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평화전망대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DMZ 평화의 길>을 따라 걷다.
세 번째 기행 파주 리비교에서 연천 군남면홍수조절지까지(70명이면 버스 두대로 진행합니다.)
우리 땅 걷기 40주년을 기념하여 2026년 민족의 분단을 지켜본 <DMZ 평화의 길>을 6월번 네 번째 주말인 26일에서 28일에 걷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의 장벽, 가장 쓸쓸하고 경이로운 풍경, 슬픔과 눈물이 겹겹이 쌓였으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길이 <DMZ 평화의 길>입니다.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평화의 길은 총 길이 524km로 총 35개의 코스로 이어져 있습니다.
강화, 김포, 고양, 파주,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그리고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평화의 길은 민족 분단의 슬픔이 아로새겨진 길이자 분단 이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생태문화의 보고입니다.
2026년 6월 26일(금요일)에 출발하여 28일(일요일)까지 이어질 두번 째 기행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임진강은 덕원군 풍상면 용포리 아호비령 두류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파주군 탄현면 성동리와 개풍군 임한면 정관리 사이에서 한강에 합류한다. 임진강은 본래 고구려 진임성으로 신라 경덕왕 때 임진으로 고쳐서 개성군 의영현이 되었다. 그 뒤 강을 건너는 나루를 임진도, 이 강을 임진강이라 부르게 된 듯하다. 또 이 강은 물줄기가 워낙 꾸불꾸불 돌면서 흐르기 때문에 표주박 같다는 호로아 뜨는 일곱 번 휘감아 돈다는 의미로 칠중하七重河라고도 불렀는데 이 물이 칠중성七重城(지금의 적성) 앞을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적성면 두지리는 지형이 두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두지리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곳 두지리에서 연천군 백학면 원당리로 넘어가는 나루가 두지나루고, 이곳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안겨서 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추억에 잠겨도 좋으리라.
마지막 석양빛을 깃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데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아~ 어데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평화의 길 11코스는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와 연천군 장남면의 원당리를 잇는 장남교에서 숭의전까지 이어지는 길로 임진강을 따라가는 길로 드디어 연천군에 접어들었다.
연천군의 고구려 때의 이름은 공목달현(工木達縣)이었다. 연천군이 마전군과 적성현 그리고 삭녕군의 대부분과 철원군의 일부를 받아들여 연천군으로 통합한 것은 1914년이다.
조선시대의 문신 홍귀달(洪貴達)은 연천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산은 첩첩이 돌아오고 물은 구불구불 흐르는데, 난간에 의지해 앉으니 눈이 훤하네. 책상머리에 문서 처리할 건 많은데, 산새 울음소리 정이 있는 듯하여라”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는 본래 장단군 고남면의 지역으로 원당이 있어서 이름 지어진 이곳에 돌다리가 있어서 석교 또는 돌다리가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평화의 길은 임진강을 따라가는 길로 모든 풍경이 한 컷 한 컷 잘 그린 한 폭의 풍경화다.
원당리를 지난 여정은 본래 적성군 북면의 지역으로 도 산천인 사미내가 흐르기 때문에 살여울, 또는 살울, 또는 전동이라고 불렀다.
원당리에서 가까운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제 56대 경순왕의 무덤이 있다.
본래 장단군 장서면의 지역이었다가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로 이름이 바뀐 이곳에 있는 경순왕릉은 사적 제244호로 지정되었다. 경순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부(傅)이다.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6대손이며, 이찬 효종(孝宗)의 아들이다. 927년에 왕이 되어 935년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바칠 때까지 9년간 재위하였으며 978년(경종 3)에 죽었다.
경순왕의 능은 오랫동안 잊혀져오다 조선시대에 찾게 되었다고 하며, 신라의 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 왕릉이다.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임진강 북쪽 가에 있는 호로고루성(瓠蘆古壘)은 현무암 단애(斷崖) 위에 있는 삼각형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재미산(財尾山)' 또는 '재미성(財尾城)'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은<삼국사기> 에서는 이 성터 부근의 임진강을 과천·호로강(瓠瀘江)·표강(瓢江)으로 일컬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이 지역에서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그것은 이 지역이 임진강 하류방면에서 배를 타지 않고 건널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으로서, 육로를 통해 개성 지역에서 서울 지역으로 가는 최단거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특히 임진강이 이곳에서 하류 쪽으로 가면서 강폭이 넓어지고 수심이 깊어지는데다 현무암대지를 따라 10m를 넘는 단애가 형성되어 있어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호로탄(瓠蘆灘)이라 하여 장단을 통해 개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이었으며,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주력 전차부대가 개성을 지나 문산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회하여 이곳에서 강을 건넌 지점이기도 하다.
숭의전에 얽힌 내력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고려 태조르 비롯한 임금들을 제양하던 숭의전崇義殿이 있다. 이곳 숭의전을 두고 <숭의전기>를 지은 사람이 중종 때에 마전군수를 지낸 박세무朴世茂였다.
고려 말에 천명은 이미 기울었고, 만심인 이미 떠나서 우리 태조 강헌대왕께서 하늘의 뜻을 따르고 백성들의 마음을 좇아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그해 첫 해에 개성의 왕씨들이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소홀하게 될까 염려했다. 이에 예조에 지시해 마전현 서쪽 5리 되는 지역에 있는 앙암사仰巖寺터에 사당을 세우도록 했다. 제사용 토지인 제전祭田 12결과 사당 관리인인 수복守僕 6호를 주어서 태조 신성왕. 혜종 의공왕. 성종 문의왕. 현종 원문왕. 문종. 인효왕. 원종 순효왕. 충렬왕. 공민왕의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
매년 봄. 가을로 임금님께서 향과 축문과 예물을 내려주고 경기의 여러 고을에서 그 제물을 바치도록 하고,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4월 15일, “윤방경 등이 왕씨들을 강화나루에 던져서 죽였다”. 4월 20일, “손흥종 등이 왕씨들을 거제도 앞바다에 던져서 죽였다”. 5월 26일, “먼저 왕조에서 왕씨 성을 받은 사람들은 다 본래의 성으로 고치도록 하고, 이밖의 왕씨는 먼저 왕조의 후손이 아니더라도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하였다”. 7월 16일, “임금이 죽은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법화경(法華經) 4벌을 금문자로 써서 각 절에 나눠주고 수시로 읽게 하였다.”.
그런 와중에 성이 바뀐 사람들이 많았다. 왕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벼슬을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쳐 숨어서 성명을 바꾸고 살아남았다. 마(馬)씨로, 전(田)씨로, 혹은 옥(玉)씨로 바꾸어 모두 왕자를 글자 속에 숨겼던 것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지난 뒤인 세종 때 와서야 비로소 왕순례(王循禮)라는 왕씨 성을 가진 한 사람을 찾아냈다. 선우(鮮于)씨를 기자전(箕子殿)의 전감으로 삼던 예에 의거하여 전답과 노복을 주고 전참봉(殿參奉)을 세습하여 그 제사를 받들게 하면서 말하기를 “왕씨를 없앤 것은 태조의 의사가 아니고 공신들의 모략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곳 미산면 동이리는 동부리와 이동리를 병합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인데, 이곳 임진강변에 임진강변에 삼국시대의 성인 당포성이 있다. 2006년 1월 2일 사적으로 지정된 이 성은 당포나루로 흘러 들어오는 당개 샛강과 임진강 본류 사이에 형성된 높이 약 13m의 삼각형 절벽 위 대지의 동쪽 입구를 가로막아 쌓은 성곽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의연하게 서서 지난 역사를 증언해 주는 이성이 처음 소개 된 것은 1994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서였다. 그 뒤 2003년 이후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성의 구조가 어느 정도 밝혀졌는데, 동쪽 성벽은 길이가 50m, 잔존높이가 약 6m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한다.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율탄이라고 부른 밤여울이 있었고, 이곳에서 한탄강이 임진강으로 접어든다.
강원도 철원의 정자연을 지나고 고석정과 순담을 거쳐 포천에 이른 한탄강이 연천군 전곡읍 남계리의 감포에서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것이다.
한탄강을 받아들인 임진강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이곳에서 임진강변을 따라가는 강변에 펼쳐진 길이 주상절리 길이다.
<동국여지승람>의 ‘산천‘ 조에 ’징파도澄波渡와 후근도가 있는데 후근도는 징파도와 양주의 한탄물이 이곳에서 합류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지원은 임진강변인 징파도 언덕에 있다‘ 하였던 징파도가 <택리지>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광복촌의 물이 이천 앞에 와서는 더욱 커져서 강이 된다. 매양 봄․여름에 물이 불어나면 세곡 실은 배를 바로 띄워서 서울로 실어 나른다. 강물이 안협에 이르러 고미탄 물과 합치고, 토산을 지나 삭령의 징파도(지금의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에 이르면 강이 맑고 산이 멀며, 경성사대부 집의 정자와 누각이 있다.”
이곳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의 징파나루에 얽힌 얘기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력萬曆 임진년 왜변이 일어났을 때 난리를 피하는 선비 집 여자들은 모두 징파나루에 이르러 다투어 배를 타고 건너니, 거리는 손을 뻗치면 닿을만한 곳이다. 그 때 어떤 부인이 계집종을 따라서 여기에 나왔으나 배에 미처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뱃사공이 부인의 손을 잡아당겨서 올리려고 하였다. 부인이 크게 통곡하면서 ‘내 손이 네 놈의 손에 욕을 당하였으니 내가 어찌 살겠는가?’하고 곧 물에 빠져죽었다. 그의 여종도 통곡하며 ‘내 상전이 이미 빠져 죽었으니 어떻게 차마 홀로 살겠는가?’하고 역시 물에 빠져 죽었다.” 외간 남자에게 손을 잡힌 것이 치욕이라고 여겼던 것이 그 당시 조선 아낙네들의 풍속이었다.
한편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의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을 통과한 곳에 조선 중기의 문장가인 미수 허목許穆이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살았던 은거당恩居堂이라는 마을이 있다.
연천군 왕징면의 북삼교를 지나서 군남 홍수조절지에 이르며 군남댐에 이른다.
연천국 군남면 선곡리에 있는 군남댐은 임진강 상류에 있는 댐으로 북한의 5일댐과 황강댐의 방류에 대비하기 위한 홍수조절 목적으로 2006년 10월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매년 반복되는 임진강의 홍수에 대비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인근의 수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다목적댐이다. 군남댐은 2010년 6월 30일 완공되어 7월부터 운용된 이 댐은 콘크리트로 건설되었으며 높이는 26m이며 길이는 658m이다.
파주 리비교에서 연천 군남홍수조절지까지 이어지는 평화의 길을 함께할 사람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1. 일시: 2026년 6월 26일(금요일) 6월 28일까지(일요일)
2. 출발 시간 및 장소: 서울 저녁 9시, 30분 양재역 12번 출구 서초구청 앞
전주 저녁 7시 전주 종합경기장 7시 10분 전주 월드컵 경기장 출발,
3. 참가비: 26만원
4. 어디로 가나요: 적성면 두지나루(적성강), 장남교, 경순왕릉, 호로고루 성지, 숭의전지, 당포성, 징파나루, 미수 허목묘,군남면 홍수조절지,
5, 강사, 신정일의 <신 택리지, 경기도>의 저자
6. 신청방법: 댓글로 신청하고 참가비 입금해야 완료
7. 참가비 입금계좌: 국민은행 898301-00-096924 , 우리 땅 걷기
8. 참가비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 5일 전 인지: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
(2) 행사일 4일전부터 3일전까지: 참가비 50%를 공제후 환불
(3) 행사일 1일전부터 당일까지(미참가 포함): 환불액 없음
위와 같이 행사 참여 취소 시 행사비 환불을 명심하시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회비를 입금하시고 대기자로 기다리셨다가 참여를 못하시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을 없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9. 문의전화: 010-9144-2564
10. 주의사항: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추신: 2026년 DMZ 평화의 길 일정표,
3회, 2026년 6월 26일에서 28일까지
4회, 2026년 7월 10일에서 12일까지.
5회, 2026년 8월 28일에서 30일까지
6회, 2026년 9월 18일에서 20일까지.
7회. 2026년 10월 23일에서 25일까지.
8회, 2026년 11월 27일에서 29일까지
9회, 2026년 12월 11일에서 1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