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은 무엇이고, 낯익음은 또 무엇인가?
며칠간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의 적막감,
집은 언제나 낯설다.
떠날 때 정돈한 뒤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저기 흐트러진 책이 나를 반기는 집,
내가 떠날 때의 그 모습인가?
아니면 좀 더 어지럽혀진 상태인가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내 마음이 정돈되지 않고 헝클어져 있기 때문에
집을 이리 저리 둘러보는 것이리라.
배낭을 내려놓고 생각하는 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실제로 어리석고 불확실하다. 그 때문에 이와 같은 확실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이 기쁘다. 어린아이는 만약 자기가 카드로 세운 집이 무너져 버린다면 분개한다. 왜냐하면 한 어른이 책상을 확 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상이 밀쳐졌기 때문에 카드로 세운 집이 무너졌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카드로 세운 집이었기 때문이다. 실제의 집은, 그 책상이 장작으로 잘게 썰리게 될지라도 무너지지 않는다.”
카프카의 <잠언집>에 실린 글이다.
내 마음의 불확실성이 내가 들어선 나의 집, 나의 방, 나의 책상들을 더더욱 낯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나에게 카프카가 나직히 충고한다.
“항상 너의 마음이 문제이다. 정당하게 말하고, 적어도, 난 이와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가? 혹, 나는 한 번도 정당성을 갖지 못한 게 아닌가? 왜냐하면, 나는 원래 ‘정당함’에 대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정당함과 부당함을 그 내부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종 때 정당함과 부당함에 대해 숙고할 여유가 없듯이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그럴 시간이 없다.”
내가 그렇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
아직도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 못하고
대개는 참아 넘기는 것,
많이 변화 되었지만 지금도 버리지 못하는 그 것, 그게 나의 병이고, 세상의 병이다.
언제쯤 나는 살아가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당하게 말하는 날이 있기나 할까?
2026년 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