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벧전 1:13-25)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6.04.08|조회수1,615 목록 댓글 0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gird up the loins of your mind, be sober)


베드로전서 1:13-25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 글을 쓸 당시의 옷을 보면 바지가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까지 원피스 형의 치마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허리띠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에베소서에보면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허리띠라는 것은 군인들이 전쟁에 나갈 때 하지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허리띠에 칼을 차지도 하고 흉배 즉 오늘날의 방탄조끼와 같은 것을 더욱 단단히 조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허리띠가 없이 다시말해서 우리의 삶인 영적 전쟁터에서 진리의 말씀이 없이는절대로 전쟁터에 나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이들이 진리의 말씀이 없이 영적 전쟁터에 겁도 없이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교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교육을 시켜서 전도하라고 내보냅니다. 진리의 말씀이 그에게는 얇은 허리띠 정도 밖에 없는데, 그런 허리띠를 띠고 전쟁터에 나가라고 합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교회의 리더들조차 성경을 잘 모르면서 선교지에 나가고 주님의 양떼들을 가르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허리띠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매어져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허리띠(벨트)를 멜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12:11절을 보면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부터 나오기 전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바로 왕의 강퍅한 마음 때문에 애굽 땅은 저주를 받아서 완전히 쑥밭이 되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애굽에 사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동물들까지 무조건 처음 태어난 사람이나 동물은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바르면 장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절대로 밖으로 나가면 안되고 문설주에 피를 바르기 위하여 죽인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그때 편하게 앉아서 먹는 것이 아니라 허리에 허리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시면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도 언제든지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지체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원피스 형의 긴 옷을 입었을 때에 허리띠를 하지 않으면 걸어다니기가 불편한 것처럼, 우리 마음을 허리띠로 동여매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 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단히 묶어놓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쾌락과 명예와 권세와 돈을 얻기 위하여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라고 말씀합니다. "허리를 동이고"라는 헬라어 "아나조사메노이 ἀναζωσάμενοι"는 "허리띠를 졸라 매다", "단단히 준비하다", "다시 매다", "(전투에 대비하여) 마음을 긴장시키다, 대기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뜻은 군인들이 훈련하거나 전투를 할 때 몸을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보면, 허리를 그냥 동이는 것이 아니라 "근신"하라고 합니다. 근신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네폰테스 νήφοντες"라고 하는데, 이 말 뜻은 "being sober-minded"라고 해서 "분별력이 있는" 또는 "술취하지 않고 정신이 멀쩡한"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술"은 "세상"을 뜻하므로 세상의 어떠한 것에도 분별력이 없어서 거기에 관심을 갖고 빠지지말고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분별력을 갖고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분별한 상태에서 그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을 깨울 때 "정신 좀 차려봐"라면서 몸을 흔듭니다. 그 사람은 술에 취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하나님보다 더 좋아서 거기에 정신이 빠져있는 사람은 아무리 성경말씀을 말해주어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만약 어느 남자가 아내가 있는데도 아내와는 방도 따로 쓰면서 다른 여자에게 빠져있다면, 주위에서 아무리 정신 좀 차리고 아내에게 돌아가라고 권면해도 그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절대로 돌아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여자에게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근신하라"라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 세상과 구별됨이 없이 어딘가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 상태에서 빠져나와 분별력을 갖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분별력과 비슷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거룩"입니다. "거룩"은 세상과 구별된 것을 말하므로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돼지와 개처럼 이방인들이 하는 더러운 습관을 밥먹듯이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부터 16절까지를 보면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라고 하면서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거룩하므로 저와 여러분도 거룩하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해야만 합니다.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친구들이나 세상의 누구와도 반드시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그들의 생활방식을 따라간다면, 그 사람은 돼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겉은 크리스천이지만, 속은 아니라는 거지요. 즉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차피 지옥에 갈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므로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즐기며 살아가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성경을 알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서도 계속 죄책감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 뜻대로 살면서 전혀 죄책감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합니다. 요즘은 교회에서 하도 축복에 관한 말을 많이 하고, 또 상처 치유에 대해 말을 하면서 인본주의로 많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 이해하시므로 염려할 것이 없고,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아무 죄책감도 없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뜻대로 살면서 아무 죄책감 없이 돼지처럼 살고있지는 않습니까?

정말로 거룩하게,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14절에서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하라고 말씀합니다.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헬라어 "ὡς τέκνα ὑπακοῆς(호스 테크나 휘파코에스)"는 셈족들이 사용하는 표현인데, 셈족들에게 있어서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는 '상속자'라는 뜻과, 부모의 성품이나 인격 등을 보고 배워서 '부모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어떤 자녀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서 우리는 "빛의 자녀"(엡 2:3, 살전 5:5)라는 말을 통하여 우리가 빛되신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보고 배워서 빛의 역할을 하거나 빛되신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를 상속받아서 그곳에서 살아갈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진노의 자녀'(엡 2:3), '불순종의 아들들'(엡 5:6, 골 3:6), '멸망의 아들'(살후 2:3, 요 17:12), '패역의 자식'(사 57:4), '죽음의 자식'(삼하 12:5) 등의 표현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라고 말씀합니다.

"알지 못할 때"라는 헬라어 'ἀγνοίᾳ(아그노니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the ignorance)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성경을 모르는 무지를 말합니다. "성경을 모를 때에 좇던 사욕을 본 삼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사욕'이라는 헬라어 'ἐπιθυμίαις(에피튀미아이스)'는 영어로 'desires'라는 뜻으로 이것은 선한 것이나 악한 것이 아닌, 그저 우리 인간이 하고싶은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구가 문제가 아니라, 그 욕구를 만족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서신을 쓸 당시에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성적인 욕망을 금하지 못하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의 몸이 원하는대로 즉 자기 뜻대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성경에서는 '정욕' 또는 '사욕' '욕심'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나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모든 것을 따르지 말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 삼지 말고"라는 헬라어 'συσχηματιζόμενοι (쉬스케마티조멘오이)'는 영어로 'fashioning yourselves' 즉 '자신을 꾸미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자기의 욕구로 즉 세상 욕망으로 여러분 자신을 꾸미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잠언 4장23절을 보면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우리의 마음에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나올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 더러운 것들 중에는 우리의 세상적인 욕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놓지 않으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세상의 지식과 물질과 쾌락 등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은 순간적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마음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어디이며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하고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물질과 쾌락과 친구와 사랑 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하고싶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하나님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여러분이 사랑해야하는 가족들이나 교회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만약 그것이 하나님과 제일 관계가 깊다면, 그것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 자신과 제일 관계가 깊다면, 절대로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고 가족들과 점점 더 멀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면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행위(work)'라는 헬라어 'ἔργον(에르곤)'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이란 말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아버지를 닮기 때문에 아버지의 행위와 우리의 행위가 다르면 안됩니다. 아버지의 말씀과 우리의 언어가 달라도 안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면 그분의 말씀대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믿음의 행위를 나타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야고보서에서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과 같은 뜻으로,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한 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국은 천국 또는 지옥입니다. 이세상은 우리가 잠시 나그네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는 헬라어 'παροικίας(파로이키아스)'는 '머물다(stay)'라는 뜻으로 외국에 잠시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여기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에 잠시 살고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든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이세상을 떠난 준비를 잘 갖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누가복음 12:35-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밤이 깊었어도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허리 띠를 벗지 말라는 말이며, 

또한 허리 띠를 준비하고 주인이 오면 허리띠를 띠기 위해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허리 띠를 착용한 상태로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종들은 복이 있는데, 주인이 직접 띠를 띠고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을 들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성경의 어떤 장면이 떠오르십니까?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허리에 띠를 띠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을 이루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를 단단히 묶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이 아닌, 여러분의 생각이나 세상 지식이나 경험이나 감정이나 의지 등 무엇이든 그것으로 허리를 단단히 조여맬 때에 그것은 여러분의 삶을 계속해서 조여올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으로 여러분의 옷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잘 조인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항상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고있는 옷이 제대로 옷의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해야합니다. 

우리가 입고있는 겸손의 옷, 의의 옷들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경말씀인 진리로 벨트를 해야만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다른 것으로 벨트를 하면 우리가 입었던 겸손의 옷은 교만의 옷으로, 의의 옷은 자기 의의 옷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딤전 6:20).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 3:9)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이처럼 세상의 헛된 말과 헛된 지식들을 우리는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23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모든 것이 썩어질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며, 또한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썩어질 육체를 위해 치장하고, 썩어질 육체의 즐거움을 찾아 썩어질 세상 속을 헤메며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22절에서 결론적으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에서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의 "사랑(brotherly love)"은 "φιλαδελφίαν(필라델피안)"으로 형제나 친구들의 우정 정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의 "사랑"은 "ἀγαπήσατε(아가페사테)"로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현재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친구나 형제의 사랑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말씀하는데, "뜨겁게"라는 헬라어 "ἐκτενῶς(에크에노스)"는 "뜨겁게"라는 말도 있지만 "시종 일관"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으로, 하나님처럼 일관성있는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분 좋을 때는 사랑하다가, 기분 나쁠 때는 내 맘대로 내키는대로 가족이나 이웃을 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그저 조건적 사랑인 형제애나 우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23절에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썩어질 씨"라는 것은 아담을 통해 내려오는 혈통을 말합니다. 결국은 죽어야 하는, 깨지기 쉬운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며, "썩지 아니할 씨"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에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아 썩어서 없어질 그런 저주받은 인간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코 썩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새예루살렘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고 고백한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을 붙잡고, 그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단단히 붙들어 매고 살아가는 가운데, 마귀의 어떠한 공격에도 진리의 말씀의 칼을 휘두르며 항상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Esther Soo-Gyung Kim, Pastor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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