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를 갖되 권위주의자가 되지말라(엡 6:9)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3.09.24|조회수412 목록 댓글 2

오늘의 말씀: 권위(authority)를 갖되 권위주의자(authoritarian)가 되지말라

에베소서 6:9

9. 상전들아(masters!)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본절에서 "이와 같이 하고"라는 말씀은 종들이 상전을 대할 때 두렵고 떨림으로 성실하게 순종하며 눈가림으로 아웅하지 말며,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단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권면했던 앞의 말씀과 똑같이 상전들도 종들이나 아랫 사람을 대할 때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특히 아랫 사람이나 종들에게 "공갈을 그치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에서 '공갈(threatening)'이라는 헬라어 '아파일레 ἀπειλή'는 '협박' 또는 '위협'이라는 뜻입니다. 

(1) 권위주의자가 되어 아랫사람에게 위협하지 마라
아랫 사람이나 종이라고 해서 정당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대하거나 윽박지르며 명령조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부드럽게 하더라도 윗 사람은 윗 사람이기 때문에 기본이 되어있는 사람은 조용히 웃으면서 말해도 다 알아 듣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윗 사람을 존경합니다.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2-17)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마 10:24)
아랫 사람을 섬겨준다고 할지라도 위 아래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갓난 아기의 수발을 들어준다고 해서 엄마가 그 아기의 종이 아닌 것처럼, 아무리 엄마가 아기를 보살펴준다고 할지라도 엄마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상하 구분이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사랑으로 아랫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이상하게도 위에 올라가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이 싹트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조금만 높여주면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기고만장해집니다. 그래서 조금 윗자리에 앉혀주면,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아랫 사람들을 자신의 종이나 된 것처럼 무시하기도 하며 무조건 복종을 강요합니다. 윗 사람은 권위를 가져야 하지만, 권위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상하구분이 없는 사람 즉 자기의 의(ego)가 강한 사람이 위로 올라가게 되면 권위주의자가 되어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집에서도 가족을 섬기기 보다는 가족들이 자신을 섬기기를 바라며 자신은 감시관이 되어 잘못한 것을 지적하기 바쁩니다. 설령 자기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것을 반드시 아랫 사람들이 알아주어야 속이 풀립니다. 그래서 자기 입으로 자기가 한 일들을 자랑하여 칭찬을 받아냅니다. 만약 자랑을 하는 데도 칭찬하지 않으면 화가 나서  자기의 속이 풀릴 때까지 아랫 사람들의 잘못하는 부분들을 빈정거리며 못살게 굽니다. 또한 자기보다 아랫 사람들이 일을 못할 경우에는, 그들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서 가르쳐 이끌려고 하지 않고, "왜 못하느냐?"라며 그들의 인격을 공격합니다. 이처럼 '자아'가 강한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보지 못할 것을 보았거나 듣지 못할 것을 들었거나 어떤 상처로 인하여 자신의 방어벽을 굳게 쌓으면서 그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용서하지 못하고) 마음 깊이 뿌리를 내려서 생긴 것이므로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이(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운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람을 우리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 '교만한 사람' '열등감 덩어리' '권위주의자' '파쇼(fascio)' 등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에베소서에서 부르고 있는 '상전'이나 '종'은 세상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인 상전과 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주 안에서 거듭난 형제 자매를 말합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의 기본 정신인 '용서'를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함을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며 비난하는 것은 그를 용납(accept, admit, tolerate, suffer, forbear)하거나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만약 그를 사랑하며 용서하는 마음이 있다면,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그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기의 의를 높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권력이나 물질을 갖고 사람들에게 공갈 협박을 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권력과 물질로 가난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가난해지면 부자를 찾아가서 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굽신거리게 됩니다. 그때 돈이 있는 이들은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자기가 무슨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긍휼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같은 동족 즉 하나님의 선민들끼리 돈이 없어서 종으로 들어올 때에 그에게 엄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찌니라... 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군과 같이 여기고 너의 목전에서 엄하게 부리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군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군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25:46, 53, 55).

그러므로 거듭난 크리스천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청지기로서 허락하신 자신의 물질과 권력과 기타 모든 것들을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섬겨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불의한 종'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나옵니다. 불의한 종이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만약 1백 달러를 빚졌다면 50달러로 탕감해 주고, 20 달러를 빚졌다면 10달러로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주인에게서 쫓겨나면 어딘가 가야할 텐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자기의 은혜를 받은 이들이 자기를 환영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본 주인은 청지기가 지혜롭게 행한 것을 보며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은혜를 베풀며 사는 삶이지, 나의 만족만을 위해 사람들을 지배하며 사는 삶이 아닙니다. 따라서 골로새서 4장1절에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 너희에게도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 즉 우리가 아무리 대통령과 사장과 회장과 교수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위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하나님께서 그대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찌니라"(잠 24:29).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왔나니 너의 행한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오바댜 1:15)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1-8)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상전이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금도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을 명심하면서 정직한 마음을 갖고 매사에 겸손히 성실을 다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3-5)

(2) 권위를 갖고 상하 구분을 확실히 하라
'권위
(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완전히 다릅니다. '권위'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휘력과 통솔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어떤 일을 할 때, 이러한 권위를 내세워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열심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섬겨줄 때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며 그의 말에 따르게 됩니다. 즉 이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 권위를 가지려고 할 필요가 없이 사람들에 의해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에게 "내가 지도자니까 나를 따르라"라고 외쳐도 그가 폭력적이며 희생정신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그의 힘과 권력 때문에 그 앞에서 복종하지만, 아무도 그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권위주의를 버리고 권위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희생정신과 섬김의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 단점을 지적하라면, 위아래 구분이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아랫 사람들에게 너무 잘 해주다 보면, 분수를 모르고 위아래 구분없이 행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청지기로서 잘 다스려보라고 모든 것을 믿고 맡기셨지만, 막상 청지기로서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가 주인인 줄로 착각하여 하나님 자리에 앉고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되고싶은 욕망이 생겨서 자신도 모르게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랫 사람이 임의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자기가 주인행세를 하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망각할 채 때로는 오히려 윗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청종치 아니함이니라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체 하리라"(잠 29:19, 21)라고 경고합니다. 따라서 아랫 사람을 대할 때에는 적당한 경고와 교훈과 책망을 잘 구비하여 대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민 16:28)

상하 구분을 확실히 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종된 인간의 관계를 확실히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질서 정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만들어진 교회 역시 질서대로 이끌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 따라서 아랫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동시에 상하 구분은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아랫 사람들이 윗 사람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교회 안에서도 사랑만 강조하다보니 위아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목사님에게 절대로 음식을 갖다 드리지 마라. 버릇 나빠진다"라며 아무도 목사님을 섬기지 못하게 한 것을 자랑합니다. 또 어떤 교회는 "목사, 장로, 집사의 호칭을 다 없애고 우리는 형제, 자매로만 부릅니다"라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 창피한 것입니다. 이는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하나입니다. 피차 섬기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교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섬겨야 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어떻게 섬겨야되는 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다보니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무지한 교인들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또는 그러한 현상들을 보며 '나는 사랑이 많은 목사다'라고 말하며 그들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방치해두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 교인들은 하나님조차도 자신들이 섬길 대상으로 여기지 못하고 자기들을 위해 시종들 종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에도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어야만 사랑의 하나님이고, 자기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금방 "어떻게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느냐"라며 불평과 원망을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지만, 성경 한 구절만 떼어서 적용하다가는 진리와 멀어져서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마귀의 종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교회나 가정이나 사회 안에서 질서를 위하여 상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인격적인 면에서는 항상 평등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의 상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보다 못하거나 아래에 있거나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엄하게 하지 말고 사랑으로 용납하며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는대로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그대로 보응하실 것임을 잊지 맙시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처럼 사람의 중심을 바라보며 그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낮은 이땅의 죄인인 저를 구박하거나 천대하지 않으시고 주의 종으로 삼아주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또한 종의 신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입양시켜 주시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 저는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살 때가 참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윗 분이 엄연히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제 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살 때가 무척 많았습니다.
저보다 어리고 낮고 못 배웠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제 지시를 따르도록 강요할 때가 있었고,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도 모르냐고 그의 인격을 공격할 때도 많았습니다.
제 위치가 조금이라도 올라가거나 제 위치가 정립이 되면, 저도 모르게 섬기기보다는 자꾸만 그들을 가르치려고만 했습니다. 
때로는 위아래도 없이 윗 사람이 제 맘에 들지 않고, 제 상식과 다르게 행동하면 그것을 참지 못하고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갔습니다. 제 생각만이 맞다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충성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뜻을 들어주지 않으면 저의 충성심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답답해서 다른 사람들과 당을 지어 윗 사람 흉을 보며 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제 답답함을 풀기 위하여 끊임없이 제 주장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제가 가장 윗 사람인 것처럼,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고싶었던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제가 '항상 옳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는 생각이 옳고, 제가 알고있는 지식만이 옳다라고 생각했기에, 저와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내 것을 강요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지... 그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은 제 상처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치유받기를 거절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상처라고 안고있는 것이 바로 용서하지 못함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 잘못은 용서받기를 원하며 다른 이들이 저를 용납하여 받아주기를 원하면서도, 저 자신은 다른 이들의 실수조차 눈감아주는 것을 거절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죄인을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저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주님의 용서하심처럼 다른 이들을 용서하며 용납하며 살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상하구분을 철저히 하되 사랑과 섬김의 자세로 살아가는 제가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제가 아래에 있으면 윗사람을 하나님 섬기듯 겸손히 단 마음으로 잘 섬기게 도와주시고, 제가 위에 있으면 아랫 사람을 교훈하며 책망하며 바르게 하도록 예수님의 마음인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잘 가르치며 이끌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제 상전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저를 지켜보고 계심을 생각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고 겸손히 하루를 살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께서만 상전이심을 제 삶을 통해 나타내어 모든 영광이 주님께만 돌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Rev.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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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응주 | 작성시간 13.09.25 아멘! 사랑과 섬김의 자세로 권위주의자가 아닌 권위있는 품격있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 작성자김수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9.25 믿음대로 되리라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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