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허리띠(엡 6:14)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3.10.09|조회수1,306 목록 댓글 2

오늘의 말씀: 진리의 허리띠

에베소서 6:13-14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여러분은 옷을 입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바지를 입을 때, 허리가 헐렁하면 그 바지는 옷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흘러내릴 것입니다. 그래서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것이 허리띠입니다. 특히 에베소서를 쓸 당시에는 원피스형의 옷을 입었는데, 이러한 옷을 입을 때 마지막으로 옷을 고정시키는 것이 허리띠의 역할이었습니다. 허리띠를 하는 이유는 겉옷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했지만, 옷의 맵시를 위해서도 착용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허리띠의 길이를 보고 그가 얼마나 부유한 지를 나타내기도 했으며, 허리띠에 돈이나 귀중품을 넣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또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군인의 허리띠에는 전쟁시에 사용할 무기나 도구들을 고정시켜서 갖고다녔습니다.

성경에서 '허리띠'라는 말이 최초로 나온 것은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다음입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두려움을 느꼈고 무화과잎으로 허리띠를 만들어서 입었습니다. 여기에 한국말로 해석된 '치마'(창 3:7)가 바로 '허리띠'를 말하는데, 히브리어로 '헤고르'(
חֲגוֹר
)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girdle, belt, apron, armor, gird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허리를 중심으로 해서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는 정도의 천(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었음)을 말하며 옷이라고 하기에는 적당치 않는 그런 것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3-16)

"허리를 동인다"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헐렁하고 긴 원피스의 옷을 입은 상태에서 허리띠로 그 옷을 졸라매지 않고는 어떠한 활동적인 일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허리띠로 허리를 매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허리를 동인다, 즉 허리를 단단히 매는 것은 모든 영적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 요압
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매었는데 저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삼하 20:8)

'허리띠로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하기 직전에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월절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출 12:11). 이 말은 모세가 떠나자고 명령을 하면 곧바로 떠날 수 있는 채비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즉 성경에서 허리띠를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명령과 동시에 행동을 개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5-38)

또한 성경에서 '허리띠를 띠게하는 것'은 권세를 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사 22:19-21)
"아론
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찌니라
"(출 29:9).

이처럼 허리띠는 직분을 위임하여 권세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의 모든 권세를 사도들에게 위임하여 주셨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지키도록 하라고 예수님의 권세를 위임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위임하여 주신 그 권세를 가지고 엉뚱하게 사용하면 안됩니다. 그 권세는 다름이 아닌 복음을 통한 권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권세는 사람을 죽이는 권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는 죽었던 사람도 살리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리띠를 허리에 맬때, 그 허리띠의 재질과 모양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아무 허리띠나 차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허리띠를 차느냐에 따라 자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는 줄로 된 허리띠를 찼을 경우에는 옷을 단단히 붙들어주지 않아서 묶었던 것을 풀어서 다시 묶는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또 무거운 체인으로 된 것을 했을 때에는 허리가 아프고 힘들어서 오래 걷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띠가 너무 꽉 조이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체할 수 있고, 허리띠가 너무 헐렁하면 활동하는 데에 지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허리띠를 하되 어떠한 허리띠를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허리띠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로 귀찮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허리띠는 전쟁을 하기 전에 갖추어야할 기본 조건입니다.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가 띠어야 할 허리띠는
 진리로 만들어진 허리띠여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리로 허리를 묶지 않고 진리가 아닌 다른 것을 허리에 차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진리를 모르거나 진리에서 떠나있으면 평생 헛수고만 하면서 마귀의 밥이 되어 마귀의 종노릇만 하다가 인생의 종을 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7가지로 설명해 놓으면서, 가장 처음으로 진리의 허리띠를 말씀하는 이유는 허리띠가 모든 것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육이오전쟁이 터졌을 때에,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펼쳤던 것도 "허리를 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생각에서 했던 것이고, 그것이 적중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허리띠에 해당하는 '진리'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믿음 위에 굳게 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것과 오신 것과 다시 오실 것에 대해 쓴 책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알아야 진리 안에 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아야 믿음이 생기고, 진리를 알아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무조건 하나됨'을 강조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가 되면 좋아하고, 부흥이 되면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는 사라지고, 축복과 이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교회에 나와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그런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여기 저기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과 다르게 가르쳐도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교회를 찾아 나가는 것이 이러한 종교인들의 생활입니다. 말씀이 좋아서 나갔다가 내가 원하는 육적인 것을 얻을 수 없다면 쉽게 교회를 떠나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인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 안에서 노래를 잘하더라도 신앙이 없다면 그런 사람을 찬양대원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관계가 없는 교회는 그런 사람도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또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지도 않은 사람을 찬양 인도자로 세우기도 하고, 돈을 많이 주어서 연주를 잘 하는 사람을 교회의 악기 반주자로 데려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악기 연주자가 예배가 끝나면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교인들이 보며 목사님께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사울왕이 악령에게 사로잡혔을 때에 성령충만한 다윗이 악기를 연주해서 그 악한 영이 떠난 것처럼, 누가 악기를 연주하느냐에 따라 악령이 임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나 실력이 있거나 재능이 있다고 세웠다가는 그 교회를 진리와 상관없는 그저 종교단체의 하나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진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진리 가운데 참 진리는 오직 성경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과학자나 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더라도 그것이 세월이 지나면 변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천동설(Geocentric theory)'을 믿고 '지동설(heliocentric theory
)'을 믿지 않아서,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별들이 돌고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에 이어 갈릴레오도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 지동설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지구가 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진리'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용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세기가 지난 뒤에 그들이 종교재판까지 가서 묵살시켰던 그것이 진리였고, 그들이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진리가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을 절대적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경을 잘 보존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진리의 말씀을 힘써 배워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엉터리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 것이며, 절도와 강도들(요10:1, 8)이 교회 안에서 지도자가 되어 많은 양떼를 삼켜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누구보다 성경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 시험할 때에도 성경 말씀으로 다가왔으며, 하와에게 접근할 때에도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약간 변형시키거나 조금 모자르게 말씀을 갖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보여서 그들의 유혹이 쉽게 넘어갑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이리가 득실득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들은 자신이 이리인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자기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먹이가 될만한 연약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치려고 애를 씁니다. 

디모데전서 5장에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계경보를 울리고 있습니다.
"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잘 다스리는 장로(리더)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딤전 5:11-20)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한 상대가 여자였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힘써 도왔던 사람들이 여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구약에서도 지혜로운 여인들이 나라를 구하기도 하며 큰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할 일이 없는 여자들은, 시간이 많다보니 교회 안에서 자기 뜻을 펼치려다가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항상 열심히 성경을 배우며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지만, 결국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들은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말해주는 이를 대적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행위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는 것" 즉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열심히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며 또 "영적으로 둔한 즉 (영적으로) 어리석은 여자들을 미혹하여 자기의 제자로 만들어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이며 믿음에 대해서는 버린바 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딤후 3:6-8)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가 출애굽할 때에 모세를 대적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지도자인 모세를 대적하는 이유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또한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이런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항상 회개하는 가운데 정결한 마음을 갖고, 내 욕망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얀네와 얌브레'는 구약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한 '타굼(Targum)'이라는 책에 의하면, 애굽의 술사들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모세가 행했던 10가지 재앙 중에서 처음 몇가지는 똑같이 따라했습니다. 그러나 티끌로 이를 만드는 것부터는 그들도 흉내낼 수 없었습니다. 즉 이 말은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분별력이 없는 여자들을 지도자처럼 자기가 가르치려고 하며 엉뚱한 길로 이끄는 이들이 어느 정도는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는 있지만, 결국 진리의 말씀에는 이르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을 알 수도 깨달을 수도 행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당시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즉 대제사장인 아론에게도 모세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그러한 모세를 대적했던 사람들 중에 이러한 여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의 특징은 마음이 부패하며 믿음에 대해 버리운 자라고 합니다. 마음이 왜 부패합니까? 생각이 (진리로부터)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부정적이고 왜곡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이 마음에 자리를 잡아서 결국 마음이 부패해 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패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첫번째 특징이, 진리의 말씀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말을 해주고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잠언 28:2에 보면 "나라
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죄"로 쓰인 히브리어 '폐셰 
פֶּשַׁע
'라는 말은 '반역, 모반'(transgression, rebellion)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50장17절에서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즉 반역, 모반이 왜 생깁니까? 질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내가 하면 더 잘할 것 같고, 나보다 누군가가 더 조명을 받는 것을 견딜 수 없고, 내 자아가 너무 커서 순종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왜 요셉을 팔아넘겼습니까?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 진리이신 하나님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 대신에 미움과 질투와 거짓과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말과 행동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 마음 가운데에 진리인 율법이 없기 때문에 악인을 대적할 수도 없고 오히려 악인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인 진리의 말씀이 마음 가운데에 있는 자는 진리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악인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을 칭찬하며 진리를 거절하는 사람은 아무리 기도를 할지라도 그 기도가 가증하다고 말씀합니다. '가증'이라는 말은 '거룩'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레위기 1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시면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것들은 너희에게 가증하니라"라고 하시면서 계속해서 거룩과 가증을 대조 시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기도가 가증하다면, 하나님의 거룩과 반대되는 것이므로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는 것이며, 그러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인 것입니다.
"
율법을 버린 자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 28:4, 9)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믿겠다고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는데도 그것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의 귀를 즐겁게 하여 자기의 마음 만족시켜줄 사람을 따라갑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줄 사람을 사귀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따라가는 어리석은 이들이 범람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열심히 자기의 의를 높이기 위하여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을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런 자들이 바로 '이리'이며 '절도'이며 '강도'인 것을 초신자들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다가 결국 조금 있었던 믿음까지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모세를 대적한 "얀네와 얌브레"라는 것을 초신자들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잘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래야 겉으로만 잘해주면서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결국 넘어지게 만드는 '술사'와 같은 이리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를 기록하면서, 각 장마다 사도바울을 거역하거나 진리를 거역했던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딤후 1:15). "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2:17-18). "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3:8). "데마
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4:10). 우리는 미련한 양떼들이 아무 생각없이 죽으러 좇아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때로는 이렇게 지명하여 밝혀줄 필요가 있습니다.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살후 3:14)


따라서 히브리서 6장과 디모데후서 4장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
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

"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오늘 혹시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를 동이지 않았다면, 당신은 반드시 마귀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를 바짝 동여매고 삶의 전선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치열한 영적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다른 것으로 갑옷을 입었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허리띠를 매지 않았다면,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해서 옷에 걸려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하여 진리의 허리띠를 동여매고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저에게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옛날에는 성경이 없어서 보고싶어도 볼 수가 없었고, 또한 공산국가나 회교국가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감사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 때가 더욱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진리의 말씀이 담긴 성경에 먼지가 뽀얗게 쌓이도록 읽지 않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진리의 말씀이 없어서, 제대로 알지 못해서 엉뚱한 사람을 좇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희 집에 자주 방문하며 저를 도와주는 자의 영적인 상태를 분별하지 못하여 그를 따라가다가 저까지 영적으로 피폐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로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그 권세를 제대로 사용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권세만 갖기를 원했고, 제대로 그 권세를 사용하지 못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저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저에게 잘해주는 사람의 말을 따라갈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성경을 배웠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더 안다고 생각하여 교회 안에서 교만하게 가르치려고 할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의 리더십을 반역하도록 부추기며 자기를 따르라고 하는데, 그 말에 속아서 넘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정말로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를 바짝 붙들어 매어서, 결코 넘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읽으려는 마음을 주셔서, 진리의 말씀 위에 믿음으로 굳건히 서게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저를 넘어뜨리려고 달려오며 부드럽게 유혹하는 마귀를 무찌르며 온전히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가운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Rev.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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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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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응주 | 작성시간 13.10.10 주님의 말씀이 삶 가운데 늘 풍성하게 하시어 진리의 허리띠를 동여매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도록 인도 하소서!
  • 작성자김수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0.10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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