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과 소론 좌파와 우파
충청도 괴산군 청천면에 화양동구곡이 있다. 그곳에 있는 암서재는 우암 송시열이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던 곳이다.
바로 옆에 일명 큰절이라고 부른 환장사煥章寺가 있다. 환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절 앞에 여덟가지 소리가 난다는 팔음석八音石이 있고, 숭정황제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 넉 자와 의종황제의 친필인 “사무사邪無邪” 석자가 보관되어 있다.
화양동서원이 한창 드날리던 시절 이 절의 한 스님은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형태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당파에 속해있는 지를 정확하게 알아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만동묘 앞을 지날 때 공경하고 근신한 뜻이 안 보이며 활달하게 떠들고 지나가는 사람은 진보적이던 남인南人이었다.
또한 만동묘에 이르러서 쳐다만 보아도 감개무량하게 여기고 몸을 굽혀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보수적인 노론老論이고, 그저 산수구경을 간단히 하고 만동묘 구경도 절차를 무시한 채 와서 절에 와서는 중을 곧잘 꾸짖었던 사람들은 혁신적인 노론老論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속해있던 당색이 인격이나 언동言動에까지 배어버린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이와 같이 당색과 인간이 절충 융합해 있었던 같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당색에 대한 강인한 집념은 당색에 따라 옷의 디자인이나 헤어스타일도 달리하는 했다고 한다. 노론 가문의 부녀자는 저고리의 깃과 섶을 모나지 않고 둥글게 접었으며 치마 주름은 굵고 접은 수가 적으며, 머리 쪽도 느슨하게 늘어서 지었다.
이에 비해 소론 가문의 부녀자는 깃과 섶을 뾰족하고 모나게 접었다. 이처럼 모난 디자인을 ‘당唐코’라 불렀으며 소론 가문을 당코로 속칭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치마 주름 수도 많고 잘며 머리 쪽도 위쪽으로 바짝 추켜 지었고 이 같은 옷매무새나 머리모양은 그들 당의 정신과 너무나 잘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곧 노소론의 분당 원인은 주자학朱子學을 둔 보수적 해석과 혁신적 해석 때문이며, 곧 보수혁신이 그 분당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당코처럼 날카로운 디자인, 잔주름 많은 치마, 바짝 올려붙인 머리 쪽이 혁신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고, 완곡한 옷깃, 굵은 치마 주름, 느슨한 머리 쪽은 보수적 이미지를 물씬 나게 한다.
그러한 당색들이 오늘날까지도 줄기차게 이어져 이 당黨 저당으로 무늬만 바꾼 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君子고 나하고 생각이 틀리 면 소인小人이다.‘ 라는 말이 하나도 변형되지 않고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제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인다는 속담이 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동인 서인에서 노소론과 남인북인으로 갈라져 왔고, 지금은 우파네. 좌파네 하며 서로의 등을 떠밀며 날 선 칼을 겨누고 있다. 그러한 세상 속에 당신과 나도 있다.
나는 누구이며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무자년 팔월 스무이레
충청도 괴산군 청천면에 화양동구곡이 있다. 그곳에 있는 암서재는 우암 송시열이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던 곳이다.
바로 옆에 일명 큰절이라고 부른 환장사煥章寺가 있다. 환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절 앞에 여덟가지 소리가 난다는 팔음석八音石이 있고, 숭정황제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 넉 자와 의종황제의 친필인 “사무사邪無邪” 석자가 보관되어 있다.
화양동서원이 한창 드날리던 시절 이 절의 한 스님은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형태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당파에 속해있는 지를 정확하게 알아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만동묘 앞을 지날 때 공경하고 근신한 뜻이 안 보이며 활달하게 떠들고 지나가는 사람은 진보적이던 남인南人이었다.
또한 만동묘에 이르러서 쳐다만 보아도 감개무량하게 여기고 몸을 굽혀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보수적인 노론老論이고, 그저 산수구경을 간단히 하고 만동묘 구경도 절차를 무시한 채 와서 절에 와서는 중을 곧잘 꾸짖었던 사람들은 혁신적인 노론老論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속해있던 당색이 인격이나 언동言動에까지 배어버린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이와 같이 당색과 인간이 절충 융합해 있었던 같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당색에 대한 강인한 집념은 당색에 따라 옷의 디자인이나 헤어스타일도 달리하는 했다고 한다. 노론 가문의 부녀자는 저고리의 깃과 섶을 모나지 않고 둥글게 접었으며 치마 주름은 굵고 접은 수가 적으며, 머리 쪽도 느슨하게 늘어서 지었다.
이에 비해 소론 가문의 부녀자는 깃과 섶을 뾰족하고 모나게 접었다. 이처럼 모난 디자인을 ‘당唐코’라 불렀으며 소론 가문을 당코로 속칭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치마 주름 수도 많고 잘며 머리 쪽도 위쪽으로 바짝 추켜 지었고 이 같은 옷매무새나 머리모양은 그들 당의 정신과 너무나 잘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곧 노소론의 분당 원인은 주자학朱子學을 둔 보수적 해석과 혁신적 해석 때문이며, 곧 보수혁신이 그 분당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당코처럼 날카로운 디자인, 잔주름 많은 치마, 바짝 올려붙인 머리 쪽이 혁신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고, 완곡한 옷깃, 굵은 치마 주름, 느슨한 머리 쪽은 보수적 이미지를 물씬 나게 한다.
그러한 당색들이 오늘날까지도 줄기차게 이어져 이 당黨 저당으로 무늬만 바꾼 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君子고 나하고 생각이 틀리 면 소인小人이다.‘ 라는 말이 하나도 변형되지 않고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제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인다는 속담이 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동인 서인에서 노소론과 남인북인으로 갈라져 왔고, 지금은 우파네. 좌파네 하며 서로의 등을 떠밀며 날 선 칼을 겨누고 있다. 그러한 세상 속에 당신과 나도 있다.
나는 누구이며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무자년 팔월 스무이레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