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빛과 사랑"에서 칼럼니스트로 있었는데, 그 때에 신구약 성경을 3년에 걸쳐 쓴 것에 대한 간증을 써달라고 해서 2007년 11월호에 실었던 글을 소개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시 10:17)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 20:4)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나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직접 쓰고싶어 했지만, 한번도 완성한 적이 없었다. 좋은 글이 있으면 나는 메모를 하거나 책으로 예쁘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었다. 아마 항상 책상에 앉아서 말씀을 준비하시며 글을 쓰시는 아버지(고 김리관 목사)를 보며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며 사랑했기에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다 따라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존경심이 더해져서인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더 사랑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송이보다 더 달다"라는 시편기자의 표현 그대로 말할 수 없이 좋았기 때문에 몇 번이나 성경을 쓰려고 시도했었다.
가장 먼저 쓴 것이 잠언이었다. 우리 가정은 가정예배를 드릴 때 주로 잠언을 많이 묵상했다. 그러다보니 잠언은 무척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읽어도 읽어도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할 뿐, 지루하지 않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잠언을 쓰기 시작했었고, 쓴 것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아서 잠언만 쓰다가 그만 두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에도 몇 번을 시도했었지만, 그때는 주위의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듯이 비소를 보내므로 나 나름대로 하고 싶었던 그 소중한 일을 그만 두었었다. 사춘기 때이므로 주위 사람들의 말에 좌지우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어딘가 허전하다고나 할까? 특히 사춘기 시절에 하고싶었던 일을 하지못한 아쉬움이 끊임없이 안타까움으로 나를 엄습해왔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어떤 분이 성경을 쓰셨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일이 생각났다. '아~ 그래. 내가 하려던 일이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 항상 시작만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했었던 그 일을 다시금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 있었을 뿐 또다시 10년이란 세월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마태복음 6장 33절과 34절 말씀이다. "그런즉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나는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니까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작정했고, 또 하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의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하며 사는 나에게 친구들은 "수경아, 너 걱정하는 것 좀 봤으면 좋겠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항상 웃고 다니니?" 또는 "정말 얄밉다"라고 할 정도로 아무리 큰 일이 생겨도 웃음을 잃지 않고 걱정하지 않는 나를 보며 믿지를 못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목사님들도 걱정한다고 하는데, 너가 뭐라고 걱정을 안 하냐? 거짓말하지 마라"라고 까지 했다.
믿거나 말거나 염려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걱정하면 그것이 바로 죄가 아닌가 말이다. 그럴 시간 있으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드리면 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걱정거리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염려할 일들이 계속해서 밀려오는 것이 인생이다. 따라서 염려가 되거나 걱정거리가 생길 때에 나는 그것을 곧장 하나님께 패스해서 던져버리고 다 맡겨버린다는 말이다.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염려하느라 불순종하는데 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고지식하게(?) 하나님을 섬겼다. 물론 부족한 것 투성이였지만 나 나름대로 열심히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시편 37편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다.
드디어 나는 2004년 4월1일부터 성경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1년에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은 컴퓨터시대라 안 쓰던 손으로 글을 쓰려니 팔이 저리고 어깨도 쑤시고 눈도 침침해지며, 바닥에 닿는 새끼 손가락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욕심이 잉태하면...... 사망을 낳는다'라는 성경 말씀대로 처음부터 과욕을 부리면 결국 끝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에 최소한의 분량(30분~1시간)을 정해놓고 가능한대로 그 이상 꾸준히 하기로 했다.
내가 10살 때 침대머리에 붙여놓았던 "목적이 멀면 멀수록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서둘지 마라. 허나 쉬지도 말라"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그것을 극복하게 되자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가족들이었다.
나는 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방송에서 '건강한 크리스천'과 '알고 찬양합시다'에 큰 비중을 두고 방송을 하고 있었기에 틈만 나면 책을 보며 인터넷을 조사하는 나에게 "책이랑 결혼했냐"라고 남편이 말할 정도였다. 또한 교회에서는 지휘와 찬양인도를 맡았기에 일주일 내내 하나님께 올려드릴 찬양을 기도로 준비하고, 찬양대원들을 위해 한 사람씩 기도하는 데에도 무척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또한 교회에서 30대의 젊은 엄마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있었고(젊은 엄마들은 남자 교역자와 성경공부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교회의 성경공부 시간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멘토링하는 여성'이라는 기획안을 목사님께 제출하여 통과가 되어 가르치게 되었다), 치유를 위한 상담자들과 귀신에게 가위눌려서 고생하는 청년들과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도해주는 일 또한 있었기에 정말 그 해에는 잠잘 시간을 줄이는 것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보통새벽 한 두 시에 잠자리에 들어가서 새벽기도회 때문에 5시에는 일어났으니까...... 그래서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매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힘든데 쉬면서 하라고 여러 번 권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의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나 힘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이 '가보성경'을 아들 성천이가 장가갈 때 선물로 준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랬더니 성천이는 무척 좋아했다. 이 성경 용지에는 제일 아랫 부분에 성경을 기록한 날짜를 쓰게 되어있다. 나는 그저 성경만 써서 아들에게 가보로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물론 성경을 쓰는 일 하나 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렇지만 내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성경은,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여행을 갔을 때나 어떠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라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고 기록한 성실함이 담긴 성경이다.
사실 그 당시, 남편은 기도에 주력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갖는 시간을 즐기라고 권했었다. 의정부 광명교회 최남수 목사님의 부흥집회를 통해 은혜를 받은 남편은 하루에 40분~1시간씩 최소한 3회~7회의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할 때였다. 그래서 나를 생각하며 좀 쉬어가며 쓰라고 하는 남편에게 나는 "자기야, 자기도 매일 정해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잖아요? 이젠 쉬면서 하라는 말은 안 해주었으면 고맙겠어요"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을 갈 때에도 갖고 가서 어디에서건 꺼내서 쓰는 나, 시댁에 갔다가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해서 정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지만,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짐 정리를 대강 한 뒤에 또다시 책상에 앉아서 쓰고는 새벽 2, 3시에 잠자리에 들어오는 나를 보며 남편은 두 손을 들었다.
그때는 둘째 신혜가 아직 5살이 채 안 되었을 때였기에 엄마를 많이 필요로 했다. 그래서 내가 성경을 쓰려고 앉으면 쓰지 말고 자기와 놀자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면 신혜도 엄마처럼 성경쓸래? 정말 재미있어~ 한번 해봐~"하고 권했다. 그리고 신혜를 재운 뒤에 나와서 성경을 쓸 때도 많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신혜는 "엄마, 또 성경 쓸 거야?"하고 물었다. 그래서 "응"하고 대답하면, "엄마, 성경 쓰지 말고 나랑 자~"하며 나를 꼭 끌어안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신혜야, 그런 말 하면 안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셔"라며 아이를 달래며 재웠다. 아무리 쓰지 말라고 엄마에게 졸라도 되지 않자, 어느 날 신혜는 노트북과 베이비성경을 갖고 와서는 내 옆에 앉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엄마, 나도 엄마처럼 성경 쓸래~"라며 깜찍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가 절로 나왔다. 그 후 나는 아들 성천이에게 "동생 신혜도 쓰는데 성천이도 쓰지 않을래?"하며 성천이도 성경을 쓰게 했다. 그날 이후 우리 집 풍경은 저녁식사 후, 엄마와 두 자녀가 식탁에 둘러 앉아 성경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 감사, 또 감사를 드릴 뿐이었다. '엄마와 함께 이렇게 앉아서 성경을 쓰는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성경을 쓰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성천이는 요한복음과 갈라디아서를 다 썼고, 시편과 잠언도 조금 썼다. 신혜는 베이비 성경 한권을 다 썼다. 이렇게 아이들이 성경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성경을 못 쓰게 하는 일이 결코 없었고 오히려 "엄마, 오늘 성경 언제 쓸 거에요?"하고 물어보았다.
내가 이 성경을 쓰게 된 동기 중의 하나는 아들 성천이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서였다. 동생 신혜를 낳은 뒤에 신혜에게 "본드 걸"이란 별명까지 붙일 정도로 신혜는 나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성천이를 안아 줄 시간이 너무나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성천이는 정말 착했기 때문에 불평을 하지 않고 아쉬운 눈치만 나에게 보내곤 했었다. 차라리 떼를 쓰면 좋을텐데 엄마를 배려하느라 아무 불평도 하지않고 어느날 "엄마는 신혜만 사랑하나봐요"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래서 "성천아, 엄마는 이세상에서 여자는 신혜를 제일 사랑하고, 남자는 성천이를 제일 사랑해"라고 항상 말을 했지만, 어떻게 하면 나의 사랑을 성천이에게 전달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성경을 쓰는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성천이에게 "성천아, 엄마가 성경을 쓰는 이유는 이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성경말씀이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하는 우리 성천이가 나중에 장가갈 때 가장 귀한 선물을 주고 싶어서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천이는 해맑은 웃음을 웃었다.
어느 날 나는 성천이에게 물어보았다. "성천아, 엄마가 성경을 쓰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어?" 성천이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저 결혼하는 거요"라는 것이 아닌가! 우린 함께 한참을 웃은 뒤에 성천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성천아, 엄마가 성경을 쓸 때마다 엄마가 성천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생각해라~. 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성천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성천이를 생각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성경을 쓰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엄마가 성경을 쓰고 있으면, '엄마가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 나를 생각하고 계시는구나'하고 생각해. 알았니?"라고...... 그랬더니 성천이는 내가 성경을 쓰면 흐믓하게 미소를 지으며 뒤에서 나를 끌어안기도 하며 좋아했다. 그 일로 성천이의 상처는 깨끗이 치유되었다. 할렐루야!
그 이후 성천이는 내가 성경 쓰는 것을 보며 가끔 참견을 하기도 했다. 잘 써내려 가다가 뒷장 끝부분에서 틀릴 때가 가끔 있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아깝지만 그 종이를 버리고 앞 페이지부터 다시 쓰곤 했다. 그것을 본 성천이는 " Mom, Nobody is perfect.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다 이해하니까요"라며 말을 했다. 왜냐하면 자기 성경이 될 거니까 앞뒤로 한 장을 쓰는데 한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쓰는 것이 불쌍해보였던 것이다. 엄마를 배려하는 아들에게 나는"Thank you 성천. 그렇지만, 평생 간직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깨끗이 잘 쓰고 싶어서 그래"라며 구약시대에 서기관들이 성경을 쓸 때에 목욕을 깨끗이 하고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썼는지를 가르쳐주며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성을 다하고 싶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엄마를 생각해주는 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번은 이사하기 전 날, 오른 팔이 식탁에 깔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나는 뼈가 부러졌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아주 심하게 팔목부터 팔꿈치까지의 뼈가 (1인치정도)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약 한 달간 나의 오른팔은 시꺼멓게 죽어있었고,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팔의 통증이 가라앉기까지는 약 2달 이상이 걸렸다. 그때는 마침 신학교를 다니며 막 전도사로 부임한 때라, 아파할 시간이나 병원에 갈 상황이 허락되지 않았다. 공부도 해야 했고, 사역도 해야 했고, 집안일도 해야 했고, 상담도 해야 했고, 성경도 써야 했다.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나 물질은 전혀 없었다. 시꺼멓게 죽은 오른 팔로 성경을 쓴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학교에서 내준 과제 중의 하나가 그 학기 동안 모세 오경 중에 두 권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성경 KJV를 펼치고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썼다. 매일 아들에게 물려줄 성경과 학교에 제출할 영어 성경을 쓰는데 투자한 시간은 하루에 3~5시간이었다. 결국 내가 잠잘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서너 시간이었고, 특히 덜덜 떨리는 팔로 성경을 써내려 가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팔을 다친 그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썼다. 아들에게 약속했기에......
신학교 학생 중에는 바빠서 성경 쓰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을 쓰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이 사람은 결국 중도에 하차했다). 그런데 나에 비하면 그렇게 바쁘거나 힘든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 (습관적인)불평을 하였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나는 시꺼멓게 팔 전체가 죽어있고 뼈가 툭 튀어나온 나의 오른팔을 보여주면서 "이런 팔을 갖고도 쓰고 있으니 감사함으로 쓰세요"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 사람은 내 팔을 보더니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팔로 신학생들과 교수님들의 점심을 매주 준비해와서 그들을 섬겨주었기 때문이다. 그 팔을 보자 그 동안 점심을 차릴 때 자기들 일만 하던 사람들이 도와주기 시작했다. 나는 내 팔을 보면 사람들이 미안해 할까봐 항상 그 팔을 가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들의 불평을 막는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서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 팔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불평하는 이들의 입을 막으시고, 섬길 줄 모르는 자들로 하여금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족한 종을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3년만인 2007년 5월23일에 신구약 성경을 다 썼다. 30년 만에 내 소원이 성취된 것이다. 그때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내 눈에선 눈물이 주루루 흘렀고 내 입에선 감사의 찬송만이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나의 환경과 상황들로는 도무지 할 수 없었던 이 일을 이루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 선한 소원을 주시고, 또 그 소원을 나를 통하여 이루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뿐이다. 할렐루야!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 107:30)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Esther Soo-Gyung Kim, Pastor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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