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같은 우리(호 6:7-11)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4.04.04|조회수389 목록 댓글 2

오늘의 말씀: 아담과 같은 우리

호세아 6:7-11
7.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8.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11.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로마서 5장12절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김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아담처럼 하나님 앞에 패역을 행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언약을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는 지각이 없는 상태로 죄를 떡 먹듯이 행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7절에는 "거기서" 하나님께 패역을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이 살고있는 가나안 땅 전체를 말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게 했던 벧엘과 단과 같은 우상숭배의 가증한 장소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하며 영적 간음을 행하던 "거기"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곳이기에 사람들은 "거기서"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시 14:2-5)

8절 이하에는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라고 하면서 길르앗에서 범한 범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준 요단 동편의 땅이 길르앗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또 다른 곳에도 길르앗이란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쓰인 길르앗 땅은 보편적으로 말하는 길르앗 전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길르앗 사람들은 매우 잔혹한 악의 소굴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피 발자취가 편만하며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단 동편 길르앗(수 20:8, 21:27, 38)과 요단 서편 세겜(수 20:7, 21:21)에는 부지중에 살해한 자들이 피할 수 있는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에 6개가 있었는데 요단강 동편에 3개, 서편에 3개가 있었습니다. 원래 도피성은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살인을 한 자들을 복수자들의 손에 죽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제사장이 있어서 그를 보호해 주었고,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는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습니다(미 35:15-32).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람의 생명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구약에서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즉 죽을 죄인인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했을 때에, 즉 그분 안에 거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복수자인 마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를 넘어뜨리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마귀의 밥이 되어 마귀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반석이시며 산성이시며 구원이시며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 말고 항상 그 품을 족한 줄로 여기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8절에서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예를 열왕기하 15장 2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사람 50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9절에는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길르앗과 세겜은 도피성과 함께 제사장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제사장들은 강도 떼처럼 살인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특히 '세겜'은 레위지파의 성읍이 있는 곳이며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와 벧엘 사이에 있었습니다. 즉 제사장의 무리들은 사마리아에서 제사를 드리러 벧엘에 가는 사람들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물건을 약탈했던 것입니다. '무리'라는 히브리어 '헤베르'(חֶבֶר)는 같은 목적을 갖고 서로 협력하기 위해 모이는 단체를 말합니다. 따라서 '제사장의 무리'라는 것은 '강도 떼'를 받는 말로서 강도짓을 하기 위해 모인 하나의 집단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리더들로 구성된 기독교 단체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 단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강도 떼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마귀에게 넘겨주는 단체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일을 겁도 없이 행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비유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사장들의 거짓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백성들을 영적으로 착취하고 죽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당시의 제사장들은 살인청부업자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9절에서 "살인하니"라고 쓰인 히브리어 '라체흐'(רָצַח)는 "살인하다"라는 동사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백성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제사장들이 설마 그러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사장들의 행위를 "사악을 행하였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사악"이라는 히브리어 '짐마'(זִמָּה)는 음란한 성적인 행위를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서 행하는 고의적인 악한 행위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백성들을 죽이며 자기의 배만 채우려고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악한 제사장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겔 34:3-6).

잠언 1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 같이 그들을 산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찌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 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잠 1:10-16)

제사장들의 죄악에 이어 10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말씀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집"이라는 것은 여로보암이 벧엘에 만든 성소를 말합니다. 그리고 "가증한 일"이라는 히브리어 '솨아루리'(שַׁעֲרוּר)는 '아주 끔찍한 일(horrible thing)'이라는 뜻입니다. 

'가증한 일' 즉 '매우 소름끼치는 끔찍한 일'을 예레미야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기괴하고(שַׁעֲרוּר, horrible thing) 놀라운 일이 있도다"(렘 5:30)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가 열방 중에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שַׁעֲרוּר, horrible thing)을 행하였도다"(렘 18:13)
"내가 예루살렘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שַׁעֲרוּר, horrible thing)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렘 23:14).

그들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증스럽고 기되한 일들은 바로 행음으로 인한 더럽혀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부정한 상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귀신을 내쫓으실 때에 "더러운 영"이라고 말씀하셨듯이 더러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반대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항상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 12:6)라고 말씀하듯이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을 때에는 부정하고 더러운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더러운 것들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11절에는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유다여"라는 말 앞에 '감'(גַּ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역시, 또한"(also)이라는 뜻으로 유다 역시 이스라엘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직까지 유다는 이스라엘과 같지는 않지만, "추수할 일을 정하였다"라는 말처럼 유다 역시 이스라엘처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다는 안심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정말로 죄악을 심하게 저질러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는 이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보다는 그들을 더욱 비난하며 손가락질하기에 바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비판을 받거나 정죄받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언행을 조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발로 차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지만, 유다도 오십보 백보라는 말입니다. 유다도 회개치 않으면 이스라엘처럼 곧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시기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지만, 죄인들에게 임할 심판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의 허물과 죄를 보면서 우리는 괜찮다고 방심하지 말고 우리도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성령 안에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7-38)

첫번째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아담과 같이 죄의 본성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제사장이건 백성들이건 상관없이 모두가 죄와 허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마지막 아담 안에 들어간 이들은 죄와 허물을 용서함받아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갑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첫번째 아담같이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마지막 아담같이 살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결단하십시오.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생명의 갈림길에서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머뭇거릴수록 더욱 여러 생각이 교차하므로 바른 선택을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마지막 아담을 선택하셔서 그분 안에서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아름다운 봄이 찾아와 만물을 소성케하는 주님의 손길을 눈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만물이 다시 부활하는 시기에 저는 정말로 부활의 소망을 갖고 살아왔는지 이시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어주셨는데, 저는 그 은혜와 사랑을 항상 잊지않고 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 세상이 더 좋아서 도피성을 몰래 빠져나와 세상으로 나갔던 적도 있습니다.
그곳에 나가면 저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원수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저 도피성 밖에 나가서 제가 주님을 만나기 전의 생활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때가 그리웠습니다. 도피성 안은 왠지 자유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자유함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바라보며 오늘날의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옛날의 제사장 무리가 백성들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날의 목회자들과 기독교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가증한 일들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이것을 볼 때에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음에 한편으로는 성경이 진리이므로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다른 이들의 죄와 허물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저 자신은 혹시 그들과 같이 넘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보며 겸손한 자세로 살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셔서 매 순간 겸손한 마음을 갖고 예수님처럼 온유하게 살아가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첫번째 아담이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그분과 같은 생활 즉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제 입에서는 온전히 주님만 송축하며 제 평생에 주님을 높이며 살게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 퀸즈 리폼드 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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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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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응주 | 작성시간 14.04.08 아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그리도의 향기를 풍기며 살게 하소서 !
  • 작성자김수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4.09 아멘!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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