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 (4) 아내들아, 남편을 경외하라
에베소서 5:31-33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4) 아내들아, 남편을 경외하라
본문 말씀은 부부관계를 말씀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되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인간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바로 한다고 하면서 인간 관계는 성경적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고르반'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인간관계를 잘 해야한다는 이유로, 인간관계에 중점을 두고 성경적이지 않은 세상의 방법대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전통과 생활양식 때문에 유교적 방법으로 인간관계를 맺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적이지 않고 유교적인 전통에 얽매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유교적 전통에서 벗어나야 하며 온전히 성경적으로 가족과 이웃간의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무조건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먼저 섬겨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종처럼 섬겨주라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자세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내가 7거지악에 하나라도 걸리면 집에서 쫓겨나지만, 성경은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므로 존귀하게 여기고 함께 복을 이어받을 자임을 명심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아무리 빗나가고 잘못하더라도 용서해주시고 가르치시고 양육하셔서 천국백성이 되도록 하신 것처럼 크리스천들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은 아내들에게 남편을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모든 여자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결혼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사별을 했거나 이혼을 했거나 별거상태에 있거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만약 이혼했거나 사별한 경우, 현재 남편이 없다고 해서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또한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앞으로의 결혼생활은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남편을 경외하지 못해서 이혼하게 되었다면, 깨달음이 없이 또다시 재혼을 하게 될 경우 첫번 결혼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1. 남편을 경외하라
성경은 아내들에게 남편을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경외한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막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가정에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를 주셔서 그러한 관계를 가정에서 실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즉 부모는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자녀를 돌보고, 자녀는 부모님을 하나님 아버지께 하듯이 순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고, 아내는 그러한 그리스도를 교회가 경외하고 복종한 것처럼 경외하도록 실습하는 현장으로 주신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매우 신성한 곳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신성시하지 않고 그저 잠이나 자고 배고픔을 채우는 하숙집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엄마나 아내를 하숙집 주인아줌마 정도로 생각해서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남편들은 돈을 벌어서 갖다주기 때문에 하숙집 주인 아줌마에게 하숙비를 줬으니까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청소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바라는 것처럼 아내를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피곤하거나 몸이 불편해서 밥이나 청소를 제대로 못할 경우에는 하숙집 아줌마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왜 지불한 댓가만큼 하지않느냐는 식으로 조목조목 따집니다. 내가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도와주려는 마음도 없고 지불한 만큼 받으려고만 합니다. 만약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면 그러한 자녀들도 엄마를 똑같이 하숙집 아줌마처럼 대하게 됩니다. 결국 그러한 가정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실습할 수 있는 현장으로 만들어주신 신성한 가정을 세상의 물질(돈)을 주고받아 관계가 형성된 지극히 세상적인 관계로 전락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남편을 두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돈을 지불한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숙집 아줌마의 역할을 잘 감당한다면 하숙집을 찾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그러한 집에 들어오려고 할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항상 따지기 좋아하고 감독자로서 행동보다 잔소리를 많이 하는 남편을 두었다고 할지라도 남편을 남편답게 섬겨주는 아내를 자녀들은 존경할 것이며, 세상 사람들도 칭찬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도 남편을 잡고 휘두르는 여자보다 남편을 존경해주는 여자를 칭찬합니다. 요즘 TV를 보면 부부가 함께 나와서 서로 상대방을 헐뜯는 프로그램까지 생겼습니다. 특히 어느 개그맨부부는 사람을 웃기려는 의도에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아내가 남편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프로그램은 부부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을 보는 아이들의 마음은 스폰지같아서 아무 여과장치 없이 그러한 말들이 그대로 스며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부부관계가 더욱더 엉망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듣고 본 것들은 자연스럽게 머리에 스며들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그런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부부간에 갈등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Talk show에서는 인상이 강해보이는 여배우가 자기 남편을 깎듯이 대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남편을 존경하는 태도를 보면서 그녀의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를 칭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여권신장'이라는 것으로 인해 여자들이 너무나 기세가 등등해져서 남편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우습게 본다고 해서 자기가 올라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지식적으로 수준이 떨어지고 여러 면에서 모자른 점이 보여도 남편을 왕으로 대접해주는 사람은 자신이 왕후의 위치에 있지만, 남편이 아무리 똑똑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할지라도 남편을 별볼일없는 머슴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도 머슴의 아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여자들에게 남편을 경외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남편을 높여주기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아내를 높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을 높여주다보면 결국 자신이 남편과 한 몸이므로 높여져 있지만, 남편을 낮추다보면 결국 자신도 저 밑바닥에 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 아내들이 남편을 향해 사용하는 단어들을 보면 기가막힌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남편에게 반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야!" "너"라는 말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남편을 보면 남편들이 아내에게 "야!, 너가~"라고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남편들이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아무렇게나 막 대하다보니, 머리인 남편의 지시에 따르던 아내는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존경하며 살려고 하면서도 항상 듣던 말이 그런 말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다보니 이젠 부부간에 서로가 존경이나 존귀하게 여긴다라는 단어는 아예 사라지고 예절교육을 받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자라서 배우지못한 사람들처럼 "야~, 너가"라는 말이 평상시 언어로 자리를 잡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이 결혼하면 또다시 그러한 배우지못한(부모에게서 배운) 언어습관대로 살아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아무리 못난 아내일지라도 남편이 아내에게 존중하는 언어를 써줄 경우에는 아내도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남편을 존경하지 말라고 해고 존경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아무리 섬겨주고 존경하고 따를지라도 윗 사람이 그것을 당연히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고 아무런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윗 사람이 아랫사람을 존중히 여겨준다면 그 관계는 영원히 아름다운 관계로 지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교회의 여선교회모임에서 어떤 집사님이 세상 남자들이 쓰는 속어 중에서도 정말 더러운 속어를 말하면서 자신도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것을 듣는 우리도 기가막혀서 한동안 웃음으로 그 어색함을 마무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여집사님은 "어머나! 이건 우리 남편이 맨날 하던 말인데, 나도 모르게 나왔네. 나도 오늘 처음 해본 말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맨날 이런 소리만 듣고 살아요. 어쩜좋아!"라며 무척 당황해 했습니다. 그분은 평소에는 여성스럽고 될수있는대로 말을 조심하려고 애쓰는 분이었는데, 그 한 순간에 가정의 모든 것이 폭로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집안에서 남편에게 어떠한 대접을 받고 살고있는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신성한 가정에서 아무말이나 내뱉으면서 "찬송가에서도 내 모습 이대로 받아달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잔말하지 말고, 무조건 내 말에 복종이나 해! 나를 고치려고 하지마! 성경에서도 남자를 가르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한다면, 그러한 가정은 복과 반대로 저주받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결과로 받은 저주가 남편이 아내를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저주로부터 해방되어 복을 받는 비결을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한다면,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랑해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말이 아니라 복을 받을 것인지, 저주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는 매우 무서운 말씀입니다.
따라서 아내가 남편을 경외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자기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먼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먼저 죽으심으로 교회가 생겼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경외하게 된 것처럼, 남편들도 먼저 아내를 위해 죽어보라는 말입니다.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살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남자들이 아내 없이 자기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 몸인 아내가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이 자기만 하나님 잘 믿고, 자기만 마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 몸의 반쪽을 잘라버립니다. 만약 실제로 우리 몸의 반쪽을 잘라버린다고 한다면 그 남은 반쪽이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얼마 못가서 죽어버리던가 평생을 장애자로 살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남편을 경외하고 존경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편이 자신을 죽여서 아내를 사랑하는 사랑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자연의 순리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하여 쫓겨날 때에도 하나님은 죽음이 없던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살리기 위하여 동물을 죽여서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서 내보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했을지라도 그냥 내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귀하게 감싸주시며 사랑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먼저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먼저 찾아오셨기에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아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이 먼저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무언가 희생의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희생이 없는 경외와 존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존경할만한 어떠한 일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듣고 존경하게 되는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을 천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 사람의 언행이 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편된 자들은, 자신의 언행이 아내와 자녀들 앞에서 존경을 받을만한지 항상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천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들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려고 애쓰며 사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 중에 하나님은 존경하고 경외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를 존경하며 마귀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귀를 숭배하는 자들도 마귀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그의 힘을 이용하여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이지, 세상 사람들은 마귀와 귀신을 혐오합니다. 따라서 아내가 남편을 경외할 수 있도록 남편들도 이렇게 하나님과 그리스도처럼 존경받고 경외받을 만한 말과 행동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2.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을 경외하는 문제에서는 먼저 남편이 아내를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하지만, 복종의 문제에서는 다릅니다. 성경은 피차 복종하라고 말씀하면서 아내를 향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아무리 존경할 수 없는 남편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집안이 조용해지기 때문입니다. 서로 기싸움을 하는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오늘날 결혼하는 신혼부부에게 사람들은 먼저 기선을 제압하라고 합니다. 처음에 기싸움에서 지면 평생 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결혼하면서부터 서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연애 때에는 잘 양보하던 것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특히 악한 시부모들은 아들에게 며느리를 휘어잡고 살라고 끊임없이 충동질을 합니다. 그런데 마마보이나 영적 분별력이 없는 남자들은 그러한 말에 휘둘려서 순종하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하여 아내를 괴롭힙니다. 만약 그 말에 따르지 않으면 계속해서 부모와 싸우며 불화가 생기기 때문에 차라리 아내를 괴롭히고 부모와 편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도 아내는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싸워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남편과 살아가는 아내에게 있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즉 아직 젖을 먹는 어린아이에게는 젖을 주면 되듯이 존경과 상관이 없는 남편을 상대할 때에는 거기에 걸맞게 대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젖을 달라는 어린아이에게 왜 내가 존경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느냐라고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젖을 달라고 하면 젖을 주고, 기저귀가 축축해서 울고있으면 기저귀를 갈아주면 되는 것처럼 아직 거룩한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남편을 대할 때에는 그의 필요에 따라 복종해주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들이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악한 남편이며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남편일지라도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주는 행위를 볼 때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믿게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벧전 3:1-2).반면에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인 남편이라면 그러한 남편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인데 아내는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이 연약한 경우도 많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특징은 순종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남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듯이, 믿음이 없는 여자는 신실한 남편의 말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의무입니다. 즉 아내에게 있어서 복종은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에는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서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세워지는 것이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의무를 태만히 할 경우에는 질서가 흐트러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여권운동으로 인하여 여자들의 기가 너무 세져서 여자들이 남자들 위에 올라서서 군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법과 반대로 세상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한 세상 속에 물들지 말고 크리스천이라고 한다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질서에 순종하며 살라고 합니다. 태초에 하와의 범죄로 인해 여자들은 남편을 사모하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즉 이것은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사모한다는 말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돕는 베필로서 남편을 이끌어주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것을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즉 남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을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사모한다'라는 말은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너무나 하고싶은 숨은 소원'을 말합니다. 이 말은 창세기 4장7절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라고 하실 때에 '소원'이라는 말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이 무엇을 하고싶은 소원이 있을 때에 그 소원을 남편이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무엇을 하고싶어도 남편의 허락이 없으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내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은 창세기에서 아담에서 죄의 결과를 책임지라는 명령과 같은 말입니다. 즉 집안에서의 모든 책임은 남자에게 있으므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또 하와처럼 남편을 죄의 길로 인도할 경우에는 그 결과를 남자가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죄를 짓도록 원인을 제공한 마귀와 원수가 되었지만(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됨), 아담은 죄의 결과인 모든 환경이 저주를 받아 땀을 흘려야만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잘못 만나면 평생 고생한다는 세상 말도 다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순종과 복종은 좀 의미가 다릅니다. 자녀에게는 순종(obey)하라고 했지만, 아내에게는 복종(submit)하라고 했습니다. 순종은 기분 좋게 따르는 것이고 복종은 기분이 나빠도 따르는 것입니다. 즉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기분나빠하면 안 되고 무조건 기쁘게 따라야 하지만, 아내는 이미 성인이므로 남편의 말에 기분 나쁜 것도 있을 수 있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으므로 무조건 순종하지 않게 됩니다. 먼저 그것이 상식적으로 또는 신앙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남편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은 크리스천 아내의 행동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과 반대로 나가는 남편에게는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성경은 범사에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죄를 짓지않는 범위에서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조언을 듣지 않고 결정을 한다면, 그것이 죄를 짓는 일이 아니라면 그 일에 대해서 따라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복종이라는 것은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죽여서 그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성경은 첫째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주셨기 때문이며, 둘째로 여자가 더 유혹에 약하여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며, 셋째로 자기를 낳아서 키워주신 부모님께 자녀가 순종하듯, 아내는 남편이 낳아서 보호해주고 양육해주는 부모와 같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 11:8-9)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8-29).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전 2:14)
교회에는 다니지만, 남편의 믿음이 연약하거나 또는 불신자 남편과 살 경우에 남편의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남편을 잘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보통 참모진들이 리더보다 더 똑똑하고 지혜로와야 그 리더가 존경을 받을 수 있지만, 리더보다 참모진들이 별볼일 없을 경우에 그 리더는 명예를 얻지 못합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때 저희 대학교의 여학생회장으로 출마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와 친한 친구들을 참모진으로 세웠는데, 사실 제가 저희 과에서 1등을 하던터라 모두가 제가 원하는 바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하려고 모여도 그렇다할 안건을 내놓는 친구도 없었고 또 여학생들이라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여학생회장에 출마하는 일이지만, 참모진을 남학생들로 다시 구성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학생들은 에너지와 기동성이 있고 명예욕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학생들로 참모진을 구성하고 나니, 그제서야 뭔가 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리더가 성공하려면 지혜롭고 총명하고 순발력과 기동성이 있으면서도 지구력을 갖춘 부지런한 참모진의 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돕는 베필인 아내는 남편보다 훨씬 지혜로와야 하며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을 세워줄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총명한 여비서들이 사장의 모든 것을 세심히 챙겨줄 때에 사장이 마음놓고 편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총명한 여자를 비서로 세우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보면, 대체적으로 큰 일은 지혜로운 여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지혜롭게 만드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 지혜로 선악과를 남편에게 먹이는 데 사용하지 말고, 참된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연약한 여자로 태어났지만, 의지할 수 있는 가정을 주셔서 그 가정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이렇게 연약하게 만드신 것은 남자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저의 연약함이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되게 하심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과거에는 저의 성경적 지식의 부족함과 믿음의 부족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저의 잘못으로 인해 가정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믿음으로 살려고 했는데 저는 그런 남편이 싫었습니다.
저는 신앙으로 살려고 하는데, 너무나 세상적인 남편으로 인해 결코 그를 존경할 수도, 복종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내를 배우며 감정을 절제하며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찬송하며 감사하며 살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우울하게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느껴보라고 하시고, 주님과의 교회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쳐주시려고 했는데, 저는 그것을 느끼기는 커녕 그저 저 살기 바빴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제가 원하는 대로 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런 말씀은 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먼저 존경할만 해야 복종을 하지... 라는 태도를 갖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하라고 하시는데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와서 보니 제가 믿음이 없거나 연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었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가정과 가족을 왜 주셨는지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며, 하늘의 신령한 지혜를 갖고 순간 순간 영생을 얻은 사람답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저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체험하며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남편의 말에 토달지 말고, 일일이 잔소리하지 않고, 죄를 짓는 일이 아니라면 무조건 남편의 말씀에 복종하며 살아감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저희 가정에서부터 이루며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Rev.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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