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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모임방

친정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작성자곰나루|작성시간23.11.21|조회수479 목록 댓글 14

대소신료들이 떼지어 날 겁박하는 것이냐

난 어진 임금이 아니다부덕한 임금이라 마음대로 한다

정승 1000명이 나와 말해봐라.

 그래도 난 굽히지 않는다.”

분명한 일은 임금 독단으로 한다.”

이 역시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의 말본새입니다

 

유교국가에서 무슨 불당을 짓겠다고

저런 험한 말을 내뱉으면서까지 고집했을까

이유가 있었습니다.

얼마(1446승하한 부인(소헌왕후 심씨·1395~1446)을 추모하려 했습니다

 

 소헌왕후는 기구한 여인이었음은 익히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상왕(태종)이 뒤집어씌운 역적죄 때문에

친정아버지(심온·1375~1418)가 억울하게 죽어갔습니다

 

이때(1418세종이 임금이었지만

군권을 휘두르던 상왕(태종)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처가가 멸문의 지경으로 몰렸지만 속수무책이었겠지요..

남편 세종으로서는

그런 부인의 가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다합니다

 

이에 세종은 석가의 일대기인 <석보상절>

이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월인천강지곡>을 지었고

불당까지 만들어 독실한 불교신자인 부인을 추모하려고 했습니다

 

임금 노릇 못해먹겠으니 선위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면서까지

불당건립을 강행한 세종의 독단에는

부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녹아있습니다

 

불당건립은 한 나라의 군주이기 전에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었기에 이렇듯

독단적으로 설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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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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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곰나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1 그렇습니다
  • 작성자아세(이민숙) | 작성시간 23.11.21 물러났으면 지켜봐야지
    뒤에서 휘두르는건 비겁한짓이지요.
    세종
    댓글 이모티콘
  • 답댓글 작성자곰나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1 세종을 위해서 외척에 시달리지 않도록 그리 한것이지요
  • 작성자더덕채취꾼 | 작성시간 23.11.21 저런 기개로 심온을 왜 못 구했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곰나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1.21 조선시대 풍습상 아버지를 겁박하지는 못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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