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늘의 말씀: 회개하지 않으면...
호세아 2:2-4
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3.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것이며
4.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을 책망하십니다. 2절에서 '어미'는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키며 '너희' 즉 자녀들은 이스라엘의 각 개인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그들의 어미와 쟁론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쟁론하다'라는 히브리어 '리브(רִיב)'는 '다투다, 애원하다, 변호하다(plead, strive, contend)'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2절에서 아내인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죄인 음행을 저질러서 하나님과의 결혼관계를 더럽혔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이 그들의 어미를 법정에 고소하라는 말입니다.
또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라는 말씀은 공식적으로 결혼관계가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적인 '이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순결함이 더럽혀져서 부부관계는 유지하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남편과 아내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순결한 관계가 끝났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려는 목적으로 흩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남은 자들을 심으셔서 구원하고 회복시키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라는 말씀에서 "얼굴"은 밖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상태를 말하며 "유방 사이"는 감추어진 내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내면과 외면이 모두 우상숭배와 탐욕과 모든 불의의 죄로 더럽혀졌음을 드러내시면서 그것을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 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 후무하니라.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네 어렸을 때에 벌거벗어 적신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더 사랑하거나,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또는 생각이 성경적이지 않고 세상적 사고방식에 젖어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오늘날은 크리스천)에게 "음란한 아내"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되는 하나님을 배반하여 살아가던 그 죄를 회개하라고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3절과 4절을 보면, 만약에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의 3가지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1) 태어날 때처럼 벌거벗긴다
태어날 때에 손에 금을 쥐고 태어나는 아이는 하나도 없고, 멋진 옷을 입고 나오지도 않으며 세상의 권세나 뛰어난 학식을 갖춘 아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에 나오며, 그나마 벌거벗은 몸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신세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즉 그 동안 자라면서 누렸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여인(이스라엘) 태어나던 날이 어떤 날입니까?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뒤에 이스라엘의 12아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애굽에 갔다가 요샙이 죽은 뒤에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날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출해 내셨던 것입니다. 즉 그들이 태어나던 날은 아직 애굽에서 힘든 노역으로 죽지못해 살던 때를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태어날 때의 상태는 '애굽의 종살이'를 뜻하는 '마귀의 종'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3-5).
우리는 본질상 진노(마귀)의 자녀로 태어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게(출애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지 못한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게 한다는 말입니다. 즉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깨끗이 씻었다가 다시 진흙탕으로 돌아가는" 그러한 상태로 버려두신다는 말씀입니다.
벌거벗은 어린 아이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즉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단절되면서 영적 죽음이 찾아온 것처럼 벌거벗긴다는 말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가인처럼 항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불안한 상태로 자기가 스스로 먹고살 것을 찾아다니며 자기 자신을 위해 피땀을 흘려야 가시덤불 속에서 간신히 장미꽃이 피지만 그것도 역시 가시가 있는 그런 노력을 하며 살아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 광야와 마른 땅 같이 되어 목말라 죽게 한다
'광야'나 '마른 땅'은 모두 고통의 상태를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태어났던 곳은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애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마른 땅'이었습니다. 또한 출애굽하여 40년간 그들이 생활했던 곳 역시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는 광야에서도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셔서 그들에게 생수를 공급해주셨습니다. 즉 광야생활을 하고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하나님께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하늘의 양식을 공급해주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이스라엘 즉 하나님 대신에 그들 앞에서 세웠던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을 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 앞에서 반석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는 것도 보았고, 쓴 물이 단물로 변하여 마실 수 있는 기적을 끊임없이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광야만 보였고, 마른 땅만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아시스 앞에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며 사막과 같은 광야생활을 스스로 택해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같은 환경 속에서 함께 살아갈지라도 찬송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스스로 눈을 가리고 생수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식주 문제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 해결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생수와 단물과 만나와 메추라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기들을 개척해야할 마른 땅만이 눈에 들어와서 걱정 근심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2-4)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 광야와 같은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는 가인과 같은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내버려두셔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그것은 우준하게 되어 광야와 같이 메말라 결국 죽음에 이르는 길로 걸어가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1-25)
(3)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내리시는 복은 자손 대대로 내려가게 되어 있는데,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레위지파의 제사장이었던 고라, 다단, 아비람이 족장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모든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그들과도 함께 하시는데 왜 모세와 아론만 하나님 앞에서 리더가 되어 그들의 왕처럼 행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땅이 갈라져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모든 자녀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산채로 음부에 빠뜨려 죽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합세했던 250명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나와서 다 태워죽였습니다.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긍휼히 보지 않으시는 이유가 자녀들이 음란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즉 어미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상태에 빠져있었고, 이스라엘 개개인 역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전혀 다를 바없이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공동체 속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항상 점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떨어질 상황이 눈에 보이면 속히 그곳에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소돔성에 살고있던 롯도 그곳에서 나오는 것을 지체하자 천사들이 억지로 끌어서 그의 가족들을 나가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의 가족을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와 또한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우리는 잘 파악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도해주는 이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떠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떠나는 것을 포함하여 마음이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 상태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는 리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그 순간, 사람들 앞에서 리더의 말을 무시하며 자기 주장을 하는 그 순간이 바로 그를 떠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는 순간, 영적 어두운 가운데 헤메는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후가 모세와 아론을 떠나는 순간, 그와 그의 온 가족은 산채로 음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영육간의 공급을 위해 기도하며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를 공급해주는 모세(하나님 대신)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순간, 불뱀에 물려죽기도 하고 전염병에 죽기도 하고 불에 타서 죽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엄한 경계의 말씀을 버리고 이방 나라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으먼서 동시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 이방 나라의 힘을 더 의지하며 자기의 생각대로 해줄 우상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즉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보다 다른 남자를 더 좋아하고, 남편의 말은 듣지 않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를 데려와서 그와 사랑을 나눈다고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있는 남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아내 뿐만이 아니라 자녀들까지 모두 아버지가 싫어하는 더러운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더러운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당장에 그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외치는 호세아의 말을 듣지 않고 세상 것을 따라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고멜과 그 오랜 세월동안을 살게 하시며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아내의 모습을 통해, 또 그의 자녀들의 이름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처럼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 내가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던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이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내 힘과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태어날 때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벌거벗은 상태와 영적 갈급함에 목말라서 죽어가면서도 죽는 줄 모르고 혼자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우준하게 살아가고, 또한 자녀들을 통해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이렇게 다가옵니다. 내 손에 아무 것도 없게 만드시거나, 영적으로 죽에 해서 영직 멘토가 주위에 없어지고 지혜가 없이 자기 지혜와 자기 지식과 상식으로 살아가게 하시거나, 자녀의 문제를 주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징계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회개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회개한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기분만 나쁩니다. 회개하라고 하는 사람이 더 밉기만 하고 "당신이나 먼저 회개해"라는 마음이 생기며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결국 회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환난을 거듭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3가지의 죄와 심판을 깊이 묵상하면서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던 그 죄를 하나님 앞에 다 고백하고 다시는 그러한 불순종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성령충만함을 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저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회개했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활을 살펴보니 그것은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취한 형식적인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의 행위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제 생활이 달라져야 하는데, 고라처럼 끊임없이 제 속에서는 불순종의 마음이 생겨서 도무지 리더를 리더로서 인정해 줄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인격을 알았다면 롯은 소돔에서 떠났을 때, 아브라함을 찾아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제가 굶지 않고 살게 해주셔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매일마다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잘 살고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지금 이렇게 웃고 떠들고 할지라도 제 마음은 항상 지금이 아니라 오지도 않을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내일은 없는데 말입니다.
'내일'은 '내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신다고 하시는대도 저는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제가 그 '내일'을 책임지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지금도 광야와 메마른 땅만을 바라보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의지하게 되고, 더 그것들에게 의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이를 배반하기도 하며 반기를 들고 제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제 주장을 심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를 의지하면서 그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실은... 이방 나라의 권세와 그들이 도와주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풍부하고 풍요하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눈이 멀어서 영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깨달을 수 없고, 또한 자녀들 역시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성경을 통하여 저에게 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발가벗겨 주시니 고개를 들 수가 없고, 또한 반면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사랑하시기에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밝혀주시고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진정으로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분노의 칼과 불이 저에게 또다시 임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자꾸만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는 저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를 제발 더이상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또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말씀으로 무장시켜 주옵소서.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나 말도 잘하면서도 실제로 제 삶속에서는 적용을 못하고 있사오니, 남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저도 제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 하루 동안 제가 회개해야 할 것들을 다 생각나게 하셔서 생각나는대로 회개하며 회개에 합당한 말과 행동을 하므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