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헌신이란...(요 12:1-11)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3.10.24|조회수201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복음과 헌신이란...

요한복음 12:1-11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향유를 어찌하여 3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유대인의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오늘 본문을 보면, ‘유월절 엿새전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유월절 엿새전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기위하여 붙잡히기 6일 전이라는 말입니다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일주일 전에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사건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1)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본문 1-2절을 보면,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있는 곳이라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여기에서 우리는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시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있는 모습을 봅니다이것은 에베소서 2:5-6에서 말씀하시는 모습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죽어서 4일이나 되어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는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과 또는 거듭나기 전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즉 본문 1-2절의 말씀은 허물과 죄로 죽어있던 나사로인 우리를 예수님께서 살리셨고또 함께 일으키셔서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살리신 나사로를 보기위해 모여들었습니다그래서 살아있는 나사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나사로처럼 예수님에 의해 거듭났다면,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살아있어야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느끼며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영적으로 소경과 귀머거리 상태에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러 모여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인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더러워질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사로처럼 살아있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있을 때에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가족들까지도 가까이 가기를 꺼렸지만, 나사로가 살아났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나사로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기위해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영적으로 살아있습니까? 아니면 심하게 영적 시력이 저하되어 있습니까? 또는 영적으로 보청기를 껴야만 겨우 들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닙니까? 우리가 건강한 크리스천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이며, 아직까지 무덤 속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는 나사로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는 곳에서 마리아는 아주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여인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그 향유의 값이 3백 데나리온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1데나리온은 보통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므로, 3백 데나리온은 보통 노동자의 1년 연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따라서 매우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계를 맡고있는 가룟 유다는 돈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라서 그것을 보는 순간너무나 아까왔습니다그래서 가만있지 못하고  향유를 어찌하여 3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며 마리아를 책망합니다보통 교회 안에서 헌금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을 비난합니다또 교회일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을 비난하는데그 이유는 질투심 때문입니다가룟 유다는 그 비싼 향유를 쏟아붓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제자들 중에서도 그것을 옳게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왜냐하면그것을 쓰지 않고 팔아서 자기들에게 헌금으로 바쳤다면 그것을 자기들이 쓸 수 있는데그것을 계산하다보니 너무 아까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런데 이 말씀은 가난한 자들을 돕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언제든지 우리 주위에는 가난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베풀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지만예수님을 위해 헌신할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는 기름을 붓는’ 것은 여러 의미로 쓰였습니다왕이나 제사장그리고 선지자로 즉위할 때에 기름을 부었고또한 구별하는 일이 있을 때에 예식의 하나로 기름을 부었고사람이 죽었을 때에 냄새를 방지하기 위해 죽은 시체 위에 발랐습니다그리고 손님이 집에 왔을 경우에 그 집의 종이 손님의 발을 닦고 향유를 발라주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머리털로 닦은 것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일이었습니다예수님은 왕으로그리고 제사장과 선지자로서 이땅에 오셨고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십자가에서 죽어서 장사되어야 할 상황에 있었습니다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장사하기 위해 향유를 바르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에 관해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만이 그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돈에만 관심이 있던 가룟유다는 유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구제라는 명목으로,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고있는 믿음의 여인을 책망하고 있었습니다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빠진 어떠한 선한 행위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가룟유다는 교회나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기의 꿈과 비전을 이루려는 사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자를 6절에서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라며 도적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정말로 구원받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 있고지금 나사로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처럼 무언가 기적을 보고싶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또한 마르다처럼 항상 분주하게 일만 하면서다른 사람은 일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분에게 불평하고 오히려 가르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리고 마리아처럼 항상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나사로처럼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가룟유다처럼 자기의 의지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왔지만, 자신의 욕망과 꿈 또는 돈벌이를 하기 위해 교회에 오거나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기 위해 오는 마귀의 자녀들이 있습니다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들기 때문에 교회는 조용할 수가 없고 자주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사건은 동일한 이름을 가진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 16:19-23)

거지 나사로는 어떠한 선한 행위를 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은 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선한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들어가는 것이지 우리의 어떠한 선한 행위로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이 아니라 불교신자나 이슬람교도들 중에도 크리스천보다 세상적으로볼 때 엄청난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지 나사로나 예수께서 살리신 나사로는 그들의 어떠한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며, 거지 나사로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이나 장소는 교회와 상관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한 보혈을 흘려 세우신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종의 자세로 자기를 부인할 때 영광을 얻게 된다
고린도전서 11:15 을 보면여자에게 있어서  머리는 영광스러운 부분입니다.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더러운 부분인 발을 마리아는 그녀의 가장 영광스러운 부분으로 닦았습니다그녀가 자기 영광을 버리고 즉 자신을 부인하고 겸손한 자세로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자 그녀의 머리에도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영광스러운 기름이 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의 헌신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의 헌신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함을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이땅에 내려오셔서 종의 자세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것이 참된 헌신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마리아는 인식할 수 있었기에 항상 예수님의 발 밑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순종하며 따랐던 것이며 자기의 가장 귀한 것을 모두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내려오셔서 종의 모습으로 순종한 그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모습을 마리아의 가장 귀한 머리털로 예수님의 가장 더러운 발을 닦으므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인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마리아를 통해 전파되어야 할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한 일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전하라고 하신 것이 바로 마리아의 행위가 예수님의 행위를 보여준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마리아를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행위를 통해 보여준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하여 예수님께만 영광을 돌릴  때그리고 우리 자신은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그분의 발 밑에서 헌신할 때결국 예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도 함께 공유가 된다는 것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헌신은 마리아처럼 그리고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의 영광을 내려놓고 온전한 종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 영광만을 드러내는 입니다주님을 위해 우리의 물질과 시간과 에너지와 재능을 바치는 것이 헌신의 삶이 아니라"주님의 은혜 때문에, 그 은혜가 너무나 커서 주님께 바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이렇게 바칩니다"라고 고백하며 바치는 것이 헌신이며 예배이며 구제이며 선교이며 전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설교는 종교이야기일 뿐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예배와 헌신은 그저 종교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아는 사람만이 헌신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헌금한다고 하면서 자랑하며, 또 드리는 것이 아까와서 "왜 십일조를 해야 하느냐? 그것은 구약시대의 유물이다"라는 등의 어리석은 변론과 자기 합리화를 하는 이들은 결코 헌신을 할 수 없습니다. 하고싶지 않는 사람들이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따지지 않고 하라는대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무엇을 하라고 할 때에, 또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고싶지않은 마음이 생기거나 그것에 대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아는 사람만이 그분의 발밑에 앉아 아무 소리 하지않고 그저 종의 모습으로제자의 모습으로 청종하며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보다 다른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은 마르다처럼 진리보다 교회의 일(행정, 친교 등)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자꾸만 교회의 리더를 자기가 가르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 교회 일은 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있는 것을 원망하며 예수님까지 가르치려고 들었던 마르다처럼 말입니다. 또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교회의 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항상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들은 "왜 구제나 선교를 하지 않느냐"라며 교회를 위해 사용되는 물질을 매우 아까와 합니다. 교회 건축을 위해 수많은 돈이 들어갈 때에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건축할 돈이 있으면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 좋을텐데 너무 돈을 낭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그렇지 않습니다. 1년 연봉에 해당되는 향유를 한 순간에 여러분의 몸에 뿌릴 수 있습니까? 아마 아까와서 조금씩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룟유다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도 예수님도 그것을 아까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대적자의 위치에 서서 지금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오로지 예수님께만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와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가난한 자들 즉 인본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향유를 보는 순간 벌써 머리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계산과 실제적으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감히 예수님 앞에서 교회의 돈을 낭비한다며 충성을 다해 헌신하는 사람을 책망하며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의 다른 일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습니까?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 행정을 잘해야 한다느니, 예배보다 구제나 선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느니, 진리의 말씀보다 사람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신본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사람이 받을 상처가 더 중요합니까? 즉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상처를 받을 인간입니까? 만약 후자라면 그 인간이 여러분의 우상입니다.
혹시 교회의 헌금은 내가 생각하는대로만 쓰여야 제대로 쓰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예배 후에 있을 친교 때문에 예배는 드리지 않고 식당에서 음식만드느라 정신이 없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예배와 성경공부에 빠지지 않느라 욕을 먹은 적은 없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예배시간에 들은 말씀이 얼마나 꿀송이처럼 달고 맛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친교시간에 먹은 음식의 맛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은혜를 나누기보다는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을 지적하느라 바쁘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어떤 사람의 최고의 헌신된 모습을 보며 질투심으로 인해 그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준 적은 없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질투를 받아 핍박을 받을 만큼 주님께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여러분의 행위도 함께 전하라고 할만큼 자기를 부인하며 겸손히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나사로와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가룟유다와 기적을 보기위해 몰려든 군중들, 그 소식을 고자질하는 사람들과 또 그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들을 보면서 나는 이들 중의 누구에 해당하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받은 자로서 사람들이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는 모습을 보려고 모여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처럼 주안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헌신된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의 삶이 되어서 주님오실 그날까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영원히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Rev.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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