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흉배(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엡 6:14)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3.10.10|조회수743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의의 흉배(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에베소서 6:13-14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하나님의 2번째 전신갑주는 '의의 흉배'
입니다. 흉배(
breastplate, 
θώραξ 
쏘락스
)라는 것은 가슴과 배를 보호하는 것으로 목에서부터 갈비뼈의 제일 아래 부분까지 보호하도록 목부터 배꼽까지 가리는 방어용 갑옷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허벅지 바로 위까지 내려오도록 만들어져서 심장과 배를 완전히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의 몸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곳이 '심장'입니다. 심장이 멈추었을 때 우리는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하게 보호해야 할 곳이 바로 심장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 중에서도 심장처럼 가장 중요한 것이 '의(
righteousness)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의'는 '자기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의 의'를 지키며 실천하는 것이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함과 동시에 또한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가장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3장20절에서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착하고 의롭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의롭다"라고 인정받을 사람은 이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의 의로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보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보혈의 공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을 의롭게 칭해주는 것이지, 자기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의롭다라고 칭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열심인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자신을 부인하며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을 다해 섬기는 사람들이고, 한 부류는 천성적으로 부지런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어서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후자의 특징은 '불평'과 '불순종'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에 대하여 로마서 10장에서는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고 복종치 않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2-3)

로마서 10:2에서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의 '지식'은 머리로 아는 이론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갖고 지식과 경험이 함께 어우러진 '인식'을 말하는 것으로 3절에 나오는 '복종'과 관련되어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머리로만 알고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여 피조물로서 조물주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지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의 "모르고"라는 헬라어 '아그노에오 
ἀγνοέω
'는 '무식하다' '이해하지 못하다' '무시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열심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조물주이심을 인식하여 그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나오는 '질투심'이나 '분노'를 충족시키기 위한 열심이라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의 '열심'이라는 히브리어
 '
 
קַנָּא
 
케나'는 
헬라어로 '
ζῆλος 
젤로스'라고 하며 여기에서 영어 jealous가 
 
나온 것인데, 이 용어는 '시기, 질투(
 
jealousy, envying
), 분노, 분개(indignation), 경쟁(emulation)'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질투하여 분노하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jealous
)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 20:5).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
jealous
)
 하나님이시니라
"(신 4:24).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열심은 어릴 때부터 형성된 '질투심과 분노'가 열정적으로 밖으로 분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 분노와 또 비교 대상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몸부림이 바로 매사에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가 원하지 않아도 스스로 사람을 찾아가서 도와주는데 그 도가 지나쳐서, 사실상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간섭하여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과 있으면 항상 그가 원하는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은 지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도 얼마나 예수님 곁에서 충성스러웠습니까? 어느 단체이건 아무에게나 돈을 맡기지 못합니다. 교회에서도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회계를 맡기듯이 가룟유다 역시 성실하고 믿음직했기 때문에 돈 관리를 맡겼던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맡겼을 때 그 직책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면 안되며 그 일을 통하여 얼마나 교회에 덕을 세우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성실하며 적극적인 사람의 열심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인지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 9장 30-33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믿음이 아닌 행위에서 난 의를 위하여 열심을 다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은혜로 구원받는 것)가 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지만,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이방인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 되었던 것임을 설명합니다.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a 
stone of 
stumbling)과 거치는 반석(a rock of offense)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30-3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3). 즉 인생을 살아가면서 의식주 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는 우리 자신들보다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므로 하나님께서 알아서 다 해결해 주실 것이므로, 그런 것을 걱정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의의 흉배'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의'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심장' 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버리면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장'은 무엇입니까? 심장은 의학적인 용어로 사용할 때 쓰는 말이며 그것을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인간은 감정을 갖고 있어서 감정에 많은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때문에 생활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어떠한 좋지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에 우리는 좌절감과 분노와 두려움과 정죄하는 마음(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는 마음)과 절망감 속에 사로잡혀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공격했으나, 의의 흉배를 입지 않아서 마음에 마귀의 불화살을 맞고 쓰러진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며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고 하면서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휘저어놓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의의 흉배' 대신에 '자기의 의의 흉배'를 입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자기의 의'로 판단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에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응답해주지 않는거야?"라며 자기의 의로 하나님을 판단하게 됩니다. 또 "목사님이, 장로님이, 권사님이, 집사님이, 전도사님이, 선생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며 원망과 불평과 비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가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귀로부터 불화살을 맞은 자국이 여기 저기에 수도 없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의의 흉배'를 입지 않고 '자기의 의의 흉배'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의의 흉배'는 마귀의 불화살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공격을 하도록 사인을 하는 역할을 하므로 가장 철저히 지켜야할 마음이 마귀의 타겟이 되어서 집중 공격을 받아 수도없이 쓰러지고 또 쓰러지며 살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치유받지 못하면, 자아상이 왜곡되며 모든 것이 꼬여서 매사에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도 못합니다.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서만 보며 모든 일을 의무감으로 합니다. 결국 빛 가운데에 거하지 못하므로 어둠 가운데에서 마귀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 3:7-10).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한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 3:18-23)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the crown of righteousness)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우리는 모두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의의 면류관'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마 25:21)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과거에는 마귀의 자녀로 이웃에게 참된 것보다는 거짓을 말하며 살아왔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과거의 습관과 태도를 버리고 주 안에서 새롭게 된 상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속삭이는 마귀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 4:22-25)

아직까지 하나님의 의의 흉배를 하지 않고 있습니까? 가슴에 맞은 마귀의 불화살 자국들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어서 제대로 기쁨과 평안함 속에 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의의 흉배를 착용하십시오. 나 자신의 의의 흉배를 이제는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의의 흉배를 입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의식주 문제로 고민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의로움이라는 것이 없이 모두가 죄 투성이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저를 의인으로 만들어주심을 생각할 때에 정말 감사가 넘칩니다.
그 동안의 제 삶을 되돌아보니, 하나님의 의의 흉배보다는 저 자신의 의의 흉배를 착용하고 있으면서 마귀의 공격이 치열해질 때마다 불화살을 맞고 쓰러지기가 다반사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끊임없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하여 그 큰 에너지를 사랑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고 저의 의를 높이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또한 제 가족과 이웃 중에서도 그러한 사람을 간혹 보기도 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제는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기를 원합니다.
우선순위를 제대로 깨달아서 먼저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가운데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것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의 흉배를 입고 오늘도 찬송하며 살게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찬송가운데에 거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마귀가 감히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Rev.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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