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대(candlestick, lamp stand, מְנוֹרָה 메노라)(출 25:31-40)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4.08.11|조회수672 목록 댓글 1

오늘의 말씀: 등잔대(candlestick, lamp stand, מְנוֹרָה 메노라)
출애굽기 25:31-40

31.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33. 이편 가지에 살구꽃(감복숭아꽃 almonds, 샤케드 שָׁקַד)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가지를 같게 할찌며
34.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8.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찌니
39.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찌니라

성막의 문을 열고 성막 뜰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그 번제단에서 동물의 피를 흘려 속죄한 뒤에 성막 앞에 있는 물두멍에 와서 손과 발을 또다시 씻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성막으로 들어가면 겉에서 보는 우중충하고 질긴 덮개와는 달리 금빛 찬란한 등잔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그룹의 모양을 홍색, 자색, 청색 실로 아름답게 수놓은 흰세마포의 천정 덮개와 휘장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흰 세마포는 거룩하고 흠과 티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것이며 청색실은 예수님의 신성, 홍색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인 보혈을, 그리고 자색은 청색과 홍색을 섞은 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막에는 창문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바깥에서 들어오는 어떠한 빛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막 안의 화려함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등대의 빛 때문입니다. 이 빛은 "참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막 안에 있는 등대의 빛은 성막 밖에서는 그 누구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는 "참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서는 절대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만들어진 성막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만든 성전에 들어가봤자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든 우상 하나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모든 구조와 도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매우 세밀하게 지시하셨던 것입니다. 본문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찌니라"라며 하나님께서 하라고 지시하신대로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형식과 절차를 무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면이 외면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지,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2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라고 하시며 율법의 행위와 마음가짐을 모두 버리지 말고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형식만 중요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 또는 "눈뜬 장님"이라고 하셨으나 형식을 버리라고 하지 않으셨고 형식도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리새인을 욕하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그렇게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행위만 강조하기 때문에 뭐라고 하신 것이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에 대하여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마태복음 5장20절에서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한 부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시며 십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며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왔음을 아뢰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을 마가복음 10장21절에서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대로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하는 자를 바리새인과 같다고 비난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처럼 영생에는 관심이 없고 행위를 통해 자랑하려고 하는 교만한 자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처럼 영생에 관심이 있는 사람 즉 천국을 소망하며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을 잘못 가르쳐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바리새인 취급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면 말씀을 있는대로 다 지키려고 노력하므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 같다"라는 말을 한 번 쯤은 들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교만하게 생활하므로 "바리새인 같다"라는 말을 듣는 것과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고 세상적으로 볼 때 고지식하고 답답하게 살아가므로 "바리새인 같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여러분은 성경말씀대로 지켜서 살기 위해 애를 쓰다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 모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더 중요한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칩시다.

 요한복음 1장 9-10절을 보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 오셨으나 사람들은 그 빛을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막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만 성막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성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막안에 계신 예수님보다 세상이 더 좋고, 친구가 더 좋고, 돈과 물질이 더 좋고, 건강이나 운동이 더 좋고, 애인이나 사랑이 더 좋고, 명예나 권력이 더 좋고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 등 오락이 더 좋은 사람은 성막 안의 모든 것이 순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꾸만 세상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달려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고, 그 결과 예수님께서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호자가 되지 못하므로 세상의 온갖 폭풍우를 자신이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4장3절을 보면 30세부터 50세까지 나이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20대에는 더 활력있게 일할 수도 있지만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나이로나 경험면에서 성숙되고 신앙적으로도 장성한 분량에 자란 사람이 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베드로전서 2장9절에서 "크리스천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만이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볼 수 있는 것이며, 성경에 대한 지식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신앙의 체험이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여러분은 성막에 들어가서 참빛을 보고 있는 정말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단지 얼마나 인격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성숙해서 성막안에 들어가서 봉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는 여러분 스스로 진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막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성막 안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막 안에 빛이 없다면 그 안이 어떻게 생겼고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막 안을 볼 수 있는 것은 등대의 불빛 때문이며, 그것 때문에 제사장은 성막에서 봉사할 수 있으며 또한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1년에 한 번 모든 백성을 위하여 속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교회에 나오며 교회에서 봉사하며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며 말씀을 듣고 배우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속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지 않으시면, 그리고 그 빛을 비추기 위하여 등잔에 기름을 붓지 않으면 즉 성령충만함이 없으면 우리는 성막 안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장 값비싼 것들로 꾸며져 있는지를 볼 수가 없습니다.

성막을 바깥에서 보면, 사람들의 신발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질긴 회색빛깔의 "해달(골고래)의 가죽"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볼품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이세상에 종의 형상으로 오셔서 갖은 고난과 멸시를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망과 모든 고통과 묶임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고 구원해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피난처와 산성과 방패가 되셔서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제자들을 구원해주신 것처럼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질기고 볼품이 없는 해달의 가죽은, 성막 안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을 보호해주듯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봉사하는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환난과 폭풍으로부터 보호해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사야서 53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2-3)

그렇다면 예수님을 상징하는 금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등대는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금으로 등대를 만들되 금을 녹여서 부어만든 것이 아니라 한 달란트(1 talant)나 되는 금을 쳐서 만든 것입니다. 한 달란트는 34kg(약 75파운드)입니다. 그러한 금덩어리를 원하는 모양이 될 때까지 두둘겨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채찍에 맞아 고난을 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등(잔)대를 히브리어로 "메노라(מְנוֹרָה)"라고 합니다. 메노라의 가지는 한쪽에 3개씩 모두 6개이며 가운데 가지까지 모두 7개이므로 그 위에 있는 등잔도 7개입니다. 성경에서 숫자는 모두 뜻이 있는데, 6은 사람을 나타내며 7은 완전 숫자입니다. 따라서 등대의 줄기가 모두 6개라는 것은 사람을 말하며,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즉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 붙어있는 가지인 하나님의 자녀들을 뜻합니다.

이사야 11장 1-2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메노라의 모양과 이 말씀을 생각해보면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6개의 가지가 하나님의 자녀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서 등대가 크리스천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등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왜냐하면 "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때로는 믿음을 뜻합니다. 만약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면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등대는 온전히 금으로만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고,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메노라는 성막 안을 비추는 것이지 세상을 비추는 빛이 아닙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 참빛으로 오셨지만 그 빛을 알아보는 이들은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만 그 빛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금빛 찬란한 천국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성막 안을 비추는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막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충만함을 받아서 성막 밖으로 나와 그 받은 빛을 반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등대의 불은 해가 지는 저녁에 켜서 해가 뜨는 아침에 불을 끄고 심지를 갈고 기름을 새로 채워넣습니다. 출애굽기 30장 7-8절을 보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찌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찌며"라고 말씀합니다. 또 레위기 24장3절에는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찌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라고 말씀합니다.

스가랴 4장에는 순금 등대 양쪽에 두 감람나무가 서서 7개의 등잔에 기름을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두 감람나무는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와 성전 재던을 위하여 성전 건축을 맡았던 스룹바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혈통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유대인들의 예배를 부흥시킨 인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고 바벨론유수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지휘하에 성전을 건축하여 B.C.515년에 성전재건을 완공했고, 이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그 당시에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니까 방해하는 세력들이 일어났습니다. 노인들은 예전에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여 현재의 성전이 너무 볼품이 없다고 통곡하였고,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고레스왕 이후 아닥사스다왕에게 방해하는 편지를 써서 성전건축을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가 일어나서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에 대한 무관심을 꾸짖으면서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 1:4, 7-8)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의식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4장에서 두 감람나무가 등대에 기름을 붓고 있는데, 6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등대에 불을 붙여서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우리의 어떠한 힘이나 재능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힘으로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등대에 붓는 올리브유는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당부하셨습니다. 즉 성령을 받기 전에는 주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성령과 상관없이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전도를 하고 교회도 세우고 봉사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자꾸만 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이 말씀은 앞에서 언급했던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바리새인과 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참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보혈의 공로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어떠한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맙기 때문에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지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은망덕"한 인간은 세상에서도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하물며 선하시고 은혜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모르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교회와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당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심판날에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쳐야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등대의 꽃받침과 가지와 줄기가 모두 연결되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지체가 하나로 연결됨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을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즉 성전이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지만 아직 완공된 성전이 아니라 미완성된 성전입니다. 그리고 '지어져가고 있는 것'이 바로 "성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 지어져가는 존재들입니다. 함께 연결되어서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며 각 지체가 그 머리 밑에 붙어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며 섬겨주며 권면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함께 이러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불집게와 불똥 그릇이 있습니다. 등대 안에서 초가 타오르면 불똥이 생기는데 이 불똥을 잘라내기 위해서는 불집게가 필요하고 그것을 담을 불똥 그릇이 필요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불집게와 불똥 그릇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으면 금등대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없고 제대로 불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보잘것없어 보이고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없으면 교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어떤 크고 멋진 일을 하는 것을 볼 때에 보잘것없는 일을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일을 하기 때문에 크고 멋진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더욱 충성합시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끌려가면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자 그들은 회당을 지어서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있던 메노라(등대)를 회당에 상징처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다른 상징물은 만들지 않았지만, 이 순금 등대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절기 중에 "빛의 절기"로 알려진 "하누카"는 안티오쿠스 4세의 압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성전을 탈환한 날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을 되찾자마자 제일 처음 했던 것이 이 등대에 불을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의 불을 밝히는 것은 그들의 생명과도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유대인들의 회당에 가면 회당 앞에 메노라가 세워진 것이나 벽에 그려져있거나 새겨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상징이 십자가인 것처럼 유대교의 상징은 메노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십자가가 있듯이 회당마다 메노라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등대가 참빛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기 때문에 참빛을 기다리며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결론적으로 등대의 역할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어둠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음의 종노릇을 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고 어둠에서 해방시키고 소망과 평안화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임마누엘"로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고, 또한 이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우리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주께서 이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만 기억하고 여러분을 부르시는 콜링과 사명에는 귀를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하늘 성소에 계시기 때문에 땅에 있는 가지인 우리들이 이제 그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추어주셨던 그 빛을 세상에 나가서 세상의 등대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교회안에서 빛을 비추려고 하지마십시오. 그 빛은 예수님께서만 비추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춘 빛이 어떤 빛입니까? 예수님께서 가장 밝게 비춘 빛... 가장 절정에 다다랐던 빛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사망과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빛이 밝아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의 빛을 받았다면 우리 역시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빛을 세상에 반사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빛을 반사시켜 세상에 비추지 못하고 내가 살아있다면 그 빛을 흡수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만큼 그림자만 남기게 됩니다. 그림자가 무엇입니까? 어둠입니다. 그리고 실제가 아니라 가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그림자를 넓고 크게 남기지 말고 주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세상에 비추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따라서 살지 말고,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부모님과 형제 자매와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먼저 가정에서 충실할 때에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하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막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등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그 다음인 떡상으로 옮겨가서 생명의 떡인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는 것이고, 분향단에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알아야 합니다. 등대의 빛이 없이 즉 기름인 성령충만함 없이 우리는 기도할 수도 없고 말씀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간절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함을 매일 매순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님의 동행하며 살게해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내뜻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내 만족대로 살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뜻을 구하면서 그것이 되지 않으니까 삶이 더 괴로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외롭습니까? 괴롭습니까? 환난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으로 나가지 말고, 친구를 찾지 말고 먼저 성막 안에 들어가서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빛을 비추는 성령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채워도 우리에게는 만족함이 없고 더욱더 허무해질 뿐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으로 만족하려고 할 때, 그것은 우리의 우상이 되고 그 우상은 우리에게 파멸을 안겨줍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그 허전한 마음과 영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성경에는 불이 두가지가 나옵니다. 성령의 불과 지옥의 불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의 불은 같은 불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했고 의의 태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양을 통해 밝은 세상속에서 살아가며 또 곡식이 자라는 등 많은 유익을 얻으며 살아가지만 반면에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타서 죽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옥에서 타고있는 불도 하나님의 불입니다. 그런데 그 불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들에게는 성령의 불빛이 되어서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시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지만, 그 불빛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에는 지옥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불과 지옥의 불 중에 어느 것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지옥불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령의 불도 받기 싫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불이 아니면 성령의 불 이외에 그 중간형태는 없습니다. 따라서 지옥에 가고싶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불을 보내달라고 열심히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지옥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합니다.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 그 빛이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정말 좋은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그 빛에 타 죽을 수밖에 없으며, 영원히 타는 불 속에서 죽지도 않으면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나가서 어둠 속에서 헤메고 있는 자들과 함께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빛을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그들을 참빛으로 인도하므로 지옥불이 아닌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저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막 안에 있는 금등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에 대하여 가르쳐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빛으로 이땅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빛은 성막인 성전 안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오셨지만, 그 빛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만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 제가 그 빛을 체험하고 그 빛을 받을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때로는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빛에 관심이 없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세상의 물질과 욕망과 기타 제가 원하는 것들로 만족하려는 삶을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그러한 모든 욕망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자꾸만 세상을 향해 빛으로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넓고 크게 드리우기 위하여 나가므로 저희 가정이 엉망이 되고 교회와 사회가 엉망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하오니 주여, 저의 삶의 행위가 다시금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저를 통하여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와 세상이 변화되는 역사를 이루어주셔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는 저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도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는 우리도 빛을 비추며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지만, 제 빛의 강도가 너무 약해서 제대로 세상의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빛을 충분히 받아서 세상에 나가서 그림자 역할이 이나라 참빛을 반사하는 주님의 귀한 도구가 되기를 원하오니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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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응주 | 작성시간 14.08.12 아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오늘도 우리의 삶에 잔잔한 찬양이 울려퍼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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