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여정(The Journey of Salvation)(요9장)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3.10.04|조회수69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구원의 여정(The Journey of Salvation)                                                            

 
요한복음 9:1~14, 24-25, 35-41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자기오니이까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그와 비슷하다” 하거늘제 말은 내가 그로라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저희가 전에 소경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24.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내답하여 가로되 주여그가 누구시오니이까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가로되 주여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한복음 8장에서는 예수께서 "내가 빛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에 오늘 본문인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빛이신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때부터 소경된 를 찾아가셔서 그의 어두운 눈을 뜨게 하심으로  빛이신 예수님을 밝혀주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이유는 병을 고치거나 기적을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진정으로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구원자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에덴동산의 아담과 비교할 때 소경(blind)’이라는 것은 저주의 상태 즉 지옥이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왜냐하면천국은 아픔도 고통도 어둠도 없고 빛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계 22:5)
 
1절을 보면, ‘ 때부터 소경된 가 나옵니다이는 원죄를 갖고 태어나서 영적인 눈이  모든 인간을 말합니다.즉 구원받기 전의 모든 사람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생수이며 생명의 떡’이고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무리 가르쳐주셔도 유대인들이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귀신들렸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 때부터 소경된 '를 찾아오셔서 직접 보여주셨던 겁니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상태가 어떤 상태입니까그 상태는 아무도 예수님을 찾아갈 수도 없고스스로 예수님께 나왔다고 하지만그것도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마음 속에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먼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소경 영적 어두움 속에 있는 죄인을 대표하는 것이며, ‘예수님 창조하기 전혼돈 속에 있는 우리를 빛으로 찾아오셔서 구원하시며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우리 인생은 모두 죄속에 빠져서 본문에 나오는 거지처럼 먹고 살기위해 구걸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우리는 이력서를 내밀면서 우리를 써달라고 구걸합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대통령이나 국회위원이 되겠다고 얼마나 사람들 앞에서 자기 피알을 하면서 자기를 써달라고 구걸합니까? 이것이 바로 태어날 때부터 거지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거지로 태어났고또한 영적으로 장님이 되어서 태어난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만구걸하던 인생에서 베푸는 인생으로 바뀐다는 말입니다영적으로 눈을 뜨지 못하는 한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눈뜬 장님과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다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지 소경은 바로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본문을 읽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말씀으로 치유하지 않으시고땅에 침을 뱉어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바르셨습니다.왜 침이 뭍은 진흙을 그의 눈에 발랐을까요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바르신 이유는 씻기 위해서입니다. 눈이 고침을 받아야 할 곳이므로 그곳에 덕지덕지 진흙을 발라주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면 눈이 보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더러운 곳을 지적하시며 순종하면 낫고, 불순종하면 고침을 받아야 할 곳에 진흙이 붙어서 사람들에게 더욱 손가락질만 받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씻으러 가는 것과 씻는 것은 예수님이 해주지 않으시고 그가 스스로 가서 씻고 오라고 하십니다. 즉 정말로 고침을 받고 싶으면 예수님께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의지를 갖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혼자 걸어가서 혼자 씻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어디가 고침을 받아야 할지 확실하게 지적해 주셨으면, 그 다음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소경의 몫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결코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나 티끌’이라는 말 '죽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만드셨지만, 생기를 불어넣기 전까지는 죽어있었습니다. 또한 아담이 죄를 지은 다음에 받은 저주가 "흙으로 돌아가라" 즉 "죽으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흙'이나 '티끌'이라는 말은 죽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עָפָר 아파르)을 먹을지니라"( 3:14)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עָפָר 아파르)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이라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אֶרֶץ 에레츠:땅)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7:13)

"그들이 뱀처럼 티끌(dust, עָפָר 아파르) 핥으며 (אֶרֶץ 에레츠) 기는 벌레처럼 떨며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미가 7:17)

실로암(Siloam, Σιλωάμ) (느 3:15(셀라), 사 8:6(실로아), S(h)iloah, שִׁלֹחַ) 보냄을 받았다(sent)는 뜻입니다이 뜻이 무엇입니까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라는 말입니다그래서 보냄을 받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생수이시므로 그분의 침을 영적으로 죽어있는 '흙'과 같은 우리에게 섞어서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침이 마른 흙에 들어가서 진흙(clay)이 되었습니다(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심: 겔 37장). 흙이나 먼지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진흙은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무언가 만들 수 있는 재료(which potters uses)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재창조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죽어있는 우리들 속에 몸소 들어오신 것임(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침을 흙에 뱉어서 진흙으로 만들고 그것을 어둠속에 있는 소경의 눈에 발라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처럼 다시 창조하실 것(거듭남)과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하심으로 참된 안식 즉 하늘나라는 어둠이 없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예수님을 모르며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소경과 같은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진흙을 발라 주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에 순종하여 이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순종하여 가서 씻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같이 예수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세상 끝까지 우리를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시고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보내시는 분입니다그런데보내시기 전에 우리에게 더러운 흙을 덕지덕지 붙여서 보내십니다그리고 사역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서 붙여놓으신 그것을 씻으라고 하십니다즉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회개하여 어둠 속에서 더이상 헤메지 말고 밝은 빛 속에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더이상 거지처럼 구걸하지 말고 이제는 베풀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실로암은 기혼 시냇물줄기를 따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곳입니다그런 곳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덕지덕지 붙여놓은 더러운 것들을 스스로 씻으라고 하십니다스스로 정결케 되도록 회개를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씻으라고 하셨을까요? 회개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나는 진흙과 같은 토기장이의 손에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하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을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낮은 모습으로 보냄을 받아오신 것처럼우리도 실로암과 같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의 저주받았던 것을 깨끗이 씻으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거듭나지 못한 이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방법은, 가장 낮은 곳까지 스스로 내려가서 낮아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면여러분에게 장님으로도 부족해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더 더럽고 추악하게 이것저것 붙여놓으신 것들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주위에 영적으로 눈을 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그가 인도해 주는대로 실로암이라는 곳까지 가서 낮아질대로 낮아져서 그곳에서 스스로 씻으라는 말씀입니다씻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해야하는 일입니다씻는 것까지 다른 이들이나 예수님께 부탁할 수 없습니다.
 
 8:15을 보면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합니다여기에서 인내라는 말이 나오는데이것은 내가 열심히 잘 참아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의 참 뜻은 내가 참는 것이 아니라성령께서 내안에 거주하실 때에 할 수 있는 열매이기 때문에내가 열심히 참는 것이 아니라고통과 슬픔이 많은 이세상에 살면서 즉 고난을 받으면서 하늘의 것이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고난과 인내의 연속입니다예수님께서 때로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시지만이렇게 우리가 느끼기에 더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만드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뭐가 뭍어야 씻지그렇지 않으면 씻지를 않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언가를 뭍혀주시는데죄의 상징인 더러운 티끌에다가 생수이신 예수님의 침을 함께 섞어서 뭍혀주십니다생수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비로소 믿음을 갖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우리에게 씻어야 할 것을 성경 말씀으로 가르쳐주신다는 말입니다어디가 더러운 곳인지를 예수님의 침으로 발라서(성경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씻어야하는지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셨을까요? "너는 소경이다"라는 것을 말씀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면 그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니, 당신 미쳤어? 왜 멀쩡한 내 눈에 이렇게 지저분한 것을 발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눈에 들어가서 불편해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있는 사람은 무엇을 발라도 "나를 고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침을 뱉아서 만든 것인지, 귀한 약초로 만든 것인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모릅니다. 모르니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소경이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인식할 때에야 예수님께서 우리 몸에 손을 대실 수 있습니다. 멀쩡한 사람은 절대로 자기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본 것을 자기가 판단하므로 자기 생각에 틀렸다라고 생각이 들면 절대로 자기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그렇게 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너희들도 이렇게 흙과 같은 존재이지만, 아무 쓸모없는 흙 속에 내가 들어가야만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단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만지심을 받은 소경은, 예수님께서 실로암으로 보내자 그곳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는 그곳까지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왜 나를 실로암으로 보내셨을까?" "아~ 그렇구나. 나에게 소명을 주시는 것이구나!" "나에게 밝은 세상에서 살라고 부르시는구나(calling)!". 그리고 씻은 뒤에 앞을 보게 되었을 때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자기를 밝은 세상인 빛가운데로 인도하신 그분을 만나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분이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싶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소명(calling)을 받은 사람은 자신을 부르신 그 부르심을 깨닫는 순간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명감이 생기면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그곳에 가게되는 것입니다. 즉 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를 두번 째 불러서 물어보자, 그는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가 눈을 뜨고 빛 가운데에 거하게 되자, 그는 사람들 앞에서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즉 죄인으로 어둠가운데 있다가 지금은 어둠 가운데에서 구원받아 빛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뒤에 바리새인들에게 그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 보냄을 받은 그는 '구원'에 대해 증거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소명)을 받아 구원을 받았고, 또한 사역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는 몰랐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라고 물어보았고 바리새인들은 그 말을 듣자 그에게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도 잘 모르면서 자기를 욕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처럼 소명을 받고 사명감을 깨달은 사람은 비록 예수님에 대해 잘 몰라도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눈 앞에 찾아오셨는데도 그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그의 눈을 뜨게 해준 분이 앞에 계신데도 그분이 누군지도 몰랐고예수님이 스스로 말씀해주시니까 그제서야 믿겠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처음에 구원을 받아서 영적으로 눈은 떴지만예수님이 누구이신지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전혀 모릅니다. 우리는 갓난아기를 사람이라고는 말하지만사실 갓난 아기는 사람의 구실을 전혀 못합니다이와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그래서 아기가 성장하도록 부모님이 젖을 먹이고 이유식을 하며 걸음마와 글자를 가르쳐주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면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그이다라고 친히 찾아와서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35절을 보면,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 3:14에서 “광야에서 뱀을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와  10:45에서 “인자의  것은 섬기려함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고 하신 것처럼 '인자'라는 말을 통해 십자가를 통한 구속을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내가 심판하러  세상에 왔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그렇다면심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고보는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심판이라고 합니다. 심판이라는 것은 반드시 구원이 동반됩니다. 심판의 날은 구원의 날이기도 합니다. 가라지는 심판받지만, 알곡들은 구원을 받는 날이기 떄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심판날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아 마땅한 영적 소경들을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심판을 받으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영적으로 소경인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을 받으심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뀌는 대속의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경이 눈을  다음부터 점점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며 알아가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자 그는 결국 유대인들로부터 출교를 당합니다부모님도 자기들이 잘못될까봐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가 장성했으니 그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원래 부모라면 자기가 잘못되더라도 자식을 보살피는 것이 정상이지만, 육체의 부모는 이렇게 자기가 살기 위해 자식을 버릴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의 부모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 23:9)
 
결국 부모까지 외면하자그를 제일 먼저 찾아온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그래서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했던 사람이 이제는 "주여제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장님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 예수님에 대해 표현하는 것은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예수라 하는  사람"(11) "선지자"(17) "하나님으로부터  "(33) "주님"(퀴리오스 38).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거룩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고 쫓겨나게 되어있습니;따라서이렇게 유대교사람들처럼 교회에 다니며 중직을 맡고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을 질투해서 가만 두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향해 너희 아비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마귀라고 했던 것입니다.
 
요즘도 무엇을 보여주어야만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그런데 아무리 보여주어도 이렇게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오히려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을 내쫓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게 자꾸만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누룩'이라고말씀합니다그러므로 자꾸만 보여달라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인간의 구원은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해서 얻을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룩은 '' 상징합니다. "보여주면 믿을테니까보여주십시요"라고 하는 것은, “보여주면 내가 믿을지 그렇지 않을지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는 말입니다즉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내가 나의 주인이므로 그것을 보고 내 마음에 인정이 되면 믿어줄 것이라는 매우 교만한 태도입니다그래서 믿음이 없는 이들이 자꾸만 보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마치 믿음이 자기 스스로 생기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이지 내 의지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우리도 실수와 넘어짐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화되어 갑니다. 이제 우리는 눈이 떠졌기 때문에 성전 문앞에 가서 예전처럼 거지노릇을   없습니다. 구걸하며 인생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젠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그런데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려고 하니까 세상이 우리를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우리를 못살게 굽니다 사람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빛 가운데 사는  하나 때문에 비난하며 욕을 합니다어둠에 속한 이들은 빛을 미워합니다. 밤거리를 나가보십시요. 도둑들과 강도들이 어두운 밤을 좋아합니다. 또 술집이나 나이트클럽도 어두워져야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들은 밝은 대낮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둠을 좋아하는 자들은 자기들과 다르다는  때문에 빛 속에 사는 사람들을 사회에서도 왕따시키며 축출해버립니다이것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나타나는 첫번째 증상입니다.
 
눈을   순간이 구원받은 것입니다그런데 구원파에서는 구원받은 날짜를 알아야만 구원받은 거라고 가르칩니다그러나 오늘 본문을  ,우리는 구원받은 순간에는 "~"해지는 것입니다구원을 받은 다음에 예수님을 알아갈 때에 비로소 '믿음을 갖기를 소망하고 믿음을 갖게되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날짜를 기억해야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시작은 죄의 자각 즉 "내가 소경이다"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죄에 대한 자각 증세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원죄를 갖고 태어났으니까"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라는 자각 증세가 있어야만 그 죄를 고칠 수 있습니다. 문둥병이 왜 저주받은 병인 줄 아십니까? 자각 증세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온 몸이 다 썩어가도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살기 위해 몸부림칠 수 있고, 살기 위해 주께서 보내신 곳에 가서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빛 속에 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의 고백을 우리 자신의 고백으로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속에 거하는 죄니라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는도다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속에 거하는 죄니라그러므로 내가  법을 깨달았노니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있는 죄의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오호라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그런즉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15-25).
 
그러므로 실망하지 맙시다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실로암에 가서 깨끗이 씻어라!
오늘 여러분이 씻을 부분은 무엇입니까주님이 가르쳐주신 씻어야 할 티끌을 우리의 삶의 가장 낮은 곳인 보냄을 받은 그곳’ 실로암에 가서 무릎을 꿇고 깨끗이 씻음으로 구원의 길을 힘차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보냄을 받아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크신 은혜로 오늘도 제가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시고 또한 사명감을 주시고 끊임없이 가르쳐주시는데도 저는 눈뜬 장님처럼 살 때가 많았습니다.
주께서 구원해주시고 이제 그 구원의 삶을 혼자서 살지 말고 주위에 전하며 살라고 하시는데도, 저는 그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제 앞에 서 계시는데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터치하시는데도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저에게 덕지덕지 붙여주시는 것만을 느끼며, 그것이 싫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것을 씻을 생각은 하지 않고, 왜 그런 것을 제 삶에 던져주셔서 저를 힘들게 하느냐며 주께서 그것을 떼어달라고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직접 행동을 통하여 실행해야 할 것인데, 저는 가만히 있으면서 기도만 하며 주께서 그 모든 것을 다 해달라고 보채기만 했습니다.
주님은 제가 한없이 낮아지기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저는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제 종처럼 부리려고 했던 죄인입니다.
왜 이렇게 제 자신을 부인하고 낮아지는 것이 힘이 드는지...
주님께 해달라고 아무리 부탁을 해도 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주께서 해주실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의지를 사용하여 해야될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왜 저를 변화시켜 주시지 않느냐고 아무리 기도하고 기도해도 되지 않았는데, 이제보니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라 제가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주께서는 저를 찾아오셔서 터치해주시면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의 일은 제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모든 일이 주님께서 해주셔야 될 일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사오니, 제가 제 의지를 사용하여 스스로 일어나서 주께서 원하시는 곳에, 주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서 무릎을 꿇고 열심히 씻겠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깨끗해짐을 받았을 때에 주께서 만나주신 것처럼,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주님을 증거하여 그들로부터 핍박을 받아 외톨이가 되었을 때에 주께서 찾아오신 것처럼,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실망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께서 주시는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을 승리하며 살게하여 주옵소서.
오늘 영적으로 소경이었던 저의 눈을 뜨게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어둠 속에 헤메이던 저에게 빛을 보게 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믿음으로 찬송하며 감사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눈을 떠서 빛가운데 있는 자로서 참된 빛을 발하며 사는 저를 통하여 온전히 주님께만 영광이 돌아가기를 소망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Rev.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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