分娩)하고자 친정인 데바다하(Devadaha)로 향하던 중 기원전 624년경 음력 4월 8일두 촌락 사이에 있는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나무 가지를 잡고 싯다르타를 낳았다. (毘藍降生相)
탄생후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중앙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與當安之) 하늘 위나 하늘아래 내가 오직홀로 존귀하도다. 온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하니 내가 능히 너희를 편케 하리라." 라는 첫 말을 펴시다.
아시타 선인의 예언-전륜성왕
604경 마하비라 자이나교를 대성
611(3세) 조상을 모신 천묘 사당에 참배 617(7세) 학당에서 비사바 밀다라(選友) 선생으로부터 천문학, 어학 산수 등 학문 수업(12년간) 618(8세) 왕으로서 알아야 할 여러가지 법인 ‘제왕의 학’을 찬제제제(忍天) 선생으로부터 무예와 문 수업(학문 기간이 12년 중 4년간을 제왕의 학을 수업)
싯다르타는 뛰어난 지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성장하면서 진리에 관해 생각하 기 시작하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의 안락(安樂)이 모든 인간의 생활인 줄 알았다.
612(12세) 농경제(혹은 춘경제)에 참석하여 밭을 가는 농부를 보고 인간이 수고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인간 사회의 고통을 깨달았고, 나아가 생태계의 참혹한 약육강식과 고통스 런 실상을 관찰하게 된다. (밭을 쟁기에 의해 갈다가 나타난 곤충들을 독수리 등이 와서 무참히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엄연한 사실 앞에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농민의 심한 노동, 자연과의 모진 싸움을 실감, 고통스런 민중의 현실에 대한 최초의 인식을 하였으며 또한 쇠약한 노인을 보고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꼈고, 나서 병들어 신음하고 죽어야 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슬퍼하였다.
608(16세) 아쇼다라(Yaśodhara)와 혼인 싯다르타의 이런 우울(憂鬱)한 심정을 눈치 챈 아버지인 족장(族長)은, 혹시 싯다르타가 당시 많은 젊은이처럼 출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위안(慰安)하려고 골리 부족(部族)의 딸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시켰다 태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그 뒤에도 마노타라 교담미 등 제2부인도 드려주었다. 내었다.
605(19세) 아들 라훌라(고통, 장애물이라는 뜻) 탄생 싯다르타는 수행에 방해가 된다하여 이름을 '라훌라(Rahula)'라 지었다.
슈도다나왕은 많은 미녀를 이용해 주야로 향연(饗宴)을 베풀었으나 이것은 오히려 출가 를 재촉하는 동기(動機)가 되었다.
604(20세) 상가(Samgha) 입문식 거행, 사문유관으로 출가 결심
595(29세) 사문유관으로 출가 결심 번뇌(煩惱)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서 29세에 가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출가한다. 늙음(老人)과 병듦(病者)과 죽음(死者)과 수행자(修行者) 등에 대한 모습을(四門遊觀相) 을 보고 인생에 대한 회의와 함께 출가 결심. 당시 인도에는 수도자는 출가하는 풍습도 있어서 아들 라후라를 얻어 후계자를 근심하 지 않아도 된 싯다르타는 29세에 시종 차닉(車匿)을 데리고 출가했다.
동서남북 사대문으로 밖같 세상을 나가 유관하시고 "인간의 노쇠, 노쇠에 의한 병고 그리 고 사망을 보고 인생 앞에 죽음이라는 절망이 있구나." 하고 인생에 대한 큰 회의를 갖게 되신다. 싯다르타태자는 점점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기쁨을 있을 까? 하고 고민 하던 차 우연히 북문에서 수도자를 만나 모든 고뇌와 고통을 초월하여 완전한 자유와 해탈을 얻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신다. 왕은 늦게까지 태자를 얻지 못하다가 늘그막에 얻은 태자인데 출가를 한다는 것은 왕위 계승을 위해서나 카필라 국의 통치를 생각하여 단호한 반대를 하였다. 도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 주소서. 그렇게 하여주시면 출가를 하지 않겠습니다.” 하자 이 말을 들으신 부왕은 하는 수없이 태자의 뜻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태자는 출가의 길로 드시게 된다. 위대한 출가 - 2월 8일 새벽 출가를 단행하시다(踰城出家相)
사문출가상
<위대한 출가>
<싯다르타 왕자는 왕자(크샤트리아ksatriya )의 지위를 버리고 머리 카락을 짜르고 수행자가 되다. 싯다르타는 왕검과 왕관 그리고 왕자의 장식품 등을 그의 말 칸타카(Kanthaka)에 실려 보낸다.>
가야산 세나니 마을에서 6년 고행 시작(雪山修道相) 시종 차닉과 헤어진 후 싯다르타는 그로부터 6년간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승려 계급인 바라문 수행자에게 배우면서 해탈하는 구도(求道)하였으며, 단식하 고 수행하였다
을 하고, 마가다 국에 가서 여러 출가 사문들을 만나고 당시 이름이 높았던 알라라 까라 마(四禪定), 웃따까 라마풋다(四無色定)를 스승으로 만나고 바가바 같은 고행주의자들 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논하면서 각종 명상법을 배우고 깊은 선정(禪定)을 하며 수행을 하셨다. .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와 인생의 문제는 듣고 배워서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체험해서 진리를 체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승들의 곁을 떠나서 스스로 발
견하고 이루기 위하여 설산(고행림)으로 들어가 고행수도를 하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처
절한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6년이 될 무렵 벽에 부닥치게 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정신을 통일하려고 허리를 땅에 대지 않고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
며 독자적인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극심한 고행을 통해 해탈을 얻으려는 노력도 해보았 지만 해탈하지 못하고 몸만 극도로 쇠약해지고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는 고행을 포기한다. 혼자 성지를 찾아 수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삭발하고 옷을 갈아입고서 구걸(求乞)하면서 남방의 마가다를 향하여 간다.
<고행상>
한때 아버지인 슈도다나왕에게서 사람이 와서 귀가를 권하였으나 싯다르타의 마음은 불 변했다. 아버지는 싯다르타가 귀향하길 단념하고 현자 5명을 뽑아 같이 수행하게 하였다
마가다의 중심인 라자그리하(Rajagrha)는 당시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많은 수도자가 모이는 곳이었다. 마가다의 국왕 빔비사라를 만나고 정각을 이룬 뒤에 만나기로 한다.
여기에서 싯다르타는 브라만교의 행자(行者)에게 요가를 배웠으나 정신상 만족이 없었으 므로 계속하여 마지막으로는 네란자나강(Nairanjana, 尼連禪河) 부근에서 단식하고 불면 하는 수행을 하였다. 이런 육체적인 수행도 무효(無效)라는 것을 알고 포기(抛棄)했다.
589(35세) 6년의 고행을 마치고 네란자라 강가에서 목욕을 하시고 수자타(Sujata) 여인의 헌공(우유 죽)을 받으시고 기운을 차린 다음 전정각산에 오른다.
여인이 바친 우유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는 형편(形便)을 보고 그와 함께 고행을 하던 다섯 수행자들은 그가 고행을 포기했고 타락했다고 비난하면서 그에게서 떠났다.
<수자타의 우유 공양>
수자타가 준 젖과 죽을 마시고 먹고서 체력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가야의 전정각산으로 간다. 전정각산의 산신과 천신들이 놀래 내려갈 것을 청하였고 이에 용이 자기의 거처인 굴에 서 수행하기를 권청하였으나 내려 오신다. 이 굴은 유영굴로 유명하다.
가야를 거쳐 지금의 보드가야에서 보리수(菩提樹) 나무 아래에 풀(길상초)을 깔고 결가 부좌(結跏趺坐)하고 깨닫지 못하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대원을 세우시고 조용히 내관(內觀)의 수행을 하며 49일 동안 명상(出入息念)에 전념한다. .
악마의 유혹- 마왕 파피야뜨의 무리를 조복(樹下降魔相)
싯다르타 나이 35세 12월 8일 용맹정진을 시작한지 7일 되는 날 이른 새벽 동녘에 떠오 르는 샛별의 모습을 보시고 우주와 인생문제를 해결하는 대도를 성취하는 정각을 이루시 고 드디어 붓다(Buddha)가 되신 것이다.
시간을 얻는 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는 말과 같이 우주의 이치가 마음에 계합하는 그 순간 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 깨달음(菩提 bodhi)을 얻어 붓다(Buddha;覺者;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뜻)의 경지를 성취하다.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본원(本源)을 단멸(斷滅)하는 확신을 얻었다. 이것은 어떤 번뇌(煩惱)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정적(絶對靜寂), 즉 열반(涅槃)의 세계를 체현(體現)이고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사람인 불타(佛陀)가 되었다는 뜻이다.
12월 8일 거룩한 진리(연기법)를 깨닫고 성스러운 부처님이 되시다
진리의 깨달음으로 인해 그의 마음은 모든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얻
은 것이다.
이것이 석존의 성불체험이었고 불교가 시작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존은 오랫동안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맛보면서 지냈으며 자신이 깨달
은 진리(法 dharma)가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 하여 설법을 주저했다고 한다. 21일 동안 명상에 잠겨 계시면서 범천의 권청 그리고 마음을 돌이켜 "법을 펴서 중생을
제도해야겠다." 고 결심하며 설법과 교화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588(36세) 깨달음을 얻은 후에 싯다르타는 한동안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고 있었으나 얼마 후에 이러한 법락(法樂)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자 우선 지난날에 같이 수행하 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修行者)들을 교화(敎化)하겠다고 붓다와 함께 고행을 하던 걸식승 5비구를 상대로 바라나시 교외(郊外)에 있는 사르나트(녹야원;鹿野苑)를 방문하여 최초 로 설법(鹿園傳法相)을 하였다. 그 다섯 비구는 수행을 그만둔 싯다르타를 경멸하였으나 드디어 싯다르타 설법에 감화(感 化)하였다.
이때부터 자신이 깨달은 바를 널리 전도(傳道)하기 시작했다.
다섯 비구들에게 고행이나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피해 중도를 따라 수행할 것을 말하고 '4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와 십이인연 [十二因緣]''8가지 바른 길'(八正道)에 대한 설 법을 하여 그들을 제자로 얻었다고 한다.
붓다께서는 중생들이 알아듣기 쉽고 전달하기 쉬운 방편 설법(方便說法)과 대기(隨機)설 법을 펴시었다.
이와 같이 부처(佛陀)가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행한 설법(說法)을 초전법륜(初轉法輪) 이라고 한다. 이 초전법륜(初轉法輪)에 의거(依據)하여 불타(佛陀)의 제자인 5인의 비구(比丘)가 나타 나게 되어 불(佛)·법(法)·승(僧)의 불교 교단 성립조건이 갖춰졌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은 싯다르타가 죽을 때까지 45년간에 걸친 부단한 설법의 시작이었 다. 불타는 마가다의 중심인 라자그리하(Rajagrha)와 슈라바스티(Sravasti, 舍衛城)을 중심으 로 꽤 광범위(廣範圍)에 걸쳐 설법(說法)해 나아갔다. 불타(佛陀)의 가르침은 심원(深遠)했고 상대에 따라서 문답 형식이나 비유(譬喩)나 인연 설화(因緣 說話)를 활용하고 쉬운 말로 매우 친절(親切)하게 설법하였으므로 차차(次次) 제자가 불어나서 경제상(經濟上) 싯다르타를 돕는 독실(篤實)한 귀의자(歸依者)도 생겼 다. 야사와 친구 등 55명을 가족을 제도. 전도 보냄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 숲속에서 30여명의 청년들을 제도, 카사파(가섭) 3형제 제도(500명, 300명, 200명) -큰 가섭은 120세 중간 가섭은110세 막내 가섭은 100세 가야 산정에서 연화경(燃火經)을 설함,
부처님은 라자그리하의 왕사성에서 빔비사라왕(비파사라 왕)을 을 교화하고 그 에게서 가란타(迦蘭陀)의 동산을 헌납(獻納)받아 거기에 건축한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승가람마 (僧伽藍摩)의 효시(嚆矢)이다. 부처님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많은 사람을 모으고 후에 사위성(舍衛城)에 기원정사(祇 園精舍)라는 대가람(大伽藍)을 세워 사부중(四部衆)을 완성(完成)했다. 전법을 선언하고 귀의하는 초기의 제자들과 함께 거룩한 삼보의 출현하여 등장한다.
587(37세)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하안거 지냄. 대가섭(핏피리, 아내는 바드라, 5년 뒤 비구니 됨)이 32세에 출가
586(38세) 영축산에서 하안거 지내고 사위성으로 유행함. 제타 태자와 수닷타 장자가 의논하여 기원정사를 지음 585(39세) 영축산에서 하안거를 지내면서 사리풋다와 목갈라나를 제도. 분노한 민중을 교화
<붓다를 옆에서 항상 보호 하는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Vajrapani 또는 執金剛神, 仁王으로 불린다.)>
584(40세) 바이샬리 성의 가뭄 퇴치(1주일 머물다 죽림정사에서 5일 여정) 미녀 암라파알리 창부의 출가 바이샬리 교외 대림(大林)에 쿠타가라 살라(중각 강당) 건립 583(41세) 기원정사에서 지냄. 카필라의 사신인 우다인의 연락으로 고국 방문 결정, 부모를 만남. 석가족을 교화하며 난타, 라훌라(12세) 출가(최초의 Saminera). 카필라 교외에 니그로다 아라마 정사 건립하고 머뭄, 코올라야족과 석가족의 로히니강 물싸음을 중재-양쪽에서 250명씩 출가 이발사 우팔리의 출가
582(42세) 말라족의 나라 아누피야 마을에 머뭄. 500명 출가. 석가족 아니릇타, 바드리카왕, 브리구, 킹비라, 아난다, 데바닷타, 난디카 7왕자 등 귀족 의 출가 최초의 불상 제작
581(43세)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의 중각정당에서 부왕의 목숨이 위급함을 연락받음 (세수97세)
니그로다정사에서 붓다의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 왕비가 출가의 뜻을 나타냄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에서 마하프라자파티와 야소다라 등 사캬족의 고타미들에게 출가 를 허락함( 최초의 비구니 교단 출현 ) 580(44세) 바이샬리 대림정사 중객당에 머물다가, 반사국 코삼비에서 새 정사(고시타)가 세워지고 여름 안거 지냄. 승단이 분쟁하므로 이를 피해 파알리레야카 동산으로 감. 3개월간 머룰다가 사위성 기원정사로 감. 아난다가 500명의 제자와 함께 마중 나감
579(45세) 코삼비의 비구들을 위한 훈계 코삼비의 신자들이 분쟁 승려들에게 일체 공양을 거부하므로 비구들이 뉘우침 (사위성으로 세존 배알하러 감). 다시 마가다국에서 유행함
578(46세) 바라나시, 라자가하를 거처 베살리의 대림정사에 도착
577 (47세) 마가다국에서 여름안거생활. 사위성으로 가서 라훌라를 위해 설법함 사밧티에서 라훌라의 거짓말을 훈계
576(48세) 마가다 국 강가강 근처의 찰리야 바위산(Caliya pabbata)에 안거
575(49세)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여름 안거를 지냄 라훌라 구족계 받음(20세) 574(50세) 니그로마 동산에서 카필라왓투의 왕 마하나만(Mahanaman)(카필라 성 멸망 직전의 성 주)에게 四不衰信(佛法僧戒)의 실천을 강조하며 설법함 아알라비 市에서 식인종 알라바카를 제도.
573(51세) 의사 지와카(Jivaka-komarabhacca)의 귀의
572(52세) 왕사성에 여름 안거 지냄 아알라바 市에 머뭄
571(53세)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 지냄 코삼비의 고시타 정사에 안거
570(54세)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사위성) 바이샬리를 거처 가야로 다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수도원에 안거
569(55세) 아난이 세존의 시자가 됨(이때부터 25년간 시봉), ( 그동안 나가사말라, 나기타, 우파바 나, 수낙카나,사가타, 라다, 메기야와 어린 사미 춘다가 번갈아 시봉) 파탈리푸트라에서 파바, 쿠시나가라, 사밧티로 유행
568(56세) 사위성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 살인귀 앙굴리라마를 제도
567(57세) 빔비사라 왕과 비데하 종족의 여인 사이에 아쟈타삿투 태어나다( 이미 빔비사라는 파세 나니왕의 누이 베데히사이에게서 이미 아바야(Abhaya)를 낳았음)
562 (62세) 이때부터 546(78세까지) 매년 사위성에서 지냄
553(72세) 성스러운 포살회 제정
551(73세) 아쟈타삿투 태자가 부왕을 죽이고 왕위 찬탈함 데비 왕비가 자결하매 코살라국과 전쟁 붓다에게 반감하며 데바닷타의 교단만듬
<데바닷타(Devadatta)는 붓다를 죽이려구 산악지역에서 걷고 있을 때 위에서 큰 바위를 떨어트린다. 그런데 공중에서 큰 바위가 쪼개지는 기적이 일어나며, 잘게 부스러진 바위는 붓다의 발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악업으로 인하여 데바닷타는 죽어서는 아주 깊은 지옥(hell)에서 다시 태어났다. 고통이 가장 심한 무간지옥(無間地獄 avici)에 태어났다.>
감옥에 갇힌 빔비사라왕과 그의 비에게 세존께서 무량수경(無量壽經)설법
550(74세) 빔비사라왕의 죽음으로 베데히 왕비가 자결하니 코살라 국이 쳐들어옴
548(76세) 코살라의 비두다바 태자가 반둘라 장군의 조카와 공모하여 부왕 파세나니를 내쫒고 왕위 찬탈 라자 가하 근처에서 병사
545(79세) 왕사성 영축산으로 유행함. 아쟈타삿투 왕이 밧지를 치고자 사신을 보낸 것을 바르게 교도함. 사리불이 죽고 목련존자가 순교. 마아프라자파티도 죽음
544(80세) 바이샬리 근교 벨루바에서 하안거 지냄. 3개월 뒤에 열반하시기로 예언하심. 핫티-암바-잠부-보오가피아바-카쿳타 강에서의 목욕 -구시나가라의 나무 숲에서 입멸 반다촌, 핫티촌, 나티촌 등에서 설법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를 제도
疾)을 앓더니 드디어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였다. 병이 위독(危篤)한 형편(形便)을 깨달은 불타(佛陀)는 카쿳타 강에서 최후의 목욕(沐浴)을 마치고 꾸시나가라의 사라(沙羅)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북쪽에 향하고 오른쪽으 로 누워 발을 포갠 다음 밤중에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편 후 쉬지 말고 수행하라고 유언하고서 열반하였다 자등명 법등명의 열반의 유계(遺戒)를 설법하였다. 죽음을 앞둔 붓다는 승가의 앞날을 염려하여 대중들에게 그들 스스로와 법(dharma)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을 가르쳤으며 자신이 남긴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수행할 것을 권했다. 아난다의 통곡
<반열반(般涅槃;Parinirvana 에 들다.>
<1086년 작 일본 평등원平等院 소장>
<1325년 묘법사妙法>
마하카사파(마하가섭)에게 보인 곽시쌍부(槨示雙趺)의 기적 사라쌍수 나무아래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는 불가사의한 기적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전해들은 가섭존자가 지방에서 교화를 하다가 일주일 후에야 부처 님 계신 곳으로 오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미 깊은 관속에 누워 계셨다. 늦게 도착한 가섭존자가 슬퍼하며 관 옆을 맴돌며 눈물을 흘리자 그때 바로 부처님은 두 발을 곽밖으로 내 보여주셨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부처님의 곽시쌍부[槨示雙趺]이다. 이 뜻은 이 세상에는 죽어가는 모습이 있지만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변하지 않는 참다운 진리가 있다고 하는 불가 사의한 기적을 통해서 실상을 보이신 것이라 하겠
다.
붓다의 사후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고 유골(遺骨)은 중인도의 8부족들에 의해 분배되어
각기 사리탑이 세워졌다. <사리의 분배>
열반 3개월 후에 최초의 결집으로 제1차 결집(First Buddhist Council) 소집한다. -쿠시나가르
에서 486년 佛紀1
유의 할 점은 불기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 년대가 아니라 열반 년대를 계산하고 있다. 있는 점이 상당히 특이하다. 불교신앙이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를 위해 머무신 것이 80년이니까
383년 바이샬리(Vaisali)에서 카라소카(Kalasoka)왕의 소집에 의하여 제2차 결집(Second Buddhist Council)-부파불교발생
250년 아쇼카(Ashoka)왕의 소집과 목갈리푸타 티샤(Moggaliputta Tissa) 주재로 제3차 결집(Third Buddhist Council)
|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신앙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과연 불자들이 부처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한국불교 특성상 부처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한 탓에 상식적인 것 밖에 모르고 있으며, 진정코 부처님에 대한 생애와 가르침 그리고 업적 등에 대하여 너무나도 무관심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불자로서 확실한 신념도 없고 불교에 대한 확신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교리를 열심히 공부하여야겠습니다.
풍요와 가난, 전쟁과 테러 그리고 온갖 신들로 가득찬 혼탁한 이 시대에 부처님은 우리에게 왜 더 다가오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근본을 알아야 대승불교든 선불교든 밀교든 여러가지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며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명 칭
부처님이 태어나고 정각을 이루기 전까지의 이름은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이다.
싯다르타는 이름이고 고타마는 성씨(姓氏)이다.
싯다르타란 길재(吉財) 길상(吉祥) 일체공덕취(一切功德成就)를 의미한다.
실달타 또는 수달다(悉達多)는 싯다르타의 한문 음사이다.
고타마는 석가족(Shakya clan) 조상의 성씨(姓氏)이다.
구담(瞿曇)은 고타마(Gautama)를 한문 음사한 것이다.
Siddhārtha Gautama는 산스크리티(Sanskrit)어 이며, Siddhattha Gotama는 팔리(Pali)어 이다.
석가(釋迦)는 석가의 씨족인 샤카족(Shakya clan)의 한문 음사 이다.
보드가야에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룬 후에는 붓다(Buddha)라 불리며, 샤카무니(Śākyamuni 또는 Shakyamuni;산스크리티어) 또는 사카무니(Sakyamuni;팔리어)로 불리기도 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음사이며 그 뜻은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석존(釋尊)은 석가모니의 약칭이다.
불타(佛陀)는 붓다의 음사이며 약칭하여 불(佛)이라 한다. 세존(世尊)이라 불리기도 한다.
부처는 붓다의 음역으로 한국만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붓다(Buddha)란 명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란 명칭으로 쓴다.
생 애
부처님의 생애를 다 말하기란 너무 방대한 것이기에 간추려 본 것이다.
부처님의 생애를 접해 본다는 것은 직접 친견한다는 마음과 신심으로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라며 이 무상한 인연공덕으로 무량한 복락이 이룩 될 것입니다.
붓다의 출생연도가 여러가지 학설이 있듯이 탄생연도가 불확실하다. 20세기 초에 역사가들이 BC563년에서 BC483년(1956년 불교역사 연표가 공인되기 이전에 주로 사용하였음)으로 추정하였으나 이에 대하여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1956년 상좌부의 남방불교국가들은 세계불교도우회에서 결정한 1956년을 불기(佛紀)2500년으로 통일하였다.
이에 따라 BC624년 부터 BC544년으로 공인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선 공인을 한 BC624년에서 BC544을 기준으로 불교 역사 연표를 작성하였으며, 한국 등 불교국가들은 공인된 이 연도를 기준하여 사용한다.
연도로 본 붓다의 생애(불기(佛紀))
기원전(BC)
3000-2000 하랍파, 모헨조다로 등지의 인더스 문명 성립
1500- 아리안인 펀잡 지방에 칩입
1300-1100 리그베다 성립
1100-700 아리아인 도아브 지방에 진출, 브라흐마나 문헌 성립
바라문 계급 성립(4성 제도를 주장하는 초기 힌두교 성립)
16대국(부족국가에서 전제국가로)
고대 우파니샤드 문헌의 고층(古層) 성립
700년- 도시 생활의 정착, 상공인 출현, 6사 외도를 비롯한 새로운 문화 운동 성행(출가 사문)
<참조>
*** 과거불
비바시(Vipassin)불
시기불
비사부(Vessabhu)불
구루손(Kakusandha)불
구나함모니(Kanakamuni)
가섭(Kassapa)불
1, 부처님 가게
* 천상에서 내려온 사람들
* 샤카족의 선조( 고타마 - 33대 孫 자아세나
- 머나먼 孫 오카카(Okkaka)의 아들 5형제
- 그의 후손(後孫) 심바하나 왕의 6형제
2, 디핑카라(煙燈) 부처님의 축복된 수기 - 구도자 수메다
3, 부처님 탄생의 목적
4, 마야 부인의 꿈(도率內儀相)
624 음력 4월 8일 옛날 인도에서는 부인들이 아기를 낳으려면 친정으로 가서 분만 하는 풍속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시다가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나무 가지를 잡고 탄생
(毘藍降生相)
아버지는 카필라 성의 왕 숫도다나(Suddhodana;정반왕). 어머니는 마야데비(Maya Devi)
탄생후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중앙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唯
我獨尊 三界皆苦與當安之) 하늘 위나 하늘아래 내가 오직홀로 존귀하도다. 온 세상이 고통
으로 가득하니 내가 능히 너희를 편케 하리라." 라는 첫 말을 펴시다.
탄생후 7일만에 어머니의 죽음,
이모 마하프라자파티의 양육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로 명명
아시타 선인의 예언-전륜성왕
604경 마하비라 자이나교를 대성
611(3세) 조상을 모신 천묘 사당에 참배
617(7세) 학당에서 비사바 밀다라(選友) 선생으로부터 천문학, 어학 산수 등 학문 수업(12년간)
618(8세) 왕으로서 알아야 할 여러가지 법인 ‘제왕의 학’을 찬제제제(忍天) 선생으로부터 무예와 문
예 수업(학문 기간이 12년 중 4년간을 제왕의 학을 수업)
612(12세) 농경제(혹은 춘경제)에 나아가 생태계의 참혹한 약육강식과 고통스런 실상을 관찰(밭을
쟁기에 의해 갈다가 나타난 곤충들을 독수리 등이 와서 무참히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약육
강식 적자생존의 엄연한 사실 앞에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농민의 심한 노동, 자연과의 모진 싸움을 실감, 고통스런 민중의 현실에 대한 최초의 인식
608(16세) 아쇼다라와 혼인
태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그 뒤에도 마노타라 교담미 등 제2부인도 드려주었다.
이렇게 삼시전[三時殿]마다 제2 제3부인이 지키고 있으면서 청년시절을 궁전에서 보
내었다.
605(19세) 아들 라훌라(고통, 장애물이라는 뜻) 탄생
604(20세) 상가(Samgha) 입문식 거행,
595(29세) 사문유관으로 출가 결심
늙음(老人)과 병듦(病者)과 죽음(死者)과 수행자(修行者) 등에 대한 모습을(四門遊觀相)
을 보고 인생에 대한 회의와 함께 출가 결심,
동서남북 사대문으로 밖같 세상을 나가 유관하시고 "인간의 노쇠, 노쇠에 의한 병고 그리
고 사망을 보고 인생 앞에 죽음이라는 절망이 있구나." 하고 인생에 대한 큰 회의를 갖게
되신다. 싯다르타태자는 점점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기쁨을 있을까?
하고 고민 하던 차 우연히 북문에서 수도자를 만나 모든 고뇌와 고통을 초월하여 완전한
자유와 해탈을 얻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신다.
그래서 "출가수행자가 되겠다." 는 마음을 굳히고 부왕에게 간곡히 말씀을 올렸으나 정반
왕은 늦게까지 태자를 얻지 못하다가 늘그막에 얻은 태자인데 출가를 한다는 것은 왕위계
승을 위해서나 카필라 국의 통치를 생각하여 단호한 반대를 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다시요청하기를 "부왕이시여! 저에게 세 가지 소원만 들어 주시면 출가 수
도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
“세 가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를 언제나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 늙지 않게 하여주시며, 언제 까지나 죽지 않게 하여
주소서. 그렇게 하여주시면 출가를 하지 않겠습니다.” 하자 이 말을 들으신 부왕은 하는
수없이 태자의 뜻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태자는 출가의 길로 드시게 된다.
위대한 출가 - 2월 8일 새벽 출가를 단행하시다(踰城出家相)
<위대한 출가>
<싯다르타 왕자는 왕자(크샤트리아ksatriya )의 지위를 버리고 머리 카락을 짜르고 수행자가 되다.
싯다르타는 왕검과 왕관 그리고 왕자의 장식품 등을 그의 말 칸타카(Kanthaka)에 실려 보낸다.>
가야산 세나니 마을에서 6년 고행 시작(雪山修道相)
그는 유행사문(遊行沙門)으로서 아누뿌리아 암바나무 숲 가운데에서 7일간 최초의 명상
을 하고, 마가다 국에 가서 여러 출가 사문들을 만나고 당시 이름이 높았던 알라라 까라마
(四禪定), 웃따까 라마풋다(四無色定)를 스승으로 만나고 바가바 같은 고행주의자들이 있
는 곳으로 찾아가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논하면서 각종 명상법을 배우고 깊은
선정(禪定)을 하며 수행을 하셨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와 인생의 문제는 듣고 배워서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체험해서 진리를 체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승들의 곁을 떠나서 스스로 발
견하고 이루기 위하여 설산(고행림)으로 들어가 고행수도를 하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처절
한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6년이 될 무렵 벽에 부닥치게 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독자적인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극심한 고행을 통해 해탈을 얻으려는
노력도 해보았지만 몸만 극도로 쇠약해지고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는 고행을 포기
한다.
<고행상>
그와 함께 고행을 하던 다섯 수행자들은 그가 고행을 포기했다고 비난하면서 그에게서 떠
났다.
마가다 국왕 빔비사라의 권유
589(35세) 6년의 고행을 마치고 니란자라 강가에서 목욕을 하시고 수자타(Sujata) 여인의 헌공(우유
죽)을 받으시고 기운을 차린 다음 전정각산에 오른다.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신앙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과연 불자들이 부처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한국불교 특성상 부처님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한 탓에 상식적인 것 밖에 모르고 있으며, 진정코 부처님에 대한 생애와 가르침 그리고 업적 등에 대하여 너무나도 무관심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불자로서 확실한 신념도 없고 불교에 대한 확신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교리를 열심히 공부하여야겠습니다.
풍요와 가난, 전쟁과 테러 그리고 온갖 신들로 가득찬 혼탁한 이 시대에 부처님은 우리에게 왜 더 다가오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근본을 알아야 대승불교든 선불교든 밀교든 여러가지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며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명 칭
부처님이 태어나고 정각을 이루기 전까지의 이름은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이다.
싯다르타는 이름이고 고타마는 성씨(姓氏)이다.
싯다르타란 길재(吉財) 길상(吉祥) 일체공덕취(一切功德成就)를 의미한다.
실달타 또는 수달다(悉達多)는 싯다르타의 한문 음사이다.
고타마는 석가족(Shakya clan) 조상의 성씨(姓氏)이다.
구담(瞿曇)은 고타마(Gautama)를 한문 음사한 것이다.
Siddhārtha Gautama는 산스크리티(Sanskrit)어 이며, Siddhattha Gotama는 팔리(Pali)어 이다.
석가(釋迦)는 석가의 씨족인 샤카족(Shakya clan)의 한문 음사 이다.
보드가야에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룬 후에는 붓다(Buddha)라 불리며, 샤카무니(Śākyamuni 또는 Shakyamuni;산스크리티어) 또는 사카무니(Sakyamuni;팔리어)로 불리기도 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음사이며 그 뜻은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석존(釋尊)은 석가모니의 약칭이다.
불타(佛陀)는 붓다의 음사이며 약칭하여 불(佛)이라 한다. 세존(世尊)이라 불리기도 한다.
부처는 붓다의 음역으로 한국만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붓다(Buddha)란 명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란 명칭으로 쓴다.
생 애
부처님의 생애를 다 말하기란 너무 방대한 것이기에 간추려 본 것이다.
부처님의 생애를 접해 본다는 것은 직접 친견한다는 마음과 신심으로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라며 이 무상한 인연공덕으로 무량한 복락이 이룩 될 것입니다.
붓다의 출생연도가 여러가지 학설이 있듯이 탄생연도가 불확실하다. 20세기 초에 역사가들이 BC563년에서 BC483년(1956년 불교역사 연표가 공인되기 이전에 주로 사용하였음)으로 추정하였으나 이에 대하여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1956년 상좌부의 남방불교국가들은 세계불교도우회에서 결정한 1956년을 불기(佛紀)2500년으로 통일하였다.
이에 따라 BC624년 부터 BC544년으로 공인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선 공인을 한 BC624년에서 BC544을 기준으로 불교 역사 연표를 작성하였으며, 한국 등 불교국가들은 공인된 이 연도를 기준하여 사용한다.
연도로 본 붓다의 생애(불기(佛紀))
기원전(BC)
3000-2000 하랍파, 모헨조다로 등지의 인더스 문명 성립
1500- 아리안인 펀잡 지방에 칩입
1300-1100 리그베다 성립
1100-700 아리아인 도아브 지방에 진출, 브라흐마나 문헌 성립
바라문 계급 성립(4성 제도를 주장하는 초기 힌두교 성립)
16대국(부족국가에서 전제국가로)
고대 우파니샤드 문헌의 고층(古層) 성립
700년- 도시 생활의 정착, 상공인 출현, 6사 외도를 비롯한 새로운 문화 운동 성행(출가 사문)
<참조>
*** 과거불
비바시(Vipassin)불
시기불
비사부(Vessabhu)불
구루손(Kakusandha)불
구나함모니(Kanakamuni)
가섭(Kassapa)불
1, 부처님 가게
* 천상에서 내려온 사람들
* 샤카족의 선조( 고타마 - 33대 孫 자아세나
- 머나먼 孫 오카카(Okkaka)의 아들 5형제
- 그의 후손(後孫) 심바하나 왕의 6형제
2, 디핑카라(煙燈) 부처님의 축복된 수기 - 구도자 수메다
3, 부처님 탄생의 목적
4, 마야 부인의 꿈(도率內儀相)
624 음력 4월 8일 옛날 인도에서는 부인들이 아기를 낳으려면 친정으로 가서 분만 하는 풍속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시다가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나무 가지를 잡고 탄생
(毘藍降生相)
아버지는 카필라 성의 왕 숫도다나(Suddhodana;정반왕). 어머니는 마야데비(Maya Devi)
탄생후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중앙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唯
我獨尊 三界皆苦與當安之) 하늘 위나 하늘아래 내가 오직홀로 존귀하도다. 온 세상이 고통
으로 가득하니 내가 능히 너희를 편케 하리라." 라는 첫 말을 펴시다.
탄생후 7일만에 어머니의 죽음,
이모 마하프라자파티의 양육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로 명명
아시타 선인의 예언-전륜성왕
604경 마하비라 자이나교를 대성
611(3세) 조상을 모신 천묘 사당에 참배
617(7세) 학당에서 비사바 밀다라(選友) 선생으로부터 천문학, 어학 산수 등 학문 수업(12년간)
618(8세) 왕으로서 알아야 할 여러가지 법인 ‘제왕의 학’을 찬제제제(忍天) 선생으로부터 무예와 문
예 수업(학문 기간이 12년 중 4년간을 제왕의 학을 수업)
612(12세) 농경제(혹은 춘경제)에 나아가 생태계의 참혹한 약육강식과 고통스런 실상을 관찰(밭을
쟁기에 의해 갈다가 나타난 곤충들을 독수리 등이 와서 무참히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약육
강식 적자생존의 엄연한 사실 앞에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농민의 심한 노동, 자연과의 모진 싸움을 실감, 고통스런 민중의 현실에 대한 최초의 인식
608(16세) 아쇼다라와 혼인
태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그 뒤에도 마노타라 교담미 등 제2부인도 드려주었다.
이렇게 삼시전[三時殿]마다 제2 제3부인이 지키고 있으면서 청년시절을 궁전에서 보
내었다.
605(19세) 아들 라훌라(고통, 장애물이라는 뜻) 탄생
604(20세) 상가(Samgha) 입문식 거행,
595(29세) 사문유관으로 출가 결심
늙음(老人)과 병듦(病者)과 죽음(死者)과 수행자(修行者) 등에 대한 모습을(四門遊觀相)
을 보고 인생에 대한 회의와 함께 출가 결심,
동서남북 사대문으로 밖같 세상을 나가 유관하시고 "인간의 노쇠, 노쇠에 의한 병고 그리
고 사망을 보고 인생 앞에 죽음이라는 절망이 있구나." 하고 인생에 대한 큰 회의를 갖게
되신다. 싯다르타태자는 점점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기쁨을 있을까?
하고 고민 하던 차 우연히 북문에서 수도자를 만나 모든 고뇌와 고통을 초월하여 완전한
자유와 해탈을 얻는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신다.
그래서 "출가수행자가 되겠다." 는 마음을 굳히고 부왕에게 간곡히 말씀을 올렸으나 정반
왕은 늦게까지 태자를 얻지 못하다가 늘그막에 얻은 태자인데 출가를 한다는 것은 왕위계
승을 위해서나 카필라 국의 통치를 생각하여 단호한 반대를 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다시요청하기를 "부왕이시여! 저에게 세 가지 소원만 들어 주시면 출가 수
도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
“세 가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를 언제나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 늙지 않게 하여주시며, 언제 까지나 죽지 않게 하여
주소서. 그렇게 하여주시면 출가를 하지 않겠습니다.” 하자 이 말을 들으신 부왕은 하는
수없이 태자의 뜻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태자는 출가의 길로 드시게 된다.
위대한 출가 - 2월 8일 새벽 출가를 단행하시다(踰城出家相)
<위대한 출가>
<싯다르타 왕자는 왕자(크샤트리아ksatriya )의 지위를 버리고 머리 카락을 짜르고 수행자가 되다.
싯다르타는 왕검과 왕관 그리고 왕자의 장식품 등을 그의 말 칸타카(Kanthaka)에 실려 보낸다.>
가야산 세나니 마을에서 6년 고행 시작(雪山修道相)
그는 유행사문(遊行沙門)으로서 아누뿌리아 암바나무 숲 가운데에서 7일간 최초의 명상
을 하고, 마가다 국에 가서 여러 출가 사문들을 만나고 당시 이름이 높았던 알라라 까라마
(四禪定), 웃따까 라마풋다(四無色定)를 스승으로 만나고 바가바 같은 고행주의자들이 있
는 곳으로 찾아가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논하면서 각종 명상법을 배우고 깊은
선정(禪定)을 하며 수행을 하셨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와 인생의 문제는 듣고 배워서 해결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체험해서 진리를 체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승들의 곁을 떠나서 스스로 발
견하고 이루기 위하여 설산(고행림)으로 들어가 고행수도를 하기 시작하는데 참으로 처절
한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6년이 될 무렵 벽에 부닥치게 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독자적인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극심한 고행을 통해 해탈을 얻으려는
노력도 해보았지만 몸만 극도로 쇠약해지고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는 고행을 포기
한다.
<고행상>
그와 함께 고행을 하던 다섯 수행자들은 그가 고행을 포기했다고 비난하면서 그에게서 떠
났다.
마가다 국왕 빔비사라의 권유
589(35세) 6년의 고행을 마치고 니란자라 강가에서 목욕을 하시고 수자타(Sujata) 여인의 헌공(우유
죽)을 받으시고 기운을 차린 다음 전정각산에 오른다.

<수자타의 우유 공양>
전정각산의 산신과 천신들이 놀래 내려갈 것을 청하였고 이에 용이 자기의 거처인 굴에서
수행하기를 권청하였으나 내려 오신다. 이 굴은 유영굴로 유명하다.
가야를 거쳐 지금의 보드가야에서 보리수(菩提樹) 나무 아래에 길상초를 깔고 대원을 세우
시고 49일 동안 명상(出入息念)에 전념한다.

악마의 유혹- 마왕 파피야뜨의 무리를 조복(樹下降魔相)

용맹정진을 시작한지 7일 되는 날 새벽 동녘에 떠오르는 샛별의 모습을 보시고 우주와 인
생문제를 해결하는 대도를 성취하는 정각을 이루시고 드디어 붓다(Buddha)가 되신 것이
다.

시간을 얻는 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는 말과 같이 우주의 이치가 마음에 계합하는 그 순간
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 깨달음(菩提 bodhi)을 얻어 붓다(Buddha;覺者;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뜻)의 경지를 성취하다.
12월 8일 거룩한 진리(연기법)를 깨닫고 성스러운 부처님이 되시다
삼명득(三明得) -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
진리의 깨달음으로 인해 그의 마음은 모든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얻
은 것이다.
이것이 석존의 성불체험이었고 불교가 시작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존은 오랫동안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맛보면서 지냈으며 자신이 깨달은
진리(法 dharma)가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설법을 주저했다고 한다.
21일 동안 명상에 잠겨 계시면서 범천의 권청 그리고 마음을 돌이켜 "법을 펴서 중생을 제
도해야겠다." 고 결심하며 설법과 교화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신이 깨달은 바를 널리 전하기 시작한다.
588(36세) 붓다와 함께 고행을 하던 걸식승 5비구를 상대로 바라나시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로 설
법(鹿園傳法相).
다섯 비구들에게 고행이나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피해 중도를 따라 수행할 것을 말하고
'4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와 십이인연 [十二因緣]''8가지 바른 길'(八正道)에 대한 설
법을 하여 그들을 제자로 얻었다고 한다.초전법륜(初轉法輪)
붓다께서는 중생들이 알아듣기 쉽고 전달하기 쉬운 방편 설법(方便說法)과 대기(隨機)설
법을 펴시었다.
야사와 친구 등 55명을 가족을 제도. 전도 보냄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 숲속에서 30여명의 청년들을 제도,
카사파(가섭) 3형제 제도(500명, 300명, 200명)
-큰 가섭은 120세 중간 가섭은110세 막내 가섭은 100세
가야 산정에서 연화경(燃火經)을 설함,
왕사성에서 빔비사라왕의 귀의를 받고 죽림정사를 희사 받음.
전법을 선언하고 귀의하는 초기의 제자들과 함께 거룩한 삼보의 출현하여 등장한다.
587(37세)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하안거 지냄.
586(38세) 영축산에서 하안거 지내고 사위성으로 유행함.
제타 태자와 수닷타 장자가 의논하여 기원정사를 지음
585(39세) 영축산에서 하안거를 지내면서 사리풋다와 목갈라나를 제도.
분노한 민중을 교화
코살라의 파세나니 왕과의 상면
<붓다를 옆에서 항상 보호 하는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Vajrapani 또는 執金剛神, 仁王으로 불린다.)>
584(40세) 바이샬리 성의 가뭄 퇴치(1주일 머물다 죽림정사에서 5일 여정)
미녀 암라파알리 창부의 출가
바이샬리 교외 대림(大林)에 쿠타가라 살라(중각 강당) 건립
583(41세) 기원정사에서 지냄.
카필라의 사신인 우다인의 연락으로 고국 방문 결정, 부모를 만남.
석가족을 교화하며 난타, 라훌라 출가(최초의 Saminera).
카필라 교외에 니그로다 아라마 정사 건립하고 머뭄,
코올라야족과 석가족의 로히니강 물싸음을 중재-양쪽에서 250명씩 출가
이발사 우팔리의 출가
니그로다 원에서 미륵비구에게 未來佛의 授記를 주시다

<수자타의 우유 공양>
전정각산의 산신과 천신들이 놀래 내려갈 것을 청하였고 이에 용이 자기의 거처인 굴에서
수행하기를 권청하였으나 내려 오신다. 이 굴은 유영굴로 유명하다.
가야를 거쳐 지금의 보드가야에서 보리수(菩提樹) 나무 아래에 길상초를 깔고 대원을 세우
시고 49일 동안 명상(出入息念)에 전념한다.

악마의 유혹- 마왕 파피야뜨의 무리를 조복(樹下降魔相)

용맹정진을 시작한지 7일 되는 날 새벽 동녘에 떠오르는 샛별의 모습을 보시고 우주와 인
생문제를 해결하는 대도를 성취하는 정각을 이루시고 드디어 붓다(Buddha)가 되신 것이
다.

시간을 얻는 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는 말과 같이 우주의 이치가 마음에 계합하는 그 순간
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 깨달음(菩提 bodhi)을 얻어 붓다(Buddha;覺者;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뜻)의 경지를 성취하다.
12월 8일 거룩한 진리(연기법)를 깨닫고 성스러운 부처님이 되시다
삼명득(三明得) -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
진리의 깨달음으로 인해 그의 마음은 모든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얻
은 것이다.
이것이 석존의 성불체험이었고 불교가 시작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존은 오랫동안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맛보면서 지냈으며 자신이 깨달은
진리(法 dharma)가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설법을 주저했다고 한다.
21일 동안 명상에 잠겨 계시면서 범천의 권청 그리고 마음을 돌이켜 "법을 펴서 중생을 제
도해야겠다." 고 결심하며 설법과 교화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신이 깨달은 바를 널리 전하기 시작한다.
588(36세) 붓다와 함께 고행을 하던 걸식승 5비구를 상대로 바라나시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로 설
법(鹿園傳法相).
다섯 비구들에게 고행이나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피해 중도를 따라 수행할 것을 말하고
'4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와 십이인연 [十二因緣]''8가지 바른 길'(八正道)에 대한 설
법을 하여 그들을 제자로 얻었다고 한다.초전법륜(初轉法輪)
붓다께서는 중생들이 알아듣기 쉽고 전달하기 쉬운 방편 설법(方便說法)과 대기(隨機)설
법을 펴시었다.
야사와 친구 등 55명을 가족을 제도. 전도 보냄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 숲속에서 30여명의 청년들을 제도,
카사파(가섭) 3형제 제도(500명, 300명, 200명)
-큰 가섭은 120세 중간 가섭은110세 막내 가섭은 100세
가야 산정에서 연화경(燃火經)을 설함,
왕사성에서 빔비사라왕의 귀의를 받고 죽림정사를 희사 받음.
전법을 선언하고 귀의하는 초기의 제자들과 함께 거룩한 삼보의 출현하여 등장한다.
587(37세)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하안거 지냄.
586(38세) 영축산에서 하안거 지내고 사위성으로 유행함.
제타 태자와 수닷타 장자가 의논하여 기원정사를 지음
585(39세) 영축산에서 하안거를 지내면서 사리풋다와 목갈라나를 제도.
분노한 민중을 교화
코살라의 파세나니 왕과의 상면
<붓다를 옆에서 항상 보호 하는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Vajrapani 또는 執金剛神, 仁王으로 불린다.)>
584(40세) 바이샬리 성의 가뭄 퇴치(1주일 머물다 죽림정사에서 5일 여정)
미녀 암라파알리 창부의 출가
바이샬리 교외 대림(大林)에 쿠타가라 살라(중각 강당) 건립
583(41세) 기원정사에서 지냄.
카필라의 사신인 우다인의 연락으로 고국 방문 결정, 부모를 만남.
석가족을 교화하며 난타, 라훌라 출가(최초의 Saminera).
카필라 교외에 니그로다 아라마 정사 건립하고 머뭄,
코올라야족과 석가족의 로히니강 물싸음을 중재-양쪽에서 250명씩 출가
이발사 우팔리의 출가
니그로다 원에서 미륵비구에게 未來佛의 授記를 주시다

<수자타의 우유 공양>
전정각산의 산신과 천신들이 놀래 내려갈 것을 청하였고 이에 용이 자기의 거처인 굴에서
수행하기를 권청하였으나 내려 오신다. 이 굴은 유영굴로 유명하다.
가야를 거쳐 지금의 보드가야에서 보리수(菩提樹) 나무 아래에 길상초를 깔고 대원을 세우
시고 49일 동안 명상(出入息念)에 전념한다.

악마의 유혹- 마왕 파피야뜨의 무리를 조복(樹下降魔相)

용맹정진을 시작한지 7일 되는 날 새벽 동녘에 떠오르는 샛별의 모습을 보시고 우주와 인
생문제를 해결하는 대도를 성취하는 정각을 이루시고 드디어 붓다(Buddha)가 되신 것이
다.

시간을 얻는 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는 말과 같이 우주의 이치가 마음에 계합하는 그 순간
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 깨달음(菩提 bodhi)을 얻어 붓다(Buddha;覺者;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뜻)의 경지를 성취하다.
12월 8일 거룩한 진리(연기법)를 깨닫고 성스러운 부처님이 되시다
삼명득(三明得) -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
진리의 깨달음으로 인해 그의 마음은 모든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탈을 얻
은 것이다.
이것이 석존의 성불체험이었고 불교가 시작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존은 오랫동안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맛보면서 지냈으며 자신이 깨달은
진리(法 dharma)가 너무나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설법을 주저했다고 한다.
21일 동안 명상에 잠겨 계시면서 범천의 권청 그리고 마음을 돌이켜 "법을 펴서 중생을 제
도해야겠다." 고 결심하며 설법과 교화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신이 깨달은 바를 널리 전하기 시작한다.
588(36세) 붓다와 함께 고행을 하던 걸식승 5비구를 상대로 바라나시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로 설
법(鹿園傳法相).
다섯 비구들에게 고행이나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피해 중도를 따라 수행할 것을 말하고
'4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와 십이인연 [十二因緣]''8가지 바른 길'(八正道)에 대한 설
법을 하여 그들을 제자로 얻었다고 한다.초전법륜(初轉法輪)
붓다께서는 중생들이 알아듣기 쉽고 전달하기 쉬운 방편 설법(方便說法)과 대기(隨機)설
법을 펴시었다.
야사와 친구 등 55명을 가족을 제도. 전도 보냄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 숲속에서 30여명의 청년들을 제도,
카사파(가섭) 3형제 제도(500명, 300명, 200명)
-큰 가섭은 120세 중간 가섭은110세 막내 가섭은 100세
가야 산정에서 연화경(燃火經)을 설함,
왕사성에서 빔비사라왕의 귀의를 받고 죽림정사를 희사 받음.
전법을 선언하고 귀의하는 초기의 제자들과 함께 거룩한 삼보의 출현하여 등장한다.
587(37세)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하안거 지냄.
586(38세) 영축산에서 하안거 지내고 사위성으로 유행함.
제타 태자와 수닷타 장자가 의논하여 기원정사를 지음
585(39세) 영축산에서 하안거를 지내면서 사리풋다와 목갈라나를 제도.
분노한 민중을 교화
코살라의 파세나니 왕과의 상면
<붓다를 옆에서 항상 보호 하는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Vajrapani 또는 執金剛神, 仁王으로 불린다.)>
584(40세) 바이샬리 성의 가뭄 퇴치(1주일 머물다 죽림정사에서 5일 여정)
미녀 암라파알리 창부의 출가
바이샬리 교외 대림(大林)에 쿠타가라 살라(중각 강당) 건립
583(41세) 기원정사에서 지냄.
카필라의 사신인 우다인의 연락으로 고국 방문 결정, 부모를 만남.
석가족을 교화하며 난타, 라훌라 출가(최초의 Saminera).
카필라 교외에 니그로다 아라마 정사 건립하고 머뭄,
코올라야족과 석가족의 로히니강 물싸음을 중재-양쪽에서 250명씩 출가
이발사 우팔리의 출가
니그로다 원에서 미륵비구에게 未來佛의 授記를 주시다
582(42세) 말라족의 나라 아누피야 마을에 머뭄. 500명 출가.
석가족 아니릇타, 바드리카왕, 브리구, 킹비라, 아난다, 데바닷타, 난디카 7왕자 등 귀족의
출가
최초의 불상 제작
581(43세)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의 중각정당에서 부왕의 목숨이 위급함을 연락받음 (세수97세)
왕사성에서 父王의 病死(97세), 부왕의 장례식 집전
니그로다정사에서 붓다의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 왕비가 출가의 뜻을 나타냄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에서 마하프라자파티와 야소다라 등 사캬족의 고타미들에게 출가를
허락함( 최초의 비구니 교단 출현 )
580(44세) 바이샬리 대림정사 중객당에 머물다가, 반사국 코삼비에서 새 정사(고시타)가 세워지고
여름 안거 지냄.
승단이 분쟁하므로 이를 피해 파알리레야카 동산으로 감.3개월간 머룰다가 사위성 기원정
사로 감.
아난다가 500명의 제자와 함께 마중 나감
579(45세) 코삼비의 비구들을 위한 훈계
코삼비의 신자들이 분쟁 승려들에게 일체 공양을 거부하므로 비구들이 뉘우침
(사위성으로 세존 배알하러 감). 다시 마가다국에서 유행함
578(46세) 바라나시, 라자가하를 거처 베살리의 대림정사에 도착
이곳에서 농부에게 유명한 바라드바자 경을 설함
577 (47세) 마가다국에서 여름안거생활. 사위성으로 가서 라훌라를 위해 설법함
사밧티에서 라훌라의 거짓말을 훈계
베란자 마을에서 안거 - 흉년과 사리풋타의 계율제정 간청
베살리에서 수다니의 음행, 단디가의 도둑질,
미가란카의 살인을 게기로 교단의 계율 제정
576(48세) 마가다 국 강가강 근처의 찰리야 바위산(Caliya pabbata)에 안거
메기야 장로의 부처님 시봉
말라족의 도읍 파바市에 머뭄 (도읍 쿠시나가라)
575(49세)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여름 안거를 지냄
라훌라 구족계 받음(20세)
Janussonshi, Aggika-Bharadvaja, Dhananjani 등 부유한 브라만의 개종
574(50세) 니그로마 동산에서 카필라왓투의 왕 마하나만(Mahanaman)(카필라 성 멸망 직전의 성주)
에게 四不衰信(佛法僧戒)의 실천을 강조하며 설법함
아알라비 市에서 식인종 알라바카를 제도.
야소다라 비의 아버지 숫타붇다 죽음
573(51세) 의사 지와카(Jivaka-komarabhacca)의 귀의
지와카의 누이동생 시리마의 장례식에서
법구경 제 147게를 설하다
572(52세) 왕사성에 여름 안거 지냄
아알라바 市에 머뭄
571(53세)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 지냄
코삼비의 고시타 정사에 안거
(일설- 이 해에 코삼비 비구의 분쟁)
570(54세)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사위성)
바이샬리를 거처 가야로 다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수도원에 안거
569(55세) 아난이 세존의 시자가 됨(이때부터 25년간 시봉), ( 그동안 나가사말라, 나기타, 우파바
나, 수낙카나,사가타, 라다, 메기야와 어린 사미 춘다가 번갈아 시봉)
파탈리푸트라에서 파바, 쿠시나가라, 사밧티로 유행
이때부터 佛壽 78세까지 이곳 사밧티에서 매년 안거
(24회의 안거중 18번은 제타와나 수도원에서, 6번은 동원정사에서 지내심)
파세나니왕, 말리카 왕비, 여동생 사마, 사쿨라 등의 귀의
사케다의 호상 Setthi의 딸 비샤카가 시아버지 미가라 長子를 귀의시킴
미가라가 기증한 東園 鹿子母 講堂 개원(동원정사)
- 목갈라나 테라 監修
바이샤 출신의 부녀자들이 대거 귀의
파세나니 왕이 여승들을 위한 라자카 아라마 (王園精舍)를 건립
568(56세) 사위성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
살인귀 앙굴리라마를 제도
567(57세) 빔비사라 왕과 비데하 종족의 여인 사이에 아쟈타삿투 태어나다( 이미 빔비사라는 파세
나니왕의 누이 베데히사이에게서 이미 아바야(Abhaya)를 낳았음)
562 (62세) 이때부터 546(78세까지) 매년 사위성에서 지냄
553(72세) 성스러운 포살회 제정
부처님의 대중 참회
551(73세) 아쟈타삿투 태자가 부왕을 죽이고 왕위 찬탈함
데비 왕비가 자결하매 코살라국과 전쟁
붓다에게 반감하며 데바닷타의 교단만듬
<데바닷타(Devadatta)는 붓다를 죽이려구 산악지역에서 걷고 있을 때 위에서 큰 바위를 떨어트린다.
그런데 공중에서 큰 바위가 쪼개지는 기적이 일어나며, 잘게 부스러진 바위는 붓다의 발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악업으로 인하여 데바닷타는 죽어서는 아주 깊은 지옥(hell)에서 다시 태어났다.
고통이 가장 심한 무간지옥(無間地獄 avici)에 태어났다.>
감옥에 갇힌 빔비사라왕과 그의 비에게 세존께서 무량수경(無量壽經)설법
550(74세) 빔비사라왕의 죽음으로 베데히 왕비가 자결하니 코살라 국이 쳐들어옴
지와카의 권유로 아자타삿투 왕 세존께 귀의
548(76세) 코살라의 비두다바 태자가 반둘라 장군의 조카와 공모하여 부왕 파세나니를 내쫒고 왕위
찬탈
코살라의 파세나니 왕은 마가다의 아자타삿투 왕에게 의지하려고 왕사성까지 갔으나 라자
가하 근처에서 병사
사캬족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코살라의 비두다바 왕이 사캬족을 멸망시킴
545(79세) 왕사성 영축산으로 유행함.
아쟈타삿투 왕이 밧지를 치고자 사신을 보낸 것을 바르게 교도함.
사리불이 죽고 목련존자가 순교. 마아프라자파티도 죽음
세존께서 아자타삿투왕이 밧지족을 치고자 보낸 사신을 교화(七不退法)
라자가하 웰루와나 수도원에 안거(성도 44년)
나란다의 파바리카 암바 숲에 기거
파탈리 촌에서 계율 설법
강가강을 건넘
밧지족에게 三寶의 믿음을 설법
베살리의 Veluvagama(벨루바 마를)에 마지막 안거
차팔리 사당에서 3개월후 열반 예언 (아난다의 후회)
Bhanadagama에 이르러 베살리 쪽을 바라보며
“ 이 아름다운 베살리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다” 라고
말씀하심
544(80세) 바이샬리 근교 벨루바에서 하안거 지냄.
3개월 뒤에 열반하시기로 예언하심.
핫티-암바-잠부-보오가피아바-카쿳타 강에서의 목욕
-구시나가라의 나무 숲에서 입멸
반다촌, 핫티촌, 나티촌 등에서 설법
암바파리 창녀가 파바 성안의 암바나무 동산을 교단에 기증하고 귀의
파바에서 금세공 종제 춘다의 수카라맛타 공양을 받으심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를 제도
카쿳타 강에서 목욕
최후의 가르침- 꾸시나가라 사라나무 숲 아래에서
열반의 遺戒를 설법
( 사라원에서 하루낮, 하룻밤동안 열반경 설함)
자등명 법등명 설법,
죽음을 앞두고 붓다는 승가의 앞날을 염려하여 많은 유언을 남겼다.
붓다는 자신이 죽은 뒤 사람들에게 그들 스스로와 법(dharma)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을
가르쳤으며 자신이 남긴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수행할 것을 권했다.
아난다의 통곡
2 월 15일 밤 사라 쌍수 아래서 입멸 (雙林涅槃相)
반열반(般涅槃), 즉 육신을 떠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반열반(般涅槃;Parinirvana 에 들다.>

<1086년 작 일본 평등원平等院 소장>

<1325년 묘법사妙法>
마하카사파(마하가섭)에게 보인 곽시쌍부(槨示雙趺)의 기적
사라쌍수 나무아래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는 불가사의한 기적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전해들은 가섭존자가 지방에서 교화를 하다가 일주일 후에야 부처
님 계신 곳으로 오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미 깊은 관속에 누워 계셨다.
늦게 도착한 가섭존자가 슬퍼하며 관 옆을 맴돌며 눈물을 흘리자 그때 바로 부처님은 두
발을 곽밖으로 내 보여주셨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부처님의 곽시쌍부[槨示雙趺]이다.
이 뜻은 이 세상에는 죽어가는 모습이 있지만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변하지
않는 참다운 진리가 있다고 하는 불가 사의한 기적을 통해서 실상을 보이신 것이라 하겠
다.
붓다의 사후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고 유골(遺骨)은 중인도의 8부족들에 의해 분배되어 각기 사리탑
이 세워졌다.
<사리의 분배>
열반 3개월 후에 최초의 결집으로 제1차 결집(First Buddhist Council) 소집한다. -쿠시나가르에서
486년 佛紀1
如來의 탄생- 영원본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심
과거불 신앙- 석가모니 불의 탄생 (신앙적 세존관의 확립)
유의 할 점은 불기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 년대가 아니라 열반 년대를 계산하고 있다.
공자나 예수와 같은 다른 분들은 태어난 년대로 하고 있는대 비해 불기는 입멸 년대로 쓰고 있
는 점이 상당히 특이하다.
이것은 불타재세시보다 부천님의 열반이 중생에게 주는 의미 가 더 깊고 이 열반을 통하여
불교신앙이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화신[化身]불보다 법신[法身]불의 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탄생 년대로 계산 하려고 하면 석가세존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중생 제도
를 위해 머무신 것이 80년이니까
불기2549년에80년을+2629년 전 인도 카필라국에서 탄생 하신것으로 보면 된다
383년 바이샬리(Vaisali)에서 카라소카(Kalasoka)왕의 소집에 의하여
제2차 결집(Second Buddhist Council)-부파불교발생
250년 아쇼카(Ashoka)왕의 소집과 목갈리푸타 티샤(Moggaliputta Tissa) 주재로 제3차 결집(Third
Buddhist Council)
582(42세) 말라족의 나라 아누피야 마을에 머뭄. 500명 출가.
석가족 아니릇타, 바드리카왕, 브리구, 킹비라, 아난다, 데바닷타, 난디카 7왕자 등 귀족의
출가
최초의 불상 제작
581(43세)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의 중각정당에서 부왕의 목숨이 위급함을 연락받음 (세수97세)
왕사성에서 父王의 病死(97세), 부왕의 장례식 집전
니그로다정사에서 붓다의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 왕비가 출가의 뜻을 나타냄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에서 마하프라자파티와 야소다라 등 사캬족의 고타미들에게 출가를
허락함( 최초의 비구니 교단 출현 )
580(44세) 바이샬리 대림정사 중객당에 머물다가, 반사국 코삼비에서 새 정사(고시타)가 세워지고
여름 안거 지냄.
승단이 분쟁하므로 이를 피해 파알리레야카 동산으로 감.3개월간 머룰다가 사위성 기원정
사로 감.
아난다가 500명의 제자와 함께 마중 나감
579(45세) 코삼비의 비구들을 위한 훈계
코삼비의 신자들이 분쟁 승려들에게 일체 공양을 거부하므로 비구들이 뉘우침
(사위성으로 세존 배알하러 감). 다시 마가다국에서 유행함
578(46세) 바라나시, 라자가하를 거처 베살리의 대림정사에 도착
이곳에서 농부에게 유명한 바라드바자 경을 설함
577 (47세) 마가다국에서 여름안거생활. 사위성으로 가서 라훌라를 위해 설법함
사밧티에서 라훌라의 거짓말을 훈계
베란자 마을에서 안거 - 흉년과 사리풋타의 계율제정 간청
베살리에서 수다니의 음행, 단디가의 도둑질,
미가란카의 살인을 게기로 교단의 계율 제정
576(48세) 마가다 국 강가강 근처의 찰리야 바위산(Caliya pabbata)에 안거
메기야 장로의 부처님 시봉
말라족의 도읍 파바市에 머뭄 (도읍 쿠시나가라)
575(49세)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여름 안거를 지냄
라훌라 구족계 받음(20세)
Janussonshi, Aggika-Bharadvaja, Dhananjani 등 부유한 브라만의 개종
574(50세) 니그로마 동산에서 카필라왓투의 왕 마하나만(Mahanaman)(카필라 성 멸망 직전의 성주)
에게 四不衰信(佛法僧戒)의 실천을 강조하며 설법함
아알라비 市에서 식인종 알라바카를 제도.
야소다라 비의 아버지 숫타붇다 죽음
573(51세) 의사 지와카(Jivaka-komarabhacca)의 귀의
지와카의 누이동생 시리마의 장례식에서
법구경 제 147게를 설하다
572(52세) 왕사성에 여름 안거 지냄
아알라바 市에 머뭄
571(53세)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 지냄
코삼비의 고시타 정사에 안거
(일설- 이 해에 코삼비 비구의 분쟁)
570(54세)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사위성)
바이샬리를 거처 가야로 다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수도원에 안거
569(55세) 아난이 세존의 시자가 됨(이때부터 25년간 시봉), ( 그동안 나가사말라, 나기타, 우파바
나, 수낙카나,사가타, 라다, 메기야와 어린 사미 춘다가 번갈아 시봉)
파탈리푸트라에서 파바, 쿠시나가라, 사밧티로 유행
이때부터 佛壽 78세까지 이곳 사밧티에서 매년 안거
(24회의 안거중 18번은 제타와나 수도원에서, 6번은 동원정사에서 지내심)
파세나니왕, 말리카 왕비, 여동생 사마, 사쿨라 등의 귀의
사케다의 호상 Setthi의 딸 비샤카가 시아버지 미가라 長子를 귀의시킴
미가라가 기증한 東園 鹿子母 講堂 개원(동원정사)
- 목갈라나 테라 監修
바이샤 출신의 부녀자들이 대거 귀의
파세나니 왕이 여승들을 위한 라자카 아라마 (王園精舍)를 건립
568(56세) 사위성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
살인귀 앙굴리라마를 제도
567(57세) 빔비사라 왕과 비데하 종족의 여인 사이에 아쟈타삿투 태어나다( 이미 빔비사라는 파세
나니왕의 누이 베데히사이에게서 이미 아바야(Abhaya)를 낳았음)
562 (62세) 이때부터 546(78세까지) 매년 사위성에서 지냄
553(72세) 성스러운 포살회 제정
부처님의 대중 참회
551(73세) 아쟈타삿투 태자가 부왕을 죽이고 왕위 찬탈함
데비 왕비가 자결하매 코살라국과 전쟁
붓다에게 반감하며 데바닷타의 교단만듬
<데바닷타(Devadatta)는 붓다를 죽이려구 산악지역에서 걷고 있을 때 위에서 큰 바위를 떨어트린다.
그런데 공중에서 큰 바위가 쪼개지는 기적이 일어나며, 잘게 부스러진 바위는 붓다의 발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악업으로 인하여 데바닷타는 죽어서는 아주 깊은 지옥(hell)에서 다시 태어났다.
고통이 가장 심한 무간지옥(無間地獄 avici)에 태어났다.>
감옥에 갇힌 빔비사라왕과 그의 비에게 세존께서 무량수경(無量壽經)설법
550(74세) 빔비사라왕의 죽음으로 베데히 왕비가 자결하니 코살라 국이 쳐들어옴
지와카의 권유로 아자타삿투 왕 세존께 귀의
548(76세) 코살라의 비두다바 태자가 반둘라 장군의 조카와 공모하여 부왕 파세나니를 내쫒고 왕위
찬탈
코살라의 파세나니 왕은 마가다의 아자타삿투 왕에게 의지하려고 왕사성까지 갔으나 라자
가하 근처에서 병사
사캬족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코살라의 비두다바 왕이 사캬족을 멸망시킴
545(79세) 왕사성 영축산으로 유행함.
아쟈타삿투 왕이 밧지를 치고자 사신을 보낸 것을 바르게 교도함.
사리불이 죽고 목련존자가 순교. 마아프라자파티도 죽음
세존께서 아자타삿투왕이 밧지족을 치고자 보낸 사신을 교화(七不退法)
라자가하 웰루와나 수도원에 안거(성도 44년)
나란다의 파바리카 암바 숲에 기거
파탈리 촌에서 계율 설법
강가강을 건넘
밧지족에게 三寶의 믿음을 설법
베살리의 Veluvagama(벨루바 마를)에 마지막 안거
차팔리 사당에서 3개월후 열반 예언 (아난다의 후회)
Bhanadagama에 이르러 베살리 쪽을 바라보며
“ 이 아름다운 베살리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다” 라고
말씀하심
544(80세) 바이샬리 근교 벨루바에서 하안거 지냄.
3개월 뒤에 열반하시기로 예언하심.
핫티-암바-잠부-보오가피아바-카쿳타 강에서의 목욕
-구시나가라의 나무 숲에서 입멸
반다촌, 핫티촌, 나티촌 등에서 설법
암바파리 창녀가 파바 성안의 암바나무 동산을 교단에 기증하고 귀의
파바에서 금세공 종제 춘다의 수카라맛타 공양을 받으심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를 제도
카쿳타 강에서 목욕
최후의 가르침- 꾸시나가라 사라나무 숲 아래에서
열반의 遺戒를 설법
( 사라원에서 하루낮, 하룻밤동안 열반경 설함)
자등명 법등명 설법,
죽음을 앞두고 붓다는 승가의 앞날을 염려하여 많은 유언을 남겼다.
붓다는 자신이 죽은 뒤 사람들에게 그들 스스로와 법(dharma)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을
가르쳤으며 자신이 남긴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수행할 것을 권했다.
아난다의 통곡
2 월 15일 밤 사라 쌍수 아래서 입멸 (雙林涅槃相)
반열반(般涅槃), 즉 육신을 떠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반열반(般涅槃;Parinirvana 에 들다.>

<1086년 작 일본 평등원平等院 소장>

<1325년 묘법사妙法>
마하카사파(마하가섭)에게 보인 곽시쌍부(槨示雙趺)의 기적
사라쌍수 나무아래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는 불가사의한 기적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전해들은 가섭존자가 지방에서 교화를 하다가 일주일 후에야 부처
님 계신 곳으로 오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미 깊은 관속에 누워 계셨다.
늦게 도착한 가섭존자가 슬퍼하며 관 옆을 맴돌며 눈물을 흘리자 그때 바로 부처님은 두
발을 곽밖으로 내 보여주셨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부처님의 곽시쌍부[槨示雙趺]이다.
이 뜻은 이 세상에는 죽어가는 모습이 있지만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변하지
않는 참다운 진리가 있다고 하는 불가 사의한 기적을 통해서 실상을 보이신 것이라 하겠
다.
붓다의 사후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고 유골(遺骨)은 중인도의 8부족들에 의해 분배되어 각기 사리탑
이 세워졌다.
<사리의 분배>
열반 3개월 후에 최초의 결집으로 제1차 결집(First Buddhist Council) 소집한다. -쿠시나가르에서
486년 佛紀1
如來의 탄생- 영원본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심
과거불 신앙- 석가모니 불의 탄생 (신앙적 세존관의 확립)
유의 할 점은 불기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 년대가 아니라 열반 년대를 계산하고 있다.
공자나 예수와 같은 다른 분들은 태어난 년대로 하고 있는대 비해 불기는 입멸 년대로 쓰고 있
는 점이 상당히 특이하다.
이것은 불타재세시보다 부천님의 열반이 중생에게 주는 의미 가 더 깊고 이 열반을 통하여
불교신앙이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화신[化身]불보다 법신[法身]불의 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탄생 년대로 계산 하려고 하면 석가세존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중생 제도
를 위해 머무신 것이 80년이니까
불기2549년에80년을+2629년 전 인도 카필라국에서 탄생 하신것으로 보면 된다
383년 바이샬리(Vaisali)에서 카라소카(Kalasoka)왕의 소집에 의하여
제2차 결집(Second Buddhist Council)-부파불교발생
250년 아쇼카(Ashoka)왕의 소집과 목갈리푸타 티샤(Moggaliputta Tissa) 주재로 제3차 결집(Third
Buddhist Council)
582(42세) 말라족의 나라 아누피야 마을에 머뭄. 500명 출가.
석가족 아니릇타, 바드리카왕, 브리구, 킹비라, 아난다, 데바닷타, 난디카 7왕자 등 귀족의
출가
최초의 불상 제작
581(43세)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의 중각정당에서 부왕의 목숨이 위급함을 연락받음 (세수97세)
왕사성에서 父王의 病死(97세), 부왕의 장례식 집전
니그로다정사에서 붓다의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 왕비가 출가의 뜻을 나타냄
바이샬리의 대림정사에서 마하프라자파티와 야소다라 등 사캬족의 고타미들에게 출가를
허락함( 최초의 비구니 교단 출현 )
580(44세) 바이샬리 대림정사 중객당에 머물다가, 반사국 코삼비에서 새 정사(고시타)가 세워지고
여름 안거 지냄.
승단이 분쟁하므로 이를 피해 파알리레야카 동산으로 감.3개월간 머룰다가 사위성 기원정
사로 감.
아난다가 500명의 제자와 함께 마중 나감
579(45세) 코삼비의 비구들을 위한 훈계
코삼비의 신자들이 분쟁 승려들에게 일체 공양을 거부하므로 비구들이 뉘우침
(사위성으로 세존 배알하러 감). 다시 마가다국에서 유행함
578(46세) 바라나시, 라자가하를 거처 베살리의 대림정사에 도착
이곳에서 농부에게 유명한 바라드바자 경을 설함
577 (47세) 마가다국에서 여름안거생활. 사위성으로 가서 라훌라를 위해 설법함
사밧티에서 라훌라의 거짓말을 훈계
베란자 마을에서 안거 - 흉년과 사리풋타의 계율제정 간청
베살리에서 수다니의 음행, 단디가의 도둑질,
미가란카의 살인을 게기로 교단의 계율 제정
576(48세) 마가다 국 강가강 근처의 찰리야 바위산(Caliya pabbata)에 안거
메기야 장로의 부처님 시봉
말라족의 도읍 파바市에 머뭄 (도읍 쿠시나가라)
575(49세)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여름 안거를 지냄
라훌라 구족계 받음(20세)
Janussonshi, Aggika-Bharadvaja, Dhananjani 등 부유한 브라만의 개종
574(50세) 니그로마 동산에서 카필라왓투의 왕 마하나만(Mahanaman)(카필라 성 멸망 직전의 성주)
에게 四不衰信(佛法僧戒)의 실천을 강조하며 설법함
아알라비 市에서 식인종 알라바카를 제도.
야소다라 비의 아버지 숫타붇다 죽음
573(51세) 의사 지와카(Jivaka-komarabhacca)의 귀의
지와카의 누이동생 시리마의 장례식에서
법구경 제 147게를 설하다
572(52세) 왕사성에 여름 안거 지냄
아알라바 市에 머뭄
571(53세)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 지냄
코삼비의 고시타 정사에 안거
(일설- 이 해에 코삼비 비구의 분쟁)
570(54세)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사위성)
바이샬리를 거처 가야로 다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수도원에 안거
569(55세) 아난이 세존의 시자가 됨(이때부터 25년간 시봉), ( 그동안 나가사말라, 나기타, 우파바
나, 수낙카나,사가타, 라다, 메기야와 어린 사미 춘다가 번갈아 시봉)
파탈리푸트라에서 파바, 쿠시나가라, 사밧티로 유행
이때부터 佛壽 78세까지 이곳 사밧티에서 매년 안거
(24회의 안거중 18번은 제타와나 수도원에서, 6번은 동원정사에서 지내심)
파세나니왕, 말리카 왕비, 여동생 사마, 사쿨라 등의 귀의
사케다의 호상 Setthi의 딸 비샤카가 시아버지 미가라 長子를 귀의시킴
미가라가 기증한 東園 鹿子母 講堂 개원(동원정사)
- 목갈라나 테라 監修
바이샤 출신의 부녀자들이 대거 귀의
파세나니 왕이 여승들을 위한 라자카 아라마 (王園精舍)를 건립
568(56세) 사위성 석이산중에서 여름 안거 지냄.
살인귀 앙굴리라마를 제도
567(57세) 빔비사라 왕과 비데하 종족의 여인 사이에 아쟈타삿투 태어나다( 이미 빔비사라는 파세
나니왕의 누이 베데히사이에게서 이미 아바야(Abhaya)를 낳았음)
562 (62세) 이때부터 546(78세까지) 매년 사위성에서 지냄
553(72세) 성스러운 포살회 제정
부처님의 대중 참회
551(73세) 아쟈타삿투 태자가 부왕을 죽이고 왕위 찬탈함
데비 왕비가 자결하매 코살라국과 전쟁
붓다에게 반감하며 데바닷타의 교단만듬
<데바닷타(Devadatta)는 붓다를 죽이려구 산악지역에서 걷고 있을 때 위에서 큰 바위를 떨어트린다.
그런데 공중에서 큰 바위가 쪼개지는 기적이 일어나며, 잘게 부스러진 바위는 붓다의 발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악업으로 인하여 데바닷타는 죽어서는 아주 깊은 지옥(hell)에서 다시 태어났다.
고통이 가장 심한 무간지옥(無間地獄 avici)에 태어났다.>
감옥에 갇힌 빔비사라왕과 그의 비에게 세존께서 무량수경(無量壽經)설법
550(74세) 빔비사라왕의 죽음으로 베데히 왕비가 자결하니 코살라 국이 쳐들어옴
지와카의 권유로 아자타삿투 왕 세존께 귀의
548(76세) 코살라의 비두다바 태자가 반둘라 장군의 조카와 공모하여 부왕 파세나니를 내쫒고 왕위
찬탈
코살라의 파세나니 왕은 마가다의 아자타삿투 왕에게 의지하려고 왕사성까지 갔으나 라자
가하 근처에서 병사
사캬족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코살라의 비두다바 왕이 사캬족을 멸망시킴
545(79세) 왕사성 영축산으로 유행함.
아쟈타삿투 왕이 밧지를 치고자 사신을 보낸 것을 바르게 교도함.
사리불이 죽고 목련존자가 순교. 마아프라자파티도 죽음
세존께서 아자타삿투왕이 밧지족을 치고자 보낸 사신을 교화(七不退法)
라자가하 웰루와나 수도원에 안거(성도 44년)
나란다의 파바리카 암바 숲에 기거
파탈리 촌에서 계율 설법
강가강을 건넘
밧지족에게 三寶의 믿음을 설법
베살리의 Veluvagama(벨루바 마를)에 마지막 안거
차팔리 사당에서 3개월후 열반 예언 (아난다의 후회)
Bhanadagama에 이르러 베살리 쪽을 바라보며
“ 이 아름다운 베살리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다” 라고
말씀하심
544(80세) 바이샬리 근교 벨루바에서 하안거 지냄.
3개월 뒤에 열반하시기로 예언하심.
핫티-암바-잠부-보오가피아바-카쿳타 강에서의 목욕
-구시나가라의 나무 숲에서 입멸
반다촌, 핫티촌, 나티촌 등에서 설법
암바파리 창녀가 파바 성안의 암바나무 동산을 교단에 기증하고 귀의
파바에서 금세공 종제 춘다의 수카라맛타 공양을 받으심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를 제도
카쿳타 강에서 목욕
최후의 가르침- 꾸시나가라 사라나무 숲 아래에서
열반의 遺戒를 설법
( 사라원에서 하루낮, 하룻밤동안 열반경 설함)
자등명 법등명 설법,
죽음을 앞두고 붓다는 승가의 앞날을 염려하여 많은 유언을 남겼다.
붓다는 자신이 죽은 뒤 사람들에게 그들 스스로와 법(dharma)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을
가르쳤으며 자신이 남긴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수행할 것을 권했다.
아난다의 통곡
2 월 15일 밤 사라 쌍수 아래서 입멸 (雙林涅槃相)
반열반(般涅槃), 즉 육신을 떠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반열반(般涅槃;Parinirvana 에 들다.>

<1086년 작 일본 평등원平等院 소장>

<1325년 묘법사妙法>
마하카사파(마하가섭)에게 보인 곽시쌍부(槨示雙趺)의 기적
사라쌍수 나무아래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는 불가사의한 기적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전해들은 가섭존자가 지방에서 교화를 하다가 일주일 후에야 부처
님 계신 곳으로 오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미 깊은 관속에 누워 계셨다.
늦게 도착한 가섭존자가 슬퍼하며 관 옆을 맴돌며 눈물을 흘리자 그때 바로 부처님은 두
발을 곽밖으로 내 보여주셨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부처님의 곽시쌍부[槨示雙趺]이다.
이 뜻은 이 세상에는 죽어가는 모습이 있지만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변하지
않는 참다운 진리가 있다고 하는 불가 사의한 기적을 통해서 실상을 보이신 것이라 하겠
다.
붓다의 사후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고 유골(遺骨)은 중인도의 8부족들에 의해 분배되어 각기 사리탑
이 세워졌다.
<사리의 분배>
열반 3개월 후에 최초의 결집으로 제1차 결집(First Buddhist Council) 소집한다. -쿠시나가르에서
486년 佛紀1
如來의 탄생- 영원본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심
과거불 신앙- 석가모니 불의 탄생 (신앙적 세존관의 확립)
유의 할 점은 불기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 년대가 아니라 열반 년대를 계산하고 있다.
공자나 예수와 같은 다른 분들은 태어난 년대로 하고 있는대 비해 불기는 입멸 년대로 쓰고 있
는 점이 상당히 특이하다.
이것은 불타재세시보다 부천님의 열반이 중생에게 주는 의미 가 더 깊고 이 열반을 통하여
불교신앙이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화신[化身]불보다 법신[法身]불의 출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탄생 년대로 계산 하려고 하면 석가세존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중생 제도
를 위해 머무신 것이 80년이니까
불기2549년에80년을+2629년 전 인도 카필라국에서 탄생 하신것으로 보면 된다
383년 바이샬리(Vaisali)에서 카라소카(Kalasoka)왕의 소집에 의하여
제2차 결집(Second Buddhist Council)-부파불교발생
250년 아쇼카(Ashoka)왕의 소집과 목갈리푸타 티샤(Moggaliputta Tissa) 주재로 제3차 결집(Third
Buddhist Counci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