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들고 늙은 일이 아니라
정신의 성숙없이 그냥 육체만 늙어가는 그런 상태이다.
오늘은 머리를 자르고 싶어요 / 문정희
그늘이란,
목탁 속의 어둠 같은 것.
뻥 뚫린 고목의 내부에 서려 있는 어떤,
없음의 두께.
텅 빈 부재의 숨소리.
벌레 먹은 나뭇잎을 막 빠져나온 햇살이
아래 잎에 하염없이 부딪치다가
어쩔 수 없이 나무 밑에 내려놓는 것.
시인의 서랍 / 이정록
비야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누이의 발길을 돌려놓아라
새벽에 꿈결에 깨어 어 비가 오네
하고 미소 지으며 달콤한 잠 속에 빠지게 해라
비야 노동판을 전전하는 김 씨를 공치게 해라
무더운 여름 맨몸으로 햇빛과 맞서는 김 씨를
그 핑계로 하루 쉬게 해라
비야 내 단골집 철자의 가슴속에서도 내려라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꽁꽁 감추어둔
철자의 첫사랑을 데려다 주어라
비야 내려라 내려도 온종일 내려
세상 모든 애인들이 집에서 감자를 삶아 먹게 해라
비야 기왕에 왔으니 한 사흘은 가지 마라
그동안 세상 모든 짐은 달팽이가 져도 충분하게 해라.
새벽부터 내리는 비 / 김승강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