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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이 건너는강

가을의 끝자락 덕진공원에서

작성자신정일|작성시간25.11.27|조회수69 목록 댓글 2

가을의 끝자락 덕진공원에서

 

가을의 끝지락 건지산에 들렀다가 덕진공원에 들렀다.

연화정 도서관이 들어선 이후 사뭇 달라진 덕진 연못에 연꽃은 진지 오래

호수는 갈 빛을 띈 채 삭막하기만 했다.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깨끗이 우뚝 서 있는 폼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꽃은 꽃 중에서 군자라고 하겠다,

 

단오날이면 덕진연못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북송 시대 학자 주돈이의 <애련설>을 떠올리곤 했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물속에 몸과 마음을 들여놓는 사람들, 그 옆엔 그네를 타며 노니는 사람들. 단오 풍습을 즐기는 수많은 인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곳이 초여름의 덕진연못이었다. 1960년대 청소년기에 덕진공원 단오축제에서 가수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공연을 보았다. 흐느적거리는 춤사위 속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와 연꽃 향기가 그윽하고 아련하게 퍼져 나가던 감흥이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덕진연못으로도 불리는 덕진공원은 전주역 북쪽 3킬로미터 지점에 자리한 유원지로 고려 시대에 조성된 연못이다. 10만 평방미터 정도 되는 큰 공원 안에 43000평방미터 정도 크기로 자리한 연못은 여름이면 절반이 연꽃으로 뒤덮이며 장관을 연출하여 전주팔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전주에 덕진연못이 만들어진 것은 풍수지리설이 활기를 띠던 고려 때다. 당시 이곳에 연지가 들어선 이유가신증동국여지승람산천 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덕진지: 부의 북쪽 10리에 있다. 부의 지세는 서북방이 공결하여 전주의 기맥이 이쪽으로 새어버린다. 그러므로 서쪽으로는 가련산으로부터 동으로 건지산까지 큰 둑을 쌓아 기운을 멈추게 하고 이름을 덕진이라 하였으니, 둘레가 973자이다.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를 막아 연못이 된 것인데, 가련이라는 이름의 연원이 재미있다.

 

부의 서쪽 10리에 있으며, 건지산의 산세가 여기에 와서 끊어졌다고 하여 가련이라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덕진 지의 풍월정을 노래한 조선 전기의 문신 유순의 시를 보자.

 

깊고 맑은 물에 허공이 비쳐 있고.

덕을 쌓았으니 제물하는 공을 갖추었네.

이곳에 참용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세상 어느 곳에서 뇌풍을 찾았으리요.

 

울창했던 소나무숲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름이면 연꽃 향기가 호수를 물들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덕진공원에는 목가시인으로 알려진 신석정 시인의 시비,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인 전봉준 장군의 동상, 김개남 장군과 손화중 장군의 추모비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 끝머리에는 일제 시대 전주 갑부 박기순이 세운 취향정이 외롭게 홀로 서 있었다.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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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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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교보샘 | 작성시간 25.11.27
    꽃중의 군자라고하는 연꽃이 게절이 바뀌었지만
    눈에 선 합니다.
  • 작성자신정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27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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