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늘의 말씀 : 떡상과 진설병
출애굽기 25:23-30
23.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24,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25.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26.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위 네 모퉁이에 달되
27.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28.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29.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찌며
30.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찌니라
레위기 24:5-9
5.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 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6.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 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찌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찌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성막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성막의 뜰 안에 번제단이 있는데 이곳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성막 안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막 안에 들어가면 왼쪽인 남쪽에 금등대가 있고, 오른쪽인 북쪽에 떡상이 놓여있는데, 그 떡상 위에는 항상 12개의 떡이 6개씩 두 줄로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떡을 "진설병"(레헴 לֶחֶם)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무교병(unleavened bread, Matzo, 메차 מַצָּה)"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떡은 아무나 먹을 수 없었고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떡상은 조각목을 잘 다듬어 만든 뒤에 금으로 싸서 만들었고, 떡상 사면에는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어서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떡이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금으로 고리 4개를 만들어서 이동할 때에 그 고리에 채를 끼워서 어깨에 매고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소 안에 있는 모든 기물은 거룩한 것이므로 아무나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올 때에 수레 위에 얹어서 가져오다가 소가 날뛰는 바람에 웃사가 언약궤를 잡다가 죽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기물은 레위지파인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어깨에 메지 않고 소가 끄는 수레에 끌고 가므로 소가 날뛰는 일이 발생했고, 그러한 일로 인하여 만지면 안되는 법궤를 웃사가 만지므로 하나님의 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제대로 알아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떡상의 크기는 넓이가 2규빗(1규빗=약 45.6cm, 즉 91.2cm), 폭이 1규빗(45.6cm) 높기가 1규빗 반(68.4cm)의 아담한 상입니다. 이 떡상 위에 놓여진 떡은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떡'으로 오셨기 때문에 '떡집'이라는 뜻의 베들레헴으로 오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떡상은 먼저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에 금으로 씌웠는데, 조각목은 우리 인간을 말합니다. 따라서 떡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소 안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각목을 규격에 맞게 잘 다듬어서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위에 정금을 씌우지 않으면 성소에 들여놓을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7절을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는 말을 통하여 "믿음"을 "금"으로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변하지 않는 금과 같은 믿음이 없다면 성소에서 귀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
무엇보다 '정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다듬은 뒤에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겸손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떡상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는 뜻으로 떡을 드려 진열하는 상입니다. 특히 떡은 12개를 진설했는데 12개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하나님께 이스라엘 전체를 드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51). 이처럼 떡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또한 성경말씀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24장5-9절까지 보면, 이 떡은 알갱이를 곱게 갈아서 기름을 넣어 반죽하여 구워야 했습니다. 곱게 갈았다는 것은, 가루가 될 때까지 예수님의 몸이 어떻게 고난을 받게 될 것인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누룩을 넣지 않았는데, 이는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 12:6)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함을 의미합니다.
이 떡은 기름을 넣고 반죽했는데, 기름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기록한 이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떡 위에 유향을 놓으라고 했는데, 유향은 '기도'를 뜻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나 말씀을 들을 때에 아무 생각없이 하지 말고, 반드시 성령님께서 말씀을 조명해주시기를 기도한 뒤에 말씀을 접해야 합니다.
※ 진설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1)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시편 1편)
이 떡은 매 안식일마다 새로 구워서 올려놓아야 했으며 항상 성소 안의 떡상 위에 올려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올려져 있던 진설병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이는 첫째로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으며 둘째로 시편 1편에서 말씀하는 "복있는 사람의 습관"인 매일 말씀을 묵상해야 하며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씀해줍니다.
(2)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 6:33)
아무리 훌륭하게 구운 떡이라고 할지라도 먹지 않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그레서 떡을 먹어야 하는데, 구워서 떡상에 올려놓자마자 먹을 수 없었고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에 급한 마음으로 하지 말고 인내로써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설병은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아무리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하나님 최우선주의를 말해줍니다.
(3) 자기부인의 삶을 살아라
진설병을 만들 때에는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곡식의 열매를 가루가 될 때까지 찧어서 만듭니다. 여기에는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진설병은 이스라엘 12지파 즉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가루가 될 때까지 즉 자기 자신의 형태가 없어질 때까지 다시말해서 자기 부인을 할 때까지 부서지고 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 부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받으며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입니다.
(4) 말씀을 잘 소화하라
둘째로 '떡'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한 성경 말씀이기도 합니다. 즉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온몸이 가루가 되도록 채찍을 맞으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한 성경 말씀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 딱딱한 것은 건강한 사람만 먹을 수 있지만, 가루로 만들어진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병자를 막론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딱딱한 채로 먹지 말고 잘게 부수고 가루로 만들어서 먹어야 합니다. 이는 성경공부와 성경의 해석을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엉뚱한 길로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성령께서 성경말씀의 뜻을 조명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성경을 해석해놓은 주석을 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지식과 내 환경과 감정으로 성경을 해석하다가 자칫잘못하면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해석했으면, 그 말씀을 잘 소화하여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말씀을 알고 설교를 들을 때 깨닫기도 하지만 그것을 실제 삶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서 되새김질을 하면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레위기 1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위의 동물들 중에서 먹지말라고 금하신 것들은 쪽발이 아니거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즉 굽이 갈라진 것은 외모를 말하는데 이는 주일마다 교회에 가면서 크리스천이라고 남들이 알 수 있도록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되새김질은 내면을 말하며 들은 말씀을 다시 생각하며 그 말씀의 맛을 알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돼지는 굽이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게 가증하니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교회 안에는 돼지처럼 겉만 크리스천이고 속은 온갖 더러운 오물을 담고있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우리는 이렇게 돼지와 같은 크리스천이 되지 말아야 하며 또한 그러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매우 조심해야만 합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입니다.
(5) 거룩한 삶을 살아라
진설병에는 '누룩(leaven, 하메츠 חָמֵץ)'을 넣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룩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라며 누룩을 겉으로만 하는 형식주의와 같은 "'악한 것'의 대표로 말씀하셨습니다. 누룩은 밀가루에 들어가 밀가루 본연의 성질대로 있지 못하게 하고 밀가루를 부풀려서 변하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따라서 누룩을 넣지말라는 것은 순결함과 거짓이 없는 진리를 말씀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좋아해서도 안되며, 세상의 어떠한 것을 교회에 갖고 들어와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누룩을 넣지 말라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어떠한 것도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 그리고 구원을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리새인들처럼 의식적으로 부풀려서 사람들에게 보이기위한 것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오기를 원하시지, 우리를 멋지게 포장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가끔 회개할 때에도 애통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입으로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셋째로 복음의 순결함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복음에 이런 저런 물을 타서 복음인지 다른 물인지 구분이 안갈 때가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성경을 윤리나 도덕책 정도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사업에 이용하기도 하며 하나님을 가르치기에 좋은 말씀이 많기 때문에 자녀 교육용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경은 좋은 말씀이 많고 여러 분야에서 우리를 성공하도록 이끄는 지침서와 같은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러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책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수많은 책들과 구별되어져야 하는 거룩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릴 제단을 만들 때에도 돌로 제단을 만들 때에는 돌을 다듬지 말고 원석 그대로 사용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다듬기를 원치 않으시고 조각목인 우리를 직접 다듬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각과 지식과 감정대로 다듬으면 죄성을 갖고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다음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결함과 진실함을 잃지 말고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6)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을 받으라(요 16:8)
진설병은 기름을 부어서 반죽해야만 하며 구울 때에도 기름을 발라서 구웠고 떡 위에 유향을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떡을 먹을 때에도 기름을 발라서 먹었습니다(레 2:1-6). 여기에서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며 유향은 기도를 말합니다. 떡을 반죽할 때에도 기름을 넣어 반죽하고 반죽한 떡을 구울 때에도 기름에 굽고 떡상에 진설할 때에도 기름과 함께 놓고 구운 떡을 먹을 때에도 기름에 찍어서 먹는다는 것은, 말씀은 항상 성령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을 때 아무 생각없이 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어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또 어떤 생각에 빠져서 성경을 읽다가 엉뚱하게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성경말씀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이며 심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나 설교나 간증을 들을 때에는 그냥 듣지말고 반드시 성령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7)불시험의 연단을 감사함으로 받으라(욥 23:10)
진설병은 번철에 기름을 바르고 구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음식을 만들 때 구운 것과 찐 것은 금방 눈으로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찐 만두와 군 만두는 겉 모양부터 다릅니다. 찐 것은 부드고, 구운 것은 딱딱합니다. 그런데 찐 것은 부드러운 반면에 금방 상하지만, 구운 것은 딱딱해 보여도 기름에 구웠기 때문에 고소하고 쉽게 상하지 않습니다.
찐 것은 찜통에 한 번 넣으면 끝입니다. 그러나 굽는 것은 한쪽이 다 구워졌으면 뒤집어서 다른 쪽이 구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에 찌는 것처럼 그냥 놔두면 한쪽은 다 타버리고 한쪽은 제대로 익지 않아서 호세아 7장8절에서 말씀하는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이 됩니다.
처음에는 잘 익혔는데, 결국에 가서는 한쪽이 새까맣게 타고 한쪽은 먹지 못하도록 설익은 모양이 되면 안됩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을 요즘은 "크리스탄"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는 "크리스천"과 "사탄"을 붙인 말입니다. 즉 크리스천으로 시작했다가 사탄으로 마친다는 의미로 새로 생긴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되면 큰일입니다.
이쪽 저쪽을 굽는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만 하고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성경만 보고 기도는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는 잘 나오는데 일상생활에서 구제나 봉사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한쪽에 치우쳐서 그쪽만 새까맣게 태우지 말고 골고루 이쪽 저쪽이 다 익어야 합니다.
굽는다는 것은 불과 같은 연단을 말합니다. 성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불과 같이 뜨겁고 견디기 힘든 통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떡상에 올려지기에 합당한 정도로 구워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쯤이면 됐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뒤집어서 다른 쪽이 구워질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위해 바쳐지기 위하여 연단시키시는 그 순간을 잘 견디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기름에 발라서 떡을 굽는 것처럼 기름인 성령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참고 견디어야만 합니다. 만약에 기름이 부족하면 금방 떡이 타기 때문에 항상 성령님인 기름을 적당히 유지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성령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인내하며 감사함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연단이 끝나면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속에서 연단된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8) 기도로 준비하라
진설병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유향과 같이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유향과 함께 하나님께 화제로 드리는데 유향은 기도를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기도로 준비하고 또 예배를 드릴 때에도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기가 올라가도록 해야합니다.
성막의 뜰과 성소 안은 매우 다른 것을 경험합니다. 성막의 뜰에만 들어올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소 안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은 만나 이외에도 성소 안에 진열해놓은 진설병과 제사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그들이 준비할 필요가 없지만, 진설병이나 제사드릴 음식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잘 준비해야 했습니다.
즉 일반인들은 거저 주는 것을 받아 먹지만, 제사장은 항상 준비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설교만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 앞에서 준비된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는 다른 것이 아니라 '기도'로 준비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지않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의 가장 기본은 '기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도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9) 거룩한 곳에서 먹어라
진설병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합니다. 거룩한 곳이란 어떤 곳입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드릴 장소에 대하여 예수님께 여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세상과 구별한 시간과 장소가 거룩한 시간이며 거룩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거나 성경을 묵상하고 있거나 기도하고 있거나 주님의 이름으로 구제와 봉사와 선교와 전도와 치유와 양육을 하고있는 시간과 장소가 거룩한 곳입니다.
여러분은 매일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거룩한 곳에 서 있습니까? 거룩한 곳과 세속적인 곳 중에 어느 곳에 더 많이 서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 바치는 시간이 많으냐에 따라 여러분의 부동산을 측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여러분은 어떠한 비율로 다스리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세상 것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면, 여러분의 땅은 거룩과 상관이 없는 마귀에게 속한 땅이 대부분이며, 거룩한 땅은 아주 조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찬양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구제하고 봉사하며 선교와 전도에 힘쓰며 병든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돌보며 살아간다면 여러분의 땅은 대부분이 거룩한 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진설병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쳐지기 위하여 아직도 번철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직 반죽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가루를 만들기 위하여 단단한 자아를 찧고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떄에 우리는 아프다거나 뜨겁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감사함으로 모든 환경과 상황을 견딥시다.
(20) 겸손하라
마지막으로 진설병은 서서 먹어야 하는데, 떡상은 낮기 때문에 허리를 굽혀야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인 겸손한 자세로 대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영적으로 공급되는 영의 양식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