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4.01.13|조회수2,305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

이사야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But we are all as an unclean thing, and all our righteousnesses are as filthy ragsand we all do fade as a leaf; and our iniquitieslike the wind, have taken us away. (Isaiah 64:6)

욥기 9장2절에 보면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욥기 15장14-16절에는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 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또 욥기 35:7-8절을 보면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본절에서 말하는 '부정'(unclean)이라는 히브리어 '타메(טָמֵא)'는 더러운 것에 의해 오염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레위기 11장에서 성도가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들을 말씀하시면서 그것들의 주검을 만지는 자는 부정하여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유출병이 있는 자도 부정하다고 했으며(레 15장), 무엇보다도 문둥병자에게 사용된 용어입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는 보통 사람들과 함께 거할 수 없었으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격리되거나 쫓겨났습니다.

"무릇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다 네게 부정(טָמֵא)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טָמֵא)할 것이요"(레 11:26)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טָמֵא)한 자라"(레 15:2)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찌니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문둥병의 환처라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를 부정(טָמֵא)하다 할 것이요"(레 13:3)

"더러운 옷"이라는 히브리어 '이다(עִדָּה)'는 "쓰레기처럼 더러운 옷" 또는 "몹시 더러운 걸레"를 뜻합니다. 이는 여성들이 사용하고 난 생리대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즉 그렇게 더럽다는 의미입니다.
"불결을 앓는 여인과 유출병이 있는 남녀와 불결한 여인과 동침한 자에게 관한 것이니라"(레 15:33)
"누구든지 경도하는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면 남자는 그 여인의 근원을 드러내었고 여인은 자기의 피 근원을 드러내었음인즉 둘 다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 20:18) 

이처럼 이스라엘은 부정하고 부패하여 그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것조차 쓰레기처럼 더러운 걸레나 쓰고난 생리대처럼 혐오스럽게 더럽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어떠한 행위로도 자기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전적 무능력 Total Inability). 그래서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구스인(이디오피아 사람 즉 흑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이 흩으리로다"(렘 13:22-24)

우리의 눈은 내 앞을 보게 되어있으므로 나 자신을 보지 못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관찰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의 티는 보면서도 내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자신을 먼저 살피라고 명령하십니다. 즉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죄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결코 의로운 척 하며 나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그 '의로움'은 쓰레기처럼 더러운 걸레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더러운 것으로 어떻게 조금 더러운 것을 깨끗이 닦아낼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깨끗이 닦는다고 하면서 나에게 있는 더러움을 거기에 뭍혀서 더욱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만 만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의로움'이라는 옷을 입고 나아가면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그렇게 더러운 '우리의 의'를 완전히 벗고 벌거벗은 자세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갓난 아기가 엄마 앞에서 벌거벗어도 수치를 모르고 모두 맡기듯이 그렇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아직까지 벌거벗은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깊이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숨김없이 나아가는가?
항상 무언가 포장을 하고 나아가지는 않는가?
바리새인처럼 "나의 의"를 과시하며 나아가지는 않는가?
"하나님, 저는 그래도 저렇게 하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라면서...

물론 같은 상황에서 죄를 짓지않게 해주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 의도가 감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교만이 살짝 머리를 드는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훈으로 예를 들어서 말하는 것조차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 속에 그와 같은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교훈을 할 때에는 듣기 싫어도 들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듣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충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없는 것이며 듣기 싫은 것입니다. 아직까지 내 삶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교훈을 듣는다는 것은 내가 낮아져야 한다는 말이므로 결코 나 자신을 낮출 수가 없기 때문에 반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충고와 교훈을 잘 귀담아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우리를 영원히 살리지만, 그 책망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는 짐승과 같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짐승은 영이 없으므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에 훈계를 달게 받습니다. 그래서 주의 징계를 받으며 그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리 징계를 받아도 그 속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속에서 항상 교훈을 받아 깨달은대로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의 교훈하심을 깨달아 알고, 또한 깨달은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잠 4:13)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 12:1)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시 94:11-13)

나는 다른 사람들의 죄악과 허물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 속에도 혹시 그런 것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먼저 살펴보는가?
죄를 지은 사람을 씹기 전에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그의 성경에 대한 무지를 생각하며 안타까와 하는가?
매사에 그저 비판하기 위한 비판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십거리를 즐기지는 않는가?
혹시 남들이 나의 실수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매일 칼질을 한다면 나의 기분은 어떨까?
내가 잘못하거나 실수할 때마다 나에게 돌이 날아온다면?
살 맛이 날까? 아마 죽을 맛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남의 실수나 잘못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가?
그것을 꼭 짚고 넘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그러나 남이 실수하지도,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나와 다르다고 비판하지는 않는가?
왜 남이 나와 다른 것을 그렇게 참지 못하는가?
때로는 극한 죄인은 마음이 넓은 것처럼 덮어주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내 주장을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상대방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에게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댄다면 내 마음을 어떨 것 같은가?
나는 고통받기 싫으면서, 남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긍휼을 베풀 마음이 없지는 않은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과 돌을 던지려고 준비하는 이들 앞에서 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나는 죄가 전혀 없는가?
즉 나는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혹시 지금 내 손에 돌이 들려져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 돌로 누구를 치려고 한 것인가?
내가 던진 돌로 인해 누군가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 돌이 튕겨서 나에게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나에게는 아픔이 없을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려면 내가 더 고통스럽다.
남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고통을 준 뒤에 그것을 뒷감당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에......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찌니라"(잠 27:2)라는 말씀처럼
"Let another man praise thee, and not thine own mouth;
 a stranger, and not thine own lips"(Proverbs 27:2)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하여 다른 이들을 누르려고 애쓰지 말자.
나의 의로움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결코 말로서 자랑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그가 듣고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크게 말하지 말자.

어떤 이들은 가끔 또는 종종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라고 기도하지 않고
잘못하고 있는 사람이 들으라고 크게 기도할 때가 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이 저쪽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세리를 보면서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에 감사를 드린다"라며 기도한 것처럼
우리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하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쓰레기같은 의로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더러운 것으로 다른 사람의 조금 더러운 것을 닦아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다.
아무리 빨아도 금방 더러워지는 옷처럼 또다시 죄를 짓게 되어 자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의로운 일을 했어도, 10분 뒤에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한계임을 기억하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야고보서 4:16)
"But now ye rejoice in your boastingsall such rejoicing is evil."(James 4:16)

그러므로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항상 명심하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24)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겸손하지도 못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긍휼함도 갖추지 못한 이 못난 저를 지금껏 사랑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도 끊임없이 죄를 지으면서 마치 저는 죄인이 아닌 것처럼 다른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지려고 제 손에 항상 돌이 들려져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돌이 사실은 저에게 날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가 돌 하나를 던질 때, 저에게는 수십개의 돌이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습관적으로 해왔던 일이라 별로 아무 생각없이 아무 곳에서든 상관없이 돌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던진 돌로 인해 고통받고 아파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그저 제 의만 살아서 저 혼자 의로운 것처럼 남들을 무시하고 지적하며 살았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특히 밖에서는 그나마 좀 자제했지만가장 사랑하고 아껴주어야할 가족들에게는 거침없이 큰 돌이건 작은 돌이건 잡히는 대로 들어서 던졌던 것 같습니다.
저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제 가족이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저 한 사람 때문에 제 주위가 얼마나 아파했었는지 과거에는 깨닫지 못했었는데, 이제라도 깨닫게 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바리새인처럼 저 혼자 잘난듯이 살아왔던 오만함을 주님앞에 모두 내려놓사오니 저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고 어둠에서 건지사 빛의 자녀로서 마땅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저는 기도할 때에 제 아이들이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더 크게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마치 저는 의로운 것처럼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에도 다른 쪽에서 듣고있는 데도 큰 소리로 그들의 잘못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듣는데서 돌을 던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듣는 장본인이 얼마나 창피하고 힘들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얼마나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이 제멋대로 살아왔음을 깨닫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의를 높이는 것을 즐기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즐긴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것이 힘이 없는 아이들일 때에는 더욱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자라면서 부모님이 사람들 앞에서 제 흉을 이야기 할 때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참아야만 하는 시절을 겪었으면서 제가 부모님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라도 주께서 저의 의로움이 '쓰레기 같은 의로움'이라는 것을 밝히 폭로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의로움이 그렇게 더러운 생리대와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옳고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고만 생각해서 열심히 교훈을 듣지 않으려고 했고, 오히려 교훈을 하는 이를 판단하며 하나님 앞에서 심히 교만한 말을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가 옳지 않다고 하시니 저의 의로움을 주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저를 주님의 교훈으로 책망하여 주시고, 주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마지막날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지금 죄를 지을 때마다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문득 문득 제 교만함이 고개를 쳐들려고 할 때마다 두더지를 잡듯이 방망이로 쳐서 들어가게 하시고항상 겸손의 옷을 입고 주위의 사람들을 섬겨주게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의롭다고 칭해주신 그 칭의의 옷을 입고 행동으로 의로움을 실천할 뿐제 입으로는 결코 저의 의로움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주를 아는 것과, 또한 깨달은 말씀과 주님만 자랑하는 제가 되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제 손에 돌이 아닌 성경만이 들려지게 하시며,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상처를 주던 그 손이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부드러운 손이 되게 허락하옵소서.
손가락질 하던 손이 변하여 등을 쓸어주는 손, 더러운 곳을 닦아주는 손이 되어 누구든지 제 손을 잡고 싶어하는 그런 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성령 충만케 하셔서 저를 건드리면 제 입에서는 복음만이 튀어나오고 말씀으로 권면하며 위로하며 격려하는 덕스러운 말과 찬송과 감사만이 흘러나오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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