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운 그리스도는?(에베소서 4:19-20)

작성자정수국|작성시간13.07.05|조회수445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내가 배운 그리스도는?

베소서 4:19-20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본문 앞절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의 허망한 마음에 대해 묘사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총명이 어두워져서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들이 되어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감각 없는 자'라의 헬라어 동사 '아팔게오'(ἀπαλγέω)는 '~의, ~으로부터, ~과 떨어져서'라는 뜻을 가진 아포(
ἀπό)라는 말과 '똑똑한, 영리한'이라는 '알게오'(αλγέω, to smart)가 합성된 단어로 신약성경에서는 여기 한 곳에만 쓰인 단어입니다. 이 용어는 문자 그대로 '고통이나 슬픔의 감정이 그치다, 끝나다' '무감각해지다' '고통에 대해 굳은살이 박이다' '문제를 매우 침착하게 견디므로 그러한 감정이 지나갔다'라는 뜻을 갖고있으며, 이 단어는 18절에 쓰인 '마음이 굳어짐'과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이 단어는 더 이상 어떠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로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도덕이 무엇인지, 예의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관심도 없고 느낌도 없는 상태로, 누가 옆에서 죽어가도 파리 한 마리가 죽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1) 자신을 방탕에 방임한다
'자유'와 '방임'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받고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다 소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삶에 있어서 절제가 없는 이러한 상태가 바로 '방임'입니다.
그리고 '방탕'이라는 헬라어 '아셀게이아'(ἀσέλγεια)는 '음탕함, 선정적임'(lasciviousness), 까닭없음, 무자비함, 음란함'(wantonness), '아주 더러운, 추잡한'(filthy), '억제할 수 없는 욕망'(unbridled lust)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여러 군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인간들에게서 나타나는 악의 열매의 첫번째가 바로 이러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체의 일"에 대해 나열할 때에 시작되는 것들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입니다. 처음에 나오는 이 네 가지가 모두 육적인 음란한 상태를 말하는 단어들로, 얼마나 인간들이 육적인 음란을 버리지 못하면 이것을 네 번씩이나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기록했겠습니까? 따라서 '감각이 없는 자' 즉 '양심이 화인 맞아서 양심의 가책이 없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첫번째 증세가 바로 육적인 음란의 열매입니다. 그것을 즐기는 자들은 영생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들입니다.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lasciviousness)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2-2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wantonness)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lasciviousness)"(갈 5:19)
"너희가 음란(lasciviousness)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무법한 자의 음란(filthy)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벧후 2:7).

(2) 모든 더러운 것을 행한다
'더러운 것'(uncleanness)이라는 헬라어 '아카다르시아'(ἀκαθαρσία)는 앞에서 쓰인 '음란'과 같이 성적으로 부도덕한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모든'이라는 것이 앞에 붙어서 성적인 것을 비롯한 모든 윤리적으로 부도덕한 것을 말합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uncleanness)이 가득하도다"(마 23:2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uncleanness)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 1:24)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uncleanness)과 호색"(갈 5:19)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uncleanness)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uncleanness)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살전 2:3)

(3) 욕심을 갖고 행한다
'욕심'이라는 헬라어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는 '탐욕'(greedy desire to have more, covetousness)을 말합니다. 성경은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우상 숭배'를 가장 미워하시고 이러한 죄를 짓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떠한 것을 더 사랑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을 하나님은 분노하며 참지 못하시며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로 지켜야하는 십계명의 첫번째 두 계명이 바로 '우상 숭배'를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covetousness)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막 7:21-22)
"... 삼가 모든 탐심(covetousness)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covetousness),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롬 1:29)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covetousness)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idolatry)니라"(골 3:5)
특히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교회 안에서 자기의 탐욕의 배를 채우기 위해 목회자나 지도자가 되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으로서 양떼들을 미혹하는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pernicious ways)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covetousness)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merchandise)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1-)

이처럼 하나님이 없는 비기독교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은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삶입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다니면서 중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나 심지어 목회자까지도 이러한 마귀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여, 주여"하면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쫓고 병자를 고친다고 할지라도 즉 크리스천으로서 명성을 떨치며 살지라도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마음에 모신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든 육체적인 욕심과 인본주의적인 사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작정하고, 그 말씀대로 '거룩한 삶'을 택하여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uncleanness)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holiness)케 하심이니"(살전 4:7)

따라서 20절에서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전혀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삶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앞에 나열한 이방인들의 허망한 것들이 이방인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는 현상들이기 때문에 오죽하면 성경에서도 이방인들의 허망한 것들을 나열하면서 "너희는 이렇게 배우지 않았다"라고 말씀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말씀 앞에는 "그러나"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소유하지 않은 즉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만, "그러나 너희는" 이라고 하면서, 영생이 있는자와 영생이 없는자 즉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않은 자들을 대조시키며 비교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느라"라는 말의 배운다는 말은 이론적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수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제자로서 훈련을 받은 것과 같은 배움의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배운다는 것은 이론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모두 포함하는 말로써, 배워서 그리스도처럼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를 훈련시키셨던 3년간을 생각하면서, 신학교에서도 목사가 될 수 있는 신학대학원을 3년으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소한 3년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장에서는 '감독' 즉 오늘날의 목사와 장로들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의 자격에 대해서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오래해도 잘 모르는 것이 많은데, 이제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지도자 위치에 올려놓으면 스스로 교만해질 우려가 있고, 또 성경을 잘 몰라서 범하는 허물과 죄로 인해 사람들의 입에 가십거리를 줄 수 있어서 결국 교회에 먹칠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우리는, 겸손히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처럼 살기 위해 애를 써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가십거리를 삼지 말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어야만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최초로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말을 들은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너무나 닮은 말과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이유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정말로 그리스도와 닮았다라는 말을 하게 하고있습니까? 아니면, "왜 저 사람은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성경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지?"라는 의문을 심어줍니까?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가 이제는 더이상 죄악된 삶에 뒹굴지 말고, 그 늪에서 빠져나와서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러한 삶을 살고있지 못하다면, 그는 이방인과 같은 사람 즉 영생이 그 속에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향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울 수 있는 길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성경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를 배울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우고 그분만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그분의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모든 말씀을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때에는 반드시 핍박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핍박을 인내로서 잘 견디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또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너무나 악한 세상 속에서, 그리고 그 악함이 교회까지 물들어서 변질된 많은 교회 속에서 참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하며, 열심히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 자신을 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운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라는 것이며, 그들과 같은 생활을 했던 것을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지 그들과 똑같이 동화된 삶을 살거나, 회개했다가 다시 그들의 삶에 돌아가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2-17)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악한 세상속에서 저를 불러주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회개와 믿음을 통해 저희를 의롭다라고 칭해주심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로 삼아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희 교회 안에는 거듭나지 못하고 종교생활을 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 자신이 자기의 상태를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의 자녀이므로 그렇게 음란과 방탕과 탐욕 속에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지만, 자칭 하나님의 자녀이며 빛의 자녀라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만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사오니, 주여 그들도 거듭나서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도 과거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 즉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주님보다는 다른 것을 더 좋아했고, 주님의 말씀보다 제 생각이 더 중요했고, 제 경험과 지식이 더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저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진정으로 거듭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제 중심으로 살려고 했고, 제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중심으로만 살려고 노력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배운다고 하면서도 오늘날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다른 모습을 너무나 많이 가르치고 있어서 왜곡된 그리스도와 양념이 첨가된 말씀을 배우는 현실 속에 살고 있습니다.
주여, 오늘의 현실을 살고있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진실고 정결하고 흠이 없는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도 배우고 따라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진정으로 거듭난 삶이 무엇인지, 온유하고 겸손한 종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음란하고 더럽고 탐욕에 물들은 세상 속에서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잘 살 수 있도록 저와 저희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옵소서.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오늘도 잘 살므로 주께만 영광이 돌아가기를 소망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