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2) 교만(호 5:5-7)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4.03.05|조회수387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2) 교만

호세아 5:5-7

5.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
6.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모세를 통하여 앞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반역할 것이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땅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죽은 모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2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 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신 31:16-18)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중에 지식이 없도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신 32:15-18, 28-30)

본문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멸망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의 죄는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교만히 행했기 때문에 그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잠 16:18).

교만이라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여 자기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교만한 자는 결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혜는 구속의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편적인 은혜는 모든 이들에게 베풀어주십니다. 그 이유는 선인과 악인이 함께 섞여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

이스라엘의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율법과 계명을 주시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법을 매우 자세하고도 세밀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모든 율법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위하여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형상에게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러 남유다인 예루살렘으로 내려갔다가 혹시라도 자신의 왕위가 위태할까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며 섬기라고 하며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이 하며 제사는 레위지파들이 하도록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여로보암은 누구든지 제사장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워놓으면 자기가 멋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세워진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법과 뜻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고, 왕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악을 행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래야만 더욱 그들이 회개할 일들이 많아져서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수많은 소와 양 등의 제물을 가져와서 자기들의 배를 채워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길로 달려갔던 것은 그 나라의 왕인 여로보암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교만은 이처럼 한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 수 있음을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윗 한 사람의 교만(인구조사)으로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아간 한 사람의 교만(불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지기도 했습니다. 바로왕 한 사람의 교만으로 인해 애굽은 10가지 재앙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저주받은 땅이 되었고, 무엇보다 아담 한 사람의 교만으로 인해 온 인류에게 죄와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너희가 또 디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 너희가 아론 자손 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 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 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대하 13:8-11)

우리는 이러한 여러보암 왕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갖고있고 누리고 있는 그 무엇을 잃게 될까봐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그 말씀을 어기고 자기 뜻대로 고집하고 살아갔던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의 왕좌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을 너무나도 힘들어했던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도 힘들어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왕좌에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하는데, 그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싫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커녕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로보암은 왕이라는 권위를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위치가 잘못될까봐, 또는 다른 이들이 인정해주지 않을까봐 귀를 막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삶 속에서 왕으로서 군림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항상 명령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이의 명령이나 충고를 듣지를 못합니다. 누군가가 권면하려고 할 때에 말을 하지 못하도록 상대방의 말을 잘라버립니다. "듣기 싫어!"라는 말은 상대방을 존중해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내가 왕이므로 다른 이들은 무조건 내 말에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교만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신의 왕위가 위태로울까봐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자입니다. 이세상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위치에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왕은 다른 이들의 말을 온유한 심정으로 들어주며 그들의 형편을 살펴서 잘 살 수 있도록 돌보아주십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물리치지 않고 다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짜 왕노릇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다른 이방사람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떠한 것으로 왕을 세우고 싶어하는 그 순간이 하나님을 버리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감정을 왕으로 세우고 살아갑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순간의 감정이나 지식이나 가치관들이 항상 먼저가 되어야 하며, 그것들이 존중되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감정이나 생각들이 나에게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을 존중하면 내가 무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등감이며 교만입니다. 

왜 열등감과 교만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뿌리를 파헤쳐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또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당할까봐 두렵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함과 책임전가라는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가장 먼저 느낀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그는 책임을 전가합니다. 자신의 책임을 하나님과 아내에게 전가해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말입니다.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마음, 누군가로부터 책임을 추궁받아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고싶은 마음 즉 자기 위에 누군가가 있어서 질문을 받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결과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잘못할 때마다 야단맞고 학대를 받은 자들 즉 용서받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은 그 두려움이 깊이 뿌리를 내려서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또 학대받았던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요청하는 것조차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안에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교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싫어하실 수밖에 없고 물리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4-10)

6절에서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양떼와 소떼를 끌고 왔다는 것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올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들의 헌금과 예배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마음 속에 죄악을 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 속에 동생을 죽이고싶은 미워함을 감추고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수많은 예물과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고 예배를 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 이유를 7절에서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정조를 지키지 않고 엉뚱한 남자의 자녀를 낳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랑되신 하나님의 자녀를 낳아야 되는데, 그들은 신랑을 떠나 다른 남자인 우상과 동침하여 엉뚱한 아버지를 둔 자녀를 낳았던 것입니다. 즉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자녀를 낳았던 것입니다. 

정조를 잘 지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수많은 남자들이 가정이 있으면서 바람을 피웁니다. 술집에 가서 아내가 아닌 여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잠을 잡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선물을 사갖고 오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좋은 식당에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출장을 가서 상대방 사업체에서 대주는 여자와 잠자리를 하고 나서 벌어온 수많은 돈을 아내에게 줍니다. 그것이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까? 아무리 바람을 피울지라도 수많은 선물과 돈보따리를 안겨다 주며 이혼을 하지않고 사는 것이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까? 아내들에게 물어보십시요. 과연 돈을 못 벌어와도 아내만 사랑하며 사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거나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면서 많은 돈을 벌어다주는 것이 좋은지?

예전에 어느 남성이 저에게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유가 교회의 중직들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사업상 술집에 가끔 가는데, 그곳에 가면 큰교회의 장로라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여자들을 옆에 앉혀놓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추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남성은, 아내 몰래 술집에 가느라 다른 주에 넘어가서 술집에 갔는데 그곳 화장실에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를 만나는 바람에 그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제사와 제물들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순결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기 원하는 충성된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예배를 원치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의 예배와 헌금은 절대로 받고싶어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만한 자들의 예배를 끔찍하게 싫어하시는지를 이사야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사 1:11-15)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매 주일 교회에 가서 드리는 예배가 마당만 밟고 오는 형식적인 예배는 아닙니까?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기 때문에 여러분이 해야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렸고 헌금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행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받으십니다. 혹시 마음 속에 독한 시기심으로 인한 미움과 그로인해 다투면서 화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약 3:14-15).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회개하며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세상적이며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상태에서 아무리 하루종일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수많은 헌금을 하며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사랑이 없는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릴 수 없다거나 회개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수많은 예배를 드릴지라도 그의 마음이 예배자의 마음이 아니므로 회개를 할지라도 형식적이며 습관적인 회개이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떠나셨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잠 21:24, 29)

사람은 얼굴 빛을 보면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교만한 이들은 얼굴에 뚜렷이 그 교만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을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고 자꾸만 피하는 것입니다. 가까이 했다가 상처를 받고 다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 가버리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무심코 아무 생각없이 그 기회를 귀찮다고 잡지 않으면 그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옆에 있습니까? 열심히 사랑하십시오. 언제 그들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자가 옆에 있습니까? 나도 힘든데 그들까지 어떻게 돌보냐고 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항상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지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회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 기회를 잡는 이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것이지만, 그 기회를 버리는 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선물을 버리는 것이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해서도 안 되며 오히려 이스라엘처럼 멸망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순간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조금 힘들지만 사랑이라는 희생을 선택할 것이냐, 내 몸을 아끼고 나만 생각하느라 나의 편함과 게으름을 선택할 것이냐는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마귀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면, 반드시 희생을 동반한 사랑을 선택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웃은 누구 누구입니까? 이웃이라고 해서 바깥 사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함께 살고있는 가족이 가장 가까운 이웃임을 잊지 맙시다. 그 가족부터 시작해서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오픈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충고하고 권면하는 이들의 말을 막지 말고 끝까지 듣는 훈련을 하십시오. 왕이 되려고 하지 말고 종이 되려고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교만에서 건질 수 있는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에 여러분은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선물을 받아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많은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죄 속에서 죄인 줄도 모르고 살던 저를 구원하여 주셔서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 삼아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마귀의 자녀들이 사는 곳이므로 음란과 교만이 가득 차있습니다.
그런데 저나 제 주위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세상을 싫어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 속에서 살되 거룩한 자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만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저는 왜 그렇게 겸손해지는 것이 힘이 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높아지고 싶고, 다른 이들을 주관하고 싶고, 모든 사람이 저에게 집중되어서 제 말대로 하기를 원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너무나 열등감이 가득 차있어서 항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을 믿는다면 다른 이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열등감 속에서 교만하게 살아갈 필요가 전혀 없는데 저에게 믿음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아버지라는 확신이 있으면 제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 있을지라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항상 당당할 수가 있을텐데, 아마 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분명한 자세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이웃이 저를 사랑해주기를 바랐던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인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저 자신만을 챙기며 저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살았던 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리고 저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순결하고 겸손한 주님의 신부로서, 자녀로서, 일꾼으로서, 종으로서의 삶을 잘 살고 싶습니다. 저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셔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러한 삶을 잘 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저에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항상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제 옆에 있는 가족과 이웃들을 최선을 다해 희생의 사랑으로 봉사하며 주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저 스스로는 잘 하지 못하오니 저를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셔서 주께서 원하시는대로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저에게서 교만이 아닌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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